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말아야 할 것들 (3)
장례식을 무사히 끝마친 뒤.
선생님은 다시 대구로 내려가셨다.
아무래도 아드님이 사시는 대구 인근의 납골당에 모시는 것이 바람직했다.
거리가 가까워야 자주 찾아뵐 수 있기에 삼척에 모실 수는 없었다. 그리고 오저당도 일상으로 천천히 돌아왔다.
하지만 그걸로 끝은 아니었다.
모든 일에는 뒷정리가 필요했다.
장례식장에 찾아오신 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는 것도 며칠은 걸릴 정도였다.
워낙 많이 오셔서 카톡과 전화를 하다가 입에서 단내가 났다.
그렇다고 대충 넘어갈 수는 없지.
대부분 오저당과 연관되어 있는 분들이었고 돈과 시간을 들여서 찾아오신 분들에 대한 예의였다.
그와 동시에 양조장 리스트도 정리됐다.
당장 수출 가능한 퀄리티와 생산량을 가진 곳은 세 곳이 전부였다. 나머지는 여건상 시간을 두고 지원할 생각이었다.
따끔거리는 목 때문에 잠시 쉬고 있자 노크 소리와 함께 라니가 들어왔다.
손에 결재판을 들고 있는 것을 보면 뭔가 내 승인이 필요한 것 같았다.
“할 말이 있는데 잠시 시간 있어?”
“응. 황 이사님이랑 수호가 많이 도와줘서 생각보다 빨리 끝냈어.”
“그러면 이거 읽어보고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해줘.”
라니는 내게 결재판을 내밀었다.
거기에 쓰여진 내용을 최대한 간단하게 정리하면 두 분의 동상을 만들어서 오저당에 세우자는 것이었다.
“두 분의 동상을 세우자고?”
“다른 해외의 양조장이나 여행지에 가면 창립자나 공헌이 큰 분들의 동상을 세워서 기념하잖아. 오저당에서는 두 분이 그런 존재라고 생각해.”
라니는 광장에 세우는 것 같은 거대하고 화려한 것을 생각하진 않고 있었다.
그저 1:1 비율이나 그보다 조금 더 작게 동상을 만들어서 참나무 아래에 놓길 바라고 있었다.
심지어 예상 구도까지 직접 그려왔는데 어린 시절에 두 분이 함께 계시던 모습이 떠올라서 나도 모르게 살짝 울컥했다.
그리고 따로 말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신경 써주는 라니가 고마웠다.
“이대로 진행해도 되겠다. 하지만 정식으로 황 이사님 거쳐서 결재 올려야 되는 거는 알지?”
“당연하지. 두 분 모두 너한테 중요하신 분이니 미리 의견을 물어본 것뿐이야.”
“이번에도 요정 동상을 만든 작가님한테 맡길 거야?”
라니는 그럴 생각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각국의 오저당에는 여러 형태의 요정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대부분 국내의 여러 작가님들이 각각의 나라에 맞게 만든 것들이었다.
“예전에 보내주신 포트폴리오의 동상 보니까 인물의 특징을 잘 잡아주시는 것 같아서 믿고 맡길 수 있을 것 같아.”
“포르투갈 마데이라 공항에 세웠던 날강두 동상처럼 만들지만 않으면 돼.”
“그거 철거되지 않았나?”
“맞아. 인간적으로 조금 심했잖아.”
우리 둘은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안면에 비해 머리의 크기가 너무 커서 생긴 부조화가 상당히 컸던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참고로 은퇴한 날강두의 선수 생활 말년은 좋지 않았다.
그때 사무실이 시끌시끌했다.
살짝 일어나 밖을 보니 사무실 직원들에게 인사를 하는 몇 명이 보였다.
다른 곳에서 방문한 이는 아니고 이번에 취직한 오저당의 신입 사원이었다.
작년에 이어서 올해도 오저당은 직원을 뽑는 일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다.
3월부터는 RJ의 술과 인수를 마친 양조장의 술을 빚을 공간을 공사할 거다.
그러니 미리 인력을 충원해야 했다.
거기에 맥주 공장까지 고려하면 현재 인력의 두 배 가까이 늘려야 할 정도다.
당연히 이번에도 보호가 종료되는 보육원 출신이 제법 많이 입사했다.
쌍둥이를 시작으로 오저당에 입사한 보육원 출신만 오십 명에 달할 정도였다.
기존에 연결되어 있던 곳만으로는 부족해서 강원도에 있는 여러 보육원에서 온 이들도 많은 덕분이었다.
그들과 함께 강원도의 고등학교와 대학교 졸업생도 쓸어오는 중이었다.
개인적으로 둘을 놓고 보면 나는 보육원 출신을 훨씬 더 선호하는 편이었다.
종종 예상치 못한 사고를 치는 일도 있으나 그리 흔한 케이스는 아니었다.
오히려 서로 의지하며 지내는 모습이 옆에서 보기에 너무 좋았다.
가족 같다는 느낌이랄까.
문제는 숙식을 제공하기 어려운 수준의 인원까지 늘었다는 것인데 그 문제는 인근 마을에서 하숙하는 걸로 해결했다.
한 가구당 직원 한두 명씩.
숙식을 제공해주는 대신에 그 비용은 오저당에서 내줬는데 이장님이 나서준 덕분에 그리 비싼 금액은 아니었다.
오히려 젊은 직원들이 마을에 있으니 여러모로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실제로 평균 연령도 상당히 낮아지는 효과도 있었다.
‘혹시 모를 불상사도 막을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지.’
독거노인분들 가까이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되었다.
적어도 매일 아침저녁으로 얼굴을 봐야 하니 선생님처럼 쓰러졌을 때 뭔가 대처를 해줄 수 있는 것도 장점이었다.
“다들 정말 앳되네. 부럽다.”
“벌써 우리 나이가 스물일곱이라니 믿어지지 않아.”
“뭐래, 아직 스물다섯이거든.”
라니는 한국식 나이를 거절했다.
올해는 새해 떡국조차 거절했을 정도로 나이를 먹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겨울마다 라니를 괴롭히던 아토피가 올해는 잠잠했다.
체질이 확실히 바뀐 것 같았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이모님이 제철 음식과 채소를 공들여서 먹이고 계시니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번에 미국 출장은 며칠 가는 거야?”
“집에는 들르지 않을 생각이라 길어야 일주일 정도 될 것 같은데 변수가 생기면 바뀌겠지. 그건 왜 묻는데?”
“신제품 보틀 디자인 때문이지. 한꺼번에 몰리기 전에 하나씩 쳐내려면 컨셉부터 확실하게 확인해야 하잖아.”
라니의 말이 틀리진 않았다.
RJ의 감저 술부터 시작해서 여름 무렵에 최소 서너 개 이상의 신제품이 나온다.
감저를 제외하면 마이크로 양조장 형태로 진행할 예정이나 그렇다고 보틀을 대충 만들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 있다면 버번을 시중에 내놓으려면 최소 2년 이상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제품 개발을 마치고 최소 숙성 기한을 맞추려면 어쩔 수 없다.
버번이 스카치처럼 최소 숙성 기간이 정해져 있진 않으나 버번 스트레이트 제품은 최소 2년은 숙성해야 한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숙성 기간을 표시하지 않아도 되는 4년 이상 숙성하는 것인데 그건 길어도 너무 길었다.
“저번에 말했듯이 일부 디자인을 외주로 돌리는 거는 어떻게 생각해?”
“으음··· 가능하면 손에서 놓고 싶진 않은데 마이크로 양조장까지 고지효 사원이랑 둘이서 하기에는 애매해.”
“그럼 괜찮은 곳 알아봐서 맡기자. 아니면 디자이너를 더 뽑던지.”
“누군 뽑고 싶지 않아서 안 뽑나.”
겨울 무렵에 인력 충원을 하며 디자인 파트도 추가로 모집했으나 적당한 사람이 전혀 없었기에 채용은 이뤄지지 않았다.
오저당의 규모가 커지면서 생산직 고용은 어느 정도 수월해졌으나 일부 사무직은 여전히 쉽지 않았다.
“그 이야기는 다녀와서 정리하자.”
*
라니와 이야기를 나눴던 다음 날.
다미안과 나는 렉싱턴으로 출장을 갔다.
지난해 늦여름 무렵부터 공사가 시작된 버번 증류소는 어느덧 일부 건물이 완공된 상태였다.
한국의 겨울과 달리 켄터키의 날씨는 상당히 따뜻한 편이었다. 12월과 1월의 최저 기온은 영하 2도 정도에 불과했다.
한낮에는 10도 내외까지 올라가는 덕분에 공사를 진행하는 것에 딜레이가 생길 일은 없었다.
가장 먼저 완공된 곳은 사무동이었다.
그곳부터 먼저 지은 이유는 케이티가 요청한 신제품 연구실부터 마련해주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현재 연구실에서는 디스틸러인 케이티와 연구원 두 명이 함께 파사데나 버번 증류소의 신제품을 개발 중이었다.
증류소가 완공된 시점부터 곧장 술을 빚으려면 서둘러야 했다.
[여긴 증류소 같아 보이지 않아요.]
향이는 파사데나에 마련된 연구실에 들어서며 두리번거리더니 첫 느낌을 그렇게 말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향이의 말대로 케이티의 연구실은 뭔가 화학을 연구하는 곳처럼 느껴졌다.
그나마 한쪽 구석에 놓인 소형 증류기가 있기에 이곳이 증류소와 관련된 장소라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증류기가 겨우 10리터도 빚지 못할 크기에 불과하나 언제든 소량씩 빚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한동안 라니와 함께 내부를 둘러본 나는 케이티를 향해 부족한 게 없는지 물었다.
기왕에 시작한 버번 사업이니 최대한 밀어줄 생각이었다.
“파사데나 매시빌을 만드는 데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요청하시면 됩니다.”
“아니에요. 이미 충분히 만족합니다.”
“혹시 테스트로 빚어봤나요?”
나는 그게 가장 궁금했다.
이곳의 폐허에서 발견한 버번 주조법이 담긴 매시빌을 과연 써먹을 수 있을까?
아주 큰 기대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나 그래도 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단서다.
거기에는 또 다른 의미도 있다.
과거의 매시빌을 복구한다면 우연히 찾아낸 스토리까지도 마케팅에서 홍보 용도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의 마케팅은 스토리텔링을 중요시하고 있다. 요즘 사람들은 스토리에 공감하면 그걸 소비하는 경향이 있다.
상품의 품질이 입소문을 타고 전파되던 것에서 한 단계 더 나간 것이다.
“흐음··· 그게 조금 애매해요.”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네요.”
“만들어 보긴 했는데 뭔가 아쉽달까요. 아무래도 조금 손을 봐야 할 것 같아요.”
그렇게 말하며 사용하는 재료의 품종에서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어떤 종류의 옥수수를 쓰냐에 따라 맛이 바뀌는데 과거에 파사데나 증류소 때와 지금은 옥수수가 조금 다르다고 했다.
“GMO 옥수수 때문인가요?”
“아무래도 미국 내 옥수수 생산량 중에 GMO가 아닌 것을 찾기 어려우니까요.”
“대략 80% 정도 되나요?”
“90%는 유전적 변형이 있다고 봅니다.”
“그걸 안 쓰고 버번을 빚는 것도 힘들겠네요.”
버번이란 이름을 쓰려면 최소 51% 이상의 비율로 옥수수를 사용해야 한다.
GMO가 좋다 나쁘다는 것을 떠나서 GMO가 아닌 옥수수를 구하기도 어렵고 어떤 품종이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최대한 다양하게 사들여서 빚어보는 수밖에 없겠네요. 그 외에도 버번에 들어가는 호밀이랑 보리 같은 것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그래도 이 근처에서 나는 품종이었을 테니 그것부터 시작해보려고요.”
“너무 서두르진 마세요. 시간이 걸려도 더 좋은 술을 만들 수 있다면 상관없습니다.”
케이티의 성격상 대충 술을 만들 거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더구나 업튼 가문에 자신의 존재감을 보일 기회였다.
저번에 이야기했을 때도 자신을 놓친 것을 후회하게 만들 거라고 했었다.
어차피 뚝딱 만들어질 거라 생각지는 않았다. 아직은 반년 정도 케이티와 개발팀에게 시간을 줘도 상관없었다.
인원도 겨우 세 명에 불과해서 크게 부담될 수준은 아니었다.
그때 연구실의 문이 열리며 다미안이 들어왔다. 저절로 케이티의 시선도 그쪽으로 돌아갔는데 그걸로 끝났다.
예전처럼 멍하니 다미안을 바라보는 그런 모습은 나타나지 않았다.
역시 타이밍이 중요한 거였어.
그리고 어차피 쉽지 않은 관계였다.
미국과 한국의 거리는 쉽게 좁힐 수 없는 수준의 것이다. 롱디가 가능하다고 해도 언젠가 누군가는 희생해야 한다.
“사장님, 슈미트 지사장님 오셨습니다.”
안 그래도 기다리고 있었다.
연구실은 그쯤에서 정리한 뒤.
밖으로 나오자 뉴욕에서 온 슈미트가 공사가 한참 진행 중인 증류소 곳곳을 둘러보고 있었다. 그는 이내 나를 발견하고 사무실 쪽으로 다가왔다.
“며칠 전에 있었던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해서 송구합니다.”
“거리가 멀잖아요. 아마 삼척에 도착하기 전에 장례식이 끝났을 겁니다.”
“그런데 증류소 공사가 상당히 빨리 진행되고 있네요.”
“건축 사무소의 일정상으로는 6월 정도에는 끝날 거라고 하더군요. 일단 안으로 들어가서 이야기하실까요?”
간단하게 인사를 나눈 뒤에 비어있는 파사데나의 사무실로 들어간 나는 시간을 끌지 않고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가 여기까지 직접 온 이유는 조만간 슈미트가 현재 다니는 심양에서 정리해야 할 게 있기 때문이었다. 오늘은 그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자리이기도 했다.
“이제 슬슬 심양에서 오저당으로 옮기셔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