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술 빚어 재벌 되렵니다-195화 (195/254)

주류 특화 단지 (2)

다미안과 함께 4층에 올라가자,

유명석 시장의 비서가 반겨주었다.

그는 곧장 시장실로 우리를 안내했는데 그곳에는 몇 명의 보좌관과 함께 유 시장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주도찬 사장님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시장님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일단 이쪽으로 앉으시죠. 차는 어떤 걸로 준비해드릴까요?”

“저는 커피로 부탁하고 이 친구는 녹차로 주시면 됩니다.”

다미안의 음료 취향은 확실한 편이다.

평소에 커피는 입에도 안 대고 차를 즐기는 것을 잘 알기에 대신 부탁했다.

음료를 준비하는 사이에 우리는 간단한 스몰 토크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는 그리 오래가진 않았다.

시장도 그렇고 나도 바쁜 사람들이기에 머지않아 본론으로 들어갔다.

유명석 시장이 신호를 보내자 보좌관 한 명이 시장실에 있는 화면을 켰다.

그리고 잠시 후에 꽤 정성 들여 만든 것 같은 조망도가 화면에 띄워졌는데 그걸 보며 유명석은 자신의 포부를 밝혔다.

“저는 삼척에 국내 최초로 주류 특화 단지를 만들고 싶습니다. 한국에도 루이빌 같은 도시가 하나쯤 있어야죠.”

“루이빌을 아시는군요.”

“이번 일을 진행하면서 나름 꽤 많은 공부를 했으니까요. 더구나 오저당의 미국 법인에서 버번 증류소를 인수할 때부터 관심을 두고 찾아봤죠.”

“그런데 보통 단지라 부르려면 오저당 외에도 여러 주류 업체가 뭉쳐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나는 그게 가장 궁금했다.

삼척에 양조장이 많지도 않다.

모든 양조장을 다 끌어모아서 오풍리에 집어넣어도 안 채워질 것 같았다.

“맞습니다. 그래서 이미 업체를 유치하기 위해 꽤 많은 곳들과 접촉해서 이야기를 진행 중입니다.”

과연 옮겨올 곳들이 있을까?

내 생각에는 그리 많지 않을 것 같았다.

당장 오저당에 상당히 파격적인 제안이 들어왔다고 가정해보면 고민할 것도 없이 불가능한 일이라며 고개 저을 것이다.

술맛의 절반은 물이라고 할 수 있다.

덕월 계곡과 암반 밑의 지하수는 상당히 퀄리티 좋으나 그걸 누가 알겠어.

기존까지 술을 잘 빚던 이들이라면 굳이 위험을 감수하고 옮길 이유가 없었다.

“차라리 신규 업체에 지원하는 게 더 빠를 것 같은데요. 요즘 마이크로 브루어리와 양조장 창업 많이 하잖아요.”

“당연히 그와 관련된 지원금과 지원 방법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오저당은 무슨 혜택이 있을까요?”

다른 업체에 뭔가 해주는 것은 내 알 바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오저당이 뭘 얻어갈 수 있냐는 것이다.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를 지적하자 그제야 시장은 준비한 패를 꺼냈다.

“예전에 말씀드렸듯이 소유하고 계신 토지의 지목 변경해드리는 것을 최대한 도와드릴 생각입니다.”

일단 약속을 받기는 했지만,

모든 땅을 다 활용하기는 어렵겠지.

소규모 환경 영향 평가도 받아야 하는데 일부 땅은 통과되지 못할 것 같았다.

오저당 부근이 협곡에 가까운 계곡 인근이라 개발했다가 여름철에 물난리가 벌어지거나 산사태를 유발할 수 있다.

그 외에도 유 시장은 몇 가지의 제안을 했는데 그다지 끌리는 게 없었다.

단지라고 해봤자 기초 공사를 해주는 것이 거의 전부였다. 오풍리에 가스나 상수도관이 들어오는 것도 아니었다.

그것도 당장 가능한 것이 아니고 정책이 실현되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나마 솔깃한 게 있다면 삼척에서 오풍리를 비롯한 인근 마을을 오가는 버스 운행을 추가하겠다는 정도랄까.

요즘 인구 감소로 지자체마다 소멸 위기를 겪으며 노선이 단축되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나쁜 조건은 아니었다.

현재 덕월 계곡을 지나는 버스 노선은 모두 합쳐도 네 개밖에 되지 않는다.

그것도 몇 번 운행되지 않는 터라 접근성은 정말 최악에 가까웠다.

서울에서 십여 분 만에 한 대씩 지나는 버스를 생각하면 큰코다친다.

괜히 우리가 돈을 벌자마자 차부터 뽑은 게 아니었다.

“오풍리와 인근 마을 주민분들이 꽤 좋아할 소식이네요. 하지만 그걸로 출퇴근 문제가 해결되진 않을 겁니다.”

유 시장의 의도는 뻔히 보였다.

가능하면 태백에서 출퇴근하는 이들을 삼척에 머물게 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그렇다고 출퇴근용 셔틀버스를 지자체에서 추가로 운영해줄 수도 없기에 내린 고육지책 같았다.

“오저당에서 태백 시내까지 30분 정도 걸리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죠.”

“거기까지 가는 길이 꼬불꼬불하고 산길이라 겨울에는 사고 위험이 많지 않습니까. 차라리 호산리부터 가곡천을 따라 존재하는 마을이 낫지 않겠습니까.”

오풍리부터 해안에 있는 호산리까지.

가곡천을 따라 몇 개의 마을이 존재한다.

대부분 수십 세대도 살지 않는 아주 작은 마을이었고 그중에는 우리 오저당에서 일하는 분들도 계셨다.

그나마 호산리가 있는 원덕읍이 3천 명 정도가 사는 가장 큰 곳인데 태백과 비교하는 것은 조금 무리가 있었다.

일단 대형 마트와 아파트도 없고 학교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직원들이 어느 곳에 살든지 그건 각자의 선택이라 해드릴 수 있는 것이 없네요.”

“충분히 이해합니다.”

딱히 그 부분은 유명석도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강력하게 원한다고 지자체에서 직접 집을 지어줄 것도 아니었다.

결국에는 오저당과 직원들이 돈을 들여서 집을 지어야 하는 일이다.

“정말 이게 전부인가요?”

날로 먹으려는 심보인가.

뭔가 대단한 걸 바라지도 않았지만,

정작 단지의 중심이 될 오저당에 주는 혜택은 지목 변경에 대한 편의를 봐주겠다는 것 외에는 별것 없었다.

“혹시 오저당에서 원하는 것들이 있으시면 귀담아듣겠습니다.”

“전통주의 기준은 알고 계시죠?”

“물론입니다. 이번에 공부를 많이 했죠.”

“명인이 계신 양조장이면 모를까. 일반 양조장은 해당 지역의 농산물을 쓰지 않으면 전통주의 자격을 잃게 됩니다.”

“그러면 삼척에서 필요한 농산물을 공급할 수 있냐가 관건이겠군요.”

다행히 말귀가 어둡지는 않았다.

곧장 무슨 말인지 알아들은 유명석은 이 일이 농업과도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삼척의 생산량보다 단지에서 빚는 술의 양이 초과한다면 여러 문제가 생기겠죠.”

“그러면 시에서 필요한 농산물을 생산할 수 있게 도와줘야겠군요.”

“맞습니다. 넓게 보자면 생산하는 농가와 소비하는 양조장 모두에게 이득일 겁니다.”

말 그대로 일거양득 아닌가.

삼척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삼척 소재의 회사에서 대량으로 소비하는 것이다.

중간 과정에서 폭리를 취하는 유통 회사가 끼어들 틈도 없을 테니 농가에서 얻어가는 수익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제야 얼추 그림이 그려진 것인지 유명석은 필요한 농작물이 뭔지 물어가며 메모까지 했다.

“당연히 저번에 말씀하신 감자도 거기에 포함됩니다. RJ와 함께 빚는 술도 감자를 베이스로 합니다. 만약에 생산량이 부족해 전통주 자격을 얻을 수 없다면···.”

그 뒷말은 일부러 잇지 않았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우리 입장에서는 그런 상황이 벌어지면 차라리 평창이나 강릉 같은 다른 감자 생산지로 옮기는 것이 훨씬 이득이다.

RJ의 감저 술을 빚는 양조장을 지을 때.

이번에 인수한 다른 양조장도 덩달아 따라 갈 수도 있었다. 반드시 오저당 옆에 그걸 지어야 할 필요는 없었다.

당연히 유명석도 그걸 잘 알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런 상황이 벌어지지 않게 만들 겁니다.”

얼추 중요한 이야기는 거의 끝났기에 그쯤에서 나는 시장실에 오기 전에 받은 소정우 주무관의 태블릿을 꺼냈다.

“일단 이것부터 보시죠.”

“이건 뭡니까?”

“어느 일 잘하는 시청 공무원이 바라는 그림이랄까요.”

유명석은 자신의 직원이 만든 거라는 이야기를 듣게 꽤 흥미롭게 바라봤다.

내용은 아주 간단하게 정리되어 있었기에 읽는 데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오저당의 술을 메인으로 축제를 열자는 내용이군요.”

“정확하게는 주류 특화 단지에서 파생되는 소득이라고 보셔야겠죠.”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지금까지 잠자코 옆에 앉아 있던 조용정 정책보좌관도 한마디를 거들어줬다.

미리 이 내용을 보고 받은 것은 아닌 눈치였는데 전체적인 아귀가 들어맞기 때문인 것 같았다.

“주류 특화 단지에서 빚는 술로 축제를 열어서 관광객을 유치한다. 이거 꽤 좋은 생각인 것 같습니다.”

“오저당 외에 다른 소규모 양조장들도 술을 홍보할 기회기도 하죠.”

물론, 오저당도 그 혜택은 보게 될 거다.

당장 이번에 새롭게 인수한 양조장의 술을 빚기 시작하면 소비자에게 선보일 수 있는 적당한 기회가 되겠지.

“그런데 오풍리에서 축제를 하면 접근성이 그리 크지 않을 것 같은데요.”

“기존에 여름마다 진행하시던 ‘썸’ 페스티벌이 있잖아요. 거기에 오저당 이름을 얹고 해변에서 진행하시죠.”

“그래도 되겠습니까?”

내 제안을 들은 유명석은 환하게 웃으며 반겼다. 따로 축제를 하자고 하기에는 조금 애매한 부분이 있긴 했다.

매년 삼척에서 열리는 축제만 일곱 개 정도 된다. 그중에서 가장 큰 축제는 삼척 해안에서 열리는 썸 페스티벌이다.

차라리 합쳐서 진행하는 것이 인력이나 재정 소모가 덜할 것이 분명했다.

술이 들어가는 축제는 대부분 여름에 열리는데 그 시기에 두 개의 축제를 진행하는 것도 애매했다.

“루나비치 리조트가 메인 협찬사로 진행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아마 더 좋아할 것 같은데요.”

술을 마시면 어딘가 이동하기 어렵다.

그 문제 때문에 오풍리에서 축제를 할 수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인근에 커버 가능한 숙박 업체가 그리 많지 않다. 야영장까지 모조리 활용해도 천 명 단위 이상은 불가능했다.

대신 루나비치 리조트는 규모가 제법 크기 때문에 그곳에서 머물며 축제를 즐기는 것도 크게 문제가 없었다.

더구나 삼척 시내까지 거리도 고작 4km 정도 되니 택시를 타도 되고 셔틀버스를 운영해도 이동 거리가 짧았다.

“나중에 사람이 정말 많아지면 종합운동장이나 인근 공원을 캠핑존으로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겠죠.”

당연히 내가 지금 말한 내용도 소정우 주무관의 아이디어였다. 거기까지 이야기가 진행되니 유명석 시장은 올해 썸 페스티벌에 큰 기대가 생긴 것 같았다.

그 덕분에 한참이나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했는데 다음 스케줄이 있다며 재촉하는 보좌관 덕분에 거의 두 시간 만에 풀려날 수 있었다.

유명석 시장은 자리에서 일어나는 내게 악수를 청하며 올해 썸 페스티벌과 주류 특화 단지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

그날 저녁에 해 질 무렵.

오저당에 돌아오자 대부분의 직원들은 퇴근 준비를 하고 있었고 수호는 오늘도 군고구마를 굽느라 불을 피우고 있었다.

매년 겨울마다 느끼는 건데 이 녀석은 군고구마 굽는데 진심이었다.

“또 군고구마 먹게?”

“겨울이 아니면 언제 먹겠어. 시장님이랑 이야기는 잘 마무리했어?”

“썩 마음에 들진 않는데 그래도 쏠쏠한 수확이 있었지.”

그게 뭐냐고 묻자 나는 소정우 주무관이 메일로 보낸 그의 PPT를 보여줬다.

수호는 썸 페스티벌에 우리 술을 테마로 추가한다는 내용을 보고는 관심을 보였다.

“좋네! 왜 이걸 생각 못했지?”

“아예 제안이 없던 것은 아니었어. 작년에 황 이사님이랑 마케팅팀이 다른 축제에서 부스 운영했잖아.”

“그때와는 규모가 다르잖아.”

“어쨌든 생각보다 시장님의 추진력이 상당할 것 같으니 우리도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아.”

이미 여름에 열릴 썸 페스티벌에 오저당도 참여하는 게 거의 확정이다.

삼척에서 더 성대하게 축제를 여는 일을 마다할 리가 없었다.

거기에 유명석 시장의 상황상 어떻게든 올해 내에 뭔가 이뤄내려고 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내가 정치에 관심은 없으나 작은 지역 사회이니 어떤 처지인지는 대충 들어서 알고 있었다.

“무슨 준비를 하면 될까?”

“그래서 말인데 이번 기회에 브루어리도 하나 인수해보는 거는 어때?”

“갑자기 그건 왜? 안 그래도 이번에 인수하는 양조장만 네 곳이 넘잖아.”

“축제 때 맥주가 빠지면 섭섭하잖아.”

맥주 없는 축제라니!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주류 특화 단지에 맥주를 빚는 곳이 들어올 가능성도 있으나 실제 생산으로 이어지기까지 꽤 오래 걸릴 것이다.

수호는 그런 내 의견에 동의하면서도 아직 우려의 눈빛은 거두지 못했다.

하지만 내가 그리고 있는 오저당의 미래에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기에 이번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우리도 이제 슬슬 종합 주류 회사로 가야지. 그러려면 맥주가 꼭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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