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술 빚어 재벌 되렵니다-246화 (246/254)

손을 뻗으면 닿을 만한데 (4)

세상에는 여러 형태의 광고가 있다.

그리고 각각의 비용은 천차만별이다.

인터넷에 올리는 광고 단가는 몇십 원부터 시작하는 반면에 압도적으로 비싼 광고도 세상에 존재한다.

초당 광고료 2억 6,000만 원.

30초에 78억이나 들어가는 광고.

세상에서 가장 비싸기로 유명한 것이 바로 미국 NFL 챔피언 결정전 슈퍼볼 광고다.

이게 비싸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만큼의 효과도 분명히 있는 광고다.

슈퍼볼 시청자는 전 세계 1억 명이란 통계가 있는데 30초의 광고로 전파되는 제품의 이미지는 상당하다.

이틀 뒤 워크숍이 열릴 무렵.

나는 세 명의 본부장과 황동선 사장이 모인 자리에서 내 생각을 밝혔다.

여기에 황동선 사장이 포함된 이유는 한국에 있는 본사는 본부장들 아래 놓이지 않은 유일한 곳이기 때문이다.

“슈퍼볼 광고를 하고 싶으시다고요? 상당히 광고 단가가 높을 텐데요.”

“필요성이 느껴지지 않아서 안 했던 거지 우리가 돈이 없던 것은 아니잖아요.”

“좋죠! 당장 준비해서 진행하겠습니다.”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슈미트였다.

거친 몸싸움이 펼쳐지는 NFL에 열광하는 미국인 중의 한 명이 그였다.

그런 곳에 오저당의 광고가 들어간다는 것은 꽤 의미 깊은 일이다.

뫼리스는 그 모습을 보며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며칠 전에 축구 구단 스폰서쉽을 이야기할 때 그도 그랬다.

참고로 요즘 유럽 쪽 직원들은 어떤 구단을 선정할지 열렬한 토론 중이다.

스페인과 이탈리아 그리고 프랑스.

현재는 이렇게 세 개의 리그가 거론되고 있었는데 가장 인기가 많은 잉글랜드의 PL은 아무도 밀어주지 않고 있었다.

스코틀랜드에 글렌 툴릭이 있으나 영국에는 오저당이 들어가 있지 않았고 어떻게든 자국에 유치하고 싶어 했다.

자국 리그에 대한 자부심이 생각보다 강해서 쉽게 결정 나진 않을 것 같았다.

“일단 광고를 어떻게 만들지 기획하는 것부터 하는 게 우선이죠.”

황동선 사장은 광고 회사 출신답게 슈미트에게 차분하게 조언을 해줬다.

하지만 그 역시 슈퍼볼이란 단어에 흥분한 것 같아 보였다.

광고 기획자라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1억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만든 광고를 보여줄 기회는 흔하지 않다.

마음 같아서는 자신이 기획하고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하지만 직접 나서지는 않았다.

광고에서 손을 뗀 지도 꽤 되었고,

무엇보다 미국에서 송출할 광고다.

나라마다 광고 스타일은 천차만별이다.

지금은 어떤지 몰라도 내가 미국에 살 때는 유명한 연예인이 광고에 나오는 일은 생각보다 흔하지 않았다.

그쪽 세계에도 시대에 따른 트렌드가 있기에 현지 회사에 맡겨야 한다.

“유럽은 축구 구단과 스폰서쉽을 맺고 미국은 슈퍼볼 광고를 하는데 아시아와 한국은 그냥 넘어가실 거는 아니죠?”

그쯤에서 홍진구 본부장이 슬쩍 끼어들어 자신의 몫을 챙기려고 했다.

같이 언급된 황동선 사장도 한껏 기대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당연히 아시아와 한국도 추가로 마케팅 비용 편성해줄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감사합니다.”

“두 분은 어떤 걸 해보고 싶으신가요?”

아마 원하는 게 있을 것이다.

황동선 사장 같은 경우에는 어느 정도 예상이 되었다. 아마 한국에서 운영되는 너튜브 채널의 강화를 말하겠지.

그런 내 예상은 들어맞았다.

그는 예전에 내게 해보고 싶다며 보여줬던 기획서 이야기를 다시 꺼냈다.

황동선 사장이 원하는 것은 일종의 예능 프로그램과 비슷했다.

갑자기 무슨 예능이냐고?

이미 ‘오졌다! 오저당’ 채널의 규모는 단순히 우리 술을 홍보하는 용도의 범위를 넘어선 지 꽤 오래됐다.

현재 구독자만 거의 500만 명이다.

그중에서 한국 구독자는 150만 명이고 나머지는 다른 나라 사람들이었다.

100만 구독자를 찍은 지 5년 이상이나 되었으니 놀랄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요즘은 자체 제작 콘텐츠를 만들어서 올리는 중인데 우주와 유성은 이미 여러 프로젝트를 히트시켰다.

대표적인 예가 매주 한 차례씩 연예인을 초대해서 술자리를 갖는 것이었다.

이게 상당히 조회수가 잘 나왔다.

RJ가 출연하고 인맥을 활용해서 진행된 탓에 팬덤의 지원도 확실했었다.

심지어 그렇게 만들어진 영상은 국내외의 OTT에도 런칭했을 정도였다.

“이러다가 아예 종편 채널을 만들자고 하시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요.”

“못 할 것도 없죠.”

“그냥 너튜브 채널로 만족하시죠. 그래서 이번에는 해외로 나가서 촬영한다고요?”

“네, 출연진이 해외에서 전통 음식과 술을 먹고 마시며 여행하는 컨셉입니다. 당연히 OGD 그룹에 소속된 곳들 위주로 다닐 예정이고요.”

나는 흔쾌히 그러라고 승인해줬다.

제작비도 미국이나 유럽 못지않게 빵빵하게 넣어주겠다고 하니 황동선 사장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제품 광고에 대해서는 따로 언급하지 않았는데 유럽과 미국에서 진행될 광고가 모두 한국 술이 메인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거기까지 받아 가는 것은 욕심이 과하기는 했다.

“촬영에 필요한 게 있으시면 언제든 말씀하세요. 음식과 술이 중요한 기획인데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추천드립니다.”

“유럽보다는 가까운 아시아부터 가시죠. 미식 여행하면 방콕이잖아요.”

“아메리카 대륙 횡단은 어떻습니까? 로드 트립만의 매력이 있다니까요.”

황동선 사장의 제안은 다른 본부장들의 흥미를 끌었는지 저마다 자신이 맡은 곳을 어필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너튜브의 조회수가 만들어내는 효과는 다들 여러 번 경험해봤다.

“홍진구 본부장은 시간을 더 드릴까요?”

아시아 지역을 담당하는 홍진구는 아직 원하는 것을 내게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다는 듯이 그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내게 말해주었다.

이미 생각할 시간이 제법 있었다.

며칠 전에 뫼리스와 나눈 대화는 본부장 모두에게 전달됐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몰랐던 것은 뒤늦게 결정한 슈퍼볼 광고밖에 없었다.

“아니요. 아시아 쪽에서는 TV와 병행해서 옥외 광고를 집중적으로 하겠습니다.”

“제가 도와드릴 거는 없나요?”

“요즘 가장 핫한 ‘러너’를 모델로 쓰고 싶은데 섭외에 힘써주실 수 있을까요?”

홍진구가 원하는 모델은 러너라는 5인조 남자 아이돌인데 RJ가 소속된 그룹의 뒤를 이어 글로벌 아이돌이 된 이들이다.

소속사도 같은 시즈 엔터라 어느 정도 연줄이 있는 내게 부탁한 것이다.

시즈(SEEZ) 엔테이먼트.

그곳은 오저당과 꽤 인연이 깊었다.

RJ를 시작으로 여러 아티스트와 광고를 함께 찍었고 우리 너튜브 채널을 통해 신곡 홍보를 했던 케이스도 많았다.

내가 가진 보잘것없는 연예계 인맥도 대부분 그들을 통해 형성되었다.

“이번에도 시즈 엔터 소속을 광고 모델로 쓰면 또 여러 말이 나올 텐데요.”

“하지만 현재 동남아와 중국에서 가장 잘 먹히는 모델이기도 하죠.”

“한번 이야기해볼 테니 대략적인 광고 콘티부터 작성해서 보내주세요.”

홍진구는 알겠다며 대답했다.

그를 끝으로 다들 한 가지씩 홍보에 관련된 것을 받아 갔는데 가장 중요한 내용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다미안을 바라보며 눈짓을 하자 그는 미리 출력해온 서류를 나눠줬다.

거기에는 블랙 라벨의 배분에 관련된 내용이 적혀 있었다. 어떻게 수량을 나눈 건지 기준 역시 자세히 설명해놨다.

애매모호한 기준은 분란만 만들뿐이다.

“아시아와 유럽이 600병씩이고 한국과 아메리카가 각각 900병입니다.”

본사가 있는 한국은 논외 지역이다.

나머지 세 곳이 얼마씩 나눠 갖냐가 문제였는데 아메리카가 예상을 깨고 가장 많은 물량을 받아 가게 되었다.

돈 레오넬 때문은 아니다.

단순하게 매출만 따지면 한쪽으로 쏠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년 대비 성장폭을 매우 중요한 항목으로 넣었다.

그런데도 슈미트가 많이 받아 가는 이유는 급성장한 파사데나 덕분이다.

파사데나는 최근 들어 아메리카 대륙에서 돈 레오넬 다음으로 상당히 인상적인 실적을 내기 시작했다.

“와··· 버번 위스키 판매량이 이렇게나 늘었다고요? 작년 워크숍 때와 비교하면 거의 세 배가 넘잖아요.”

“본격적으로 시장에 버번을 내놓은 지 3년이나 되었으니 이제 슬슬 성과를 낼 시기가 되긴 했죠.”

“하긴 유럽에 많이 안 알려져서 그렇지 마셔본 사람들은 파사데나 버번을 다시 찾는 일이 상당히 많더군요.”

다른 본부장들은 슈미트에게 축하 인사를 아끼지 않고 해주었다.

올해 가장 많은 물량을 받았다고 내년도 그럴 거란 보장은 아무도 할 수 없었다.

유럽은 긁지 않은 복권이라 할 수 있는 잠재력 높은 와이너리와 증류소를 다수 보유하고 있고 아시아도 만만치 않다.

요즘은 인도 시장을 뚫고 있는데 그 일만 잘 풀려도 매출이 껑충 뛰어오를 거다.

“내년에는 아시아가 블랙 라벨을 쓸어갈 테니 기대해주세요.”

“유럽도 만만치 않을 겁니다.”

“하하! 도전은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그런데 판매일은 정해졌나요?”

이게 당장 가능한 일은 아니다.

넘버링 작업은 이미 다 끝내놨으니 병입만 하면 되는 상태였으나 이걸 유럽과 미국까지 옮기는 일이 남았다.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오저당을 책임지고 있는 황동선 사장의 몫이다.

“열흘 이내에 전달받을 수 있을 겁니다.”

“이번에도 선박 운송이 아니라 항공으로 쏘시는 겁니까?”

“네, 그럴 예정입니다.”

항공 운송의 가격은 비싸지만,

블랙 라벨을 선적하기도 애매했다.

비행기에 실으면 천만 원 가까이 비용이 들어가더라도 안전하고 빠른 게 최고다.

이게 중간에 깨지거나 분실되면 5년이란 시간을 잃어버리는 대형 사고다.

“출시일은 정확하게 한 달 후로 잡을 테니 그동안 사고가 안 생기지 않도록 철저하게 잘 준비하셔야 할 겁니다.”

*

6월 중순이 될 무렵.

OGD 너튜브 채널과 홈페이지에 공지 사항을 담은 짧은 영상이 올라왔다.

거기에 담긴 내용은 간단했다.

벽향주 블랙 라벨의 출시 일정.

6월 둘째 주 토요일 오전 9시에 미국과 한국 그리고 프랑스와 대만 등에서 판매가 시작될 거란 예고였다.

당연히 이번에도 한정판이었다.

작년처럼 블랙 라벨은 고작 삼천 병만 판다고 했고 이번에 선정된 국가에 마련된 여러 매장에서 나눠 팔기로 했다.

예를 들면 한국의 경우에는 서울과 부산 그리고 대구에서 각각 삼백 병씩 판매할 예정이었다. 한 곳에서 진행하면 너무 많은 사람이 몰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삼백 명 안에 들어갈 수 있을까?”

올해 서른 살이 된 장수홍은 너튜브에 올라온 공지를 보고 잠시 고민했다.

가능하다면 블랙 라벨을 사서 마셔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여건이 안 되는 상황은 아니었다.

이직을 하면서 2주 정도의 시간이 생겼고 마침 그 기간에 판매 일정이 잡혀 있었다. 그러니 시간이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갑이 너무 헐거웠다.

백만 원이나 되는 고가의 술을 마실 형편이라 말하기는 어려웠다.

이른 나이에 사회생활을 시작했으나 저축은 많이 못 했다.

백만 원을 아껴 쓰면 두 달 정도의 생활비인데 이렇게 고민하는 이유는 다른 술도 아니고 벽향주이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술을 배울 당시에 아버지가 좋은 술로 시작하라며 사준 것이 제법 비싼 벽향주 옐로우 라벨이었다.

매번 저렴한 소주만 찾던 분이 그렇게 비싼 술을 사는 것은 수홍도 처음 봤다.

‘지금도 살아계셨으면 같이 한잔하자는 핑계로 사 왔겠지만···.’

이제는 그럴 수도 없었다.

작년에 아버지가 사고로 돌아가셨다.

장례식을 마치고 얼마 안 돼서 블랙 라벨이 출시되었는데 그걸 아버지와 함께 못 마셔본 게 너무나 안타까웠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이틀 정도만 고생해서 다시 팔면 적어도 몇백만 원 정도는 남길 수 있는 물건이다.

작년에 커뮤니티에서 본 기억으로는 많게는 4백만 원까지도 남겼다더라.

문제는 과연 자신의 차례까지 올까.

그걸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었는데 수홍은 일단 도전해보기로 했다.

미친 척하고 백만 원짜리 술을 까든 아니면 팔든 나중에 선택하면 된다.

하지만 혼자 갈 생각은 없었다.

줄을 서는 일은 생각보다 꽤 힘들다.

예전에 여자친구 선물을 사겠다며 한정판 오픈 런을 해본 경험이 있었다.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풍찬노숙이 썩 달갑지는 않았다. 적어도 교대로 화장실을 다녀오거나 씻고 올 수 있도록 자리를 지켜줄 사람이 필요했다.

다행히 만만한 놈이 있었다.

수홍은 곧장 일어나 동생 방을 노크했다.

군대에서 제대한 지 얼마 안 돼서 백수나 다름없는 녀석이었다.

“너 시간 많지? 내일모레 나랑 어디 좀 같이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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