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술 빚어 재벌 되렵니다-234화 (234/254)

술잔도 맞들면 낫다 (5)

내 제안은 오랜 고민의 결과다.

OGD 그룹이 빠르게 위로 치고 올라가려면 오저당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앞으로 글로벌 주류 그룹이란 거대한 공룡에게 도전하려면 그만큼 덩치가 커져야 한다.

오션은 일종의 항모전단이다.

거대한 항공모함 한 척만으로 구성된 게 아니라 그 주변에 구축함 등이 호위하듯 그룹을 이루고 있는 형태다.

그중의 하나가 잘못되어도 그룹 전체를 놓고 보면 크게 위기가 오진 않는다.

어차피 누군가는 매출이 오르고 누군가는 떨어지게 되어있다.

오저당도 주축은 단단하다.

한국과 멕시코가 중심축이 되어주고 있으니 파사데나와 글렌 툴릭 같은 곳들이 뒤에서 받쳐줘야 할 필요가 있다.

나는 지금껏 꿈꾸던 비전을 선배에게 말해줬다.

“정말 오션을 잡을 생각이야?”

“단계별로 가야죠. 저는 일단 국내 1위부터 꺾어보고 싶습니다.”

“로하트는 어렵지 않을 것 같은데.”

당연히 선배도 로하트의 매출과 대략적인 규모 정도는 잘 알고 있었다.

“2조에 달하는 매출이 쉽진 않죠.”

“올해 출시한 감저와 최근에 매출이 상당히 올라간 굿밤이 있잖아. 두 가지만 잘 키워도 연말에 꽤 성과가 좋을걸.”

그러면서 RJ가 얼마 전에 촬영한 굿밤 맥주 광고에 대한 이야기도 했다.

아직 RJ의 팬덤은 물론이고 대중에게 전혀 알리지 않은 이야기였다.

“도대체 모르는 게 뭐에요?”

“우리 팀에 주요 증류소 정보만 모으는 직원이 따로 있거든. 적어도 격주로 한 번씩은 국내 시장 데이터도 들어와.”

인수합병의 기본은 정보다.

대부분 상당한 거액이 들어가니 시행착오 같은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상대방의 현재 상태가 어떤지 정확하게 확인하는 것부터가 그 일의 시작이었다.

“저도 그 자료 한번 받아보고 싶네요.”

“하하! 보고서 하나당 들어가는 비용이 얼마인 줄 알기나 해?”

“글쎄요. 아직 알고 싶지 않네요.”

“오저당도 국내와 해외에서 인수를 제법 진행했잖아. 지금까진 어떻게 해온 거야?”

그 질문에 대한 답은 하지 않았다.

별다른 내용은 없으나 아직 오저당 내부의 일을 공유할 수는 없었다.

“그건 합류를 결정하신 뒤에 말씀드리죠. 저 그렇게 쉬운 남자 아닙니다.”

“아··· 이걸 안 넘어오네.”

“참고로 오저당으로 오시면 M&A 부서장 자리를 드릴 겁니다.”

“자리보다는 얼마나 큰 거래를 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지.”

덩치 큰 거래를 할 때마다.

경험과 경력이 쌓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오저당이 해오던 대로 고작 수십억에서 수백억 단위의 인수만 할 거라면 의미 없다고 했다.

“최소 천억 단위인가요?”

“돈 레오넬 같은 대박은 흔하지 않아. 오션에서는 이미 어느 정도 시장에서 자리를 잡은 브랜드만 노리는데 그만큼 많은 자금이 들어가지.”

“그게 안전하긴 하죠.”

오션과 오저당의 차이가 거기 있었다.

우리는 폐업 위기에 처한 증류소를 위주로 저렴하게 인수해서 키우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었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었지.

대부분은 요정이 위험에 처해서 급하게 인수하는 편이라 그렇다. 하지만 계속 그런 인수만 할 생각은 없었다.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매출의 규모도 달라졌고 매년 쓸 수 있는 돈도 제법 된다. 그러니 이제는 어느 정도 덩치 큰 곳을 가져오는 게 가능하다.

헬리엇 사모 펀드와 했던 약속도 어느 정도 지켰으니 자금의 여유가 제법 된다.

글렌 툴릭을 인수한 이후에 투자한 금액만 300억 정도다.

그 금액 전부를 한국에서 보낸 것은 아니고 여유 자금이 많은 멕시코가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수익도 괜찮았다.

아직 내 손에 쥔 것은 없으나 매달 정리해서 보내주는 보고서의 수치만 보면 100만 달러 이상 수익을 냈다.

“흐음··· 이 자리에서 곧바로 대답을 줘야 하는 거는 아니지?”

한동안 나와 이야기를 나눈 선배는 살짝 고민되는 얼굴로 물었다.

당연히 이직이란 큰 결정을 여기서 정하란 말은 할 수 없었다.

더구나 다른 곳도 아니고 오션이잖아.

글로벌 주류 기업에서도 최정상인 곳에서 국내 1위도 아닌 오저당으로 오는 것은 상당히 큰 결심과 용기가 필요하다.

“시간은 충분히 드릴 테니 심사숙고해서 결정해주세요.”

“그래야지. 이건 와이프랑 상의를 해봐야 할 것 같아.”

“엇! 언제 결혼하셨어요?”

그러고 보니 손가락에 반지를 끼고 있는 것이 보였다. 결혼반지치고는 조금 얇은 편인데 그렇다고 저렴해 보이진 않았다.

“내 나이도 서른 중반을 넘겼는데 지금껏 혼자인 것도 이상하지. 너는 아직인 걸로 알고 있는데 연애는 하는 거야?”

“일 때문에 바빠서요.”

“그건 핑계에 불과하더라. 나도 예전에 그런 말 자주 했는데 누군가를 절실하게 원하면 시간은 어떻게든 만들 수 있어.”

관건은 남은 인생을 함께하고 싶은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직 그런 사람을 만나지 못했어요.”

“어딘가에는 있겠지. 나는 잠시 와이프랑 통화 좀 하고 올게.”

“지금요?”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리에서 일어서려던 선배는 뭔가 뒤늦게 물어볼 게 있었는지 다시 앉았다.

“그런데 만약에 내가 그 부서를 맡으면 삼척에 내려가서 살아야 하는 거야?”

“아니요. 사무실은 어디에 구해도 상관없어요.”

“해외도 괜찮다는 뜻이야?”

“아마존 같은 곳에 들어가지 않는다면 상관없어요. 가능하면 시차가 적은 곳이 좋겠네요.”

선배는 손가락으로 오케이 사인을 보낸 뒤에 가게 밖으로 나가서 통화를 했다.

생각보다 오래 걸릴 것 같아서 지점장님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려고 했는데 성근 선배는 금방 돌아왔다.

이게 의미하는 바는 뭘까.

단호한 거절은 아니었으면 했다.

선배보다 더 능력 좋고 경험 많은 전문가도 있겠지만, M&A 부서장은 다른 누구보다 내 의중을 잘 알아야 한다.

같이 다니며 업무를 지시할 수도 없는 일이라 때에 따라서는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경우도 많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선배라면 그게 가능할 거라 생각되었다.

“벌써 통화를 끝내신 거예요?”

“우리 와이프 성격이 조금 화통해.”

“나중에 한 번 뵙고 싶네요.”

“이제부터 한식구가 될 텐데 자주 볼 수 있을 거야. 조만간 자리 잡자.”

선배가 웃으며 한 말이 전달해주는 의미는 분명했다. 하지만 확실하게 확인해야 하는 문제였다.

“오저당으로 오시는 건가요?”

“일단 허락은 받았어. 몇 마디 안 했는데 내 꿈이 국내 기업을 글로벌 규모로 만드는 거 아니었냐며 무조건 하라고 등을 떠미네.”

“잘 생각하셨어요!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기쁜 마음에 악수를 청했으나 성근 선배는 그 손을 잡진 않았다.

“아직 확정은 아니야. 같이 움직여야 하는 직원들도 있으니 조건은 맞춰야지.”

“물론이죠. 몇 명이나 같이 넘어오실 거죠?”

성근 선배는 세 명쯤 염두에 뒀다.

오션에 입사할 때부터 같이 팀으로 움직였던 두 명과 평소에 눈여겨봤던 직원 한 명까지 데려오고 싶어 했다.

천천히 작업하면 더 많은 이들을 데리고 나올 수도 있다고 했지만, 그렇게 하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어 보였다.

차라리 새로 사람을 뽑자고 제안했고 나도 그 의견에 동의했다.

오션과 마찰을 빚어봤자,

우리에게 이득이 될 것이 없었다.

과거에 심양 때와는 완전히 다른 상대다.

그리고 오션에 악감정 같은 것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M&A가 이직이 잦은 곳이긴 한데 아무래도 동종 업계로 이직하는 거라 조심스럽게 움직여야 해.”

“오션에서는 몇 명이 같이 일했죠?”

“그게 조금 애매해. 사무실에 상주하는 직원은 몇 명 안 돼. 프로젝트를 할 때마다 뭉쳤다가 흩어지거든.”

인적 구성은 나중에 따로 계산을 해봐야 할 것 같았다. 아직 어느 정도의 규모가 되는 곳을 인수할 건지도 정하지 않았다.

그 문제는 이제부터 성근 선배가 해결해야 한다.

적당한 업체를 서칭해서 확신이 설 때.

인수를 마친 후에 정상화시키는 것까지 선배와 M&A 부서에서 해줘야 한다.

기존에 파사데나와 글렌 툴릭을 인수할 때 법무법인 해국과 내가 했던 일들을 모두 넘겨준다고 봐도 된다.

거기서 내가 해야 할 몫은 최종 결정과 인수 자금을 확보하는 일이다.

물론, 지금까지 인수 업무를 함께해오던 해국과 선을 그을 필요는 없었다.

“소개해줄 사람이 있는데 여기 불러도 될까요? 아무래도 같이 이야기하는 게 빠를 것 같아서요.”

“누군데?”

“기존에 인수 과정에서 법적인 문제를 담당해주시던 법무법인 해국의 대표님이요.”

선배는 흔쾌히 좋다고 했다.

그리고 머지않아 해국의 김영채 변호사님이 어반 스카이를 찾아왔다.

사무실이 강남에 있기에 그리 무리한 부탁은 아니었다.

“앞으로 오저당 M&A 관련 업무를 같이 보실 테니 인사 나누세요.”

“반갑습니다. 장성근이라고 합니다.”

“법무법인 해국의 김영채입니다.”

“일단 앉으시죠.”

나는 우선 김 변호사님에게 자리부터 권한 뒤에 잔을 채워드렸다.

이번에 새롭게 출시하는 퍼플 라벨인 것을 본 그는 상당히 반겼다.

변호사님도 꽤 오랜 기간 미국으로 유학을 다녀왔기에 테킬라를 좋아하셨다.

그러고 보니 우리 셋은 미국에서 살다가 돌아왔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대화가 잘 통했다.

퇴근 시간에 시작한 자리였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몇 시간이 지났을 정도였다.

하지만 아무도 취하지는 않았다.

술자리라기 보다는 회의에 가까웠다.

김영채 변호사와 성근 선배는 M&A 전문가들답게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고 나는 듣는 편이었다.

그래도 의미 깊은 시간이었다.

선배는 두 달 이내에 오저당으로 넘어오는 것으로 계획을 짰고 사무실은 법무법인 해국이 있는 빌딩으로 정했다.

마침 그곳에 비어있는 사무실이 있다니 가능하면 두 곳을 가깝게 배치하는 게 서로 편할 것 같다는 결론 때문이었다.

당연히 채용 문제는 전적으로 선배의 몫이었다.

“이제 이야기는 거의 끝난 것 같으니 조만간 출시될 벽향주 옐로우 라벨을 뜯을까요?”

*

그날의 만남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거의 새벽녘이 되어서야 만취 상태로 호텔에 돌아온 나는 평소답지 않게 매우 늦은 시간에 깨어났다.

당연히 숙취가 장난 아니었다.

모처럼 겪는 두통과 속쓰림이 썩 기분이 좋은 일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어제 일을 생각하면 흐뭇해졌다.

“해장하러 안 가셔도 되겠습니까?”

“그냥 내려가면서 휴게소 잠시 들려서 대충 때우는 걸로 하죠.”

“알겠습니다.”

다미안은 내가 일어나기 전에 아침을 먹은 상태라 문제 될 것은 없었다.

우리는 호텔에 주차해놓은 허머를 타고 곧장 삼척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서울에 올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확실히 삼척의 공기가 좋기는 했다.

고작 이틀 머물렀는데 목이 따끔거렸다.

이 무렵이 중국에서 황사가 몰려오는 시기인 것도 한몫했다.

참고로 올해 계약을 맺은 중국의 궈상 그룹은 초반부터 꽤 분발하고 있었다.

멕시코에서 보낸 10만 병의 돈 레오넬은 품절됐고 조만간 들어갈 퍼플 라벨도 도착 전에 이미 예약이 끝났다고 했다.

돈 레오넬만 그런 게 아니었다.

그 외에도 굿밤과 감저 그리고 ASAP가 중국 시장에서 올린 성과는 상당했다.

황동선 이사가 뽑은 데이터만 보면 어쩌면 올해 내에 국내 시장의 판매량을 넘길 것 같았다.

인구의 차이가 이렇게 무섭다.

어쨌든 궈상 그룹 덕분에 올해 오저당의 매출은 전년도와 비교하면 엄청나게 높아질 거라 예상되는 중이다.

당연히 RJ도 돈방석에 앉았다.

요즘은 매달 몇억씩 받아 갈 정도다.

RJ가 광고 몇 편 찍는 것보다 감저의 성공을 원하더니 소원을 이뤘다.

그만큼 우리도 버는 게 많았기에 그가 받아가는 돈은 전혀 아깝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 오저당에 도착한 우리는 한옥 앞에 차를 주차했다.

아직 새로 지은 집에 전기차 충전을 하기 위한 설비가 들어가 있지 않았다.

더구나 법인 차라 허머를 나만 타는 것도 아니었다. 차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가야 했는데 다미안은 사무실로 향했다.

“장거리 운전하느라 피곤할 텐데 내일 일해도 되지 않아요?”

“잊기 전에 정리해야 할 게 있어서요. 먼저 들어가서 쉬십쇼.”

“알겠어요. 적당히 하고 와요.”

어차피 말려도 안 들을 사람이다.

아마도 이번에 주류 협회에서 미팅한 것과 M&A 부서 관련해서 지시 내렸던 것을 정리하려는 것 같았다.

다미안을 뒤로 하고 걸어서 집으로 향한 나는 리모트로 열리는 육중한 대문을 지나 좌측 편에 있는 집으로 향했다.

드넓은 마당을 지나 현관문에 거의 도달하자 반대편에 있는 RJ 집 쪽의 현관문이 열렸다.

그 순간 나는 잠시 멈추어 섰다.

문을 열고 나온 여인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그렇게 예쁜 사람은 처음 봤기 때문이다. 한눈에 반했다는 표현을 이럴 때 쓰는 거구나.

[저기요. 정신 차리세요!]

오죽하면 향이가 뺨을 꼬집었다.

그 덕분에 이게 꿈이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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