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술 빚어 재벌 되렵니다-206화 (206/254)

OGD USA (5)

매시빌을 선정했지만,

과연 그걸로 모든 게 끝일까.

최고의 버번을 향한 여정은 이제 시작에 불과했고 파사데나의 버번 매시빌은 앞으로도 지속적인 보완을 해야만 했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일이다.

약간씩 변형해가며 최상의 맛을 찾고 어떤 숙성 과정을 거쳐야 더 좋은 술을 빚을 수 있는지 살펴야만 했다.

숙성도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제품화를 할 때도 여러 선택지가 있다.

힘들게 빚어낸 원액을 어떻게 내놓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술이 되기 때문이다.

하나의 캐스크에서 나온 위스키만 파는 싱글 캐스크는 쿼터 사이즈라 어려웠다.

그게 아니면 물을 첨가하지 않는 배럴 프루프로 갈 수도 있겠지.

이건 숙성을 마친 원액이 나온 뒤에 제품화할 때 최종적인 결정을 해도 되는 거라 이 자리에서 정할 필요는 없었다.

더구나 나도 이제 슬슬 떠나야 했다.

‘미국에 너무 오래 있었어···.’

해야 할 일이 산더미 같았다.

그리고 이제 파사데나는 케이티와 홍진구가 맡아도 충분히 잘할 것이다.

“여기도 이제 안녕이네요.”

다미안은 두 달 동안 머물던 집을 한 차례 둘러보더니 아쉬워했다.

우리가 머물던 집은 케이티의 소개로 얻은 곳이었는데 도심에서 벗어나 한적한 곳에 있었다.

작은 별장 같은 느낌이랄까.

근처에 켄터키 호스 공원도 있어서 산책하기도 좋았다. 하지만 홍진구는 한 가지 아쉬움을 토로하고는 했다.

인근에 골프장이 십여 곳이나 있는데 막상 거기서 골프를 친 적이 없었다.

다미안은 물론이고 나도 골프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탓이다.

골프채를 휘두를 바에는 직원들과 하는 아이스크림 내기 족구가 더 재미있었다.

미국에서 두 달 넘게 머무른 탓에 어느덧 5월이 되어서 한국에 돌아가면 족구하기 참 좋은 날씨일 것이다.

“다음에 오면 이 집을 다시 빌려주시기로 하셨으니 언젠가 또 오겠죠.”

“하긴 적어도 반년에 한 번씩은 렉싱턴에 오는 것 같기는 하네요.”

“아마 가을 무렵에는 와야겠죠.”

“가을 무렵이면··· 이제부터 빚을 버번이 처음으로 세상에 나올 시기네요.”

이번에 빚는 버번의 목적은 오로지 요정의 확보를 위해서였다. 그러니 적당한 시기에 숙성을 끝낼 필요가 있다.

원래는 더 짧게 해볼까도 생각했는데 불확실성 때문에 조금 길게 잡았다.

“맞아요. 그때가 되면 다시 와야죠.”

“한 달 동안 숙성한 맛도 대단했는데 더 오래 숙성하면 어떤 맛의 버번이 나오게 될지 기대됩니다.”

그런 기대는 하지 마.

지금부터 만드는 것은 요정의 효과가 전혀 들어가지 않는 버번이야.

오히려 이번에 마셨던 것보다 맛이 떨어질 수도 있다.

아무리 매시빌이 잘 잡히고 쿼터 캐스트를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시간이란 절대적인 조건을 뛰어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폐기할 정도는 아닐 것 같으나 파사데나 이름을 붙이기도 애매하달까.

차라리 임의의 브랜드로 내놓은 뒤에 칵테일용으로 처리할 생각이었다.

이럴 때 삼촌이 운영하고 계시는 F&B를 최대한 활용해야 하지 않겠어?

현재 열세 번째 매장까지 늘어난 터라 이벤트 형식으로 포비든 샤워 같은 버번 칵테일을 싸게 풀면 서로 윈윈이다.

“이제 슬슬 출발하시죠.”

다미안과 잠시 대화를 나누고 있자 홍진구가 2층에서 내려왔다.

그 역시 짐이 상당히 많이 있었다.

지금껏 두 달 가까이 우리 셋은 함께 지냈는데 오늘부로 홍진구는 새로 계약한 주택으로 이사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가장 큰 도움을 준 것은 파사데나 증류소 계약을 맡아서 진행해줬던 공인중개사 배퍼트였다.

“먼저 나가 계시면 제가 마지막으로 빼놓은 게 없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다미안은 그렇게 말한 뒤에 각각의 방을 한 번씩 살피려고 돌아섰고 나는 홍진구와 함께 차에 짐부터 실었다.

“이제 본격적인 시작이라 생각하니 흥분됩니다.”

“한 가지 조언을 해드려도 될까요?”

“네, 말씀해주시면 참고하겠습니다.”

“따로 슈미트 사장이 지시를 내리겠지만, 파사데나가 해야 할 일은 무조건 많은 양의 버번을 빚어내는 겁니다.”

버번이 안 팔릴까 싶어서 소극적인 생산을 하지 말라는 의미였다.

그 문제는 나와 슈미트가 해결해야 하는 것이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오히려 너무 많이 빚었다고 뭐라고 하진 마십쇼.”

“많이 빚어 놓으면 언젠가 비싸게 팔 수 있겠죠. 증류소라는 게 멀리 10년 후를 내다보며 술을 빚는 곳이거든요.”

“명심하겠습니다.”

버번 같은 스피릿은 유통기한이 짧은 오풍주 같은 경우와 완전히 다르다.

당장 안 팔리더라도 보관하고 있다가 나중에 다른 제품으로 내놓을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 포인트였다.

자체적인 브랜드 구축이 안 되면 그걸 블랜딩하는 원액으로 판매하는 방법도 있기에 해결 방법은 꽤 다양했다.

하지만 그렇게 팔아치울 거라면 애초에 버번 증류소를 사들이지도 않았다.

그러는 사이 다미안은 마지막으로 문을 잠근 뒤에 차로 다가왔고 우리는 홍진구의 차를 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까지 가는 길은 그리 멀지 않았다.

시내를 벗어나 약간만 달려도 나오는 공항이라 딱히 이야기를 나눌 시간도 없었다. 그게 아쉬웠던 것인지 사양해도 홍진구는 공항 안까지 따라왔다.

“지금 보내드리면 반년 후에나 뵐 거 아닙니까. 그러니 배웅 정도는 하게 해주시죠.”

“한동안 한국에 안 들어올 겁니까?”

“제가 딱히 챙겨야 할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니라 버번이 완성될 때까지는 미국에 계속 있으려고요.”

하긴 아버지와도 의절했다고 들었다.

그리고 그가 퇴직금이라며 가져온 거래처는 모조리 OGD USA에서 시간을 들여 흡수하고 있는 중이었다.

덕분에 한국에서 미국으로 향하는 유통량이 제법 많이 늘어났을 정도였다.

그 영향을 받아 가장 큰 혜택을 받은 것이 바로 호세가 빚고 있는 오풍주였다.

소량 발주의 장점이라고 봐도 된다.

컨테이너가 빈번하게 출발할수록 KR 마트와 바크모 등에서 유통 기한의 부담 없이 판매를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그에 대한 보상도 해주었다.

두 달 전에 사줬던 차 외에도 이번에 그가 렌트한 집까지 오저당에서 비용 처리를 해주기로 했다.

“한식이나 집밥이 그리우면 언제든지 휴가 내고 오저당으로 오세요.”

“물론이죠. 거기 이모님들 솜씨가 정말 유명한 셰프들 뺨칠 정도던데요.”

“아! 그리고 다음 달에 증류소가 완공되면 오저당 직원들 보낼 텐데 잘 챙겨주시고요.”

과거에 수호와 약속했던 대로 멕시코와 미국 그리고 스코틀랜드의 증류소에 직원 몇 명을 연수 보낼 예정이다.

각자 맡은 일이 있기에 길게는 어려웠고 2주에서 4주 정도를 예상하고 있었다.

당연히 거기에는 수호와 호세 같은 임원급의 연수도 포함되어 있었다.

밑에 직원들이 성장하는 만큼 리더도 정체되어 있으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파사데나의 식구처럼 잘 챙겨주겠습니다.”

잠시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있자 어느덧 들어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

슬슬 움직일 준비를 하자 홍진구는 고개 숙여 인사한 뒤에 돌아섰다.

잠시 뒤에 다미안과 나는 LA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라탔다. 그곳에서 환승하려는 게 아니라 다음 목적지가 LA였다.

미국에 와서 두 달 넘게 있었는데 얼굴 정도는 보고 가라는 카를로스의 말 때문에 이틀 정도 일정을 잡아놨다.

더구나 이번 기회에 OGD USA에 들려서 슈미트도 보고 아직 미국에 있는 유나 누나와 지철이 형도 볼 생각이다.

그중에서 가장 먼저 만날 사람은 LA에 터를 잡은 지철이 형과 유나 누나였다.

LA에 도착해서 공항 밖으로 나오자 지철이 형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이게 도대체 얼마 만이야?”

“최소 1년 이상은 되었죠.”

“저번에 슈미트 사장님이 취임할 때 하필이면 여행 중이라 못 가봐서 미안.”

“그날 별거 없었어요. 다들 슈미트 라인에서 뽑은 사람들이라 그냥 출근해서 인사 정도만 잠시 나눴던 수준이었죠.”

“자자! 여기 주차비 비싸니까 일단 이동하면서 이야기하자.”

지철이 형은 내 짐을 하나 들어주며 주차장 쪽으로 앞장서서 걸었다.

그곳에서 우리가 갈 곳은 당연히 두 사람이 살림을 차린 예전의 그 집이었다.

원래 1년 동안 임대하는 걸로 계약되어 있었으나 생각보다 누나가 자리를 잘 잡아서 다시 1년이 연장되었다고 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요즘 유나 누나의 주가는 상당히 높아졌다.

잘 나가는 스타들의 파티에서 두각을 드러낸 덕분에 거의 몇 개월 동안 예약이 꽉 차 있을 정도라고 들었다. 심지어 요즘은 아예 팀을 꾸려서 다닌다고 했다.

걸어 다니는 사업체라고 봐도 되었다.

누가 봐도 예쁜 외모에 바텐더 대회에서 수상 경력도 있고 성격도 좋으니 사람들이 찾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하지.

지철이 형도 한동안 쉬더니 요즘은 새로운 사진전을 위해 꽤 바쁘다고 했다.

“사진전 준비는 잘 되고 있어요?”

“글쎄··· 나도 잘 모르겠어. 요즘 고민이 꽤 많아서 그런지 진도가 안 나가네.”

“무슨 일 때문에 그래요?”

“사진을 그만둬야 하나 고민 중이야.”

여기서 무슨 말을 해줘야 할까.

형이 어떤 고민을 하고 있었는지 대충은 알 것 같았다. 종종 통화를 할 때마다 내게 했던 말이 있기 때문이었다.

예전에 비해 사진작가로서의 명성은 어느 정도 올라가긴 했으나 아직 그걸로는 부족하다고 여기고 있었다.

혼자였다면 이런 생각도 안 했겠지.

현재 형이 흔들리는 이유는 유나 누나와 결혼을 생각하고 있어서였다. 가정을 꾸린다는 것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당연히 나도 그 질문에 대해 어떤 답도 해줄 수 없었다. 어쩌면 지금보다 훨씬 더 잘 될 가능성도 있고 반대일 수도 있지.

“사진을 그만두면 뭘 하시려고요?”

“사진 외에 내가 잘하는 게 하나밖에 더 있겠어?”

“주점을 여실 생각인가요?”

지철이 형은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반 스카이에서 거의 지점장처럼 일을 했던 형이라 충분히 능력은 있었다.

그리고 내게 왜 그런 이야기를 꺼낸 건지 어느 정도 감이 왔다.

“설마 F&B에 취직하시려고요?”

이게 가장 합리적인 추측이었다.

삼촌은 직영 주점을 계속해서 늘리고 있었고 그걸 맡길 이들이 부족하다며 항상 내게 어려움을 토로했다.

만약에 형이 F&B에 입사해서 직영 주점을 맡겠다고 한다면 당연히 삼촌은 두 팔을 벌려 환영할 것이 분명했다.

아무리 시스템을 잘 만들어놔도 막상 현장에서 운영하는 이가 터무니없는 실수를 하면 어떻게 손을 쓸 수도 없다.

프랜차이즈 사업에서 가장 어려운 점이 그런 부분 같았다. 하지만 그런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아니, 유나를 두고 귀국할 생각은 없어. 그럴 거면 사진을 그만둘 이유가 없지.”

“그러면 미국에 술집을 차리시려고요?”

“요즘 한식당과 한국 스타일의 술집이 상당히 인기가 많아졌거든. 한인 타운에 외국인이 더 많이 찾고 있을 정도야.”

“하긴 미국에 올 때마다 한식당이 늘어나는 거는 저도 느끼고 있었어요.”

문제는 중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이 유행을 타듯이 한식당으로 위장 중이다.

제대로 만들어서 판다면 문제 될 게 없으나 현지화를 넘어서 정말 말도 안 되는 혼종도 꽤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심지어 요즘에는 포장마차의 맛을 알게 된 건지 그런 곳도 줄 서서 들어가더라.”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뭔가 번뜩이며 떠오르는 게 있었다.

이번 기회에 오저당 F&B의 해외 진출을 시도해 보는 거는 어떨까.

지난달에 1분기 매출과 특이 사항에 대한 보고서가 나한테도 전달되었다.

그때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외국인의 방문 비율이 무척 높아졌다는 것이었다.

거기에는 글로벌 스타인 RJ의 영향도 컸다고 보아도 되나 무엇보다 독특한 요정 인테리어도 인기 요인이었다.

별스타 같은 SNS에 올릴 사진을 찍기 좋으니 도움이 됐다는 분석도 있었다.

더구나 다른 사람도 아니고 지철이 형이라면 믿고 맡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오저당 주점의 핵심인 바텐더도 유나 누나가 옆에 있으니 걱정되지 않았다.

직접 거기서 일을 하길 바라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고 틈틈이 직원 교육 정도만 해줘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누나의 인맥도 플러스 요인이다.

구지노 외에도 여러 파티에 참석해서 친해진 스타들이 상당히 많다고 들었다.

그들이 한 번씩 오저당 주점을 찾아와 술을 마신다면 자연스럽게 홍보도 된다.

돈 레오넬을 미끼로 삼아 한국에서 빚는 술과 버번을 소비할 수 있게 된다면 이득이다. 거기까지 의식의 흐름이 이어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혹시 오저당 F&B의 해외 1호 직영점을 맡아보실 생각은 없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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