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술 빚어 재벌 되렵니다-236화 (236/254)

나날이 새로웠다 (2)

카를로스가 제대로 빡친 덕분에 우리는 꽤 많은 양의 수매권을 손쉽게 받아냈다.

인수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수익보다 많이 남겼기에 카를로스도 흡족해했다.

어디서 인수하려는 건지 알 수 없지만,

저렇게 작정하고 몽니를 부리면 아마도 테킬라 증류소는 빈 껍질만 남을 것이다.

심지어 핵심 기술자 일부도 빼돌려서 우리 쪽에 보내주겠다고 했을 정도였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현재 인수하려는 곳이 업계 1위인 오션은 아닌 것 같았다.

만약 오션이었다면 성근 선배가 먼저 내게 뭔가 언질이라도 줬을 것이다.

우리 오저당과 바크모가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인 것은 이미 다들 알고 있다.

지금까지 해오던 대로 각자의 역할만 해줘도 이 관계는 꽤 오래갈 것이다.

물론, 우리도 해줄 게 있었다.

이번에 얻은 아가베로 생산량이 대폭 늘어나게 될 텐데 그 물량의 상당수는 바크모에 할당하기로 했다.

하지만 당장 진행될 일은 아니었다.

카를로스는 3개월 숙성하는 화이트 라벨보다 현재 엄청난 반응을 보이는 1년 숙성한 퍼플 라벨을 원하고 있었다.

그건 나도 바라는 바였다.

점차 돈 레오넬의 생산 비중을 화이트 라벨에서 퍼플로 옮겨갈 생각이었다.

대략적인 비율로 따지면 5:5 정도 되려나.

‘그 이상은 무리지.’

두 제품 사이에 있는 숙성 기간의 차이는 생각보다 상당히 크다. 100만 병의 퍼플 라벨을 내놓으려면 무려 400만 병의 화이트 라벨이 생산 기회를 놓치게 된다.

반면에 퍼플 라벨은 적은 아가베를 사용해서 훨씬 더 많은 매출을 올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는 했다.

결국에는 판매량과 생산 가능한 양을 놓고 최적의 비율을 찾아가야 한다.

[잘됐네요! 이제부터는 저희가 맡아서 진행할 테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수매권을 사들일 수 있을 거란 소식을 전달받은 호르헤는 상당히 기뻐했다.

어차피 이 문제는 한국이 아니라 OGD 멕시코에서 계약을 체결해야 한다.

“돈 레오넬 퍼플 라벨 출고는 문제였죠?”

[네, 차질 없이 진행 중입니다.]

“한국에서도 벽향주 옐로우 라벨이랑 감저를 선적한 배가 출항했으니 멕시코에서 받을 준비 잘 준비해주세요.”

벽향주 옐로우 라벨의 출시일은 며칠 뒤에 잡혀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기존의 출시 일정과는 조금 다르게 진행됐다.

과거처럼 출시 이후에 선적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가능하면 비슷한 시기에 시장에 내놓을 수 있게 이미 옐로우 라벨은 미국과 멕시코 등으로 옮겨지고 있는 중이다.

호르헤는 이번에 받게 될 벽향주 옐로우 라벨에 대한 기대가 꽤 컸다.

[들어오는 대로 곧장 중남미 쪽의 거래처로 토스하겠습니다.]

요즘 오저당의 술은 멕시코를 넘어 중남미 지역에서도 꽤 인기가 있었다.

모든 것이 한류와 RJ 덕분이었다.

수년 전부터 전성기를 맞은 한류 붐은 어느덧 과거 19세기에 유럽에 불었던 자포니즘과 비슷한 수준까지 올랐다.

미국도 놀고 있지는 않았다.

최근에 슈미트는 캐나다 시장을 뚫고 하나둘씩 우리 물건을 넣고 있었다.

이제 오저당의 술을 파는 나라만 거의 오십여 국에 달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 과정이 쉽진 않았다.

캐나다의 주류 정책은 빡빡했다.

각 주에서 직접 관리하는 체제인데다가 주류청에서 직접 주류 전문 판매점을 운영할 정도였다.

그래도 희망적인 시장이긴 했다.

최근 10년 동안 캐나다의 주류 판매 추이를 보면 매년 5~10%씩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중이다.

한동안 여러 이야기를 하던 중.

통화를 끝낼 무렵이 되자 요즘 별다른 일이 없냐는 내 질문에 호르헤는 최근에 벌어진 일에 대해서 이야기해줬다.

[요즘 테킬라 마을 사람들이 아토토닐코(Atotonilco El Alto) 마을 때문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습니다.]

“아토토닐코면··· 혹시 돈 마테오 증류소가 있는 곳인가요?”

[맞습니다. 그 자식들이 테킬라의 근본이 우리 마을이란 걸 자꾸 잊더라고요.]

호르헤는 분통을 터트렸다.

테킬라 마을의 지명을 따서 만든 술이 테킬라인 것은 그들의 자긍심과 같았다.

그걸 누군가 건드린 것이 분명했다.

참고로 아토토닐코는 메인 도시인 과달라하라의 동쪽에 있는 곳이다.

서쪽에 있는 테킬라 마을에서 거의 90분 이상 달려야 나오는 곳이다.

하지만 규모는 오히려 그쪽이 더 컸다.

듣기로는 거의 세배쯤 되는 것 같았다.

테킬라에서 가장 대표적인 브랜드이자 업계 1위인 돈 마테오 증류소가 있는 덕분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길래요?”

[축구 경기에서 불이 붙었거든요.]

“네? 축구 경기요?”

[양쪽 팀들 모두 아마추어에 불과하지만, 축구 시합이 열리는 날에는 거의 전쟁 수준에 가깝습니다.]

한동안 호르헤는 멕시코의 축구 이야기를 열정적인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나도 멕시코에서 산 세월을 합치면 몇 개월쯤 되는데 확실히 축구에 목숨을 거는 이들이 꽤 많이 있긴 했다.

중요한 축구 시합이 열리는 날에는 마을의 모든 것들이 올스톱될 정도다.

당연히 그 시간만큼은 돈 레오넬 증류소 역시 문을 닫고 함께 모여서 대형 TV 앞에서 응원을 함께하기도 했다.

“그래서 이겼나요? 졌나요?”

[안타깝게 1-3으로 졌습니다. 저쪽도 아마추어인 것은 맞으나 돈 마테오가 후원자라 규모 차이가 상당하거든요.]

“공평하진 않네요.”

[그래서 말인데 저번에 말씀하신 지역 사회 환원 프로그램의 하나로 축구단의 스폰서를 해볼까 하는데요.]

나쁘지 않은 생각이었다.

우리 회사의 이름을 넣은 유니폼을 입고 돈 마테오가 후원하는 축구단을 박살 내는 것은 생각만 해도 짜릿하잖아.

어차피 돈 레오넬에서 버는 돈의 일부는 지속적으로 지역 사회에 투입되고 있다.

작년 같은 경우에는 도로 보수를 위해 꽤 큰 돈을 지자체에 기부했다.

물론, 그걸 돈으로 주진 않았다.

그걸 그냥 맡기면 중간에 떼어먹는 게 워낙 많아서 우리가 직접 공사 업체를 선정해서 진행하는 조건이었다.

“프로 구단도 아니고 그 정도는 호르헤가 알아서 결정해서 진행해요. 자세한 거는 나중에 보고서로 올려주고요.”

이참에 나는 앞으로 바뀔 것들에 대해서 호르헤에게 이야기해줬다. 이번에 수매권 거래를 하며 느낀 점이 꽤 많았다.

카를로스가 연락을 줬던 날에 통화만 1시간 가까이했다.

나중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식사는 모두 끝났고 분위기도 썩 좋진 않았다.

그날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서 지금껏 들인 노력이 적지 않을 정도였다.

그래서 한 가지 결심을 했다.

“이번에 수매권 거래를 끝으로 가능하면 멕시코 쪽의 일에서 손을 뗄 겁니다.”

[네? 아직은 안 됩니다.]

“대부분의 중요한 결정을 멕시코가 아닌 한국에서 내리는 것도 이상한 일이죠.”

지금껏 수없이 느낀 것이지만,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모른 척했다.

하지만 이제 슬슬 호르헤에게도 미국의 슈미트와 스코틀랜드의 어니스트처럼 전권을 맡길 때가 되었다.

호르헤의 경험도 상당히 늘었다.

증류소를 경영한 경력도 5년이나 된다.

그 정도면 충분히 자격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껏 결정을 내가 대신해서 내린 탓에 부담되는 것 같았다.

책임이 그만큼 무거운 거다.

이제까지는 관리하는 역할만 제대로 하면 자신의 자리가 위태로울 일이 없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호르헤가 스스로 앞으로 나아갈 길을 찾고 그로 인한 결과도 책임져야 한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경영 지원과 마케팅 관련 직원부터 보충하겠습니다.]

그걸로 통화는 끝났다.

살짝 뜨거워진 스마트폰을 내려놓자 기다렸다는 듯이 수호가 다가왔다.

“오늘 저녁에 너희 집에서 모이기로 한 거 잊지 않았지?”

“물론이지. 먹을 거는 알아서 챙겨와.”

“이미 치킨이랑 피자 주문해놨어. 이따가 시간 맞춰서 찾아오면 돼. RJ 형도 우리랑 함께 보는 거지?”

나는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거기에는 연우도 포함된다.

요즘 그녀와 나는 일종의 썸타는 관계 정도까지 발전했다. 적어도 나 혼자만의 감정은 아니라 다행이었다.

그 때문에 일을 줄이려는 것이다.

신경 쓸 게 많다 보니 개인적인 시간을 가질 여유가 전혀 없었다. 예전에는 전혀 자각하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왔던 것을 보면 업무와 개인 시간의 경계선이 없었다.

퇴근 시간이란 게 없다시피 했지.

그러다 보니 시간을 내서 연우와 함께 있으려고 할 때마다 자꾸 방해를 받았다.

수시로 울리는 전화벨.

다양한 사람들과의 약속들.

심지어 이번에 재선에 성공한 유명석 시장과 시청의 공무원들도 자주 나를 찾았다.

“그런데 라니는 아까부터 안 보이던데 도대체 어디 간 거야?”

“오늘 RJ형이랑 그림 그리는 날이잖아.”

“아··· 맞다. 오늘이 수요일이구나.”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마다.

라니는 RJ와 함께 그림을 그렸다.

온종일 빠지는 거는 아니고 오후 4시쯤에 조금 일찍 퇴근했다.

처음부터 그런 일정이 있진 않았다.

그림을 취미로 그리는 RJ는 우연히 라니의 작품을 보더니 선생님으로 모셔가길 원했다.

당연히 라니가 그걸 마다할 리 없지.

RJ와 둘이서 함께 그림을 그리는 것은 흔한 경험도 아니었다. 그 이야기가 나오자 수호는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내가 장담하는데 둘이 뭔가 있어.”

“누구한테 뭐가 있다는 거야?”

“RJ 형이랑 라니 말이야. 요즘 분위기가 사뭇 달라진 거 못 느꼈어?”

“푸웁! 말도 안 돼. 그리고 너 이런 쪽은 똥촉이잖아.”

연애 문제에 있어서 수호는 매번 헛다리를 짚었고 나는 연우와 만나는 문제에 대해 절대 조언을 받지 않았다.

나의 시행착오 중에 상당히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게 이놈이다.

“아니야! 진짜 분위기가 묘했다니까.”

“그게 진짜라고 하더라도 둘이 알아서 할 일이니 신경꺼.”

“짜증 나. 요즘은 호세도 아기 본다고 안 놀아주는데 만약에 너희 둘 다 연애하게 되면 이제 나는 혼자 뭐하냐.”

“다미안은 혼자잖아. 같이 놀아.”

“제길, 다미안도 요즘 회계 업무 보는 직원이랑 데이트하는 거 몰랐어?”

봄이 찾아온 지 꽤 됐지만,

진정한 봄이 오저당에 온 것 같았다.

하긴 호세와 제수씨가 결혼한 이후에 꽤 많은 커플이 탄생했다.

그중에서 결혼까지 도달한 직원만 합쳐도 벌써 네 커플이나 될 정도였다.

이 주변에서는 만날 수 있는 이들이 한정적이고 혈기 왕성한 나이인 탓에 어쩔 수 없었다.

“친구야. 너도 어서 짝을 찾으렴. 이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운지 몰랐다.”

“그런 말은 사귀기 시작한 이후에 해. 아직 썸에 불과하잖아.”

“그렇기는 하지.”

성급하게 굴 생각은 없었다.

RJ의 조언대로라면 연우는 성급하게 구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뭘 하나 하더라도 신중한 편이라니 천천히 다가갈 생각이었다.

“나는 집에 먼저 가 있을 테니까 일 마무리하고 와.”

그길로 나는 집으로 향했다.

오늘 이렇게 모이는 이유는 올 초에 찍은 굿밤 광고를 함께 보기 위해서였다.

RJ가 찍은 광고가 드디어 오늘 방송을 탈 예정이었다.

지상파와 종편에서 2달 동안 진행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만 40억쯤은 잡고 있었다.

많게는 회당 천오백만 원이 넘어가니 생각보다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깝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이제 곧 여름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여름을 맞이하는 굿밤 맥주인데 광고까지 하니 그만큼 매출이 오를 것이라 예상되었다.

올해 목표는 맥주 공장을 풀 가동할 정도의 판매량을 찍는 것이었다.

현재 가동률은 대충 60%쯤 되려나.

그래도 올 초에 비하면 상당히 많이 늘어난 수치다.

요즘은 뚱캔 기준으로 매달 300만 캔 정도를 생산해서 출고하고 있는 중이다.

국내만으로는 그 정도 수량을 다 소화 가능한 것은 아니고 수출량이 생각보다 많았다.

간단하게 집을 청소하며 기다리고 있자 머지않아서 하나둘 초인종을 눌렀다.

당연히 오늘의 주인공인 RJ와 연우도 왔고 호세 가족까지 합치니 거의 십여 명이나 함께했다.

오저당에서 만든 첫 광고인 탓일까.

여기 있는 사람들은 다들 완성된 CF를 보기는 했지만, 공중파를 탄다는 사실에 설레는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아··· 시간이 너무 안 간다. 초침이 저렇게 느리게 가는 건지 몰랐어.”

“군대 때도 그랬어.”

“쌉인정. 이거 다음이 우리 차례겠지?”

아마도 그럴 것 같다며 수호의 질문에 대답해주자 모두의 시선이 TV로 쏠렸다.

그리고 머지않아 향이가 TV 앞으로 다가서며 외쳤다.

[드디어 광고 시작하나 봐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