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술 빚어 재벌 되렵니다-243화 (243/254)

손을 뻗으면 닿을 만한데 (1)

M&A는 성공적이었다.

피레시아는 어렵지 않게 OGD 그룹의 품으로 들어왔다. 최종적으로 우리가 확보한 지분은 45% 남짓이었다.

에드윈 베르디언의 지분 32%를 모두 흡수하는 데 성공한 덕분이었다.

그를 설득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이미 모든 주주가 돌아섰고 어떻게든 쫓겨날 것이 거의 분명한 상황이었다.

더구나 배임 등의 법적인 문제도 그의 발목을 잡았다.

주식은 여전히 바닥을 치고 있었고 반등할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차라리 프리미엄을 붙여서 우리에게 넘기는 게 이익이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예산에서 200억이나 초과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게 큰 문제가 되진 않았다.

M&A를 완료함과 동시에 피레시아의 주가는 다시 치솟기 시작했다.

OGD란 호재가 있었기 때문이다.

[OGD 스페인 진출, 토닉 워터 브랜드 피레시아 인수]

국내외에 그 소식은 널리 퍼졌다.

오저당이 알코올이 들어가지 않는 제품을 파는 피레시아를 인수할 거라 예상했던 이들은 전혀 없었다.

그 덕분에 거의 50% 가까이 떨어졌던 주가는 생각보다 훨씬 많이 올라갔다.

대충 어깨 정도는 올라갈 거라 예상했던 주가는 멈추지 않고 계속 치솟았다.

그 덕분에 오너 리스크가 생기기 전에 삼천억이었던 시가총액은 인수 공개 한 달 만에 거의 사천억 언저리까지 찍었다.

우리가 본격적인 매집에 들어갔던 시기와 비교하면 두 배가 된 것이다.

당연히 주주들은 환호했다.

오너 리스크 상황이 조금만 더 길어졌어도 아마 한강 같은 곳에 갔겠지.

심지어 OGD 그룹 아래 들어온 이후에 피레시아의 수출량은 오히려 늘어났다.

끌루소와 바크모 그리고 F&B까지.

유통과 관련된 협력 업체는 물론이고 돈 레오넬이 들어가는 나라는 대부분 피레시아 토닉 워터의 소비량이 늘었다.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장성근 선배와 M&A 부서는 피레시아를 시작으로 알짜배기 증류소를 하나둘 본격적으로 인수합병하기 시작했다.

오저당의 품 안에 매년 한두 곳씩 다양한 증류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프랑스 와이너리와 독일의 맥주 회사부터 심지어 버뮤다의 럼 증류소도 있었다.

하지만 가장 큰 딜은 따로 있었다.

그건 바로 무뇨스가 염원하던 리오하 와이너리 삼대장을 통합하는 것이었다.

거길 작업하며 오저당에서 쓴 돈만 5천억이 넘어갈 정도였는데 과정은 험난했으나 결과만 보자면 대성공이었다.

그렇게 5년이란 시간이 지나갔다.

*

나란히 지어진 세 채의 집.

마당에 깔린 초록 잔디는 싱그러웠다.

어느덧 한낮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힐 시기가 됐는데 평소처럼 그곳에는 여러 아이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나이대는 상당히 다양했다.

많게는 일곱 살부터 적게는 두어 살까지.

아장거리며 걷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질 정도였다.

“자! 다들 나를 따라와.”

그중에서 유독 키가 큰 여자아이.

지아는 이 동네에서 골목 대장과 같은 존재이자 모두의 언니였고 누나였다.

아직은 어리광 피울 나이인데도 지아는 항상 동생들부터 챙겼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외모였다.

아무리 시골 마을에 산다고 하더라도 피부톤이 생각보다 가무잡잡한 편이었다.

그렇다고 외국에서 온 것 같지는 않았고 동양인 느낌도 있는 것이 혼혈 같았다.

하지만 녀석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훨씬 더 어린아이 중에 친자매처럼 닮은 아이도 지아의 외모와 흡사했다.

그러나 아이들은 그런 피부색에 대해서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강지아, 위험하니까 선생님이 너무 멀리 가지 말라고 했잖아.”

“네! 알겠어요.”

물론, 아이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스스로 선생님이라 칭한 비교적 젊은 여성이 매처럼 날카로운 시선으로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살펴보고 있었다.

다른 것은 염려되지 않았지만,

날이 풀려서 뱀이 나오는 시기가 됐다.

그래서 마당에 나와서 놀 때는 항상 주변부터 살폈는데 이게 언제 슬그머니 마당으로 기어들어 올지 모르는 일이다.

그녀는 지금 일하고 있는 직장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원래 일하던 어린이집과 비교하면 하늘과 땅 같은 차이가 있었다.

왜 다들 대기업의 사내 어린이집에 취직하려는 건지 이해가 될 정도였다.

고용된 인력도 충분해서 육체적으로 힘든 부분도 없었고 무엇보다 박봉이던 예전과 달리 연봉도 상당히 높았다.

그렇다고 아이를 맡긴 직원들이 스트레스를 주는 것도 아니었다.

임원급부터 사원급의 아이들이 섞여 있는데 직급에 따른 어떤 차별도 없었다.

아이들끼리 다툼이 있어도 어른들의 감정싸움으로 번지는 일조차 없었다.

그녀에게 주어진 지시는 오직 한 가지가 전부였다.

‘아이는 아이답게’

조기 교육 뭐 그런 것도 없었다.

그저 같이 놀아주고 기초적인 한글 교육 같은 것들만 챙겨주면 되는 수준이었다.

매일 이렇게 뛰어노니 항상 흙먼지를 뒤집어썼으나 다들 건강했다.

하지만 여기 있는 아이들이 전부는 아니었다. 그녀가 일하는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들만 수십 명에 달했다.

오늘은 그중에서 일부 아이들만 잔디가 깔린 이곳으로 인솔해서 온 것이었다.

“흐아앙···!”

그때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재빨리 고개를 돌리니 네 살쯤 되는 한 아이가 달리다가 넘어져 울먹거렸다.

당장 달려가서 일으켜주려고 했으나 그전에 누군가 그녀를 불렀다.

“오주영 선생님, 안 가셔도 돼요.”

고개를 돌리니 오저당의 라니 이사님이 그러지 않아도 된다며 만류했다.

그녀는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이었다.

한때 글로벌 아이돌로 활약하며 모든 이들이 선망하던 RJ의 아내이기도 했다.

일명, 성공한 덕후랄까.

그녀는 3년 전에 RJ와 결혼하며 세상의 모든 이목을 집중시켰고 현재는 출산을 몇 개월 앞둔 임산부이기도 했다.

“그래도 회장님 아드님이신데요.”

“아직 출근하신 지 얼마 안 되셔서 모르시나 본데 여긴 그런 거 안 따져요.”

“알고는 있지만···.”

“이곳에서는 부모의 직급 같은 꼬리표는 떼고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주도찬과 이연우의 아들 주영민입니다.”

그러는 사이에 영민이는 흙이 묻은 무릎을 털며 스스로 일어났다.

다른 아이들도 그저 옆에서 지켜볼 뿐이지 유난을 떨지는 않았다.

스스로 추스를 시간을 준 뒤.

영민이가 한 발짝 떼자 아이들은 지아를 따라 다시 우르르 뛰어다녔다.

딱히 뭔가 특별한 게 있는 건 아니었다.

비싸고 고급진 장난감 따위는 없었다.

고작 작은 사이즈의 공 하나면 충분했다.

그것 하나만 줘도 아이들은 반나절 정도는 즐겁게 뛰어놀았다.

“차 끓여 왔으니 한 잔씩 하세요.”

그때 가장 좌측 집에서 여성이 나왔다.

그곳은 오저당의 유수호 이사가 사는 곳인데 그의 와이프인 민효인이었다.

참고로 그녀는 오주영 선생이 소속된 어린이집의 원장이기도 했다.

두 사람의 만남은 자연스러웠다.

오저당에 아이들이 태어날 무렵.

어린이집 교사로 스카우트되어 온 그녀가 매일 여길 찾아오니 자주 볼 수밖에 없었다.

물론, 어린이집 건물은 따로 있다.

하지만 여기만큼 뛰어놀기 좋은 곳이 없다는 이유로 이곳의 잔디 마당은 아이들에게 항상 오픈된 공간이었다.

오저당이 자리 잡은 이후에 오풍리는 방문객과 화물차의 통행량이 상당했다.

많은 차들이 다니는 마을 주변보다 안전한 곳에서 뛰어놀아야 했다.

“잘 마시겠습니다.”

“흐음··· 향이 좋네. 이건 무슨 차야?”

“자세히는 모르고 중국에 있는 거래처에서 보낸 보이차라고 들었어요.”

민효인은 라니보다 네 살 어렸다.

이제 막 서른을 넘긴 나이라 이곳에 사는 세 명의 안주인 중에서는 가장 막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민효인은 항상 두 언니를 잘 챙기는 편이었다.

“입덧은 조금 괜찮아졌어요?”

“예전보단 덜해졌어. 남들은 15주 정도면 끝난다는데 나는 왜 이러는 거지.”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언제든 말하세요.”

“쓸데없이 바쁜 우리 남편 대신 동생이 고생 많네.”

라니의 말에 민효인은 피식 웃었다.

RJ가 공처가인 것은 꽤 유명했다.

그리고 지금 그가 집에 없는 이유는 모처럼 활동을 시작한 탓이다.

무려 5년 만에 재결합을 한 이유가 라니 덕분이라는 것은 전 국민이 알고 있다.

RJ의 인터뷰에서 직접 밝힌 내용이다.

여전히 최애 아이돌인 남편이 활동하는 것을 보며 태교하고 싶다고 했다던가.

그 덕분에 긴 시간 기다린 팬덤은 일곱 멤버가 다시 모이는 기적을 경험했다.

현재는 유럽 지역에서 데뷔 20주년 기념 월드 투어를 하고 있는데 적어도 두어 달 이내에 귀국할 예정이었다.

“조금 있으면 점심시간인데 연우 언니 가게에 가서 드실래요?”

“요즘 거기 찾아오는 사람 많아서 점심시간은 가기 조금 애매하더라.”

“맛집으로 소문나서 그렇죠.”

오저당의 사모님이자 라니의 절친이 된 연우는 태백에 작은 식당을 열었다.

원래 서울에 열려고 했으나 결혼 때문에 장소를 바꿀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장사가 잘되진 않았다.

프랑스에서 배운 요리에 한식을 덧입혀 만드는 퓨전 요리를 팔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요즘은 입소문이 나서 멀리서 찾아오는 손님이 꽤 많이 있었다.

“처음에는 프랑스 요리를 판다고 해서 걱정했는데 쓸데없는 일이었어.”

“언니네 가게가 가성비 엄청 좋잖아요. 맛도 인서울급이고요.”

“그렇기는 하지.”

돈을 보고 일하는 게 아니라 음식 가격은 평범한 가게들보다 저렴하게 잡아놨다.

그런데 음식의 퀄리티는 상당한 편이니 사람들이 안 찾아가는 게 이상하지.

그래서 두 여인도 음식을 하기 귀찮은 날에는 거기에 가서 식사할 정도였다.

왕복으로 한 시간이 걸리나 나가는 길에 어차피 마트에서 장까지 봐오면 된다.

“오늘은 내가 스파게티를 해줄게.”

“언니가 직접이요?”

“설마 내 솜씨 못 믿는 거야?”

“그럴 리가요. 저번에 해주셨을 때 얼마나 맛있게 먹었는데요. 입덧 때문에 고생하실 것 같아서 하는 말이죠.”

“내가 먹고 싶어서 그래.”

라니는 한국의 다른 산모들과 달리 떡볶이 같은 게 아니라 조금 특이한 것을 많이 먹고 싶어 했다. 예를 들면 수제 햄버거나 맥앤치즈 뭐 그런 것들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높은 빈도를 차지하는 게 바로 토마토로 만든 스파게티였다.

한국에 온 이후에 거의 입에도 대지 않던 건데 스스로 생각해도 이상할 정도였다.

두 사람은 집 안으로 들어가 식사 준비를 했다. 마당에서 노는 아이들도 있으나 막상 만드는 거는 양이 많지 않았다.

어린이집에 소속된 영양사가 식단을 짜서 제공하기에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스파게티 면을 끓일 물을 올린 뒤.

잠시 기다리는 동안 두 사람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출장을 떠난 이들로 주제가 바뀌었다.

“언니도 이번에 스위스로 출장 갔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네요.”

“그러게 작년에 이사로 승진하고 올해가 처음 데뷔하는 자리인데 이렇게 됐네.”

“뭐··· 내년에 가시면 되죠.”

“그래야지.”

라니는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이번 회의는 무척 기대하고 있던 자리였기 때문이었다.

오저당은 매년 5월이 되면 스위스에서 그룹 전체 회의 겸 워크숍을 연다.

거기에 초대되는 이들은 각국의 법인 대표와 이사진으로 한정되기 때문에 라니는 아직 그곳에 가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자신이 그룹의 이사진으로 승진할 때 오저당의 이사로 승진한 호세도 이번 회의에 참석하러 갔다.

따지고 보면 초창기 멤버 중에 그녀만 빠진 것이었다.

아직 만삭은 아니라 갈 수는 있으나 혹시 모르기에 모험을 할 수는 없었다.

어느덧 서른 중반이라 어린 나이도 아니고 이번이 초산인 터라 불안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만류하기 전에 스스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오저당이 곧 망할 회사도 아니고 무리할 이유가 없었다.

“내가 이번에 출산만 끝내면 올해부터 피임 빡시게 할 거야.”

“RJ 오빠는 셋째까지 생각하던데요.”

“죽여버릴까?”

라니는 살벌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번에 임신을 해봤더니 다시 또 경험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반대로 민효인은 그런 그녀가 부러웠다.

아기를 간절하게 원하는 그녀에게는 안타깝게 아직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이제 결혼 2년차이니 급할 거는 없으나 가능하면 언니들과 비슷한 나이대의 아이를 키우고 싶었다.

그러는 사이에 물이 끓어서 시계를 잠시 보니 어느덧 정오 무렵이 되었다.

잠시 시간 계산을 해본 라니는 우울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몇 시간 후면 스위스에 도착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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