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주 박물관 (1)
전통주 박물관.
그건 나의 숙원 사업이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숙제에 가까웠다.
하지만 정희겸 시장에게 그 자리에서 뭔가 당장 약속해주긴 어려웠다.
일단 생각해보겠다는 대답을 한 뒤에 나는 오저당으로 돌아와 수호를 불렀다.
이건 나 혼자 결정해서 진행할 사항도 아니었고 황동선 사장과 이야기하기 전에 수호의 의견부터 들어봐야 했다.
집 앞에 놓인 야외 테이블에서 기다리고 있자 녀석은 굿밤 맥주가 가득 든 봉투를 들고 나타나 내 앞에 털썩 앉았다.
시장과의 술자리는 금방 끝났기에 안 그래도 술이 부족했는데 다행이었다.
“시장님이랑 무슨 이야기를 했길래 갑자기 나를 호출하는 거야?”
“전혀 예상치도 못한 부탁을 하더라.”
“무슨 부탁인데?”
“예전에 전통주 박물관을 짓자고 했던 걸 어떻게 기억한 건지 진행하자네.”
나는 그 자리에서 이야기 나눴던 것을 그대로 수호에게 전달해줬다.
잠시 듣고만 있던 녀석은 별다른 고민도 없이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뭘 고민해. 언젠가 해야 할 일이잖아. 박물관은 어디에 만들 거야?”
이미 수호는 전통주 박물관을 짓는 것을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오저당을 물려받은 뒤부터 꽤 오래 논의했던 사항이었다.
“오풍리말고 어디에 짓겠어.”
“자리가 안 나올 것 같은데.”
“고성 할머니 집이랑 그 너머에 있는 폐가 몇 개 허물고 들어가는 것을 권하더라.”
그 자리에 시의원님도 부른 이유가 그것 때문이었다. 긴 시간 오풍리의 이장직을 했으니 어떤지 의견을 묻기 위해서였다.
아저씨는 새로운 집으로 보상한다면 큰 문제가 없을 거라 예상했다.
지금 집에 많은 추억이 묻어 있겠지만, 워낙 오래되어 겨울마다 고생하시고 있기에 조금 더 안락한 곳이 필요했다.
수호도 그 의견에 동의했다.
“할머니랑 몇 집 정도만 허락하신다면 거기가 가장 좋긴 하겠네.”
“그렇게 쉽게 오케이를 한다고?”
“뭐가 더 필요해?”
필요하고말고!
생각보다 꽤 큰 프로젝트다.
이왕에 할 거면 제대로 해야지 돈 아끼겠다고 대충 지을 생각은 없었다.
건축비가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안에 들어갈 내용물이 문제지.
전통주에 관련된 콘텐츠를 만들고 발굴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한두 푼이 들어가는 일이 아니야. 제대로 마음먹고 만들기 시작하면 수백억 이상 들어갈 수도 있어.”
“돈이 얼마 들어가든 선생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우리가 했던 약속이니 지켜야지. 이제 그 정도 능력은 되잖아.”
수호는 오저당의 매출을 이야기하며 수백억 단위에 벌벌 떨 정도는 아니지 않냐며 굿밤 맥주를 벌컥거리며 마셨다.
작년까지 M&A에 조 단위의 돈을 쏟아부었던 터라 할 말은 없었다.
“악착같이 돈 벌어서 뭐 하냐. 이런 거에 쓰는 돈을 아깝다고 여기지 마.”
그러면서 우리가 처음 오저당에 왔을 당시에 선생님이 해주셨던 말을 다시 한번 내게 상기시켜줬다.
[언젠가 형편이 나아지면 전통주를 보존하는 일에 한몫 거들어야 한다.]
낮에 땀 흘리며 술을 빚은 뒤.
저녁에 벽향주를 한잔하며 선생님은 그런 이야기를 꽤 자주 하셨다.
아마도 지방무형문화재 보유자로서 적절한 계승자를 남기지 못하신 게 끝내 마음에 걸리셨던 것 같았다.
수호와 내가 벽향주를 빚는 과정을 모조리 마스터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결코 지방무형문화재가 될 수 없다.
아무리 애를 써도 자격 요건이 되지 않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수호는 지금이 바로 그때지 않냐며 나를 설득했다.
“과연 우리에게만 그런 일이 생겼을까. 품평회 심사하러 가면 연세 많으신 분들이 오늘내일한다는 이야기 정말 많이 들어. 문제는 그 뒤를 이을 사람이 없는 곳이 태반이라는 거지.”
수호는 벽향주가 처음 수상했던 주류 품평회에 오저당을 대표해서 심사 위원 자격으로 참가하고 있는 중이다.
아직 명인분들보다 나이는 한참 어리나 그만큼 실력을 인정받았다는 의미다.
많은 양조장에서 참여하는 품평회라 인맥도 상당히 많이 쌓일 수밖에 없는데 최근 몇 년 사이에 그런 일이 허다하단다.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정정하셨던 분이 소식 없으면 걱정부터 될 정도라 말했다.
“그나마 우리가 그렇게 사라져가는 일부 양조장을 인수해서 보존하고 있지만, 모든 곳을 다 가져올 수는 없잖아.”
“불가능한 일이지.”
전통주 박물관은 일차원적인 전시만 하는 그런 곳으로 염두에 두진 않았다.
수호는 사라져가는 전통주를 수집하고 보존하는 역할도 동시에 가져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게다가 잊혀 버린 가양주 자료를 모아서 기록하고 보존하는 일도 상당히 의미 있다고 생각해.”
가정에서 빚던 술, 가양주(家釀酒).
집집마다 저마다의 맛을 내며 특색있는 술을 만들던 전통은 중요한 자산이다.
조선시대에는 각각의 집에서 빚는 술맛에 길흉이 깃든다고 믿었다.
그래서 가양주의 비법은 대대로 이어가며 전승해올 수 있었는데 이제는 거의 사라져 더는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경주 법주처럼 정말 몇 가지 안 되는 술만 남은 상태다.
이게 다 일제강점기 때 벌어진 일이다.
당시에 양곡도매 임의금지법으로 쌀의 사용처를 제한했고 일본에게 받은 주세 면허를 받아야 술을 빚을 수 있었다.
거기에 전쟁도 터지고 배를 곯던 시절도 제법 길었기에 술을 빚을 여력은 없었다.
그렇게 사라진 가양주는 셀 수 없다.
더 늦기 전에 작은 흔적이라도 모아서 기록해야 한다는 것은 나도 동의했다.
“거의 백 년 전에 소실된 술이잖아. 자료를 찾는 것도 쉽지 않을 거야.”
“아직 돌아가지 않으신 분들이 있는 지금이 기회야. 더 늦어지면 그마저도 어려워지잖아.”
솔직히 말하면 이런 일은 농촌진흥청과 정부 같은 곳에서 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아예 손 놓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몇 년 전에 농촌진흥청에서는 도화주를 비롯해 13종의 술을 복원해냈다.
하지만 아직 턱없이 부족한 상태다.
“무슨 말인지 잘 알았어.”
“그래서 진행할 거야?”
“당연하지. 선생님이랑 했던 약속은 지킬 거야. 조만간 황 사장님이랑 서준석 재무 이사님 모셔서 계획부터 짜자고.”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었다.
현재 오저당 본사에 여유 자금이 꽤 많이 남아 있는 상태다. 그룹 차원에서는 지난해까지 M&A를 빡시게 했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거의 인수합병 작업이 이뤄지진 않았다.
그럴만한 대상이 없는 탓이다.
대기업을 상대로 작업을 걸자니 실패할 경우에 잃는 것이 너무 큰 편이었다.
반면에 우리보다 작은 곳들은 크게 메리트가 있지 않았다.
신제품 개발에 박차를 가한 덕분이다.
3년 전에 유럽과 한국에도 신제품 개발을 위한 연구소가 설치되었다.
그리고 그 성과가 작년부터 유의미하게 나오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예가 무알코올 맥주였다.
요정들의 효과는 전혀 받을 수 없는 제품이지만, 그래도 맥주 맛을 제대로 재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크아아··· 역시 일 끝내고 마시는 맥주가 가장 맛있는 것 같아.”
수호는 캔을 와그작 찌그러뜨린 뒤.
새로운 맥주캔을 뜯어서 한 모금 마셨다.
“저녁 먹기 전에 맥주로 배 채울 거냐?”
“대충 라면으로 때우려고. 우리 원장 선생님이 오늘 선생님들이랑 회식이 있다고 늦게 들어올 거라고 하더라.”
“그냥 우리 집에서 먹어. 수저 하나만 더 놓으면 되잖아.”
식당을 해서인지 몰라도 연우가 은근히 손이 컸다. 평소에 요리하는 양이 제법 많은 편이라 냉장고가 항상 가득했다.
그래서 때때로 라니와 수호 집에 음식을 나눠줘야 할 정도였다.
어쩌면 일부러 그러는 건지도 모른다.
안타깝게도 라니는 음식에 전혀 소질이 없고 수호의 와이프인 효인 씨는 어린이집 운영 때문에 시간이 없었다.
아침 일찍 출근해서 저녁 늦게 퇴근하는 탓이다.
야근하는 직원들을 위해 어린이집을 늦은 시간까지 하기에 어쩔 수 없었다.
그 덕분에 아이를 키우는 직원들은 종종 불가피하게 야근을 하더라도 마음 편하게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됐어. 저녁에 직원들이랑 간식 먹었더니 더부룩해서 간단하게 먹을래.”
수호는 내 제안을 거절했다.
모처럼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려는 걸까.
그 심정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20일 가까이 한강에서 혼자 멍때려 보니 종종 그런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맘대로 해. 아! 나 내일은 회사에 없을 거다.”
“서울에 있는 사무실로 출근하게?”
“아니, 우리 아들이 동물원에 가고 싶다고 해서 데리고 다녀오려고.”
“그러면 박물관 이야기는 그 이후에 하겠네?”
나는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하겠다고 마음은 먹었으나 급하게 일을 진행할 이유는 없었다. 하루 이틀 뒤로 미룬다고 바뀌는 것은 없었다.
수호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 쓰진 않았다.
누구보다 나에 대해 잘 알기 때문이다.
일단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노빠꾸에 앞뒤 안 보고 돌진하는 나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아는 녀석이다.
“기왕에 만들 거면 국내 유일의 전통주 박물관이니 제대로 만들 거야.”
*
다음날 이른 아침.
우리 가족은 놀이동산으로 향했다.
국내에서 가장 큰 동물원이 있는 곳이 서울 인근인 과천과 용인에 있기에 이동하는 시간이 적지 않았다.
운전은 다미안이 해줬다.
가족 나들이라 그냥 내가 해도 된다고 했으나 비서 실장은 그걸 허용치 않았다.
자신이 직접 운전해야 마음이 놓인다고 고집을 부려서 핸들을 맡겨야 했다.
그런 덕분에 이동하는 중간에 나는 전통주 박물관에 대한 기획안의 기초를 마련하는 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가족 나들이 중인데 무슨 일이냐고 할 수 있지만, 영민이랑 연우 모두 피곤했는지 출발하자마자 곤히 잠들었다.
‘우선은 박물관 내부를 어떻게 채우냐가 관건이지.’
이 정도 일은 나도 할 수 있다.
전통주에 관련해서 전혀 모르는 것도 아니고 오저당이 빚는 여러 술 중에서 가장 자신 있는 분야가 전통주다.
그러니 전문가에게 맡기기 전에 기틀 정도는 짜볼 생각이었다. 당연히 메인은 오저당의 벽향주가 될 것이다.
이미 벽향주는 국내 전통주를 대표하는 수준에 올라섰다.
판매량과 국내외의 인지도.
두 가지 모두 압도적인 수준이다.
오죽하면 최근 해외에서 한국의 청주가 별도의 카테고리로 구분되기 시작했다.
더구나 법도 개정될 예정이었다.
말도 안 되는 주세법을 손보자고 주장한 것은 다름 아닌 유명석 국회의원이었다.
그는 평소에 주세법의 문제점에 대해 내가 한탄하던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 덕분에 일제강점기 당시에 세워진 말도 안 되는 논리는 사라질 예정이었다.
일본 누룩인 입국은 오히려 퇴출 대상이 되었고 전통 누룩은 기존의 1% 제한에서 무제한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입장이 완전히 뒤바뀐 것이다.
입법 예고가 뜨자 입국을 쓰던 일부 양조장이 반발했으나 이게 옳은 방향이란 사실에 공감하는 이들이 더 많았다.
어쨌든 그 덕분에 이제 벽향주는 약주가 아닌 청주의 자격을 되찾게 되었다.
자화자찬은 하기 싫지만, 모두 오저당이 만들어낸 변화였다.
[이야··· 저 건물 너무 예쁘네요.]
그때 향이가 뭔가를 보고 감탄했다.
뭔가 싶어서 고개를 든 나는 왜 그런 반응이 나온 건지 곧장 이해할 수 있었다.
처음 보는 건물인데 디자인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한옥을 모티브로 만든 건물 같았다.
처마처럼 살짝 치솟은 입구 쪽의 형태가 가장 먼저 눈에 띄었고 벽에는 창살 무늬가 패턴처럼 그려져 있었다.
그게 너무 과하지 않았다.
자칫 유치해 보일 가능성도 있지만,
적절하게 잘 조합해서 디자인한 덕분에 오히려 현대적인 미술 작품처럼 보였다.
“처음 보는 건물인데 저긴 뭔가요?”
내 질문에 다미안은 흘깃 내비게이션을 바라보더니 미술관이라고 대답했다.
가능하다면 전통주 박물관의 설계를 맡겨보고 싶었기에 이름을 검색해봤다.
하지만 누가 디자인한 건지 찾지 못했다.
기사에는 미술관과 기업에 대한 내용은 많았으나 정작 가장 중요한 내용이 빠졌다.
누가 설계한 건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이런 일을 나보다 더 잘하는 이들이 있는데 그게 바로 비서실 사람들이다.
차라리 그들에게 맡기는 것이 가장 빠를 것이다.
“다미안, 나중에 복귀하면 저 건물 설계한 곳이 어딘지 알아봐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