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밤 (5)
썸 페스티벌은 성공적이었다.
아직 우리가 원하는 수준에 도달하진 못했지만, 적어도 올해 온 이들은 대부분 만족하고 돌아갔다고 봐도 되었다.
거기에 오저당의 지분은 상당했다.
아낌없이 다양한 술을 풀었고,
직원들은 헌신적으로 일해주었다.
대부분 태백과 삼척 출신인 탓에 지역 발전이란 대의에 동감해준 것이었다.
당연히 보너스도 꽤 두둑하게 줬다.
추가 근무 수당 외에도 루나비치 리조트 숙박권을 별도로 사들여서 챙겨주었다.
혹시라도 친구나 가족이 여행을 오면 머물 수 있게 해주는 용도였다.
이번에 썸 페스티벌을 진행하면서 루나비치 리조트의 오너와 꽤 친해졌다.
그쪽에서 저렴하게 해줘서 부담스러운 정도의 금액이 들어가진 않았다.
[삼척 썸 페스티벌, 6만여 명의 방문자를 기록하며 성황리에 종료]
### : 썸 페스티벌? 그런 축제도 있었어? 작은 땅덩이에 매년 열리는 축제가 도대체 몇 개나 되는 거야?
ㄴ ### : 나도 썸 타고 싶다.
ㄴ ### : 깔끔하게 포기하면 마음 편해.
### : 내 친구가 거기 갔다 왔는데 내년에 또 가고 싶다는 말을 하더라. 작년이랑은 완전히 달랐다고 했어.
ㄴ ### : 뭐가 좋았다는 거야?
ㄴ ### : 광란의 파티라고 말했어. 그리고 그놈 거기서 여친 만들어 왔지.
ㄴ ### : 그걸 믿냐? 구라일 거야.
### : 나도 갔다 왔는데 독일의 옥토버페스트 같은 분위기였어. 이번에 오저당이랑 손잡은 게 신의 한 수였지.
### : ㅇㅈ. 막걸리 패스 사면 막걸리는 무제한이고 나머지는 가게에서 사는 소비자가로 팔더라.
ㄴ ### : 오풍주 가격이 엄청 센데 그걸 무제한으로 풀면 패스 가격이 얼마야?
ㄴ ### : 그거 말고 오저당에 일반 막걸리도 있잖아.
### : 술 먹고 개 되는 인간들 많겠네.
ㄴ ### : 거기 경찰들 개고생했겠다.
ㄴ ### : 아예 없던 거는 아닌데 그런 분위기는 아녔어.
문제가 전혀 없던 것은 아니지만,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킬 일은 없었다.
취한 것 같으면 술을 팔지 않았고 소동을 일으키면 경찰이 상황을 정리했다.
당연히 삼척은 이런 분위기를 반겼다.
오죽하면 이제 막 페스티벌이 끝났는데 벌써 내년은 어느 정도의 규모로 진행할 건지 논의하고 있을 정도였다.
‘누구보다 유명석 시장이 좋아했지.’
내년 봄에 예정되어 있는 지방 선거에서 내세울 업적 하나가 더 늘어난 덕분이다.
거기에 주류 특화 단지를 짓기 시작하며 동원되는 인력도 상당했다.
그게 다 지지율로 바뀌는 중이었다.
다른 지자체처럼 엄청나게 큰 특화 단지를 진행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삼척의 특성상 수백억 단위 규모는 흔하지 않다.
살짝 들뜬 것은 오저당도 마찬가지다.
이번에 후원사가 되어서 쓴 돈이 작다고 보긴 어려우나 얻은 것도 제법 많았다.
그중의 하나가 조만간 나오게 될 굿밤의 리뉴얼 예고였다.
은근히 굿밤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았고 SNS를 통해서 그 소식이 알려졌다.
하지만 모든 것이 수월했던 것은 아니다.
처음으로 진행했던 페스티벌이라 부족했던 부분도 많았다.
“내년에는 진짜 제대로 각 잡고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아. 이게 막상 해보니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는 일이었어.”
“황 이사님의 조언을 귀 기울여서 받아들일 걸 그랬어요.”
“그러면서 배우는 거죠.”
황동선 이사는 괜찮다며 웃었다.
이미 그는 페스티벌 전부터 여러 문제를 예견하고 있었다. 그가 광고회사에서 일하며 겪은 여러 변수 때문이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인력 배치에서 구멍이 생겨서 나까지 투입됐다는 것이었다.
오기로 했던 알바가 당일날 잠수를 타고 나타나지 않을 거라 생각지도 못했다.
심지어 일하다가 도망친 알바도 있을 정도였는데 그런 탓에 내년에는 여유 인력을 더 뽑아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우리의 여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페스티벌은 끝났으나 아직 삼척에 있는 지역 특산물 홍보관에서 시음 행사를 진행 중이니 이사님이 잘 지켜봐 주세요.”
“물론이죠. 올해는 전담 인력이 아예 상주하며 진행하고 있으니 예전처럼 복잡하진 않을 겁니다.”
“그리고 삼척시에 보낼 보고서도 가능하면 빨리 준비해주세요.”
이번에 있었던 문제점을 내년에도 동일하게 겪을 생각은 전혀 없었다.
우리가 투자한 금액이 작지 않은 만큼 목소리를 낼 자격도 충분히 있었다.
썸 페스티벌 이야기를 한동안 나눈 뒤에 대화의 주제는 자연스럽게 곧 완공될 예정인 마이크로 양조장으로 바뀌었다.
빠르면 다음 달인 9월에 준공이 떨어져 술을 빚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참고로 RJ와 내가 살 집도 최근에 설계를 마무리해서 드디어 공사를 시작했다.
연화 건설의 사장님이 소개한 곳에서 짓고 있는데 내년 초쯤 완공될 예정이다.
두 건물 모두 같은 설계였다.
50평이나 되는 2층 건물이라 제법 큰 공사였는데 조금 과한 느낌이긴 했다.
당장은 다미안과 나까지 둘이 살게 될 집이나 언젠가 결혼을 할지 모르는데 이왕에 크게 짓자는 말에 설득당했다.
연애를 못 하고 있다고 결혼마저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RJ의 집도 있기에 보안에 상당히 신경 써야 했다.
그래서 나온 결론이 집에서 100m나 떨어진 곳에 있는 입구에 리모컨으로 여는 대형 문을 설치하는 것이었다.
“올 초에 인수한 다른 양조장의 술도 중요하지만, RJ가 투자해서 진행하는 감저 술이 가장 우선입니다.”
“물론이죠.”
“대충 언제쯤 출시가 가능할 것 같아?”
수호에게 일정을 물어봤다.
감저 술에 대한 관리는 수호가 맡아서 하기로 정해졌다. 그나마 믿고 맡길 수 있는 이가 수호밖에 없었다.
벽향주의 퍼플 라벨만 맡은 수호와 달리 다른 파트는 대량 생산 체계로 돌아가고 있기에 추가로 맡기기 어려웠다.-
“적어도 연말은 되어야겠지.”
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연말이었다.
완공된 이후에 준공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리고 설비를 들여놓더라도 아직 술이 완성된 것도 아니었다.
새로 들어오는 설비에 맞춰서 미세한 조절을 하고 그 뒤에 숙성하는 기간도 있으니 그 이상은 무리라고 했다.
문제는 출시 시기가 하필 연말이라는 것이다.
술이 가장 많이 팔리는 연말이 지나기 전에 출시되는 것은 반가운 일이나 굿밤 맥주가 나오는 시기와 거의 겹쳤다.
우리 같은 중소기업에서 동시에 두 가지 대형 프로젝트를 이어가긴 어려웠다.
“조금 더 빨리는 힘들겠지?”
“감저는 최소 두 달 이상 숙성하는 레시피라 그 이상 단축하기 어려워.”
“그러면 감저와 마이크로 양조장의 술이 12월이고 굿밤이 1월쯤이라 봐야겠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크게 부담될 정도는 아니다.
감저는 5만 병으로 시작할 생각이었다.
이것도 최근에 빌보드에서 1위를 기록한 RJ의 팬덤이 있으니 가능한 수준이다.
올 초에 인수한 다른 술은 아무리 많이 빚어야 5천 병 내외로 시작할 예정이다.
괜히 마이크로 양조장이라 불리는 게 아니다.
하지만 소극적일 필요는 없었다.
우리가 예전에 품평회를 통해서 벽향주에게서 희망을 보았듯이 인수한 술들도 그런 기회를 주어볼 생각이었다.
그와 더불어 내년에는 세계에서 유명한 품평회를 나가볼 생각도 조금은 있었다.
와인이나 맥주에 비해 스피릿 품평회의 규모는 그리 크진 않으나 외부에서 거두는 성과를 무시할 수 없었다.
“그런데 5만 병은 너무 작은 거 아니야? 팬들 숫자를 고려하면 50만 병을 빚어서 내놓아도 모자랄 것 같은데.”
“RJ가 천천히 가길 원하고 있잖아. 엔터 쪽은 RJ가 훨씬 더 전문가니까 의견을 따라줘야지.”
“원래 이 바닥이 조금 그래.”
라니도 RJ의 의견에 동의했다.
팬심 때문에 하는 말은 아니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RJ와 함께 일하는 것 때문에 조금 걱정했으나 일에 관련된 것들은 냉정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왜 그러는 거야? 조금 이해가 안 되네.”
“그룹 생활이라는 게 단체로 움직이는 거잖아. 개인 사업을 한다고 그걸 대놓고 홍보하는 것도 사실상 힘들어.”
홍보 자체가 문제가 아니었다.
멤버마다 개인플레이를 하게 되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RJ 외에 다른 멤버도 패션이나 다른 쪽에 손대고 있으나 스스로 모델이 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했다.
“아··· 그렇기는 하겠다.”
“그리고 오저당이나 되니 50만 병 단위를 쉽게 이야기를 하는 거지 당장 5만 병만 하더라도 얼마를 써야 하는데.”
대략 따져보면 RJ가 추가로 투자해야 하는 금액만 3억 5천만 원쯤은 된다.
RJ가 한해 버는 돈을 생각하면 아주 큰 수준은 아니나 아직 검증된 게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 이상은 무리이긴 했다.
“그리고 RJ는 이걸 당장 엄청나게 키우고 싶다는 그런 마음은 아닐걸.”
“은퇴 이후를 생각하는 건가?”
“당연하지. 길게 10년 이상 보는 거라 생각하는 게 서로 마음 편해.”
“그건 네 바람이겠지.”
자신이 애정하는 그룹이 해체되길 바라는 팬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라니가 말하는 10년 후면 RJ도 마흔을 넘길 텐데 그때까지 그룹이 유지되길 바라는 것 같았다.
“감저 보틀이랑 라벨도 거의 마무리되고 있고 다른 술도 동시에 출시되면 이제 마케팅에서 할 일이 상당히 많겠네요.”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은 없다.
아무리 소량 생산을 한다고 하더라도 이번에 빚어지는 술을 그냥 방치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RJ의 술과 굿밤 맥주.
그리고 케이티가 빚고 있는 파사데나 버번과 마이크로 양조장 술까지.
연말을 기준으로 많은 제품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기 시작할 것이다.
그 시기에 가장 과부하가 걸리는 부서가 바로 마케팅 쪽이라고 봐도 된다.
여기서 파사데나까지 포함되는 이유는 아직 미국의 마케팅 인력이 고작 한 명밖에 없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것도 SNS 관리자 수준이었다.
그러니 전략을 짜고 브랜드 작업을 하는 기틀은 어쩔 수 없이 황동선 이사와 마케팅 직원들이 준비해줘야 했다.
오죽하면 내가 먼저 일부 잡다한 마케팅 업무는 외주 업체를 찾아서 거기에 맡겨야 하지 않겠냐고 물었을 정도다.
하지만 그건 황동선 이사가 거절했다.
“오히려 의욕이 불타오릅니다. 저희들은 이런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거든요.”
황동선 이사는 의욕이 넘쳤다.
모처럼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때였다.
그가 왜 그러는 건지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긴 했다.
지금까지 오저당의 술은 대부분 황 이사와 마케팅팀의 손이 닿기도 전에 자연스럽게 일이 풀리는 경우가 많았다.
ASAP만 하더라도 예상하지 못했던 태국에서 먼저 반응이 왔다.
당연히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없었다.
가뜩이나 오저당은 생산직의 위상이 사무직보다 상당히 높은 편이었다.
홍보가 부족하더라도 술맛으로 승부를 볼 수 있다는 자신감이랄까.
하여튼 그런 게 상당히 강했다.
그러다 보니 사무직을 대표하는 황 이사로서는 마케팅이 왜 필요한 건지 항상 증명하고 싶어 했다.
필요성을 인정 받아야 광고 집행 단위도 높아지고 사무직의 위상도 챙길 수 있다.
그러니 이번만큼은 다른 외부 요인이 아닌 스스로 대박 제품을 만들어내고 싶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었다.
‘그건 수호 쪽도 크게 다르진 않지.’
생산직이라고 마음 편한 상태는 절대 아니었다. 쉽게 더 많은 양을 빚어내는 맥주 공장은 모두의 경쟁 대상이다.
혹시라도 전통주 라인이 뒤로 밀릴까 봐 우려하는 마음도 분명히 있었다.
“인력이 더 필요할 텐데 몇 명쯤 더 구하면 될까요?”
“인턴이나 신입 사원으로 두 명 정도만 보충되면 될 것 같습니다.”
“경력직은 필요 없고요?”
“얼마 전에 들어온 친구들이 일을 제법 잘하니 괜찮습니다.”
현재 마케팅팀은 기존에 이삭 기획에서 넘어온 이들 외에도 두 명이 더 추가됐다.
대형 광고 대행사에서 황 이사와 함께 근무했던 차장급과 그가 데리고 온 대리급이었다.
요즘은 그게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혈연부터 학연과 지연까지 모두 동원한 덕분에 그나마 고급 인력이 조금씩이나마 채워지고 있는 중이었다.
그렇게 천천히 준비하는 사이.
시간은 흘러 어느덧 겨울이 왔다.
크리스마스 캐럴이 서서히 들리기 시작할 무렵인 12월 초가 되자 오저당의 맥주 공장이 드디어 완공되었다.
[오저당 ‘굿밤 맥주’ 공장 완공, 맥주 사업 본격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