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술 빚어 재벌 되렵니다-237화 (237/254)

나날이 새로웠다 (3)

광고의 분위기는 차분했다.

기존의 맥주 광고에서 청량함을 내세워 여름 분위기를 강조한 것과는 달랐다.

여름에 올리는 맥주의 판매량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지.

하지만 굿밤은 조금 다르게 접근했다.

다른 어떤 것을 첨가하지 않아도 굿밤 하나만으로 분위기를 낼 수 있다는 메시지를 광고에 담고 싶었다.

차별성이 곧 굿밤의 아이덴디티다.

기존의 맥주 시장을 대변하던 라거가 아닌 에일이란 점도 매우 중요했다.

그래서 전체적인 톤도 분위기 있는 루프톱 바처럼 설정했다.

[여러분 굿밤하세요.]

그리고 광고의 마지막이 될 무렵.

RJ가 바에 앉아 부드러운 목소리로 작별 인사를 하며 길지 않은 광고가 끝났다.

찍는데 들어간 돈과 시간을 생각하면 허무하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으··· 아직도 닭살 돋는 것 같아. 저거 너무 느끼해 보이지 않아?”

RJ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좌절하는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정말 싫어서 그런다기 보다는 민망해서인 것 같았다.

“전혀요. 지금 광고주 앞에서 모델분이 광고에 대해 험담하시려는 거 아니죠?”

“어이쿠! 여기 같이 계신 줄 몰랐네요.”

“우리 모델님 덕분에 광고가 잘 나와서 정말 흡족합니다.”

RJ와 내가 서로 농담을 주고받자 다들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는 사이에 수호와 호세는 잔에 굿밤을 가득 채웠다.

둘은 잔을 나눠주며 오저당의 광고가 처음으로 지상파를 탄 역사적인 날이니 건배부터 하자고 권유했다.

“그동안 고생 많았어요. 오저당이 가야 할 길이 머니 앞으로도 많이 도와줘요.”

“오저당 구호로 가시죠.”

“그게 뭐예요?”

호세의 말을 들은 연우는 오저당의 구호가 뭐냐고 내게 슬쩍 물었다.

이곳에서 그리 오래 머물지 않았기에 아직 보지 못했던 탓이다.

“제가 ‘오졌다!’라고 외치면 타이밍 맞춰서 ‘오저당’이라고 외치면 돼요. 우리 너튜브 채널명인데 건배할 때 쓰거든요.”

“아하! 그렇군요.”

“다들 잔 채웠으면 짠하죠. 오졌다!”

“오저당!”

동시에 십여 명이 외쳐서 상당히 큰 소리가 났으나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한적한 곳에 집을 지은 탓에 주변에 소음 문제로 민폐를 끼칠 일은 없었다.

그만큼 불편한 일도 많았으니 모든 일에는 장단점이 분명히 있는 것 같았다.

다행히 아직은 유일한 이웃인 RJ와 연우 모두 지금 집에 꽤 만족하고 있었다.

“확실히 라니 네가 말한 대로 매트한 소재의 라벨을 쓰니 광고에서도 제법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많이 나더라.”

“내가 굿밤 라벨에 얼마나 많이 공을 들였는지 알면 깜짝 놀랄 거다.”

“이야기 안 해도 충분히 예상 가능해.”

이 녀석이 다른 것에 대해서는 헐렁해 보일 때가 많으나 디자인만은 상당히 깐깐한 기준을 세워서 일을 하는 편이다.

예전에 마이크로 양조장의 제품을 외주 돌렸을 때도 그 때문에 꽤 고생했었다.

적당히 하는 걸 모르는 탓이다.

하지만 대화는 거기서 끊겼다.

다들 광고를 본 건지 문자와 카톡으로 여기저기서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삼촌과 유명석 삼척 시장.

그리고 현송을 비롯해 거래처 사람들.

심지어 한동안 연락이 끊겼던 이들까지 연락해왔다.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다른 어떤 누구보다 직원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광고를 본 것 같았다.

그리고 그중에는 굿밤 브루어리를 오저당에 넘긴 이선우 차장도 있었다.

그가 보낸 메시지를 본 나는 곧장 전화를 걸었다.

“어디에 계십니까?”

[이사님들과 직원 몇 명이랑 같이 태백에서 한잔하고 있습니다.]

태백에서 출퇴근하는 직원들끼리 따로 뭉쳐서 술을 마시고 있는 것 같았다.

“오늘은 비싸고 맛있는 거 많이 사달라고 하십쇼.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하하! 감사합니다. 그때 찾아오셔서 인수 제안을 해주신 덕분에 빚도 다 청산할 수 있었어요.]

이선우 차장은 굿밤의 성공을 아쉽다고 생각하진 않고 있었다. 오히려 자신의 분신 같은 굿밤이 잘 나가는 것을 반겼다.

직접 경영을 해봤기에 그때와 지금의 차이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참고로 이선우 차장이 가지고 있던 꽤 많은 빚은 이미 다 사라지고 없었다.

몇억이나 되던 거액이니 월급만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었고 성과급 명목으로 많이 챙겨준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차장님! 우리 함께 쭉 같이 가요.”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아직 갈 길이 멀어요.”

“굿밤을 역사에 남을 베스트셀러로 만들어봅시다.”

이선우 차장과 통화하는 걸 들은 호세와 라니 등이 내 옆에 달라붙어서 큰 소리로 외쳤다. 귀청이 찢어지는 느낌이었으나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그만큼 오저당의 조직력은 끈끈했다.

이곳이 첫 직장인 이들이 상당히 많았고 모든 것을 걸고 일하는 이들도 많다.

더구나 업계 1위에 대한 욕심이 나만의 것은 아니었다.

자신의 가치를 올리는 방법은 많다.

자기 계발에 힘쓰는 것도 방법이나 소속된 회사의 성장이 개인에게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한 덕분이다.

초창기에는 오저당이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이들이 많았으나 이제는 모르는 사람을 찾는 게 더 힘들 정도다.

삼척과 태백에서는 오저당에서 일한다는 말만 해도 대접이 달라진다.

삼척이란 지역을 넘어 강원도를 대표하는 기업 중의 한 곳이 된 덕분이다.

그만큼 직원들의 자부심도 커지고 있었다.

“벌써 너튜브랑 팬클럽 쪽에서 반응이 하나둘 올라오고 있어요.”

유성이 자신의 스마트폰을 내밀어서 내게 보여줬다. 녀석의 띄운 화면은 오저당의 너튜브 채널이었다.

광고가 시작되는 시간에 맞춰서 예약 등록을 걸어놨는데 광고 외에 현장에서 찍은 메이킹 필름도 동시에 올라갔다.

### : RJ 단독 광고라니 이런 케이스는 처음 있는 일이잖아?

ㄴ### : 정말 해체하는 건가.

ㄴ### : 이게 진짜일 리 없어.

### : 안 그래도 굿밤은 내 최애 맥주인데 RJ가 광고까지 하면 참을 수 없지. 나 곧장 편의점으로 간다.

ㄴ### : 요즘은 굿밤이 대세!

ㄴ### : 나도 다른 거 이제 못 마실 것 같아. 뭔가 차원이 다른 맛이라고.

### : 그런데 RJ는 왜 감저가 아니라 굿밤 광고를 찍은 거야?

ㄴ### : 감저는 광고 안 해도 잘 팔려.

ㄴ### : 그게 아니라 생산량이 아직 부족해. 여전히 품절인 곳들이 많더라.

### : 라거 공화국에서 탈피해서 에일이 앞으로 대세가 됐으면 좋겠다.

ㄴ### : 굿밤도 거의 라거에 흡사해서 진짜 에일이라고 보긴 어렵지.

ㄴ### : 저번에 오저당 대표가 인터뷰한 거 보니 스카우트랑 IPA 쪽에도 관심이 많아 보이더라. 벌써 기대됨.

ㄴ### : 스카우트가 아니라 스타우트!

댓글을 읽어줄 필요는 없었다.

다들 각자의 스마트폰을 꺼내서 댓글을 읽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무래도 첫 광고였기에 반응이 궁금했던 것 같았다.

대체로 광고에 대한 반응은 무난한 수준이었다.

오히려 RJ와 오저당의 관계.

그리고 앞으로 그룹 활동은 어떻게 되는 건지에 대한 궁금증이 더 많아 보였다.

벌써 몇 개월이 지났는데 RJ와 그의 동료들이 공식적으로 함께 모여서 활동하는 일은 없었다.

그렇다고 불화가 있지는 않았다.

실제로 RJ의 집에서 멤버 전체가 모였던 것도 몇 번이나 보았다. 조만간 멤버의 결혼식에서 함께 축가도 부를 예정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 나와 라니도 초대됐다.

RJ가 놀러 온 멤버들에게 나를 소개해준 덕분에 제법 친해졌고 그들 중의 일부는 RJ처럼 자신만의 술을 원하는 눈치였다.

물론, 원한다고 되는 일은 아니다.

현재 오저당에서 준비 중인 신제품 중에 멤버들에게 어울릴만한 게 없었다.

더구나 RJ가 선점한 분야라 서로 경쟁을 하길 꺼리는 분위기도 있었다.

“간단하게 안주 만들어왔으니 드시면서 마시세요.”

그때 주방에서 진희 씨가 나왔다.

그녀의 손에는 큼직한 냄비가 쥐어져 있었기에 호세가 냉큼 달려가 받았다.

냄새만 맡아도 침이 고일 것 같은 참치김치찌개였다.

호세와 제수씨의 딸인 지아는 이모가 잠시 맡아서 봐주고 계셨다. 오늘 하루는 마음 편히 먹고 쉬라는 배려였다.

지아는 마을에서 유일한 아기라 모든 이들의 사랑을 받는 중이다.

거기에는 제수씨의 싹싹한 성격도 한몫을 차지하고 있었다. 어르신들의 관심을 기분 나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국내에 친척이라고는 전혀 없는 아이한테 수많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생긴 기분이라고 좋아했다.

“제수씨도 인제 그만 와서 앉아요. 이런 날에는 쉬어야죠.”

“모유 수유가 어서 끝나야 술도 권하고 그럴 텐데··· 언제까지 해야 하는 거야?”

“적어도 1년 이상은 하려고요. 의사 선생님은 2년까지 권하시더라고요.”

“어휴, 아직 멀었네.”

돌이 되려면 아직 멀었다.

이제 겨우 진희 씨의 딸은 5개월이 조금 넘은 상태다. 결혼 전에 술을 꽤 즐겨 마시던 직원이라 꽤 힘들 것 같았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며 아무렇지 않아 했다.

“다들 어서 빨리 결혼하셔서 우리 지아 친구들도 만들어주고 그러셔야죠. 설마 혼자 외롭게 자라게 하실 거는 아니죠?”

“그러고 싶은데 마음처럼 쉽나요.”

“맞아요. 인연을 찾는 게 쉽지 않아요.”

“다들 노력해야겠네.”

RJ의 말에 연우는 흘겨보며 남 말하지 말고 본인이나 잘하라고 지적했다.

여기서 가장 나이가 많은 게 바로 그녀의 사촌 오빠인 RJ였다.

“나도 나름 노력하고 있는 중이야.”

그러자 RJ는 애매한 미소를 지으며 묘한 어감의 대답을 했다. 그때 주방에서 술을 꺼내오던 라니의 모습이 보였다.

야! 여기서 얼굴을 붉히면 안 되지.

다행히 그 표정은 정말 순식간에 사라져서 나밖에 못 본 것 같았다. 하지만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속일 수 없거든.

아니, 정확하게는 향이 때문이다.

녀석이 사생활을 무시하고 RJ의 집을 들락거린 거는 아니다. 우연히 새벽에 둘이 산책하는 것을 발견했단다.

오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손을 잡고 팔짱을 끼고 걷는 게 보통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은 아니잖아.

아무리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어도 내가 아는 라니는 그러지 않았다.

그런데도 아까 수호가 의심할 때 아닐 거라며 잡아뗀 이유는 비밀을 지켜주기 위해서였다. 언젠가 더 깊은 사이가 되면 알아서 밝힐 테니 기다려주기로 했다.

더구나 지켜보는 게 꽤 꿀잼이었다.

[크흐흐, 두 사람 모두 귀엽네요.]

향이는 재미있다는 듯이 라니와 RJ 사이를 오가며 표정을 살피느라 바빴다.

그건 나도 크게 다르지 않았으나 표정 관리하는 게 쉽진 않았다.

한동안 술잔을 주고받으며 웃고 떠드는 사이에 연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챙겼다. 아직 날이 어두워지면 추워서 입는 건가 싶었는데 현관 쪽으로 향했다.

그걸 본 RJ가 연우를 불렀다.

“연우야, 너 어디 가려고?”

“밖에 나가서 바람 좀 쐬려고요.”

“어두운 데 혼자 가려고? 안 무서워?”

집 주변에 태양광으로 작동하는 가로등을 설치했으나 조금만 벗어나도 깜깜해지는 곳이 우리 집이었다.

그와 동시에 RJ가 눈짓을 보내왔다.

어서 안 일어나고 뭐 하냐는 재촉이었다.

눈에 뻔히 보이는 배려라 조금 머쓱한 느낌이었으나 마다하진 않았다.

“저도 술이 조금 올라와서 바람 좀 쐬다 올게요.”

물론, 핑계에 불과했다.

그러자 다들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았다.

아직 정식으로 사귀는 관계는 아니라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모르는 척을 하기 위해 애를 쓰는 게 눈에 보였다.

물론, 연우도 마다하진 않았다.

겉옷을 챙겨서 나온 우리는 잠시 아무런 말 없이 집 앞의 마당에서 걷었다.

그러던 중에 나는 잠시 멈춰서 하늘을 가리켰다.

“오늘따라 별이 참 많네요.”

“어멋! 그러게요. 오빠네 집에 머무는 동안에 이렇게 많은 별은 처음 봐요.”

“운이 좋은 거예요. 이런 날이 흔하진 않거든요.”

별이 쏟아질 것 같은 날이었다.

이게 말로는 표현이 어려울 정도다.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는 전혀 상상하기 어려운 수준의 별이 수놓고 있었다.

누군가 설탕 한 줌을 하늘에 흩뿌려 놓은 것 같았다.

우리는 잠시 그렇게 멈춰서서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눴다.

대화 주제는 꽤 다양한 편이었다.

음식 이야기도 있었고 서로의 취향을 알아보는 질문도 많았다.

“이제 슬슬 들어갈까요? 아직은 밤공기가 너무 차갑네요.”

“···그럴까요.”

“연우 씨도 다음 주에 결혼식 가죠?”

“네! RJ오빠랑 워낙 오랜 시간 동안 같이 활동해서 자주 봤거든요.”

“그날 제가 에스코트해도 될까요?”

특별히 거창한 뭔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결혼식장에 함께 가서 옆자리에 앉아도 되냐는 질문에 가까웠다.

“동행한다는 의미만은 아닌 거죠?”

“그보다는 연우 씨에게 조금 더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심이죠.”

다행히 연우는 내가 뭘 원하는 건지 어렵지 않게 알아챘다. 남자 친구의 자격으로 함께하고 싶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곧장 대답이 들리진 않았다.

혹시라도 싫다고 하는 게 아닐까.

혼자서 쿵쾅거리는 심장을 탓하며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자 연우는 드디어 내가 기다리던 대답을 해주었다.

“네,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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