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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빚어 재벌 되렵니다-252화 (25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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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주 박물관 (2)

건축설계 사무소 <용마루>

최근 용마루의 주가는 꽤 높아졌다.

남들과는 다른 독특한 설계를 기반으로 요즘 들어 짓는 건물마다 상당히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덕분이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렇지는 않았다.

10년 전에 용마루를 창업했을 당시만 하더라도 직원이 고작 한 명에 불과했다.

그때는 일거리가 없어서 정말 최악의 상황 직전까지 갔었다.

그래도 진심은 통한다고 했던가.

한때는 너무 과하다고 평가받던 디자인이 해외에서 제법 큰 상을 받며 모든 상황이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

용마루의 모토는 거기 있었다.

물론, 이 말의 어원에 가까운 말을 했던 괴테는 최고라는 뜻보단 문화의 다양성을 말한 것이나 둘 다 틀리진 않았다.

용마루의 대표 문찬구.

그는 시대를 잘 타고났다고 여겼다.

최근 들어 해외에서 한국적인 것들에 대한 가치가 매우 높아지고 있는 중이다.

자신은 운이 좋게 혜택을 본 것이라 여겼다.

만약 30~40년 전에 지금의 디자인을 시도했다면 과연 누가 알아줬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어려웠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상관없다.

문찬구는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끊임없이 자신만의 기조를 가지고 어디 내놔도 부끄럽지 않을 설계를 했을 거다.

그건 스스로에게 했던 약속이기도 했다.

드르륵···.

문찬구가 사무실에 들어서자,

용마루의 이인자라 할 수 있는 최윤이 벌떡 일어나서 그에게 다가왔다.

이 녀석이 그럴 때마다 문찬구는 심장이 덜컥 떨어지는 것 같았다.

어느덧 10년이나 같이 일한 사이다.

눈빛만 봐도 대충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았다.

“선배! 왜 전화를 안 받아요?”

“아··· 다시 켜는 걸 깜빡했네. 나 스케치할 때는 전화 꺼놓는 거 알잖아.”

“오늘은 또 어딜 다녀오신 건데요?”

“종묘에 갔다 왔지. 오늘 마지막 주 수요일이잖아.”

요즘 문찬구는 종묘에 꽂혀 있었다.

하지만 종묘를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는 날은 한정적이다. 보통은 입장 시간의 제한이 있고 가이드만 쫓아 다녀야 한다.

하지만 주말과 공휴일 그리고 문화가 있는 날인 마지막 주 수요일은 그런 제한 없이 자유롭게 관람이 가능하다.

오늘이 그중에 문화가 있는 날이었다.

“그게 중요한 거는 아니고 미팅 요청이 들어왔는데 언제 시간 돼요?”

“그냥 떠보는 거면 너 혼자 가. 괜히 시간 낭비하고 싶진 않아.”

“내 시간은 그냥 막 버려도 됩니까?”

“아니, 다른 사람도 아니고 우리 최윤 이사님이니 믿고 맡기는 거지.”

능글맞게 웃으며 말하자 최윤은 징그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인상 썼다.

한 마디만 더하면 주먹부터 날아올 것 같았다.

“이번에는 안 돼요. 이번 거는 무조건 꼭 잡아야 하니 도망갈 생각 말아요.”

“도대체 어디서 연락이 왔길래?”

“두구두구! 다른 곳도 아니고 무려 오저당입니다.”

“우리가 대기업이나 지자체 일을 안 해본 것도 아닌데 왜 호들갑이야?”

오저당도 대기업인 것은 맞다.

하지만 솔직히 관심이 가진 않았다.

용마루에서 짓는 건물과 연관성이 없기 때문이다. 문찬구는 주로 전시와 관련된 곳들을 설계하는 편이었다.

이게 일반 건물과는 꽤 다르다.

채광과 이동 동선 그리고 전시 위치까지.

보통의 건물과는 다른 많은 요소가 설계에 적용되어야 하기에 사옥 같은 것은 설계하지 않고 있었다.

“우리가 언제부터 큰 곳들이랑 했다고 벌써 콧대가 이렇게 올라가신 거예요.”

“제발 좀 포트폴리오 신경 쓰자고 말한 사람이 누구더라.”

“그러니 이걸 해야 한다는 거예요.”

건축가에게 포트폴리오는 중요하다.

돈 걱정없이 설계를 하고 그걸 현실에 만들어낼 수 있는 케이스는 흔하지 않다.

현재 용마루의 대표적인 건축물인 용인의 미술관도 그로 인해 꽤 어려움을 겪었다.

지금껏 모든 설계가 그랬지만, 그때가 유독 힘들었다.

회장님이 전폭적으로 밀어줘서 가능했지 지자체에서는 실적만 보고 용마루에 설계 용역을 맡기는 것을 꺼려했었다.

“이번에도 사옥일 게 뻔하잖아.”

“아니요. 완전히 잘못 짚었어요.”

“그러면 뭘 짓고 싶다고 연락한 거야?”

“무려 박물관입니다. 오저당에서 전통주 테마로 삼척에 짓는답니다.”

“전통주 박물관?”

그제야 문찬구는 관심을 보였다.

이미 어느 정도 예상했던 터라 최윤은 그를 의자에 앉힌 뒤에 자신이 들은 것을 그대로 그에게 전달해주었다.

“아직 예산은 확정되지 않았는데 부족하지 않게 줄 테니 테마와 장소에 어울리는 곳으로 만들어달래요.”

“얼마가 들어가도 상관없다고?”

“네, 거기 회장님이 우연히 미술관을 보고 완전히 꽂힌 것 같아요.”

최윤은 물론이고 문찬구도 오저당의 회장이 어떤 사람인지는 알고 있었다.

굳이 검색할 필요도 없을 정도다.

뉴스를 조금이라도 챙겨본다면 최근 몇 년 동안 그에 대한 기사를 자주 봤을 거다.

아직 30대에 불과하나 재벌 순위에서 그의 이름은 빠지지 않고 거론되었다.

물론, 대부분의 주력 회사가 비상장 기업이라 측정하기 어려우나 모두가 실질적인 국내 1위라 여겼다.

항간의 이야기로는 마음만 먹으면 당장이라도 몇조 정도는 주머니 속에 넣을 수 있다는 말도 꽤 많았다.

그런 이가 짓는 박물관이니 어떤 규모일지 상상이 안 되었다.

“박물관이라면 당연히 미팅 잡아야지.”

“그럴 줄 알고 이미 날짜 잡았어요.”

“언제 시간이 비는 줄 알고?”

“백수가 남는 게 시간이죠. 직원들만 고생시키지 말고 이제 슬슬 대표님도 일거리를 물어오세요.”

미술관을 지은 뒤.

몇 개의 프로젝트가 있었지만,

대부분 자잘한 수준의 것들이었다.

따지고 보면 거의 몇 개월 정도 문찬구는 특별한 일없이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의미 없진 않았다.

어느 정도 충전을 해야 다음 작품을 만들 여력이 생긴다. 건축물도 하나의 예술로 보는 이답게 쉼도 중요한 루틴이었다.

“안 그래도 그러려고 했어.”

이 문제는 그가 100% 질 수밖에 없다.

용오름의 살림은 최윤의 몫이었고 얼마 전부터 슬슬 위험하다고 압박 중이다.

어느덧 직원의 숫자가 일곱 명까지 늘어난 탓에 고정 지출이 많아진 탓이다.

“포트폴리오는 제가 준비할 테니 내일모레 포레스트 호텔로 가시면 돼요.”

*

이틀 뒤 서울의 포레스트 호텔.

카페테리아에 들어서니 용오름 건축설계 사무소의 대표가 먼저 와있었다.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그 남자는 나를 곧장 알아보고 일어섰다.

“반갑습니다. 용오름의 대표 문찬구입니다.”

그가 내민 손을 잡으며 내 소개도 하려고 했으나 그럴 필요는 없다며 문찬구는 손을 저었다. 내가 워낙 유명해서 모르는 게 이상한 일이라나.

“용오름에 전통주 박물관 설계를 맡기고 싶다고 들었습니다. 혹시 대략적인 계획안이나 예산이 나온 게 있나요?”

“아니요. 어떻게 설계하냐에 따라 예산을 편성할 생각이라 그런 거는 염두에 두지 않고 설계부터 진행하시면 됩니다.”

“박물관 전체에 금칠을 해도요?”

예산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듯한 내 말을 들은 문찬구는 짓궂게 물었다.

나도 그런 그의 질문에 별거 아니라며 퉁명하게 대답해줬다.

“필요하다면 못 할 것도 없죠.”

“허얼··· 진심이십니까?”

“그전에 내 마음에 들어야 할 텐데 아마 거기서 통과하지 못할 겁니다.”

내가 성격상 너무 화려한 것은 썩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오죽하면 지금도 금이나 보석 같은 것에 관심이 없었다.

연우도 그런 쪽에는 취미가 없어서 집에 있는 거라고는 결혼반지와 돌잔치 때 선물 받은 반지와 거북이 정도가 전부였다.

그 이야기를 들은 문찬구는 용오름의 포트폴리오를 꺼내 내게 내밀었으나 굳이 그걸 확인할 필요는 없었다.

“이미 용오름이 지은 건축물은 제가 직접 가서 모두 봤으니 안 봐도 됩니다.”

“직접 가서 보셨다고요?”

“대부분 수도권에 있어서 생각보다 어렵진 않더군요.”

공개 입찰을 받지 않고 이렇게 콕 집어서 일을 맡기려는 이유가 거기 있었다.

용오름이 지은 곳들은 나를 비롯한 많은 오저당 사람들의 마음을 홀렸다.

그들이 지켜나가는 아이덴디티가 전통주와 잘 어울린다는 점이 중요했다.

하지만 굳이 그런 말을 미리 해줄 필요는 없었다.

“아직 예산이 정해지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설계 비용은 미리 정하고 들어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물론이죠. 얼마를 원하십니까?”

“저희가 맡아서 해야 할 일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에 따라 달라지겠죠.”

설계 사무소에서 단순하게 설계만 하는 것은 아니다. 요즘 트렌드가 감리는 전문 업체에 맡기는 거지만, 종종 그것까지 함께 맡기는 경우가 있었다.

거기에 행정 처리도 변수다.

은근히 거기에 들어가는 업무량이 상당하다. 오저당이 있는 강원도의 경우에는 그게 가장 큰 변수이기도 했다.

“감리는 별도로 맡길 생각이고 행정 처리는 문제가 없을 겁니다. 삼척 시청과 시장님 모두 백업해주기로 한 일입니다.”

“그러면 설계만 신경 써도 되겠네요?”

내가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이자 문찬구는 잠시 고민하다가 슬쩍 15억 원이라는 설계 비용을 내게 제시했다.

마지막까지 고심하는 걸로 봐서는 조금 더 불러보고 싶었던 것 같았다.

“최근 충주 등에 지어진 박물관의 설계 공모 비용이 10억에서 20억 정도니 과하게 받는 것은 아닙니다.”

“네, 제가 듣기로도 그 정도 하더군요.”

“대신 이건 추정에 불과한 거고 실제로 박물관이 들어갈 면적과 규모에 따라 바뀔 수도 있습니다.”

정확한 설계비의 산출은 사업 규모가 어느 정도냐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다.

그쯤에서 나는 함께 자리한 다미안에게 준비한 서류를 꺼내달라고 부탁했다.

거기에는 현재 마련한 부지 등을 정리한 지적도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걸로 파악 가능할까요?”

이미 어느 정도 준비는 끝내놨다.

땅도 후한 조건으로 사들였고 기존에 살던 분들에게는 보상금과 함께 새로운 집을 지어서 드리기로 약속했다.

그건 연화 건설에 맡겼는데 우리가 요구한 것은 간단했다. 연세 많으신 분들이라 편하게 살 수 있는 구조에 난방이 잘되는 집이어야 했다.

그런데 처음 계획보다 박물관이 들어갈 부지의 면적이 더 커지고 있었다.

이번 기회에 새집을 마련하실 생각인지 자신의 땅과 집을 포함해달라고 요청하신 분들이 제법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존에 오저당에 땅을 팔고 보상받은 다른 주민분들을 봐왔기 때문이다.

그때 받은 돈으로 다른 마을에 있는 땅을 사서 오히려 보유한 땅은 더 늘어났고 호의호식하는 중이다.

주민 사이에 생긴 위기감도 이유다.

최근 들어 오저당은 거액을 쏟아붓던 오풍리에 대한 투자금을 대폭 줄였다.

더는 개발하기 어려워진 오풍리보다 다른 지역으로 진출하는 게 이득이었다.

오로지 설비에만 투자하고 있었고 땅을 사들이는 것도 더는 진행되지 않았다.

이미 오저당을 중심으로 임야는 물론이고 살만한 땅은 다 사들인 상태다.

그러니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봐도 되었다.

“아니요. 이걸로는 불가능하죠. 적어도 건물이 들어갈 곳이 어떤 곳인지 자세히 살펴봐야 합니다.”

“어떤 걸 준비해드리면 됩니까?”

“오풍리에 제가 머물 곳이 있을까요?”

문찬구 대표는 설계를 시작하기 전에 마을에서 머물며 구상하고 싶어 했다.

그건 크게 문제 될 것이 없었다.

과거에 내가 살던 한옥은 게스트를 위해 비워놓은 상태라 거길 쓰면 된다.

그보다는 얼마나 걸리냐가 문제였다.

“설계는 어느 정도 걸릴까요?”

“글쎄요. 적어도 올해 내에는 힘들 것 같은데요.”

생각보다 오래 걸리는 거 아닌가.

하지만 문찬구 대표가 하는 말을 들어보니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었다.

빨리 끝내봐야 어차피 가을인데 겨울에 공사를 시작할 것도 아니다.

차라리 그 시간에 더 설계에 시간을 쏟는 게 좋지 않겠냐는 말에 설득당했다.

진심을 담아 설득하는 저음에 가까운 그의 목소리는 상당히 강력한 무기였다.

뭐··· 본인도 그걸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개관 일정만 맞춰주시면 됩니다.”

“언제쯤으로 예상하고 있으신가요?”

문찬구 대표의 질문에 나는 셈해볼 것도 없이 목표로 잡아 놓은 시기를 말해줬다.

거의 비슷한 시기에 돌아가신 선생님과 작은할아버지에게 바치는 곳이라 기일에 맞춰서 끝내고 싶었다.

“내후년 봄까지 개관에 필요한 작업은 무조건 끝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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