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밤 (1)
수호가 말한 기쁜 소식이 뭘까.
평소에 이런 호들갑을 떠는 녀석은 아니라 궁금해서 참을 수 없었다.
그 의문은 다미안 덕분에 몇 초도 지나지 않아 알 수 있었다.
“사장님, 호세 실장이 강진희 사원이랑 결혼한다고 다들 난리가 났는데요.”
다미안은 자신의 스마트폰을 내게 내밀며 거기에 적힌 단톡방의 내용을 보여줬다.
[와아! 언니 축하해요.]
[결국에는 이런 날이 오는구나. 두 사람 모두 행복하게 잘 살아야 해.]
[오저당 1호 커플에서 1호 부부가 되는 소감 좀 말해봐요.]
[아··· 부럽다. 제 짝은 도대체 어디에 숨어 있는 걸까요?]
[냉장고는 내가 찜했다. 그러니 나중에 혼수 마련할 때 그건 빼놓고 해.]
[이런! 유수호 이사님 치사하게 뭐 하는 겁니까. 그러면 저는 대형 TV 갑니다.]
수호는 물론이고 황 이사까지.
뭔가 하나라도 도와주려고 애썼다.
두 사람의 처지를 뻔히 알기 때문이다.
호세는 그나마 가족이 멕시코에 있으나 강진희 사원은 보육원 출신이다.
아주 어릴 때 버려진 탓에 가족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도 전혀 모르는 친구다.
그러니 혼수를 마련해주거나 옆에서 결혼 준비를 도와줄 사람이 전혀 없었다.
심지어 이모님은 신부만 괜찮다면 결혼식장에 입장할 때 이장님의 손을 잡고 들어가도 된다며 슬쩍 권유할 정도였다.
이럴 때는 가족 같은 분위기가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았다. 두 이사가 분위기를 잡아준 탓인지 서로 뭔가 해주겠다고 나서는 직원이 꽤 많았다.
‘하긴 다른 사람도 아니고 호세니까.’
비록 실장 자리에 있지만,
호세는 거의 이사급 대우를 받았다.
오풍주를 맡고 있는 것 외에도 오저당의 첫 직원인 만큼 창립 멤버라 봐도 되었다.
나도 축하 메시지를 쓰려다가 이내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축하의 인사는 직접 가서 얼굴을 보며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6시간 뒤.
오저당 F&B에서 간단하게 미팅을 마치고 다미안과 나는 곧장 삼척으로 향했고 해가 지기 직전에 도착했다.
택시에서 내리자 기다렸다는 듯이 수호와 호세가 다가왔다.
“호세! 결혼하기로 했다며 축하해!”
안 그래도 기다리던 소식이었다.
호세의 취업 비자가 종료하는 날이 점차 다가오고 있었는데 오저당에 잡아둘 수 있는 방법이 별로 없었다.
방문 취업 비자로 들어온 탓이다.
자칫 일이 꼬이면 내년에 출국했다가 1년 뒤에 다시 돌아와야 할 수도 있었다.
그동안 여러 방면으로 방문 취업 비자가 아닌 다른 쪽으로 바꾸려 애썼으나 생각보다 이쪽 문제가 꽤 복잡했다.
하지만 그 모든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국제결혼을 통한 국적 취득이었다.
“원래는 귀화를 먼저하고 청혼하려고 했는데 순서가 바뀌고 말았네요.”
그렇다고 호세가 노력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만약에 귀화 시험 자격만 됐어도 무리 없이 통과했을 것이다.
오저당에서 일하는 동안 한국어 실력은 눈에 띌 정도로 늘었고 문화에 적응하는 것도 이미 끝낸 지 오래됐다.
애초에 한국 핏줄이 섞인 녀석이라 그런지 오히려 요즘에는 멕시코보다 한국이 더 편하다고 말할 정도였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속담도 있잖아. 그런데 왜 갑자기··· 설마 속도위반이냐?”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그러면 결혼식을 빨리 올려야겠네.”
이런 경우에 선택지는 두 가지다.
배가 부르기 전에 최대한 빨리 결혼식을 올리거나 출산 이후에 여유를 가지고 진행하는 것도 방법 중의 하나다.
호세는 둘 중에 빠른 것을 선택했다.
“다음 달에 삼척에서 하려고요.”
“멕시코에서는 안 하고?”
“원래는 한국에서만 하려고 했는데 진희 씨가 반대하더라고요. 신혼여행을 멕시코로 가서 작게라도 하자고 하네요.”
“임신 초기에는 비행기 타는 거 좋지 않다고 하던데 멕시코가 가깝진 않잖아?”
“그때쯤 되면 12주는 넘어가고 운동도 미리 열심히 해서 무조건 가야 한다고 오히려 성화던데요.”
호세의 가족을 배려한 거겠지.
강진희 사원이 당돌한 면이 있으나 한편으로는 마음 씀씀이가 참 좋았다.
하지만 결혼식을 작게 하는 게 과연 가능할지 모르겠다.
호세는 요즘 테킬라 지역에서 떠오르는 사업가로 이름을 알리고 있는 OGD 멕시코의 사장인 호르헤의 친동생이다.
그 점을 고려하면 아마 상당히 성대하게 결혼식을 열어줄 게 분명했다.
“그때 되면 최대한 길게 휴가 줄 테니 일정은 넉넉하게 잡아도 돼. 그러니 무리하지 말고 경유지에서 쉬었다가 가.”
“감사합니다.”
“이사진은 통 크게 질렀는데 사장님은 결혼 선물 안 해줄 거야?”
그쯤에서 수호가 끼어들었다.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고민이었다.
이미 나올만한 것들은 다 나온 상태다.
그렇다고 이사들보다 저렴한 것을 해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아직 나오지 않은 게 뭐가 있지?”
“냉장고부터 대부분의 살림은 다른 직원들이 다 선점했지.”
“으음··· 그러면 신혼집을 회사 명의로 마련해줄까?”
“그건 회사에서 주는 거지 네가 해주는 선물이라 할 수는 없지.”
잠시 고민을 한 끝에 나는 호세에게 두 가지의 선택지를 제시했다. 3천만 원 이내에서 차를 사든지 아니면 신혼집의 인테리어를 해주겠다는 내용이었다.
수호와 라니를 제외한 다른 직원이 결혼한다면 이렇게까진 안 해줬을 거다.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호세이기에 이 정도는 해주고 싶었다.
“너무 부담스러울 정도인데요. 결혼식에 참석만 해주셔도 저는 만족해요. ”
“노놉! 그럴 수는 없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우리는 뭐든지 해줘야지.”
“냉장고는 끼어들지 마. 급이 다르잖아.”
내가 웃으며 과장된 몸짓으로 허세를 부리자 수호와 호세는 웃음을 터트렸다.
어디 가서 보여주지 않는 그런 모습인데 유독 이렇게 두 사람 앞에서는 장난을 자주 치고는 했다.
“언제까지 여기 있을 거야? 서서 이러지 말고 우리 모처럼 같이 한잔할까?”
수호는 오저당의 창립 멤버끼리 이번 기회에 한 번 뭉치자며 분위기를 띄웠다.
카를로스 때문에 과음을 해서 당분간 술은 멀리하고 싶었으나 안 된다고 말하기는 조금 어려웠다.
“다미안은 어떻게 할래요? 피곤하면 그냥 들어가서 쉬어도 됩니다.”
“그러면 저는 영수증 정리할 게 많이 밀려있어서 들어가 보겠습니다.”
“길게 출장 다녀오느라 수고했어요.”
나는 다미안을 들여보낸 뒤에 대충 캐리어만 거실에 밀어 놓고 나왔다.
다미안이 쉬는 한옥에서 마시기는 조금 그렇기에 수호와 호세가 사는 집으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
“어떤 걸로 마실래?”
수호는 냉장고를 열며 내게 물었다.
그 안에는 술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작은할아버지처럼 아예 냉장고 하나를 술 보관하는 데 쓰고 있는 녀석이었다.
“시차 때문에 피곤하니까 가볍게 맥주나 마실래.”
“약한 모습 오랜만이네.”
“귀국하기 전에 카를로스랑 대작하며 마신 술이 엄청났거든.”
“저도 새벽에 오풍주 체크하러 가야 해서 가볍게 맥주 마시겠습니다.”
호세도 내 선택과 같았다.
냉장고 안에는 여러 맥주가 들어 있었는데 그중에서 내가 고른 것은 독일에서 만든 스타우트였다.
“역시 에딩거 둔켈을 고르는구나.”
“흑맥주 중에서 나는 이게 가장 좋더라.”
“그러면 맥주 공장 만들 때 스타우트 종류도 만들어보지 그러냐.”
“우선은 굿밤부터 시작해서 차근차근 가야지.”
이미 완성되어 있는 굿밤을 밀어내고 다른 맥주부터 빚을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내 입맛에 딱 맞는 그런 스타우트도 빚어보고 싶은 마음이 없지는 않았다.
“이렇게 셋이 함께 있는 것도 꽤 오랜만인 것 같지 않냐?”
“너희가 한옥에서 나가서 여기로 옮긴 이후에 나를 안 끼워준 거겠지.”
“매번 같이 마시자고 해도 바쁘다고 하셨던 게 사장님이었거든요.”
“와··· 우리가 여기서 술을 빚기 시작한 게 3년 전이라니 믿어지지 않네.”
창립 멤버끼리 모여서일까.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의 주제는 당시 있었던 일 위주로 흘러갔다.
그때만 하더라도 이런 수준까지 오저당이 클 거라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솔직히 우리 이야기를 소설로 써도 허황된 이야기라고 할 정도 아니냐?”
“아직 시작에 불과해. 이제 막 도입부밖에 안 된 거라고. 앞으로 해야 할 게 너무 많아.”
“맥주 공장 다음은 뭐냐? 혹시 또 뭔가 저지른 게 있으면 지금 털어놔 봐.”
역시 수호만큼 나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이미 녀석의 얼굴에는 확신 같은 게 있었다.
“F&B에서 미국 진출하면 지철이 형한테 미국 직영점을 맡기기로 했어.”
“잘됐네! 형도 이젠 자리 잡아야지.”
“그런데 그 두 분은 결혼하실 생각이 아직 없으신 건가요?”
“아마 조만간 좋은 소식 있을 거야.”
느낌상 오래 걸리진 않을 것 같았다.
빠르면 올해 가을쯤에는 그쪽에서도 뭔가 소식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이야기는 그 뒤로도 계속 이어졌는데 수호와 호세 모두 파사데나 증류소에 대한 관심이 상당히 많았다.
“그래서 버번은 그걸로 완성된 거야?”
“뼈대는 완성된 거라고 봐도 되지. 하지만 너희도 알다시피 생산하면서 변수가 있으니 그건 계속 보완해야 해.”
“하긴 오풍주나 벽향주만 보더라도 2년 전이랑 지금 술을 비교하면 은근히 차이가 있기는 하지.”
거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반복해서 술을 빚으며 숙련도가 늘고 각자 맡은 술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며 미세하게 계속 보완한 덕분이었다.
“이런··· 생각해 보니 호세가 신혼여행으로 장기간 빠지면 내가 연수를 갈 수 없잖아?”
“죄송합니다.”
“가을에 호세 대신 스코틀랜드로 가면 되잖아. 설마 신혼인데 한 달이나 떨어져 지내려고 하겠어?”
호세는 쑥스러운 표정으로 웃자 수호도 나의 제안을 쿨하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녀석은 내게 한 가지 조건을 걸었다.
“그러면 스코틀랜드는 너도 같이 가자. 테넌트 씨한테 연락할 때마다 도대체 너는 언제 오는 거냐고 성화셔.”
결국에는 수호와 함께 스코틀랜드에 가겠다는 약속을 해야 했다.
테넌트 씨한테 증류소로 찾아뵙겠다고 했던 약속도 이제는 지킬 때가 되었다.
그분이 오저당에 찾아와서 머물렀던 것도 어느덧 30개월 전의 일이다.
그 사이에 테넌트 씨는 우리 직원의 연수도 몇 번이나 도와주셨으니 직접 인사드리러 한 번쯤은 가봐야 했다.
‘늦어도 너무 늦긴 했지.’
*
귀국한 바로 다음 날부터.
나는 꽤 바쁜 시간을 보내야 했다.
하루 중에 자는 시간 몇 시간을 빼고는 일만 하면 지내야 할 정도였다.
두 달 넘게 자리를 비운 탓이다.
그래도 대부분의 일은 황 이사와 수호 덕분에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미 특화 단지에서는 연화 건설의 신정배 사장님의 주도하에 마이크로 양조장 건물 두 동이 지어지기 시작했다.
그곳은 앞으로 소규모 생산되는 술을 빚을 용도라 효율성을 고려해서 설계한 2층 건물로 지어질 예정이었다.
하지만 맥주 공장은 아직이었다.
일단 규모부터 완전히 차원이 달랐다.
그래서 설계부터 모든 것을 면밀하게 살피고 몇 번이나 확인해야 했다.
“이게 마지막으로 수정한 최종 버전입니다.”
황 이사는 설계 사무실에서 보내준 도면을 화면에 띄워서 보여줬다.
미국에 있는 동안에도 화상 미팅과 도면을 보내줘서 검토를 했었는데 그걸 반영해서 다시 만들어온 것이었다.
“화물차 진입로가 조금 더 넓어졌네요.”
“아무래도 혼잡하지 않으려면 저 정도는 되어야 할 것 같아서 변경했습니다.”
“하수 처리는 어떻게 됐나요?”
이번에 특화 단지를 만든 삼척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것이 오염 문제였다.
청정 지역이라 불리던 동네에 단지가 들어와서 오염된다면 득보다 실이 더 많아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허가를 내줄 때 가장 신경 써서 확인할 거라고 말한 것이 바로 수질과 대기 오염에 대한 것들이었다.
우리가 화학 물질을 써서 제조하는 업종은 아니나 수질 오염은 주의해야 했다.
하루에도 몇 차례나 청소를 하고 탱크를 씻어내면서 알코올 성분이 함유된 물이 하천으로 흘러가기 때문이었다.
최소한 pH를 조절하고 스크리닝과 침전물 분리 정도는 해야만 한다.
“수처리 전문 업체한테 설계와 운영 모두 맡겼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른 거는 몰라도 그런 쪽에서는 논란이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물론이죠. 법적 기준은 무난하게 통과될 수준으로 진행 중입니다.
그 뒤로도 설계도를 면밀하게 살핀 나는 그쯤에서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이미 세세하게 설명을 다 들었던 터라 도면만 봐도 완성된 맥주 공장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질 정도였다.
“좋네요. 이렇게 짓도록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