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술 빚어 재벌 되렵니다-226화 (226/254)

더도 덜도 말고 5년 (1)

올해 오저당은 공개 채용을 시작했다.

매년 상시 채용을 계속하고 있었으나 오저당에서 이렇게 정식으로 대규모 공개 채용을 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지금이니까 가능한 일이었다.

세상의 관심이 오저당에 쏠렸을 때.

마침 공채 공고가 나간 지 얼마 안 됐고 그걸 본 꽤 많은 이들이 지원을 해왔다.

RJ의 브랜드를 빚어주는 회사.

머지않아 대기업이 될 가능성이 큰 곳.

다양한 복지 혜택 등을 따져봐도 오저당이 가진 매력은 꽤 크다.

모든 사람이 다 대도시를 좋아하진 않는다는 것이 한 몫을 차지했다.

빌딩 숲보다 자연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오저당만큼 환경이 좋은 곳은 없을 거다.

여름에는 시원한 계곡에서 발을 담글 수 있고 봄과 가을에는 선선한 바람 맞으며 산책하기 좋은 곳이 오풍리다.

겨울이 오면 빙하기 시대로 회귀한다는 게 유일한 단점이랄까.

그렇다고 군대에서 제설 작업하는 것 같은 고된 일을 시키지는 않았다.

일본에서 많이 쓰는 소형 제설기는 물론이고 아예 제설차까지 갖춰놨다.

메인 도로에서 오풍리까지의 도로는 삼척에서 책임지고 치우기로 했고 마을 입구부터 오저당까지는 우리 몫이다.

기다리면 거기까지 다 해주겠지만, 시간이 오래 걸린다.

겨울철에도 오저당의 물류가 정상적으로 돌아가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눈이 온다고 발주가 멈추진 않는다.

더구나 수출 스케줄을 맞추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길을 뚫어야 한다.

“이번에 오저당에 입사하는 분들이 마흔 명쯤 되는 거 맞죠?”

집에서 걸어 나가며 다미안에게 묻자, 고개를 끄덕이며 태블릿을 내게 건넸다.

그 안에는 이번에 입사하는 이들의 이력서가 정리되어 있었다.

“신입 사원이 스무 명이고, 경력직은 열일곱 명입니다.”

서른일곱 명이 새로 들어오는 것이다.

그들까지 합치면 오저당에서 일하는 직원의 숫자는 250명을 넘어서게 된다.

오저당이 나날이 커지며 필요한 인력의 숫자도 덩달아 증가하고 있었다.

생산량을 늘리려면 어쩔 수 없다.

설비도 계속 손보고 새롭게 들여놓고 있으나 완전한 자동화가 되기 어려운 여건이라 인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생산직이 늘어나는 만큼,

뒤에서 받쳐줄 사무직도 필요했다.

현재 오저당은 내부 개편을 통해 부서를 세분화하고 있는 중이었다.

기존에는 뭉뚱그려서 일을 나눈 탓에 하나의 부서에서 다양한 일을 했는데 조금 더 전문화할 필요가 있었다.

예를 들면 영업도 이제는 국내 영업과 해외 영업을 나눴고 거기에 추가로 고객 지원을 하는 부서도 이번에 만들었다.

생산량이 늘어나는 만큼 고객의 클레임과 요구 사항도 늘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물류를 담당할 화물차 기사님도 몇 명 뽑았다. 지금까지 오저당은 주류 상사에서 보내는 화물차를 활용했다.

하지만 그것도 계속하다 보니 나타나는 문제가 제법 많았다.

제때 오지 않아서 화물차가 몰리거나 비용이 너무 많이 나오기도 했다.

오저당이 외진 곳에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렇게 돈을 쓸 바에는 작게 물류 센터를 운영하는 게 저렴했다.

“호산리에 있는 모텔 건물을 기숙사로 리뉴얼 공사하는 것은 거의 마무리됐다고 들었는데 바로 입주 가능한가요?”

호산 시장 바로 뒤에 있던 모텔을 오저당에서 인수한 뒤에 기숙사로 바꾸는 작업은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구조를 바꿀 필요가 없는 덕분이었다.

지난해까지는 인근 마을에 민박을 둬서 최대한 활용했는데 이제는 도무지 감당되지 않을 정도의 규모가 되었다.

더는 사람이 살만한 방이 없었다.

“네, 지금 당장도 가능합니다.”

“두 곳 모두요?”

“마지막에 인수한 곳은 곧 보수 작업을 마무리하니 입주하는 것은 무리 없습니다.”

이번에 인수한 모텔 건물만 두 채다.

하지만 모든 게 원활했던 것은 아니다.

모텔의 특성상 뭔가 음식을 조리하는 것이 어려웠기에 옥상의 공간을 공용 주방과 식당으로 개조해야 했다.

종부세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기숙사에 대한 비과세 특례 덕분에 모텔을 인수하는 비용과 인테리어 비용 약간만 마련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계속해서 모든 이들에게 기숙사를 제공할 생각은 없었다. 입사 3년 차까지만 숙소를 제공할 예정이었다.

그 정도 기간이면 오저당에서 계속 일할 의향이 있는 것이니 자리를 잡아야지.

오저당에서 일하고 있다면 대출이 어려운 것도 아니고 이 동네의 집값이 서울처럼 사악한 수준도 아니다.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자립 가능하다.

실제로 초창기에 입사한 보육원 출신의 직원들은 두세 명씩 돈을 모아서 따로 살 곳을 마련하고 있는 중이었다.

버는 족족 대부분을 저축하던 몇몇 친구는 억 단위를 모았을 정도다.

대화는 그리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오저당에서 새로 지은 집까지 거리가 그렇게 먼 것도 아니다. 걸어서 5분 정도만 내려가면 될 정도의 수준이다.

“오리엔테이션은 벌써 시작됐나 보네요.”

오저당에 내려오자 식당으로 개조한 단층 창고 안에 사람이 가득했다.

예전에는 가건물에서 식사를 했는데 추위와 더위에 취약했다.

심지어 공간도 꽤 비좁았다.

그래서 식사 시간을 나눠서 해야 할 정도였는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신입 사원들 앞에서 오저당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는 이는 황동선 이사였다.

그는 오저당의 역사와 현재 생산하는 제품들에 대한 설명을 해주고 있었다.

근무를 시작하기 전에 적어도 우리가 어떤 곳인지 확실히 알려줘야 했다.

“OGD 그룹의 해외 법인은 현재 멕시코와 미국 그리고 스코틀랜드에 있는데···.”

황동선 이사는 안으로 들어선 나를 뒤늦게 발견하고 잠시 고개 숙여 인사를 한 뒤에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이번에 입사하는 여러분까지 합치면 그룹 전체의 직원 숫자만 650여 명에 달하는 규모입니다.”

생각보다 많은 수치였던 걸까.

그 이야기를 들은 이들은 술렁거렸다.

하긴 국내에는 오저당의 해외 법인 규모가 널리 알려져 있지 않았다.

650여 명의 직원 중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곳은 역시 OGD 멕시코였다.

미국과 스코틀랜드는 다 합쳐도 60여 명에 불과했고 나머지 340명 정도가 멕시코에서 고용된 이들이다.

돈 레오넬 생산을 위해 고용된 이들도 상당히 많으나 대부분은 아가베 농장에 고용된 이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현재 멕시코에 있는 아가베 농장의 크기는 나날이 커지고 있는 중이었다.

아직 재배하려면 최소 5년 이상 더 시간이 필요하지만, 지금 재배 중인 게 다 자라면 아가베 수급은 숨통이 트일 거다.

지금 수준이라면 최소 연간 200만 병은 만들 수 있을 양은 되기 때문이다.

워낙 땅값과 인건비가 저렴한 덕분이다.

현재 OGD 멕시코는 우리에게 보내는 배당금과 판관비 등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순수익을 농장 확보에 힘쓰고 있었다.

“와··· 생각보다 오저당이 엄청 크네.”

“그런데 왜 이런 게 알려지지 않은 건지 잘 모르겠어. 어쨌든 네가 말한 대로 여기 지원하길 잘한 것 같아.”

“서연이 그 기지배도 같이 입사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네.”

맨 뒤에 앉은 두 여인의 대화를 본의 아니게 들었는데 익숙한 이름이 나왔다.

혹시나 싶어서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작년에 썸 페스티벌에서 이장님의 딸인 황서연과 함께 봤던 친구들이었다.

당시에 명함을 주면서 졸업하고 입사할 생각이 있으면 지원하라고 했는데 정말 오저당에 입사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하지만 정작 황서연은 오저당에 지원하지 않았다.

만약에 그 녀석이 입사하겠다고 했으면 이장님과 이모님을 봐서라도 프리 패스였을 텐데 이해가 안 되었다.

하지만 개인의 선택이니 강권할 수 없는 일이었다.

보다 좋은 회사를 들어갈 수도 있는 일이고 아니면 여기 있는 이들보다 빨리 공인회계사나 세무사가 될 수도 있겠지.

앞날은 모르는 것이기에 미리 단정 지을 생각은 없었다.

한동안 두 친구는 목소리를 낮춰서 대화를 계속했는데 내 시선을 느낀 건지 고개를 돌리다가 나와 눈을 마주쳤다.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미소 지어주는 것이 전부였다.

“엇! 혹시···.”

작년에 잠시 얼굴을 봤을 뿐이다.

그런데도 두 사람은 나를 곧장 알아봤다.

하지만 이내 입을 꾹 다물며 앞으로 고개를 돌렸다.

황동선 이사가 아직 이야기 중이다.

오리엔테이션 중인데 잡담을 하다가 걸렸다고 생각한 건지 꽤 난감한 표정을 지었으나 나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오저당에서 일하면 늦든 빠르든 대부분 알게 될 사실들이었다.

그런데도 이 자리를 마련한 이유는 저들 중의 일부는 서울과 부산에 오픈할 지점에서 영업을 할 이들이기 때문이다.

지점에게 부여되는 임무는 간단하다.

아직 우리 술을 취급하지 않는 마트와 가게 같은 소매처에 오저당의 술을 하나라도 더 집어넣는 것이다.

언젠가 업계 1위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그런 것들이 차곡차곡 쌓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올해 중에 작게나마 광역시 정도 되는 대도시에 지점을 만들 예정이다.

[발표가 끝난 것 같은데요.]

그때 향이가 다가왔다.

내가 잠시 생각에 빠져서 턱을 쓰다듬고 있는 것을 본 것 같았다.

일종의 습관 같은 것인데 고개를 들어 보니 어느덧 황 이사의 발표가 끝났다.

“반갑습니다. 오저당을 이끌고 있는 주도찬입니다.”

앞으로 나가서 인사를 하자,

신입 사원들은 박수로 나를 맞이했다.

올해 처음으로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하며 나한테도 한 가지 임무가 주어졌다.

환영의 인사와 함께 앞으로 오저당이 향할 비전을 제시해달라는 요청이었다.

하지만 딱히 뭔가 거창한 연설 같은 것을 준비해오진 않았다.

길게 이야기해봤자 지루할 뿐이다.

최대한 간단하게 그러나 임팩트 있게 사실만 이야기하는 게 서로 편하잖아.

더구나 봄이 다가와서인지 몇 명은 억지로 졸음을 참고 있었다.

[지금 졸고 있는 사람들 제가 다 기억해 둘 거예요.]

향이는 매의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그러자 덩달아 검이마저 부리부리하게 눈을 뜨고 직원들을 지켜봤다.

종종 녀석은 요정을 대하듯이 직원을 바라볼 때가 있었는데 신입 사원에 대한 평가는 생각보다 박한 편이었다.

애초에 요정처럼 술을 애정하는 게 쉽진 않은 일이다.

그래서 크게 신경 쓰진 않았다.

어차피 그런다고 달라질 것은 없었다.

향이가 하는 말을 듣고 인사 평가에 영향을 줄 생각은 전혀 없었다.

“오저당이 국내 1위의 주류 기업이 될 가능성은 얼마나 있다고 생각합니까?”

내 이야기는 질문으로 시작됐다.

당연히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없었다.

다들 오히려 그걸 왜 이제 막 입사한 자신들에게 묻냐며 의아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저는 불가능하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불과 5년 전에 오저당을 시작했을 때 저까지 포함해서 고작 세 명이 전부였죠.”

[그때 그 시절이 그립네요.]

“고인이 되신 지방무형문화재 故 정춘용 선생님에게 전수 받은 벽향주는 현재 청주중에 압도적인 1등이 되었습니다.”

[우리 요정들이 있으니 당연한 일이죠.]

향이는 내가 말을 할 때마다.

한 마디씩 첨언을 하며 끼어들었다.

옛날에는 녀석이 끼어들어서 종종 말이 헛나올 때도 있었는데 이제 적응이 된 것인지 그런 일은 거의 없었다.

“참고로 지금까지 오저당은 어느 누구의 투자도 받지 않는 회사로 유명하죠. 하지만 제가 단 하나 투자를 받는 게 있습니다. 그건 바로 여러분의 시간이죠.”

오저당의 성공이 나 혼자만의 성과일까.

그건 절대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초창기부터 함께 일해온 수호와 호세 그리고 라니와 황동선 이사는 물론이고 모든 직원들이 함께 애써서 이뤄낸 결과다.

일하는 양을 따져 봤을 때.

아무리 내가 열심히 일해도 다른 직원과 비교하면 비교적 덜한 것도 사실이다.

보고 받는 것은 몇 분이면 충분하나 그 과정을 준비하는 게 쉽지 않잖아.

술을 빚는 것도 마찬가지다.

찍어내면 나오는 다른 일반적인 공산품과 달리 술이라는 것은 시간이 필요하다.

당장 퍼플 라벨만 봐도 일 년이란 시간을 공들여야 판매가 가능하다.

그걸 잊을 생각은 없었다.

그러니 매년 연말이 되면 성과급을 주는 것이다. 당연히 업계 1위가 되면 그 과실은 모두와 함께 나눌 생각이었다.

“더도 덜도 말고 5년! 그 시간 내에 국내 최고의 주류 회사가 될 겁니다. 그러니 저만 믿고 따라오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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