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저합니다 (4)
감저의 반응은 상당했다.
열풍이란 단어가 어울릴 정도였다.
10만 병 중에 6만 병이 국내에 풀렸는데 순삭 당해 시중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다.
추가로 생산되는 양으로는 감당되지 않을 수준이었다.
RJ의 팬층은 매우 폭넓었다.
팬들이 한 병씩만 사도 수천만 병이 팔릴 정도이니 정말 월드 스타의 파급력은 아무리 경험해봐도 적응되지 않았다.
게다가 뉴스도 꽤 도움이 됐다.
앞다퉈 RJ가 투자해서 빚어낸 감저 이야기를 보도한 덕분에 팬덤이 아닌 이들도 소식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예전의 품절 대란 때와는 또 달랐다.
품평회 이후에 생겼던 벽향주 품절은 술을 좋아하는 이들이 주로 찾았다.
그 이후에 RJ가 파리에서 벽향주 퍼플 라벨을 우연히 발견했을 때는 팬덤이 가진 화력이 집중된 케이스다.
하지만 이번에는 복합적이었다.
아이돌의 팬덤이 아닌 이들조차 감저라는 술을 한 번쯤 맛보고 싶어 했다.
이른바 매진 마케팅이라고도 한다.
구하기 어려운 물건일수록 더 간절하게 원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어쩌면 밴드 웨건 효과인지도 모른다.
유행을 따라 소비되는 현상을 의미하는 말인데 두 가지 모두 틀린 것은 아니다.
거의 사회적인 현상으로 발전한 탓에 하나의 효과로 단정 짓기는 어려웠다.
“와··· 이 정도일 거란 생각은 못 했어.”
참고로 2주 전에 라이브를 한 이후.
수호와 마찬가지로 나도 RJ를 형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나이도 우리보다 몇 살 더 많은 데다가 옆집 사는 이웃이다.
언제까지 데면데면하게 거리를 둘 수는 없는 일이었다.
“월드 스타가 된 지 꽤 됐는데 아직도 적응이 안 되시는 거예요?”
연예계는 언제 바닥으로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곳이다. 하지만 RJ 정도 되는 이들은 이미 클래스가 다르다.
당장 연예계 생활을 접어도 최소 몇 년 정도는 최상단에 이름을 올릴 사람이다.
“매일 꿈속에서 사는 느낌이거든.”
“어떤 느낌인지 궁금하네요.”
“나는 네가 더 부럽다. 서른도 안 되는 나이에 오저당을 이렇게 키웠잖아.”
“운이 좋았죠.”
“그나저나 직원들이 감저 때문에 고생이 많던데 미안해서 어쩌지.”
생산 라인을 제외한 오저당의 모든 기능은 거의 마비됐다. 발주를 담당하는 직원들은 일 처리가 어려울 정도였다.
워낙 많은 곳에서 연락이 왔다.
심지어 오저당이 있는 삼척까지 직접 와서 술을 사 가려는 이들도 제법 많았다.
그중에는 기자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래서 요즘 직원들은 회사 전화가 아니라 따로 마련해준 업무용 스마트폰을 사용해서 거래처와 연락했다.
덕분에 RJ는 아직 가구도 제대로 들여놓지 않은 집에 거의 갇혀 있었다.
괜히 얼굴을 내밀었다가 들키면 난리가 날 것 같아서 숨겨놔야 했다.
“너무 염려하지 마세요. 오저당이 이런 일을 겪는 게 처음은 아니거든요.”
나쁜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감저를 구하지 못한 이들은 아쉬운 마음을 달래고자 오저당의 술을 샀다.
감저 출시 전과 비교하면 대부분 20~50% 가까이 매출이 상승했다.
이건 나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하긴 예전에 비슷한 상황이 있었을 때는 대안으로 내세울 제품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 오저당은 상당히 많은 브랜드 라인을 보유하고 있는 중이다.
그게 지금 와서 도움이 됐다.
심지어 마이크로 양조장에서 빚은 비주류 제품들까지 영향을 받고 있었다.
일부 해외 바이어는 뭐든 상관없으니 오저당의 술이라면 일단 오케이였다.
“다행이네.”
그 부분에 대해 이야기해주자,
RJ는 그나마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가진 인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폐를 끼치는 일이 종종 있었던 것 같았다.
충분히 이해가 되긴 했다.
그가 뭘 먹고 마시든 관심을 받았다.
심지어 아무 생각 없이 입은 옷조차 팬들은 어느 브랜드인지 찾아냈다.
몇 년 전에 뮤직비디오 촬영 당시 입었던 한복을 제작한 곳의 매출이 10배 가까이 늘었던 사례도 꽤 유명했었지.
그러니 전혀 놀랄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정말 추가 투자 없이 생산량을 늘려줘도 되는 거야?”
“형이 돈이 어딨다고요.”
“허! 나한테 돈 없을 거라고 걱정해주는 거는 너밖에 없을 것 같다.”
지금까지 번 돈이 제법 많이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소속사에서 받은 주식까지 합치면 수백억 단위쯤 되지 않을까.
현재 보유한 개인 자산을 따지면 나보다 훨씬 부자일걸.
하지만 따져보면 이게 조금 애매하다.
주식도 팔아야 돈이 되는 건데 내가 알기로 멤버 중에 주식을 처분한 이는 아무도 없는 걸로 알고 있다.
그런 그에게 생산량이 늘었다고 투자금을 더 받아내는 것도 어려웠다.
괜히 그 문제로 인해 생산량을 넉넉하게 늘리지 못해서 차질이 생기는 게 더 손해였다.
“계약서에 생산과 유통은 우리가 알아서 한다고 했잖아요. 그러니 믿고 맡겨요.”
“이번에 정산받은 돈이 1억이나 되는데 너무 날로 먹는 것 같아서 그러지.”
“형이 함께해주신 덕분에 날개 돋친 듯이 팔리는 거잖아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제 역할을 하고 계신 거예요.”
RJ도 나름대로 노력 중이다.
이번에 기획 중인 오저당의 첫 TV 광고에도 생각보다 상당히 저렴한 비용으로 모델이 되어주기로 했다.
하지만 감저 광고는 아니었다.
마케팅이 우리 몫인 것은 맞으나 아직 감저의 매출로는 TV 광고까진 무리다.
생산량이 아직 부족한데 광고를 하는 것은 어림도 없는 일이지.
대신 우리의 선택은 굿밤이었다.
이미 전국에 깔린 굿밤 맥주는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거기에 조금만 이슈를 더할 수 있다면 메이저 브랜드에 접근 가능할 것 같았다.
올해 목표는 국내 맥주 TOP 5.
이미 어느 정도 매출이 올라가서 근접해 있는 탓에 어려운 목표는 아니었다.
정말 운 좋으면 4위권에 있는 맥주의 자리까지 넘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이상은 솔직히 조금 무리지.’
3위와 4위의 차이는 꽤 크다.
매출만 보면 거의 두 배쯤 차이 난다.
하지만 1위와 2위의 매출을 생각하면 그 정도는 아주 근소한 차이에 불과하다.
현재 국내 맥주 1위를 지키고 있는 브랜드는 우리가 목표로 하는 5위보다 20배 이상 덩치가 큰 거대한 공룡이다.
긴 시간 쌓은 브랜드 벨류도 있기에 쉽게 넘볼 수 있을 존재는 아니다.
철옹성 같은 곳이지만,
그렇다고 좌절할 필요는 없다.
아직 가시권에 들어오진 않았으나 작년 이맘때를 생각하면 우리도 규모나 모든 것으로 봤을 때 엄청나게 성장한 상태다.
이제 슬슬 각지에 지점을 늘리고 본격적인 영업에 들어가면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결과물이 나올 것이다.
언제까지 주류 상사에 기대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정말 그 비용만 받고 광고를 찍어도 되는 거예요?”
“되니까 오케이한 거지. 소속사에서도 별다른 말 없이 통과됐잖아.”
“제가 들었던 단가보다 훨씬 낮으니 그렇죠. 괜히 손해 보실 필요는 없어요.”
한번 그렇게 단가를 깎을 경우.
다음 광고에도 영향을 받는다고 들었다.
하지만 RJ는 그런 것쯤은 전혀 신경 안 쓰는 것 같았다.
“언젠가 떨어질 단가야. 그리고 우리가 멤버 전체가 동시에 촬영하니 금액이 센 거지 한 명당 비용은 그리 많지 않아.”
“아··· 그렇기는 하죠.”
“부담되면 앞으로 감저를 더 많이 팔아줘. 한 번 광고를 찍는 것보다 매달 억 단위로 정산받는 게 훨씬 좋더라.”
감저의 제품 수명이 얼마나 될지 모르는 일이나 20년 정도 판매되는 양이 어느 정도 유지되면 기대 수익이 상당했다.
거의 연금 수준이나 다를 게 없었다.
거기에 음원 저작권까지 합치면 RJ는 노후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 보였다.
“저는 오히려 형이 부럽네요.”
내가 그 부분을 언급하자 RJ는 웃었다.
하지만 그게 공짜로 얻은 결과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나도 알고 있다.
10대부터 끊임없이 달려온 결과다.
겨우 5년 정도 사업을 경험해본 나로서는 세 배나 되는 시간 동안 정글 같은 연예계 생활을 한 RJ가 대단하다고 여겨졌다.
“그런 의미에서 이사 선물로 식탁 하나 선물하고 싶은데 받아줄 거지?”
“무슨 식탁이요?”
“이번에 집에 들여놓을 식탁이랑 의자 주문하면서 네 것도 같이 오더 넣었어.”
“너무 비싼 거는 아니겠죠?”
이번에 플렉스 해보기로 했지만,
아직 명품 같은 것은 생각해보지 않았다.
한번 알아봤는데 억 단위를 넘기는 가구 제품을 내놓는 브랜드도 많았다.
그래서 깔끔하게 포기했다.
돈이 아깝다기보다는 살 떨리는 값이 계속 생각나서 쓰면서도 스트레스받을 것 같았다.
“나도 그런 쪽에 취미는 없어. 적당한 가격의 제품이니 걱정하지 마.”
“그러면 식탁은 리스트에서 뺄게요.”
“아직 채워야 할 게 많지?”
“필요한 것만 일단 넣고 있어요.”
감저 런칭이 진행된 이후.
조경을 제외한 공사가 마무리됐다.
며칠 전에 한옥에서 짐을 빼서 새로 지은 집으로 이사 왔고 침대와 냉장고 같은 급한 것들로만 채워 넣은 상태였다.
그건 RJ도 다르지 않았다.
이미 그는 3주 가까이 오풍리에 머물고 있었고 이곳에서의 일과는 단순했다.
낮에는 그림을 그리고 음악 작업을 했고 밤이 되면 오저당 직원과 어울렸다.
집들이를 겸한 술자리였기에 양쪽 집에는 두루마리 휴지와 세제가 흘러넘쳤다.
그나마 우리 집은 다미안도 함께 살지만, RJ는 매니저마저 없을 때가 많아서 몇 년쯤 써도 다 못 쓸 것 같았다.
“너무 집에만 계시는 거 아닌가요?”
“쉴 때는 쉬어야지. 그리고 집이 너무 마음에 드는데 어쩌겠어. 투어 나갈 때마다 호텔에서 지내서 그런가 나한테는 집이 주는 의미가 상당히 커.”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장소가 있다는 게 마음에 안정감을 주기도 하죠.”
내 말에 RJ도 동의했다.
한동안 집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중에 RJ는 궁금한 게 있었는지 내게 몇 가지 질문을 했다.
“혹시 벽향주나 소담처럼 감저도 퍼플 라벨을 만들 생각 있어?”
“갑자기 그건 왜요?”
“퍼플 라벨을 볼 때마다 감저도 더 오래 숙성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종종 들어서.”
“물론, 계획은 있죠. 이번에 공사 들어가는 창고가 완공되면 거기서 숙성을 시킬 생각이에요.”
작년에 확보한 단지의 땅을 활용해서 올봄부터 공사를 시작할 계획이 있다.
거길 마무리하면 200평짜리 3층 건물 세 동 정도가 나올 예정이다.
그 정도 크기면 추가로 벽향주와 소담 그리고 감저까지 숙성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니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그와 관련된 계획을 밝히자 RJ는 표정이 밝아졌다.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 오저당을 일찍 발견했다면 전 재산을 투자했을 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아까워.”
“땅을 치고 후회하시는 분이 제법 많죠. 하지만 그때 누군가 제안했어도 아마 제가 안 받았을 거예요.”
“주식회사로 바꿀 생각은 없는 거야?”
“남들 눈치 보면서 성과를 평가 받으며 일하고 싶진 않거든요. 지금이 딱 좋아요.”
큰돈이 당장 필요한 것도 아니다.
집을 지으며 대출받은 것도 빠르면 내년쯤엔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저택에 가까운 크기라 생각보다 비용이 많이 나온 탓이었다.
그래도 꽤 만족스러웠다.
돈을 들인 보람이 있다고 해야 하나.
잔디가 깔린 마당은 넓었기에 종종 RJ나 다미안과 배드민턴을 치기 알맞았다.
무엇보다 한동안 잊고 살아야만 했던 프라이버시가 지켜지는 게 좋았다.
한옥에 살 때는 마당에 주점을 열어놔서 사람이 항상 주변을 맴돌았다.
쉬어야 하는 주말도 예외는 없었다.
아니 오히려 더 많은 이들이 오는 탓에 늦잠 같은 것은 엄두도 나지 않았다.
그런 탓에 지난 5년 동안 꽤 지쳐 있었던 것 같았다.
와··· 생각해 보니 벌써 5년째구나.
조만간 다가올 창립 기념일이 지나면 6년 차라는 게 실감 나지 않았다.
체감상으로는 3년쯤 지난 것 같은데 시간이 정말 빨랐다.
‘이러다 10년쯤 훅 지나가겠는걸.’
아직 20대 중반인 것 같은데 올해가 지나면 서른이란 것도 낯설었다.
어릴 때는 서른쯤이면 가정도 꾸리고 평범한 직장 생활을 할 거라고 생각했기에 지금 같은 결과는 예상치도 못했다.
그때 마당에 설치된 테이블에 앉아 이야기하던 우리에게 다미안이 다가왔다.
그는 RJ에게 공손하게 인사한 뒤에 내게 다음 일정이 있음을 알려줬다.
“이번에 공채에서 합격한 신입사원들 다 모였습니다. 슬슬 이동하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