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저합니다 (3)
<감저(甘藷)합니다>
거기에는 여러 의미가 있다.
감저를 마신다는 뜻과 함께 감사하다는 말에 감저를 가져다 붙인 것이기도 했다.
한 가지 더하자면 RJ가 앞으로 감저라는 술을 ‘하겠다’는 뜻도 있었다.
약간 억지 같은 느낌도 있지만,
어쨌든 꽤 마음에 드는 제목이었다.
과거에 <오졌다! 오저당>처럼 눈길을 끌 수만 있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컨셉은 그리 복잡하지 않았다.
나와 호세 그리고 라니가 RJ와 함께 편안하게 술을 마시며 새로 나온 감저에 대해 소개해주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원래는 RJ만 영상을 찍으려고 했으나 술에 대한 모든 설명을 직접 할 수 있을 정도로 지식이 해박하진 않았다.
그러니 옆에서 서포트해야만 했다.
“이 포맷으로 진행하려면 별스타그램에 썩 어울리진 않아요.”
“맞아요. 화면도 단조로울 거고 제품을 선보이는 것도 어려울 거예요.”
쌍둥이는 라이브 스트리밍까지는 동의했으나 채널 선택에 대해서는 썩 내키지 않아 했다. 너튜브에 비해 별스타 쪽은 영상에 친화적이지 않다는 이유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겠어?”
“RJ님의 별스타그램에서 라이브 예고까지만 하고 나머지는 너튜브에서 진행한 뒤에 따로 영상으로 만들죠.”
“우리 채널에서 진행하자고?”
RJ가 소속된 회사의 공식 채널을 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거긴 그룹 활동에 관련된 것만 올리는 곳이다. 내 질문에 쌍둥이는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개인 계정에서 감저 홍보를 계속하실 게 아니라면 차라리 지속적으로 영상을 올릴 저희 채널에서 소개하는 게 낫죠.”
물론, 규모의 차이가 있긴 했다.
그러니 RJ의 별스타그램을 포기하지 않고 라이브 예고를 올리자는 거겠지.
하지만 그렇게 되면 모양새가 조금 애매했다.
마치 RJ의 팬을 쪽쪽 빨아먹는 느낌이 들 수 있었다. 그러니 이 문제에 대해서는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RJ 본인이 내키지 않으면 할 수 없다.
“그게 좋겠네요. 아무래도 영상이 오래 남는 것도 너튜브고 검색도 해시태그보단 쉬울 테니 그렇게 하죠.”
생각보다 RJ는 흔쾌히 허락했다.
그러면서 ‘같은 배를 탔다’고 내가 했던 이야기를 다시 되돌려주었다.
그때부터는 빠르게 모든 일이 진행되기 시작했다.
감저의 런칭 하루 전이었다.
최대한 빠르게 진행해야만 했다.
그 덕분에 RJ의 매니저는 느닷없이 메이크업과 헤어를 손봐줄 스태프를 구해야 했다.
세팅까지 고작 네 시간 남짓.
해가 저물기 직전에 모든 준비를 마친 우리는 라이브 예고를 RJ의 별스타그램에 올리고 본격적인 라이브를 시작했다.
### : RJ 별스타에서 온 사람 손!
ㄴ### : 엄청나게 많을걸. 여기 채팅 대부분이 영어랑 스페인어잖아.
### : 그런데 여긴 어디야?
ㄴ### : 오저당(OGD) 그룹 본사.
ㄴ### : 진짜? 돈 레오넬 빚는 곳이라 꽤 큰 회사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아기자기하네.
### : 설마 그 소문이 진짜인가?
ㄴ### : 무슨 소문?
ㄴ### : RJ가 주류 브랜드 런칭한다고 얼마 전에 찌라시 돌았거든.
### : 감저합니다는 무슨 의미야?
ㄴ### : 외국인들 어리둥절. 번역도 안 되는 거라 다들 똑같은 걸 묻네.
ㄴ### : 오늘 우리 가게에 오저당에서 새로 런칭하는 술이라며 ‘감저’라는 술이 들어왔어. 그거 말하는 거겠지.
시작부터 많은 이들이 들어왔다.
라이브 스트리밍인데 순식간에 만여 명이 들어온 거를 보면 확실히 RJ가 사는 세계는 완전히 다른 곳 같았다.
하지만 긴장하는 사람은 없었다.
호세나 라니도 오저당의 너튜브 채널에서 꽤 많이 라이브를 진행했다.
오히려 이 상황이 낯선 것은 나였다.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요즘 너튜브 촬영에 함께하지 않고 있었다.
모처럼 카메라 앞에 서니 날이 아직 추운데도 진땀이 흐를 정도였다.
그러나 염려할 필요는 없었다.
RJ는 능숙했고 호세와 라니는 죽이 잘 맞는 편이었다. 그 덕분에 나는 거기에 얹혀서 적당히 리액션만 해주면 된다.
“이번에 다녀온 월드 투어는 어땠어요?”
시작은 소소한 것부터 했다.
처음부터 폭탄을 터트릴 생각은 없었다.
뒤늦게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이들도 있었고 라이브는 최소 한 시간 이상 할 예정이라 템포 조절을 할 필요가 있었다.
따로 진행하는 역할은 없었지만,
카메라 너머에서 스케치북을 들고 예정된 질문들을 보여주는 우주 덕분에 모두 함께 합죽이가 되는 일은 없었다.
더구나 열렬한 팬인 라니가 있잖아.
안 그래도 묻고 싶었던 게 많았는지 팬들의 대변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댓글을 확인해가며 온갖 질문을 쏟아냈다.
“10분 지났네요. 이제부터는 영어로 대화할 차례입니다. 아쉬워도 어쩔 수 없으니 양해를 부탁드릴게요.”
대화는 영어와 한국어를 바꿔가며 했는데 어차피 나중에 편집해서 올라갈 영상에는 자막이 들어갈 예정이었다.
더구나 은근히 능력자가 많았다.
채팅창에서 여러 명이 동시에 실시간 번역을 하고 있기에 꽤 도움이 되었다.
그렇게 감저를 가볍게 마시면서 여러 이야기를 나누며 어느 정도 분위기가 무르익자 우주가 신호를 보내왔다.
[이제 시작하셔도 됩니다.]
그걸 본 RJ는 약간 긴장한 것 같았다.
지금껏 편안하게 대화를 하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팬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응원과 비난.
적어도 둘 중의 하나겠지.
하지만 RJ가 겁쟁이는 아니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언변도 좋은 편이다.
한두 번 심호흡을 한 그는 차분하게 오저당과 함께 빚은 감저를 소개했다.
“이번에 운 좋게 기회가 생겨서 오저당과 함께 감저라는 술을 내놓게 되었습니다. 제품 기획 단계부터 제가 참여한 제품이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반응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그룹 활동에 소홀해지는 게 아니냐며 아쉬워하는 이들도 있었으나 새로운 도전을 응원하는 이가 더 많았다.
더구나 감저는 그리 비싸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다른 멤버와 꽤 비교됐다.
최근에 선글라스 회사와 협업해서 만든 다른 멤버의 물건은 수십만 원에 달하는 금액으로 판매할 예정이라 알려졌다.
명품 전략을 욕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사정이 여의찮은 팬에게는 부담될 수밖에 없었다. 반면에 감저는 훨씬 접근성도 좋았고 의미도 있었다.
국내 농산물 소비 촉진.
그리고 전년도 감자의 폭락까지.
내가 나서서 왜 이 술이어야 했는지 말해주자 공감대가 제법 형성되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내가 누군지 묻는 이들이 제법 많았다.
### : 잘생겼네. 저 사람은 누구지?
ㄴ### : 오저당의 사장임.
ㄴ### : 아니지. OGD 그룹 오너이니 회장이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해.
### : 그룹 회장이 뭐 저렇게 어려?
ㄴ### : 저렇게 보여도 돈 엄청 많음.
ㄴ### : 업계 소문에 의하면 멕시코에 있는 돈 레오넬 증류소 인수하려고 조 단위를 제시했다더라.
ㄴ### : 증류소를 그 가격에 산다고?
ㄴ### : 현재 미국에서 돈 레오넬 팔리는 걸 보면 쌉가능하지.
### : 그보다 더 놀라운 거는 아직도 20대라는 사실이야. 올해 29살이잖아.
ㄴ### : 나랑 동갑이네. 개부럽다.
ㄴ### : 여자 친구 있으려나. 아직 미혼이면 도전하고 싶은 스펙이네.
기존의 오저당 구독자도 꽤 많은 탓에 나에 대한 궁금증은 그들이 풀어줬다.
그 덕분에 나조차도 잊고 있던 것들에 대해 알 수 있었다.
군대는 어딜 갔다 왔는지.
학교는 어디 출신이고 전공은 뭔지.
내가 너튜브에서 예전에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는 이들이 꽤 많이 있었다.
그게 아니면 실제로 나를 아는 사람일 수도 있지.
‘삼촌도 저들 중에 있으려나?’
어쨌든 그러는 사이에 스트리밍을 보는 이들의 숫자는 7만 명까지 늘었다.
채팅창의 언어도 무척 다양해졌다.
소문이 퍼지며 RJ의 팬이 계속해서 밀려오고 있는 덕분이었다.
아랍어, 이탈리아어, 태국어까지.
전 세계의 모든 언어가 동시에 쏟아졌다.
채팅창은 인간의 동체시력으로 확인하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게 올라갔다.
하지만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었다.
어차피 당분간은 감저를 나눠마시며 지금껏 제품 개발 과정에 대한 에피소드 같은 것을 이야기할 예정이었다.
“RJ님이 워낙 바빠서 오저당 역사상 가장 제품 개발이 오래 걸렸던 거 아시죠?”
“하필 그 무렵에 스케줄이 많았어요. 제가 사과하는 의미로 한 잔 따라드리죠.”
“감사합니다. 그리고 아직도 RJ는 벽향주 즐겨 마시나요? 아까 보니 채팅창에서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많더군요.”
“물론이죠. 화이트 라벨도 좋아하는데 퍼플 라벨은 없어서 못 마시죠.”
RJ의 벽향주 사랑은 여전했다.
퍼플 라벨을 시중에 내놓을 때마다.
나는 일부 수량을 빼서 RJ와 삼촌 그리고 아버지에게 나눠줬다.
여기 언급된 이들의 공통점이 있다.
다들 어떤 술보다 벽향주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어쨌든 그 덕분에 RJ는 다른 이들보다 손쉽게 퍼플 라벨을 마셨다.
그렇게 그를 챙겨줬던 이유는 감저 때문만은 아니었다. 멤버들과 같이 술을 마실 때 우리 술을 마시라는 배려였다.
기왕이면 해외 술보다 국내 술을 마시는 게 보기도 좋잖아.
뭔가 축하할 일이 있을 때마다.
RJ는 퍼플 라벨을 활용했고 실제 마음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멤버들도 꽤 즐겨 마셨던 걸로 알고 있었다.
당연히 그만큼 퍼플 라벨의 인기는 더 올라갔고 여전히 술을 내놓을 때마다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건 소담 소주의 퍼플 라벨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늘은 이쯤에서 끝낼까요?”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
RJ는 라이브 스트리밍의 끝을 알렸다.
이야기를 하며 술을 많이 마신 것은 아니나 얼굴이 살짝 붉어져 있었다.
그건 나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슬쩍 옆을 돌아보니 우주도 이쯤에서 끝내자며 손으로 동그라미를 그렸다.
라이브를 보고 있는 이가 마지막에는 24만 명까지 늘었으니 대성공이었다.
마지막 인사를 한 뒤.
라이브가 종료되자 다들 안도했다.
아무래도 영상을 찍은 뒤에 편집할 때보다 훨씬 긴장될 수밖에 없었다.
혹시라도 말실수를 하게 되면 득보다 실이 많은 게 라이브다.
“다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저희는 곧바로 이거 편집해서 올려야 하니 먼저 들어가 볼게요.”
“둘 다 고생했어.”
쌍둥이는 장비를 서둘러 챙겨서 영상 편집을 하기 위해 사무실로 향했다.
가능하면 빨리 영상을 올리는 게 좋을 것 같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거기에 호세와 라니도 합류했다.
영상에 들어갈 자막을 만들려면 쌍둥이 실력으로는 조금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을 뒤로하고 RJ와 나는 이모님이 정성들여 준비해주신 저녁 식사 자리로 향했다.
“빈속에 술을 마셨더니 부대끼네요. 어서 식사부터 하시죠.”
*
반응은 곧장 나왔다.
라이브 스트리밍 종료 직후.
발 빠른 기자들이 기사를 써서 올렸다.
기사 내용은 우리가 라이브에서 했던 말들을 정리한 것에 불과했다.
[국산 감자로 빚은 감저 소주 출시]
[사업가로 깜짝 변신한 RJ, 오저당과 손잡고 감저 소주 런칭]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아티스트 RJ, 인생 제2막 시작?]
역시, RJ라고 봐야 하나.
그의 이름 하나만으로도 여파가 꽤 컸다.
지금껏 오저당은 국내외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냈으나 이렇게 많은 기사가 쏟아져 나온 적은 한 번도 없었다.
RJ의 도움은 그걸로 끝나지 않았다.
여러 기자들과 인터뷰도 했고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연예인과 인플루언서를 통해서 감저를 간접 홍보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SNS를 보면 감저를 마시는 사진을 올리는 유명인이 많았다.
그걸 본 사람들은 글로벌 스타인 RJ가 오저당과 손잡고 빚은 술이 어떤 맛일지 궁금해했다.
“이번에 나간 게 마지막입니다. 다음에 나오는 물량도 이미 다 임자가 있습니다.”
“열흘만 기다리시면 된다니까요.”
“아무리 애원하셔도 불가능해요. 당장은 나갈 수 있는 술이 없다니까요.”
오죽하면 퇴근 시간이 지났는데도 주류 상사에서 전화가 쏟아졌다.
그리고 주류 상사 외에도 일반 소비자의 연락도 만만치 않게 많이 왔다.
국내에 사는 이들은 대표 번호로 전화를 넣어 어디서 구할 수 있는지 물었고 해외에서는 메일을 보내고 있었다.
그 결과는 품절 대란으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