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술 빚어 재벌 되렵니다-201화 (201/254)

잊지 말아야 할 것들 (4)

슈미트도 슬슬 옮길 때가 되었다.

KR 마트 납품을 위해 심양과 오저당이 맺은 벽향주와 오풍주의 2년 독점 유통 계약은 올해 4월에 끝날 예정이다.

당연히 그걸 연장할 생각은 없었다.

모조리 OGD USA에 넘겨야 한다.

이미 미국 내에서 소담 소주와 돈 레오넬 테킬라를 유통하는 오저당의 미국 법인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상황이었다.

그러니 몇 가지 술을 추가로 맡긴다고 소화 못 할 수준은 아니었다.

소담의 판매량도 제법 늘었지만, 무엇보다 돈 레오넬의 영향이 컸다.

멕시코에서 테킬라를 받아서 바크모에 넘기는 것만 하는 중인데도 지난해 50억 이상의 순수익을 남겼을 정도였다.

참고로 OGD 멕시코는 대박이 났다.

요즘 돈 레오넬은 매달 30만 병 가까이 만들어서 판매하고 있는 중이다.

작년에 설비를 늘리고 호르헤가 악착같이 아가베를 긁어모은 덕분이었다.

최근에는 월간 매출이 천만 달러가 넘어가면서 올해 기대 매출만 1,500억 원에 달할 정도였다. 아가베만 확보하면 매출이 더 높아질 가능성도 있었다.

오저당에 들어온 배당금도 상당했다.

무턱대고 맥주 공장을 짓겠다고 한 것은 아닌 것이 멕시코에서 1년 치를 정리해서 보낸 배당금만 100억 원이나 된다.

우리가 투자했던 금액 이상으로 단숨에 회수한 것이었다.

“이미 준비는 끝내놨습니다.”

슬슬 오저당으로 들어와야 하지 않겠냐는 질문에 슈미트는 이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며 설레는 표정을 지었다.

심양에서 마음이 완전히 떠난 그가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오로지 이 순간을 위해서였다.

“독점 유통의 권한을 회수해서 OGD USA로 모두 가져오면 심양에서 그냥 두고 보진 않을 것 같은데 아닌가요?”

“아마 꽤 타격이 있을 테니 반발하긴 하겠죠. 하지만 요즘 그쪽 사정도 그리 좋지만은 않습니다.”

“심양에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최근에 나는 심양과 접점이 없었다.

2년 전에 계약했을 당시에는 심양 직원과 직접 소통했으나 이제 그 업무를 내가 하고 있진 않다.

지석태 과장이 들어온 이후부터 심양의 발주도 모두 그에게 맡긴 덕분이었다.

내가 궁금한 표정을 보이자 슈미트는 심양에서 벌어지는 내부 분열에 대해서 알려주었다.

“형제의 난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장남과 차남이 후계자를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중입니다.”

“예전에 뉴욕 지사장 자리를 가로채려고 했던 이가 장남인가요?”

“맞습니다. 거기서부터 스텝이 조금 꼬이긴 했죠. 원래 예정대로면 해외에서 경험을 쌓아서 자리 잡았어야 했거든요.”

“차남이 제법 능력이 좋은가 봅니다.”

내 질문에 슈미트는 잠시의 머뭇거림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고 했다.

그만큼 인정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한량처럼 젊은 시절을 보낸 장남과 달리 차남은 LA 지사에서 사원부터 일을 시작해서 상당히 빠르게 기획 실장까지 올라갔다고 했다.

하지만 슈미트는 이미 심양의 사장이 장남에게 회사를 물려주기로 생각을 굳힌 것 같다고 예측하고 있었다.

“아무리 차남이라도 슈미트가 실력을 인정할 정도인데 왜 장남을 고집하죠?”

“차남이 혼외자식이란 소문이 사내에서 공공연하게 돌고 있습니다.”

“드라마에서나 보던 내용이군요. 하지만 심양 사장이 마음먹은 거면 이미 게임 오버 아닌가요?”

“그래서 말인데 만약에 차남이 후계자 구도에서 밀려나 심양을 나오게 되면 여기 파사데나를 맡겨보고 싶습니다.”

그것까지 내가 결정할 부분은 아니었다.

디스틸러는 내가 정했으니 이곳을 맡길 이를 선택하는 것은 슈미트의 몫이었다.

당연히 그만큼의 책임도 그에게 있기에 나는 결과물만 보면 된다.

“OGD USA의 인사 권한은 제가 아닌 슈미트에게 있잖아요. 그건 직접 판단하고 결정을 내리면 됩니다. 실력만 좋다면 어디 출신이든지 상관없죠.”

“감사합니다.”

나의 관심은 딱 거기까지였다.

어차피 남의 집 이야기에 불과하니 관심을 둘 필요는 없었다. 더구나 계약이 끝나면 다시 볼 사람들도 아니었다.

그쯤에서 내가 이야기를 끊자 슈미트는 언제 시작할 거냐며 물었다.

“슬슬 연장 계약은 없다고 내용 증명을 보내야겠죠.”

별도로 자리를 마련해서 통보하는 방법도 있으나 깔끔하게 법무법인 해국을 통해서 내용 증명을 보낼 생각이었다.

나중에 뒷말이 나오지 않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KR 마트는 제가 잘 정리하겠습니다.”

“거기도 큰 문제는 없을 거예요.”

“카를로스가 돈 레오넬 물량을 KR 마트에도 나눠주겠답니까?”

“작년 이맘때와 비교하면 생산량이 많이 늘어났으니 그 정도는 해줘야죠.”

카를로스도 딱히 방법이 없었다.

이미 그에게 약속했던 1년 동안의 독점은 연말 무렵에 끝났었다.

그걸 다시 1년 연장하며 KR 마트는 논외로 분류해서 소량이나마 유통할 수 있게 세부 사항을 약간 조정했다.

덕분에 OGD USA를 통해 소담을 납품하며 해외 소싱 부서의 필립 최에게 했던 약속은 지킬 수 있게 되었다.

“차라리 이번에 연장하지 말고 판매처를 조금 다양화하는 것도 좋았을 텐데요.”

이번 계약의 연장은 슈미트나 페레즈가 아닌 내가 직접 내린 결정이었다.

그리고 슈미트의 말도 틀리진 않았다.

아마 그렇게 판매를 했다면 소비자가 조금 더 수월하게 살 수 있었겠지.

하지만 그건 미국 시장을 중심에 놓고 생각하기에 나올 수 있는 결론이었다.

생산량이 늘어나긴 했으나 이제는 다른 지역에서 파는 양도 고려해야 한다.

예를 들면 멕시코 내에서의 소비량도 끌어올리고 슬슬 한국으로 수입하는 것도 시작해야 한다. 아직 국내에서 테킬라를 즐기는 이들은 많지 않으나 오저당 주점을 통해 접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그만큼 수요가 늘어나고 있었다.

은근히 오저당 홈페이지에 언제 돈 레오넬을 정식으로 수입할 거냐며 투정을 부리는 이들이 제법 많다는 게 증거였다.

그렇다고 아예 수입이 없던 것은 아닌데 시중에 판매는 거의 않고 대부분 F&B에서 판매하는 용도에 불과했다.

내 이야기를 들은 슈미트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며 수긍했다.

“하긴 오저당의 현지 법인에서 빚은 술인데 정작 본사가 있는 한국에서는 살 수 없다는 것도 문제가 있네요.”

“그건 멕시코도 마찬가지죠.”

돈 레오넬을 빚는 테킬라 지역에서조차 우리 술을 살 수 없는 상황이었다.

만드는 족족 미국으로 전량 수출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혹시 미국 시장에 보내는 물량을 점점 줄이실 생각은 아니시죠?”

“제가 설마 황금알을 낳는 오리의 배를 가르겠습니까?”

슈미트의 걱정이 뭔지는 알고 있다.

현재 OGD USA의 핵심은 돈 레오넬을 미국으로 수입하며 얻는 수익이다.

그 양이 줄어들수록 이미 한참 벌어진 한국과 멕시코를 따라잡기 어려워진다.

아직 생산을 하지 않고 있는 미국 법인이라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슈미트는 가능하면 그 격차를 줄이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자존심이 걸려 있는 문제였다.

“한곳에 올인했다가 문제가 생길 수도 있으니 대비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저 생산량 일부를 돌리는 것이다.

혹시라도 미국에서 판매량이 떨어질 경우를 대비해야만 했다.

경영의 기본은 혹시 모를 리스크를 줄이고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내는 것이기에 꼭 필요한 일이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그리고 올해 중에 최대 생산량인 50만 병에 도달할 수 있도록 멕시코 법인도 노력 중이니 걱정 마세요.”

“아마 50만 병 전부 미국에 보내셔도 다 팔릴 겁니다.”

슈미트는 확신에 가득 찬 목소리로 장담했다. 그만큼 현재 미국에서 돈 레오넬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르고 있었다.

요즘 가성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술이 돈 레오넬이기 때문이었다.

소비자가가 35달러에 불과하지만,

100달러 이상 되는 술과 거의 맞먹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일단 돈 레오넬만 보이면 사서 집에 쌓아두고 있었다.

“아! 그리고 이번에 몇 가지 술을 미국에서 유통하려고 하는데요.”

“새로 런칭한 술인가요?”

내 이야기를 들은 슈미트는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이제껏 오저당에서 빚은 술마다 제법 좋은 성과를 내고 있었다.

비교적 최근에 나온 소담과 ASAP도 미국에서 판매량을 늘리고 있는 중이다.

“아니요. 제가 드릴 리스트에 있는 술은 다른 한국의 양조장에서 빚은 겁니다.”

“아··· 그렇군요. 혹시 심양에서 다루는 술인가요?”

“그런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어요. 다만, 우리처럼 독점 계약은 아니라 문제 될 거는 없을 겁니다.”

가장 먼저 타깃으로 삼은 곳은 역시 한인 마트 쪽이었다. KR 마트는 심양이 꽉 잡고 있으나 들어갈 틈이 없는 것은 아니다.

돈 레오넬이란 협상 카드가 우리에게 있으니 어렵진 않았다.

입점하는 것까진 약속했지만,

물량이 어느 정도인지 정한 것은 없다.

내 이야기를 들은 슈미트는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며 수긍했다.

“그리고 한인 마트가 KR만 있는 것은 아니니 다른 마트와 주류 전문점 체인을 뚫는 것도 해보죠.”

“벽향주 독점도 곧 풀릴 테니 그쪽은 그걸 가지고 딜을 하면 되겠네요.”

“솔직히 심양이 보여준 성과는 기대 이하이긴 했어요.”

RJ의 영향을 받아 해외에서도 상당히 많은 소비가 발생했음에도 심양은 그 기회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그나마 슈미트가 이끄는 뉴욕 지사에서 노력해준 덕분에 동부 쪽만 어느 정도 벽향주와 우리 술이 풀리고 있었다.

애초에 심양의 해외 지사 자체가 한인 마트 위주로 영업을 하는 곳이라 슈미트와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혹시 4월에 나올 퍼플 라벨은 미국에 어느 정도 들어올 수 있을까요?”

“글쎄요. 아직 정해진 것은 없어요.”

올해 4월이 되면 숙성을 마친 퍼플 라벨이 다시 한 차례 나오게 된다.

수량은 작년과 똑같은 수준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추가로 지은 창고에서 숙성되는 퍼플 라벨이 4개월 뒤에 다시 한번 나온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기존 생산량과 비교하면 몇 배나 많은 물량이 나올 예정이라 어느 정도 갈증을 풀어줄 정도는 되었다.

“오저당의 법인이 가장 우선일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더구나 카를로스가 하도 성화라 챙겨줘야 하거든요.”

“알겠습니다. 아까 말씀하신 양조장 리스트를 주시면 페레즈와 함께 유통할 수 있는 곳을 찾아보겠습니다.”

“앞으로 추가될 곳도 있으니 오저당 외에 한국 술 유통에도 많이 신경 써주세요.”

슈미트는 알겠다는 대답을 했다.

유통에서 뼈가 굵은 사람답게 그리 어려운 문제는 아니라고 여기고 있었다.

더구나 오저당의 술이 이미 시장을 개척하고 있으니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우리는 한동안 사무실에서 이야기를 나눴고 거의 두 시간이 지나서야 나는 잠시 쉴 겸 산책을 하러 밖으로 나왔다.

다미안은 어딜 간 것인지 안 보였는데 오히려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 있을 때 요정부터 옮기자.”

[지금요?]

“응. 당분간은 여기 다시 올 일이 없잖아. 그리고 옮길 곳도 마련됐으니 미룰 이유가 없지.”

사무실 건물이 완공되었기에 나무 밑에 감춰놨던 요정을 이제 옮겨도 되었다.

설계를 할 때부터 작은 금고가 설치될 공간을 요청했고 오직 나만 열 수 있게 만들어놨다.

이미 도구도 마련해놨다.

공사장에서 흔하게 굴러다니는 삽도 빌려놨기에 그걸 가지고 나무 밑으로 가서 천천히 땅을 파냈다.

내게 관심을 보이는 이는 없었다.

곳곳에서 공사가 진행되고 있고 나무 주변에는 펜스까지 쳐놔서 애초에 내 모습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삽으로 땅을 헤집어내자 예전에 묻어 놓은 작은 나무 상자가 나왔다.

상자를 열어보니 다행히 요정이 그대로 안에 들어 있었다.

다시 땅을 메꾼 뒤에 나는 그 상자를 들고 앞으로 여기서 일할 책임자가 쓸 사무실 한편에 있는 금고를 열었다.

아미 이걸 다시 여는 것은 케이티가 술을 빚은 후에 숙성을 마칠 때가 될 것이다.

그 이전에는 금고를 열 필요가 없었다.

[한참 걸리겠네요.]

“아니, 처음 빚는 술은 최대한 짧게 숙성해서 결과부터 볼 거야.”

[2년 정도 숙성해서 제품을 내놓을 거라고 하시지 않으셨나요?]

“무작정 2년 가까이 기다리긴 어렵잖아. 일단 시도해보고 그걸로 안 되면 추가 숙성을 고려해보자고.”

술이 먼저냐, 요정이 먼저냐.

당연히 나는 요정이 먼저라고 여겼다.

요정 없이 처음 빚는 술은 아무런 효과를 받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그걸 2년 동안 숙성하는 것은 너무 미련한 짓이지.

오저당의 기준으로 봤을 때.

좋은 매시빌만 나오면 한두 달 정도 숙성해도 성과가 나올 거라 여겨졌다.

한국과 멕시코에서 경험한 게 있으니 나올 수 있는 계산이었다.

그리고 그 동안 나도 향이와 검이에게 술을 맡기고 여기 머물 생각이었다.

조금이라도 완성도와 확률을 높이려면 꼭 필요한 일이었다.

‘그러려면 케이티가 잘 해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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