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GD USA (6)
오저당 F&B의 주인은 나다.
모든 지분이 내게 있으니 주주나 다른 이들의 눈치를 볼 필요는 없었다.
내가 하겠다고 하면 그걸로 끝이니 결정이 빠른 게 장점이다.
물론, 논의 과정은 필요했다.
실무자가 납득하지 못한다면 일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을 것이다. 그게 경영을 맡고 있는 삼촌에 대한 예의다.
‘하지만 내 제안을 거절하진 못할걸.’
삼촌을 하루 이틀 보는 것도 아니었다.
어떻게 하면 설득할 수 있을지는 뻔했다.
가장 빠르고 확실한 것은 해외 진출을 핑계로 F&B에 추가 투자를 하면 된다.
물주가 돈까지 쥐여주며 시도해보라고 하는데 마다할 분은 절대 아니었다.
우리 집안에 흐르는 피가 원래 그랬다.
뭔가 꽂히면 앞뒤 안 보고 일단 달리고 보는 편이었다.
작은할아버지도 그랬고 우리 아버지가 이민을 결정했던 것만 봐도 그랬다.
삼촌의 경영 스타일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았기에 확장하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그런 성격이 없었다면 반년이란 시간 동안 오저당 F&B를 이끌며 13호점까지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어쨌든 그런 나의 제안을 들은 형은 잠시 아무런 말이 없었다.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형이 맡아주겠다고 하시면 삼촌이랑 진지하게 논의해볼게요.”
“괜히 나 때문에 그런 거라면···.”
“제가 설마 그러겠어요? 다 계획이 있으니 그렇죠. 미국 내에서 버번과 한국 술을 판매하며 홍보할 곳이 필요해요.”
최근에 OGD USA를 통해 한국의 여러 전통주가 미국에 들어오고 있다는 말도 덧붙여서 설명해줬다. 한 마디로 개인적인 친분 때문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예 아니라고 할 수도 없다.
내가 형에게 이런 제안을 하는 이유가 지난해 출시해서 동남아 등에서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는 ASAP 탓도 있었다.
ASAP는 유나 누나가 만든 레시피였고 그에 합당한 보상도 해주었으나 예상보다 잘 팔리고 있기에 뭔가 더 해주고 싶었다.
원래는 누나가 받는 게 맞는데 아무 것도 받지 않으려고 하는 게 문제였다.
“주점을 키워서 체인 사업을 하실 큰 야망을 품고 계신 게 아니라면 그냥 제가 제안하는 직영점을 받으시죠.”
“가게를 내는 데 들어가는 돈을 생각하면 네 제안을 받아들이는 게 좋기는 하지.”
“그러면 그냥 해요. 만약에 미국 내에서 오픈하게 되면 아무래도 LA가 좋겠죠?”
“그렇지. 지금 주거지를 옮기는 것도 쉽지 않고 유나가 일하는 곳들도 대부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진 않거든.”
그쯤에서 나는 혹시 모르기에 지금 나누는 말만으로 확정된 것은 아니라고 확실하게 말해줄 필요가 있었다.
괜히 잔뜩 기대하고 있다가 일이 틀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나도 그 정도는 알고 있어.”
“대신 한번 시작하면 OGD USA의 서포트를 받아서 제대로 하게 될 거예요.”
“그게 무슨 의미야?”
“어쩌면 몇 곳의 주점을 같이 관리할 수도 있다는 의미죠.”
고작 직영 주점 하나만 열자고 해외 진출을 거론하기도 조금 애매했다.
이왕에 할 거면 제대로 하자고 설득해야 삼촌도 움직일 명분이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관리자로서 재능을 보이면 아예 미국 전체의 매장을 관리하는 자리를 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단계에서 그런 말을 해줄 수는 없었다.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어차피 시스템은 삼촌이 마련해줄 테고 도와줄 직원도 구할 테니 형은 현장에서 사람이랑 매장 관리만 하시면 돼요.”
“나 혼자 결정하기 어려운 문제인 것 같은데 유나랑 상의 좀 해볼게.”
형은 곧장 대답을 하진 못했다.
아무래도 혼자 결정해서 미래를 정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적어도 누나의 동의를 얻어야 할 필요가 있긴 했다.
“시간은 충분하니 천천히 답을 해주셔도 돼요.”
그다지 급한 일은 아니었다.
버번이 나오려면 반년이나 남았다.
그렇다고 지철이 형이나 유나 누나가 우유부단해서 대답을 미룰 성격도 아니라 얼마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
그날 저녁 늦은 시각.
유나 누나와 지철이 형은 이 문제에 대해서 상당히 깊은 이야기를 나눴다.
형은 물론이고 누나의 미래도 걸려있는 일이기 때문에 쉽게 내릴 수 있는 결정은 아니었다.
누나는 오랜 기간 꿈꿔왔던 사진을 접겠다는 형의 말을 썩 내켜 하지 않았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 잘 알고 있기에 어떻게든 말려보려고 애를 썼으나 그게 쉽진 않아 보였다.
“이 상황 저만 불편한 거 아니죠?”
다미안은 2층에서 제법 큰 소리로 싸우고 있는 두 사람 목소리 때문인지 상당히 불안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그의 물음에는 왜 이렇게 태평하냐는 듯한 의문도 포함되어 있었다.
실제로 나는 소파에 앉아서 향이와 함께 이번에 파사데나에서 빚었던 버번으로 만든 칵테일을 마시며 TV나 보고 있었다.
커플 싸움에 끼어들어 봐야 좋을 게 전혀 없었다.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
“꽤 크게 싸우시는 것 같은데요?”
“저러다가도 금방 풀어요.”
내가 두 사람을 알고 지낸 지 벌써 6년 가까이 된다. 그 긴 시간 동안 두 사람이 싸우는 것을 한두 번 본 게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크게 싸워도 반나절을 가지 않는다는 점이 특징이었다.
상대를 설득하려 애썼고,
설득이 안 되면 어떻게든 타협했다.
그 과정에서 종종 일부러 져주는 경우도 허다했는데 누구 하나에게 일방적으로 그걸 강요하지도 않았다.
내 예상으로는 이번 싸움은 유나 누나가 질 수밖에 없었다. 현실적인 명분도 형이 가지고 있었고 무엇보다 오저당 F&B의 임원급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형이 내세우는 논리는 둘 중의 한 명이라도 안정적인 소득이 있어야 하지 않겠냐는 것이었는데 설득력이 있었다.
그렇게 30분쯤 지났을까.
점차 다투는 소리가 줄어들더니 이내 조용해졌다. 그리고 머지않아서 두 사람은 우리가 있는 거실로 내려왔다.
“결론은 잘 나왔나요?”
“이 고지식한 인간의 쇠고집은 도저히 꺾을 수가 없네. 사진은 취미로라도 계속하겠다는 약속 받고 허락했어.”
“잘 생각하셨어요.”
“이렇게 싸웠는데 나중에 없던 일로 하자고 하면 진짜 빡칠 것 같아.”
“그럴 일은 없을 거예요.”
확실하게 장담하긴 어려웠지만,
만약에 일이 틀어져도 뒷일을 책임질 수 있는 정도의 재력은 있었다. 참고로 올해 내가 받는 연봉은 2억까지 올렸다.
하지만 그걸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배당금과 이것저것 추가로 붙는 것까지 따지면 실제로는 몇 배쯤 된다.
누군가는 너무 많이 받는다고 할 수도 있으나 오저당과 현지 법인들의 매출을 생각하면 정말 양심껏 받아 가는 편이다.
돈이 필요하다면 다른 방법도 많았다.
당장이라도 오저당을 상장해서 주식을 발행하면 그만이다. 30% 정도만 시장에 풀어도 최소 몇백억 이상은 될 거다.
물론, 그럴 생각은 절대 없었다.
나날이 성장해가고 있는 회사였다.
그걸 생판 모르는 이들에게 나눠주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마음의 결정을 내리셨으니 저는 잠시 삼촌이랑 통화 좀 하고 올게요.”
“지금 당장 이야기하려고?”
“기다릴 이유가 없으니까요. 그리고 지금 말해줘야 제가 들어갔을 때 곧바로 답을 들을 수 있잖아요.”
나는 스마트폰을 들고 여기서 머물 동안 쓰는 방에 들어가 전화를 걸었다.
오저당의 직원이었다면 영상 통화를 했겠지만, 약간 구닥다리에 가까워진 삼촌은 그런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전화벨이 몇 번 울린 뒤.
삼촌은 나른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시계를 얼핏 보니 점심시간이었는데 식사 후에 잠시 졸고 계셨던 것 같았다.
봄날의 춘곤증은 못 참지.
[이 시간에 웬일이냐?]
“논의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요.”
[조만간 한국에 돌아온다며 그때 하면 안 되는 거야?]
“제가 언제 일을 미루는 거 보셨나요.”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그때부터 나는 지금까지의 있었던 일을 정리해서 삼촌에게 간략하게 전해줬다.
한동안 듣기만 하던 삼촌은 어이가 없는 듯이 웃었다.
[그러니까 강제로 미국 진출 당하는 상황인 거네? 지금 F&B에 자금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알고는 있지?]
당연히 알고 있었다.
작년에 투자한 돈은 다 썼다.
현재 F&B는 슬슬 자리 잡기 시작한 지점에서 조금씩 현금을 회수하는 중이라 뭔가 시도할 여력이 없기는 했다.
“오저당에서 투자금을 늘려드릴 겁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세요.”
[얼마나 줄 수 있는데? 맥주 공장에 들어가는 투자 비용이 상당히 클 텐데 여유가 있어?]
“당장은 크게 들어가긴 어렵죠.”
올 초에 멕시코에서 상당히 큰 배당금이 들어왔으나 적어도 250억 정도의 비용은 오저당에서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나마 요즘 매출과 순수익이 상당히 좋은 편이라 따로 빚을 낼 필요는 없었다.
“여름이 끝날 무렵 정도에는 여유가 있을 거예요. 일단은 30억 정도 생각하고 있는데 그 정도면 될까요?”
[후우··· 솔직히 조금 부담되는데.]
“사람 사는 데가 다 똑같죠. 그냥 해외에 주점 몇 개 더 내는 것뿐이에요.”
[아니, 그런 문제가 아니야.]
삼촌의 걱정은 다른 곳에 있었다.
현재까지 F&B는 투자만 받고 있지 뭔가 성과를 내서 보여준 것이 아직 없었다.
사업을 시작한 지 1년도 되지 않았기에 그런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해도 자꾸 다른 해외 법인과 비교하셨다.
멕시코의 배당금은 넘사벽 급이었고 심지어 미국도 약간의 배당금이 나왔다.
두 곳 모두 확실한 수익 모델을 가지고 있기에 더는 투자할 필요가 없다.
그런 상황인데 F&B만 추가 투자가 들어간다니 자존심이 상하신 것 같았다.
더구나 능력은 없는데 혈연관계라 F&B를 받았다는 악성 루머도 제법 많았다.
나도 듣는 귀가 있기에 그걸 아예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F&B의 목적을 생각하면 그런 생각을 할 필요가 없었다.
애초에 그럴 목적으로 설립한 회사가 아니었다.
“제가 언제 큰돈을 벌어달라고 한 적이 있었나요. 오저당 F&B의 역할은 캐시 카우가 아니라고 몇 번이나 말했잖아요.”
[나도 알지. 하지만···.]
“생산과 유통을 하는 현지 법인이랑 비교하면 당연히 서비스업인 F&B가 매출이나 모든 게 작은 게 당연하죠.”
애초에 비교 대상이 잘못됐다.
더구나 조만간 직영점 외에도 가맹점을 받을 생각이라 그때는 상황이 달라진다.
현재 직영점은 서울과 수도권 부근에 집중되어 있는 탓에 부산과 대구 같은 곳에서 문의가 제법 많이 들어왔다.
아마도 여름쯤에는 몇 곳의 가맹점이 대도시 중심으로 전국 곳곳에 생길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그건 그렇고 미국에 세울 직영점을 지철이한테 맡기고 싶다고?]
“운영 관련해서 직원은 따로 몇 명 뽑아야겠지만, 책임자로 형만큼 믿고 맡길 만한 사람이 딱히 없어요.”
[하긴 그 녀석 내 아래 있었으면 어반 스카이나 직영점을 맡겼을 거야.]
요즘 삼촌이 운영하던 어반 스카이는 2호점의 지점장님이 1호점까지 같이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도저히 거기까지 살필 시간이 안 나오는 탓이었다.
“슈미트와 OGD USA에서 서포트해줄 테니 어렵진 않을 거예요.”
[엄밀하게 말하면 다른 회사잖아?]
“어차피 한국에서 오저당의 술을 수입해서 유통하는 회사잖아요. 거기서 술을 받아서 장사해야 하니 아예 남이라고 하긴 어렵죠.”
[알았다. 일단은 회의 소집해서 의견을 물어볼게. 한국에 언제 들어오는 거야?]
“이틀 뒤에 귀국할 예정이에요.”
[그럼 그전에 미국 진출에 대한 사업 타당성 검토는 어느 정도 끝내놔야겠네.]
공항에서 오저당으로 직행하지 말고 F&B에 잠시 들렀다가 가라는 의미였다.
나는 알겠다며 대답을 하고 머지않아서 전화를 끊었다.
그 뒤로 이틀의 시간은 순식간에 지났다.
하루는 누나의 집에서 먹고 마시며 쉬는 시간을 가졌고 다음 날에는 슈미트와 함께 카를로스를 만나야 했다.
카를로스와의 만남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오랜만에 얼굴을 보자는 것이 전부라고 봐도 되었다.
모처럼 일 이야기 없는 자리였던 탓인지 카를로스는 대낮부터 술판을 벌였다.
그 자리가 끝난 것은 다음 날 새벽이었을 정도였는데 덕분에 비행기를 놓칠뻔했다.
그나마 다미안이 정신을 차리고 있어서 다행히 제때 일어날 수 있었을 정도였다.
거의 술에 쩔어버린 상태로 해장도 못 하고 비행기에 올라타야만 했다.
70일이나 되었던 제법 긴 미국의 일정은 그렇게 끝마쳤다.
그렇게 한국에 돌아와 스마트폰의 전원을 켜자 엄청난 양의 회사 단톡과 함께 수호가 보낸 문자가 와있었다.
[기쁜 소식이 있어! 도착하면 곧장 전화해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