소설리스트

술 빚어 재벌 되렵니다-194화 (194/254)

주류 특화 단지 (1)

시간이 흘러 2개월 후.

가을이 지나 한겨울이 될 무렵.

삼척 시청은 새해를 맞아 신년 행사로 상당히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그 모든 행사의 중심이 되어야 할 시장은 정작 다른 일로 머리를 감싸며 고민을 거듭하고 있었다.

삼척 시장 유명석.

그는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어느 정당에도 소속되지 않은 무소속으로 출마해서 시장 자리까지 올라간 것은 생각지도 못한 쾌거였다.

솔직히 말하면 운이 좋긴 했다.

고맙게도 유력했던 후보자 두 명이 서로 물어뜯다가 치명적인 문제를 드러내며 함께 자멸하고 말았다.

하지만 어부지리로 시장 자리까지 올라왔다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학력이나 경력 모두 어디 가서 꿀릴 정도는 아니었다. 나름 명문대학교의 교수였던 그는 삼척에서 배출한 인재다.

그런 그가 자산까지 털어 무소속으로 출마한 이유는 공천 문제 때문이었다.

지난 선거는 자리를 잡기 위한 초석에 불과했고 진짜는 다음 선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정신 차려보니 시장이 되었다.

문제는 과연 다음 선거에도 시장 자리를 유지할 수 있냐는 것이다.

“아무리 계산해도 연임은 어렵겠지?”

“이제라도 마음의 결정을 내리시고 입당하시죠. 그게 가장 편하고 확실한 길입니다.”

정책보좌관이자 가장 믿는 심복이라 할 수 있는 조용정의 말이 틀리진 않았다.

하지만 지금껏 온갖 행사를 돌며 양대 정당에 치우치지 않고 오직 삼척만을 위해 일하겠다고 했던 말이 걸렸다.

문제는 그래서 더 성과를 내기 어려웠다.

예산을 따오는 것부터 시작해서 뒷배가 없으니 낙동강 오리알 신세와 비슷했다.

가끔 유명석 시장은 이러려고 시장이 된 건가 자괴감이 들 정도였다.

“정치라는 게 했던 말을 모두 지키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잖아요.”

“됐고! 저번에 논의했던 오저당 건은 어떻게 됐어? 아무리 생각해도 주류 특화 단지가 해법인 것 같아.”

“정말 그걸 추진하실 건가요?”

조용정 보좌관은 아직 확신이 없었다.

그가 꺼려하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었다.

오저당이 있는 가곡면은 삼척 소재인 것은 맞으나 생활권은 태백이다.

더구나 가곡면은 삼척의 여러 지역 중에서도 가장 인구가 작은 곳이다.

그나마 최근에 조금 늘긴 했으나 시청이 있는 시내의 교동 인구와 비교해도 1/20밖에 안 되는 수준이다.

차라리 그 노력을 삼척 시내에 사는 유권자에게 쏟는 게 훨씬 이득이었다.

하지만 유명석 시장의 생각은 보좌관과 조금 달랐다.

“단순하게 표를 얻으려고 하는 일이 아니잖아. 내가 바라는 것은 시장으로서 뭔가를 해냈다는 치적이야.”

지금까지 큰마음 먹고 해오던 지자체 사업이 여럿 있었으나 돈은 돈대로 쓰고 제대로 된 성과를 얻은 것은 없었다.

정책보좌관인 조용정에게도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기에 그 문제에 대해서는 할 말이 딱히 없었다.

“조 보좌관, 작년에 오저당의 매출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 있어?”

“글쎄요. 이제 겨우 1월이라 정확한 자료가 나오진 않았을 텐데요.”

“작년 매출만 1,500억을 넘겼어.”

생각보다 높은 매출이었기에 조용정은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과연 믿을 수 있는 수치인지 의심부터 했다.

예상치를 훨씬 웃돌았기 때문이었다.

“그게 정말입니까? 재작년 매출은 말씀하신 것의 1/3 수준이었는데요. 거의 300% 가까이 성장한 거잖아요.”

“내가 그 정도도 확인 안 했을 것 같아? 아직 구체적인 수치는 안 나왔는데 적어도 그 정도라고 예상하더라.”

어느 경로로 알아낸 건지는 알 수 없으나 여기서 그럴 리 없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지금 그런 말을 꺼내면 싸우자고 덤비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작년은 아이돌이란 변수가 있었잖아요. 올해도 그 정도의 수준을 유지할 수 있을 거라 장담하긴 어렵습니다.”

“만약에 절반 정도까지 뚝 떨어졌다고 하더라도 삼척에 그 정도 규모의 회사가 있기나 해?”

조용정 보좌관은 생각할 것도 없이 고개를 저었다. 삼척에 대규모 공업 공단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당연히 오저당과 비교할만한 곳조차 없었다.

만약에 그 정도의 회사를 삼척에 유치하려면 얼마나 돈을 들여야 할까.

여러 가지 편의를 봐주며 엄청나게 밀어줘도 여러 여건상 삼척으로 오려고 하는 회사는 거의 없을 것이 확실했다.

“오저당 수준이면 국내 주류 회사 중에서 TOP 5 이내에 들어갈 정도야. 이미 양조장 수준을 벗어났다고 봐도 돼.”

“하지만 주세는 국세로 분류되니 정작 삼척에 들어오는 돈은 없는 게 문제죠.”

“대신 고용 효과는 상당하잖아. 최근에 채용 규모 봤지?”

“네. 이번에 거의 서른 명 가까이 더 채용해서 백 명 단위를 넘어섰더군요. 하지만 태백에서 출퇴근하는 직원들이 대부분입니다.”

실제로 삼척시에서 보조해줘서 운행하는 출퇴근용 버스도 태백에서 오풍리를 오가며 운행하고 있을 정도였다.

그것 때문에 왜 삼척시의 세금으로 그런 일을 하냐는 말도 많이 나왔다.

“그러니 오풍리에서 아예 머물 수 있게 만들어줘야지. 그러면 굳이 태백에 집을 구해서 살지 않아도 되잖아.”

오저당의 직원들 주소지만 삼척으로 해놔도 이런저런 세금이 걷히게 된다.

그게 얼마 되겠냐마는 오저당을 찾아오는 관광객의 숫자까지 고려하면 작다고 말하기도 어려웠다.

“조만간 오저당 사장이랑 만나기로 약속되어 있으니까 그때까지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해보자고.”

*

RJ가 오저당을 다녀간 후부터.

많은 것들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었다.

법무법인 해국을 통해서 양조장의 인수는 물론이고 RJ와 계약하는 것도 마무리됐다.

새로 런칭되는 RJ의 술은 감저(甘藷).

한때 고구마를 의미하는 말이었으나 감자의 옛말이기도 한 그 단어를 선택한 것이 RJ였기에 받아들여야만 했다.

하지만 그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감자라는 것이 수분을 많이 머금고 있어서 분쇄 과정부터 문제가 생겨서 특수한 설비가 필요할 정도였다.

애초에 주정을 만들 때.

서양 돼지감자라 불리는 타피오카 외에는 재료로 쓰는 일이 많이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 있다면 인수 과정에서 노하우가 전수되었다는 것이다.

“이제 슬슬 출발하실 시간입니다.”

잠시 이런저런 서류를 보고 있자,

다미안이 다가와서 스케줄을 알려줬다.

슬쩍 시계를 보니 약속 시간이 한 시간 정도 남은 것이 보였다. 확실히 비서가 있으니 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시간이 이렇게 됐는지 몰랐네요. 금방 준비해서 나갈게요.”

갈 때 가더라도 옷은 갈아입어야 했다.

오저당의 근무복은 자율이라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오늘 가는 자리는 이런 모습으로 가긴 어려웠다.

다미안에게 시동을 걸어 놓고 있으라고 부탁한 뒤에 곧장 한옥으로 돌아간 나는 옷장에서 세미 정장과 코트를 꺼냈다.

거기에 목도리는 덤이었는데 참고로 이건 RJ가 선물해준 것이었다.

남미 콘서트를 할 때 산 거라나.

알파카 털로 짠 캐시미어라고 했는데 알아보니 생각보다 가격대가 꽤 있었다.

그래도 꽤 포근하기에 이번 겨울에 잘 쓰고 있는 편이었다.

외출 준비는 그걸로 끝났다.

딱히 뭘 더 해야 할 필요는 없었다.

서둘러 밖으로 나오니 이미 다미안은 한옥 앞에 허머를 주차하고 대기하고 있었다.

“그나마 눈이 많이 녹아서 다행이네요.”

“삼척까지 가는 도로는 전부 제설 작업이 됐다니 크게 위험하진 않을 겁니다.”

“그래도 조심해서 가죠.”

허머가 중량이 많이 나가고 스노타이어를 기본적으로 장착하고 있으나 도로가 험해서 큰 사고가 날 수 있다.

실제로 얼마 전에 태백 지역에서는 블랙아이스에 미끄러져 가드레일을 뚫고 계곡으로 추락한 사고가 있었다.

하지만 다미안이 말했던 대로 제설 작업이 잘 되어 있었기에 동해대로까지 나오는 길은 생각보다 쾌적했다.

확실히 오저당이 커질수록 고립에서 풀려나는 속도가 빨라지는 것 같았다.

그만큼 시청에서도 많이 신경 쓰고 있다는 증거였다.

“다미안, 수파싯은 여전히 몸살감기가 심각한가요?”

“많이 좋아졌어요. 처음으로 제대로 겪는 겨울이라 더 심했던 거 같아요.”

“하긴 이야기 들어보니 수파싯이 유학할 때 머물던 에든버러 날씨가 영하까지 떨어지진 않는 곳이라고 하더군요.”

이번 겨울에 수파싯은 물론이고 다미안도 상당히 많이 고생했다.

한국 사람도 꽤 어려움을 겪는 추위인데 태국과 스페인 남부 지역 출신인 두 사람이 감당할 수준이 아니었다.

그래도 다미안은 한국에서 머물던 시간이 제법 되었기에 수파싯보다는 적응하는 과정이 그나마 짧은 편이었다.

어느덧 비서로 일한 시간이 3개월 가까이 되었기에 일 처리도 능숙해졌다.

거의 1시간 가까이 달려서 우리가 도착한 곳은 삼척 시청이었다.

오늘 약속은 이곳 삼척을 책임지는 시장과 만나는 자리였다. 당연히 유명석 시장과 처음 보는 것은 아니었다.

오저당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온 이후부터 은근히 이런저런 자리에서 만날 기회가 많이 있었다. 시에서 진행하는 축제가 있을 때마다 부스를 열어 우리 술을 판매한 적도 제법 많이 있었다.

“주 사장님. 제법 오랜만에 뵙네요.”

시청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소정우 주무관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손을 흔들며 다가오는 것이 우연한 만남은 아닌 것 같았다.

지금까지 소 주무관을 알고 지낸 세월이 2년이 넘어가고 있었고 워낙 자주 얼굴을 봐온 터라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나를 마중하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았다.

“시장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제가 올 때까지 여기서 기다린 겁니까?”

“마음 같아서는 직접 모시러 가고 싶었을 정도라니까요.”

소정우는 지난가을부터 확연하게 늘어난 삼척 여행객의 숫자를 모두 오저당 덕분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심지어 여행 비수기라 할 수 있는 겨울인 것을 감안하더라도 증가 폭이 확실하게 느껴질 정도라고 했다.

“얼마 전에 열린 태백 눈꽃 축제 때도 오저당을 거쳐서 은근히 삼척으로 넘어오시는 분들이 많았거든요.”

“아··· 그때 갑자기 사람들이 몰려들어서 저도 깜짝 놀랐죠.”

“부디 오늘 좋은 결론이 나오길 바랄게요. 제가 오저당만 바라보고 기획하고 있는 축제가 있거든요.”

“무슨 축제요?”

살짝 호기심이 들어 뭘 구상하고 있는 건지 물어보았다. 그러자 소정우는 기다렸다는 듯이 태블릿을 꺼내 들었다.

그곳에는 PPT 하나가 띄워져 있었다.

“사장님도 독일의 맥주 축제인 옥토버페스트 아시죠?”

“물론이죠. 아직 가보진 않았으나 세계적으로 유명한 축제잖아요.”

“그리고 국내에서는 대구 치맥 페스티벌 그리고 부산 수제 맥주 축제가 있는데 저는 그보다 삼척에 더 큰 규모로 축제를 열어보고 싶거든요.”

그 외에도 전주의 가맥 그리고 송도와 신촌 그리고 광주에서도 매년 맥주 축제가 열리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 축제의 아류가 될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고 생각되었다.

하지만 소정우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독일에서 열리는 축제도 시작은 미약했을 거라며 지금 당장이 아니고 먼 미래를 보자며 나를 설득했다.

그런데 그의 말에 설득된 것은 내가 아닌 향이였다.

[와아! 상상만 해도 행복한걸요. 전국에서 모인 사람들이 우리 요정들이 빚은 술을 마시며 즐기는 거잖아요.]

우리가 빚는 술을 가지고 축제를 한다는 것이 그리 나쁜 일은 아니었다. 제대로 된 값을 받긴 어렵겠지만, 단숨에 매출을 올릴 기회이자 홍보 효과도 있을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오저당에 맥주 라인이 없다는 것이다.

그나마 ASAP가 있으나 맥주와는 완전히 다른 존재다.

‘그냥 이번 기회에 수제 맥주 라인도 늘려볼까?’

어차피 봄이 되면 최근에 계약한 양조장의 술을 빚을 공간을 마련할 생각이라 조금 더 확장하면 될 일이다.

다른 술과 달리 물을 많이 쓰게 되겠지만, 계곡 상류에 물의 요정이 있으니 걱정되진 않았다. 향이의 말에 의하면 물의 요정이 있는 곳에 물이 마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잠시 그런 생각을 하다가 왜 하필 지금 소정우 주무관이 내게 이런 말을 하는 건지 궁금했다.

“혹시 기획안을 올렸는데 까인 겁니까?”

“역시 금방 알아차리시네요. 특정 업체 위주로 돌아가는 축제라 뒷말이 나올 것 같다며 국장님 선에서 짬처리 됐습니다.”

“일단 이거 잠시 빌려도 될까요?”

나는 소정우가 건넨 태블릿을 가리키며 물었다. 슬슬 약속 시간이 다 되었기에 시장실로 가봐야 할 것 같았다.

“직접 시장님에게 보여드리시려고요?”

“네,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이게 편하겠죠.”

소정우가 영혼을 갈아 만든 것 같은 PPT는 잘 정리되어 있었다.

유 시장이 왜 나를 부른 건지 잘 알기에 이것도 협상안에 넣어볼 생각이었다.

‘무엇보다 향이가 즐거워하잖아. 그러면 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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