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장. 파워 게임 (18/22)

16장. 파워 게임

은우는 대학원 진학을 위해 방학이었어도 매일 도서관으로 출근 도장을 찍었다. 공부는 은우가 하는데, 뿌듯하고 공부를 잘하는 은우를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승현이었다.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은우를 데려다주는 승현은 차 키를 빙글빙글 돌리며 자기 집 주차장에 섰다. 여름의 뜨거운 태양을 슬쩍 올려다보던 승현은 눈을 찡그리며 차 안에서 선글라스를 꺼냈다.

그러고 보니 이번 여름에는 어디 놀러 가지도 못했네. 은우 형을 살살 꼬셔서 어디 놀러 갈까? 공부만 하느라고 힘들 텐데….

차 문을 쿵 닫았다. 머리로는 줄곧 어디로 놀러 갈까 고민하며 승현은 퍼뜩 핸드폰을 들어 날짜를 확인했다.

“헐…. 여름이 얼마 안 남았어. 빨리 형 꼬셔야겠다.”

속마음을 크게 누구라도 다 들리게 주절거리던 승현이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주차장을 빠져나가려는데, 주머니에 넣은 핸드폰이 징징- 진동했다. 모난 움직임 없이 승현은 다시 핸드폰을 꺼냈다.

행여나 은우에게 연락이 오면 좋겠다 싶어서 빠른 손놀림은 눈보다 빨랐지만, 이번에도 은우에게 온 연락이 아니었다. 실망한 기색으로 전화를 받았다.

“네.”

수화구를 귀에 대고, 송화구를 입에 가까이 대고 말했다. 수화구에서 한껏 상기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안녕하세요. 에이치비코리아 지점장입니다. 한승현 고객님! 기다리시던 차량이 오늘 들어왔습니다.

승현의 입꼬리가 광대까지 찢어졌다.

“아! 점장님, 그거 들어왔어요?”

-네! 들어왔습니다! 저희 VIP 회원님들께는 오늘 중으로 보내 드리려고 합니다.

살살 꼬리를 치는 듯한 사내가 웃으며 승현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분명 전화기 너머에서 굽신거릴 그림까지 눈에 선하게 그려지는 듯했다.

승현은 삐빅, 차 키의 버튼을 눌러 차 문을 잠그고 집으로 걸어 들어갔다. 은우네 집 못지않게 승현의 집은 넓었지만, 현대적인 감각이 은우네 집과 다른 느낌을 주었다.

“점장님, 그럼 오늘 오후에는 제가 인수받을 수 있는 거죠?”

-그럼요. 제일 먼저 도착할 수 있게 하겠습니다.

승현은 만족스러운 미소로 고개를 끄덕였다. 주차장에서 집으로 가는 작은 길에는 디딤돌이 놓여 있었다. 푸릇푸릇한 잔디가 디딤돌 주위에 무성하게 자랐다. 승현은 성큼성큼 디딤돌을 밟으며 집으로 향했다.

-역시 안목이 높으셔서 이번 신차는 물량조차 부족하다고 했는데, 제가 강력하게 힘 좀 써 봤습니다.

자신보다 훨씬 연배가 높은 그가 굽신거리는 것에 맞춰 승현도 넉살 좋은 웃음으로 맞장구를 쳐 주었다.

“감사합니다. 그래서 제가 늘 점장님한테서만 차를 사죠.”

점장도 사회성이란 이런 것이다! 라는 모습을 보여 주듯 사회성 만렙을 보이며 웃는 소리를 냈다.

-하하하, 그럼 도착하는 대로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앞으로도 저희 지점을 애용해 주시면 감사합니다.

“예.”

그렇게 기분 좋게 통화가 끝이 났다. 승현은 어딘가 음흉한 미소가 되었다.

“아, 빨리 은우 형을. 꼬셔야… 뚜껑 없는 차에서….”

상상만으로도 들뜬 기분이 되어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은 승현이 다소 아찔한 상상을 머릿속에서 펼쳤다. 보란 듯이 뚜껑 없는 차에 은우를 태우고… 으슥하게…. 승현이 어깨를 들썩이며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꿈틀거리는 입꼬리를 애써 누르며 승현은 현관문을 열고 집 안에 들어섰다.

“다녀왔습니다.”

그때, 날카롭고 예민한 고함 소리가 서재에서 흘러나와 거실에 울렸다.

“무슨 일 있나요?”

승현은 의아하게 생각해 집안일을 하시는 아주머니를 향해 물었더니, 아주머니가 조금은 불안하고 초조한 얼굴로 승현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게, 그게 첫째 도련님이….”

“승겸이 형이요? 형이 왜요?”

승현은 이유도 모른 채 천연덕스럽게 큰소리가 삐져나오는 서재로 향했다. 가까워지는 소리는 두꺼운 서재의 문을 넘길 정도로 컸다. 그 말은 그 안에서는 얼마나 큰 소리가 나는지 가늠이 될 정도였다.

서재 안에서 승겸이 흥분하며 큰소리를 내는 것이 들렸다. 승현 자신과 전혀 다른 승겸의 째지는 목소리가 날카로웠다.

뭐지?

승현은 가만히 서서 문 너머로 들리는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 승겸이 화를 내는 이유엔 다른 것이 없었다. 승겸은 자신과 은우의 결혼을 길길이 날뛰며 반대하고 있었다.

“아버지! 잘 생각해 보세요. 이게 과연 회사에 도움이 되는 겁니까?”

승겸이 자신이 하는 일에 사사건건 방해하고 반대하는 건 하루 이틀도 아니어서 무시하려고 했지만, 승겸이 지금 내뱉은 말은 승현으로 하여금 참을 수 없게 만들었다. 가뜩이나 큰 손을 들어 부수는 게 아닐까 할 정도로 서재 문을 두드리려는 것을 겨우 억눌러 노크했다.

똑똑똑-

서재 안에서 쩌렁쩌렁 울렸던 큰소리가 갑자기 잠잠해지더니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와.”

승현은 얼굴에 언짢은 기분을 지우고 문을 열었다.

“다녀왔습니다.”

“어? 어디 갔다 왔어?”

한 대표가 승현을 보며 인자하게 물었다. 원래부터 첫째인 승겸보다 승현의 배포와 그릇이 크다고 느꼈던 한 대표는 일품 그룹의 총수인 변 회장 앞에서 보여 주었던 승현의 배짱이 자신이 생각했던 것 이상이어서 승현을 이번 계기로 다시 보았다.

그동안 그냥 철없이 사고나 치고 다니는 줄 알았던 아들의 아량과 배짱은 원석이었다. 누구의 손에 의해 다듬어지느냐에 따라 크게 빛을 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니 한 대표는 승현을 유심히 지켜보기 시작했다.

“아- 아침에 은우 형 도서관 데려다주고 왔어요.”

사고를 거하게 친 사람답지 않게 당당한 건지, 낯짝이 두꺼운 건지 승현은 당당했다.

여러 사람들과 달리 승현은 어떤 면에서 아직 철이 들지 않았지만 한 대표는 고개를 끄덕였다.

승현이 부족한 부분을 확실히, 은우라면 가지고 있었다. 아주 예전에 변 회장이 지나가는 말로 후계자는 둘째 놈에게 물려 주고 싶다고 할 정도로 은우는 어렸을 때부터 변 회장의 눈에 들 정도였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신중한 성격과 인내하는 은우의 자세와 성격은 아직 승현이 가지지 못한 것이었다. 은우라면, 승현을 더욱 잘 다듬어 주리라 생각이 들었다.

한 대표가 미묘한 웃음으로 승현에게 말했다.

“너 이번에… 한 과목 빼고 모든 과목 성적이 낙제라고 하더라.”

양심에 좀 찔리라고 한 대표는 말했지만, 승현은 개의치 않고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딱 봐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얼굴이기에 저건 저것대로 대단하다 싶어 한 대표는 강수를 승현에게 두었다.

“이렇게 공부를 안 해서 은우 군이 좋아하겠냐? 학교 과 수석인데…. 과연 낙제생을?”

그러나 능글맞은 웃음으로 승현은 자신감이 남아돌다 못해 넘쳐흘렀다.

“에이- 무슨 소리! 은우 형이 나 얼마나 좋아하는데.”

자신감을 보이는 아들의 확고한 말은 아버지로서도 웃음이 자아내기 충분했다.

승현은 웃는 미소를 지우며 서서히 분위기와 말투를 완벽하게 다르게 하고 승겸과 아버지를 번갈아 가며 보았다.

“그런데 무슨 대화를 하기에 큰소리가 밖에까지 다 들려요?”

한 대표의 저런 태도 변화를 제일 먼저 민감하게 받아들인 건 승겸이었다. 승겸은 줄곧 승현을 견제했다. 어릴 때부터 특유의 친화력과 사회성으로 학교 반장을 놓친 적이 없는 승현은 하물며 골목대장까지 할 정도로 부각을 드러냈었다. 그러자 승현이 하는 일은 무조건 반대하고 방해부터 했었다.

그런 생각 없이 행동하는 승현이 계속 철없이 굴게 된다면 회사는 자연스럽게 자신이 물려받을 거라 승겸은 아주 잠깐 승현을 견제하지 않고 방심했다. 그런데 그 틈을 타 이 철없는 동생이 일으킨 짓의 파장이 어마어마하게 컸다. 승겸은 그 사실을 알았을 때 이미 손쓸 수도 없이 늦어 버렸음을 알았다.

결과만 놓고 본다면, 일품이라는 거대한 그룹의 사위가 승현이 되는 것이었고, 어지간한 기업의 사장님들보다 재산 가치가 더 높다고 알려진 그 일품 그룹의 둘째 아들이 승현의 반려가 되는 것이었다. 정말 승겸이 바라지 않는 일이었다.

가뜩이나… 속이 좁다는 평을 듣는 자신은 누군가에게 늘 쫓기는 듯 불안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 승현에게 일품이라는 거대한 뒷배를 생기게 해서는 안 되다고 여겼다. 그렇게 된다면 왠지 지금도 불안한 후계자의 자리가 더욱더 위태로워질 것만 같았다. 승겸은 딱딱한 얼굴로 정색하며 승현에게 말했다.

“그게…….”

승현의 물음에 한 대표가 승겸을 살폈다.

“네 결혼 이야기 했어.”

“내 결혼?”

승현은 승겸이 자신을 별로 안 좋아하는 걸 알고 있었다. 아니, 우리는 서로 별로였다. 우리 형제는 정말 최악으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 은우와 정윤과는 천지 차이로. 그런 승겸이 무슨 일로 자신의 일에 간섭하는 건지, 그 꿍꿍이 때문에 승현은 눈썹이 찡긋거렸다.

“난 이 결혼 반대야.”

“뭔 소리야.”

대뜸 승겸이 결의에 찬 목소리로 외쳤는데, 어이가 없는 승현은 헛웃음을 지으며 우스갯소리를 냈다.

“뭐야, 형이 결혼할 거야? 내가 결혼한다는데 왜 그래? 그리고 왠지 그 드라마 같은 대사, 들은 거 같아. 참신한 대사로 준비하는 게 어때? 그 뒷말은 나와서는 안 될 말인데. 나오면 안 되는 거 알지?”

농담을 섞어 말하는 승현의 말에도 불구하고 서재 안의 세 사람의 분위기는 풀어질 줄 몰랐다.

“농담 아니야.”

승겸은 여전히 딱딱하게 말했고, 승현도 이제는 웃는 분위기를 깨끗하게 지웠다.

“승현아, 너 잘 생각해 봐. 너 이제 스무 살이야. 근데 무슨 벌써 결혼이야?!”

똑바로 승겸을 주시하며 승현은 똑같이 굳은 얼굴로 되받아쳤다. 네가 무슨 상관이냐고 하려던 걸 승현은 아버지를 신경 썼다.

“나이가 무슨 상관이야? 난 당장 하고 싶은 것도 참고 있는데.”

승겸도 승현의 결혼을 말릴 이유가 없었다. 이제 와서 승현을 위해서라는 건 너무 가짜 티가 나서 승겸은 다시 한 대표를 향했다.

“아버지, 아시잖아요…. 그 일품 그룹 둘째 소문…. 그런데 어째서 결혼을 쉽게 승낙하셨어요?”

낮은 목소리로 말하는 승겸은 은우의 소문을 알고 그걸 입에 담았다. 모르는 게 더 이상했을지 모르지만. 승현은 눈을 번뜩이며 승겸을 노려보았다.

승겸 같은 사람들 때문에 은우가 그렇게 움츠러들고 소심해졌다고 생각하자 승현은 부글부글 화가 들끓기 시작했다.

은우의 소문을 당연히 승현의 부모님도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한 대표는 승겸에게 타이르듯 말했다.

“은우 군이 그럴 아이는 아닌….”

“그걸 어떻게 알아요!!”

승겸은 자신의 말이 통하지 않자 버럭 아버지의 말을 자르고 소리쳤다. 옆에서 이야기를 듣는 승현의 얼굴이 더욱더 험악하게 굳으며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자아냈다. 한 대표는 머리가 지끈거리는지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꾹꾹 지압했다.

승겸은 최후의 변론처럼 한 대표를 설득시키려고 힘주어 말했다.

“아버지, 생각해 보세요. 아직 그쪽도 스물네 살밖에 안 된 아들인데… 이렇게 쉽게 결혼시키겠다는 건 한마디로 옳다구나 잘됐다! 폭탄 처리하는 거나 마찬가지라구요. 우리 승현이가 쓰레기 처리하는 거라구요!”

넘지 말아야 하는 선을 넘은 승겸을 향해 불타는 눈빛으로 승현이 위협적으로 노려봤다.

“…뭐? 다시 말해 봐.”

큰 체격에서 화난 목소리가 뾰족하게 나왔다. 하지만 너무 낮은 으르렁 소리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차가웠다.

승겸은 지지 않겠다는 듯이 승현을 보았다. 195에 가까운 승현과 겨우 180을 넘기는 승겸은 형이지만 굴욕적으로 승현을 올려다봐야 했다. 위압적인 동생 승현의 눈빛에도 주눅 들지 않으려 했다.

“너 정말 그… 일품 그룹이랑 결혼해야겠냐?”

“…….”

화를 삭이려는 승현은 주먹을 꽉 쥐었다가 폈다.

“우리 집안을 얼마나 우습게 봤으면, 너를 얼마나 우습게 여겼으면… 그렇게 말했겠냐고! 너도 철 좀 들어! 생각이라는 걸 좀 해봐!”

승겸은 승현의 화를 돋워내며 비아냥거렸다. 성격이 짧은 승현이라면 욱해서라도 안 하겠다고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너도 그 소문 모르는 거 아니잖아. 그런데 굳이 결혼까지 해야겠냐고! 그래… 어쩌다가 그 사람이랑 너랑 한번 잤다고 치자, 그래. 그렇다고 치자. 소문에 의하면 너하고만 잤겠냐? 그런데 왜 그 상대가 너여야 하는데? 그 사람이랑 잤다고 하는 사람이 지금 한둘이냐?”

승현의 표정이 일을 크게 칠 것만 같다는 걸 읽은 한 대표가 나서서 승겸을 말렸다.

“승겸아, 그만해라. 말이 너무 지나치다. 그리 좋은 말은 자꾸 옮기는 게 아니다. 그리고 이미 승현이 결혼은 결정 난 일이야. 이 일은 그리고 회사에도 큰 이익이다.”

하지만 승현보다 승겸이 오히려 스스로 자제력을 잃은 것처럼 큰소리를 승현을 향해 냈다. 자격지심이 묻어 있었다.

“이 일이 기사로 나가고 사람들 입에 오르락내리락하면 우리 집 평판 떨어질 거, 너는 안 들리냐? 나는 어떤 소문이 들릴지 지금 막 내 귀에 들리는 거 같은데!”

승현은 제 형을 한 대 칠까, 발로 차 버릴까. 아니면 멱살을 잡고 엎어치기를 해서 면상을 못 들고 다니게 만들까 따위를 고민하며 욕이라도 크게 화를 내려다가 은우를 떠올렸다.

이런 엿 같은 말과 소문을 지금까지 혼자 감내했을 은우는 말도 못 하고 얼마나 힘들었을까.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믿어 주지 않았다는 것이 얼마나 괴로웠을까. 그 피 같은 색을 한 알약만 주구장창 울면서 먹었겠지.

「네가 뭘 알아! 나에 대해 뭘 아는데!」

울면서 소리치던 은우의 말이 뇌리에 새겨졌다. 지금 이렇게 돼서 깨달은 사실은 자신이 얼마나 은우에게 못된 사람이었는지였다. 얼마나 은우에게 자신이 내민 손이 공포였을까. 갑자기 그런 자아 성찰 같은 생각이 들었다.

승현은 자신의 친형이었지만, 승겸을 보며 환멸을 느꼈다. 자신의 친형이라는 사람조차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승현은 뜨겁게 타던 화에 기름을 부어 맹렬하게 타던 화가 갑자기 차분히 가라앉았다.

“그래, 어쩌다가 은우 형이… 나랑 잤어. 그럼 형은 만나 봤어? 은우 형이랑 잤다는 사람 나 빼고. 그렇게 한둘이 아니라는데, 어떻게 은우 형이랑 잔 사람이 나밖에 없지? 형이 은우 형이 그렇다는 거 실제로 봤어?”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는 거야. 그걸 꼭 봐야 알겠냐? 그렇게 한두 사람도 아니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승현은 승겸의 말을 들을 가치도 없다는 듯 말을 잘랐다.

“이상하다, 형은 모르면서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어? 난 은우 형 아닌 거 봤거든.”

“…….”

승겸의 말문이 턱 막혔다. 실제로 봤다는 데 할 말이 없어졌지만 우겨 보기로 했다.

“네, 네가 순진하고 멍…청해서 속은… 거겠지!”

승현은 이제 팔짱을 끼며 준열한 비웃음을 지었다.

“와- 형, 나 순진한 거야? 멍청하다고 하면, 할 말은 없고.”

살살 승겸의 성질을 긁으며 승현은 쉬지 않고 말했다.

“형은 은우 형이 그러는 거 본 적도 없는데, 그런 소문 입에 옮기고 다니는 거 아버지 말대로 정말 좋지 못하다고 봐. 그건 꼭 고쳐야 하지 않겠어? 어쨌든 회사를 경영하고 싶어 하는 형이잖아? 그런데 가십거리로 악소문을 내는 사람들하고 형이 뭐가 달라?”

승겸은 이제 할 말이 없어졌다. 승현에게 한 마디도 이기지 못해 당황해서 겨우겨우 몇 마디 더듬거렸다.

“그럼… 왜, 똑…바로 해명을, 안 하냐? 말 못… 하니까… 그런 거 아니, 겠어?”

“말하면 믿을 거야?”

“…….”

“지금도 봐, 내가 아니라고 했는데 형은 안 믿었잖아. 은우 형은 아마 아니라고 했을걸? 그런데 아무도 안 믿었으니까. 형은 그때도 안 믿고 지금도 안 믿잖아. 아니라고 말해 주는데.”

이제 승겸은 우기는 것조차 실패해 할 말을 모두 잃었다.

“그리고 형은 아직 모르겠어? 이 결혼에 달리게 고작 은우 형의 소문만 달렸다고 생각해?”

“……뭐?”

“그러니까 형이 앞을 내다보는 시야가 좁다고 하는 거야.”

분하고 억울한 듯 승겸의 손이 바들바들 떨었다. 승현은 주먹 쥔 그의 손을 보며 비웃는 소리로 말했다.

“나하고 은우 형이 결혼하는 것으로 인해 아버지가 리스크가 너무 커서 망설이던 사업을 추진할 수 있게 된 건 알아?”

흐읍, 승겸의 숨소리가 당황하며 울렸다. 승현은 가슴에 바람을 불어 넣어 크게 부풀었다.

“내가 아버지한테 그 리조트 개발 사업 리스크 없이 해준다고 했거든.”

승겸은 한마디도 내뱉지 못했다.

한 대표는 승현을 뚫어지게 응시하며 눈을 가늘게 떴다. 예전 같으면 승현은 벌써 승겸을 향해 주먹이라도 날렸을 법이었는데, 승현은 자신이 모르는 사이 조금 달라져 있었다. 승현이 얼마 전에 은우의 지분이 얼마큼이냐고 물으며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던 것이 떠올랐다.

“꼭… 굳이, 결혼…이라는 형태…일 필, 요는… 없잖아!”

쥐어짜내듯 승겸은 짜증을 참지 못했다. 그러나 오히려 승현은 여유로웠다.

“맞아, 리조트 개발 사업을 하려고 결혼까지 할 필요 없지. 근데 난 은우 형이랑 결혼이 하고 싶거든. 그걸 빌미로 은우 형이랑 결혼에 쐐기 박는 것도 좋고. 정략결혼 형태가 확실하잖아? 집안끼리 약속으로 도망 못 가게 내 사람 만들기. 그것만큼 확실한 방법이 없지.”

“…….”

한 대표도 승겸도 말을 잃었다.

“결혼이라는 형태는 얻어걸렸지만, 은우 형한테 노리고 접근한 건 맞지.”

한 대표는 놀라운 얼굴을 했다. 일품 그룹 변 회장 앞에서 당당하게 외쳤던 모습을 지금도 보이며 말하는 것을 보았다. 승겸이 이길 깜냥이 아니었다. 그는 한 마디도 뻥긋하지 못했다. 승현은 씩씩거리는 승겸을 보며 단호하게 한 대표를 향해 소리를 냈다.

“아버지, 은우 형이랑 조만간 집에서 정식으로 가족끼리 식사 자리 만들어 주세요. 우리 은우 형, 제일 비싸고 맛있는 거 먹이게 해주세요.”

승현이 몸을 돌려 한 대표를 향하자 한 대표는 제법 놀란 표정을 하며 승현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발악하듯 승겸이 소리치며 다시 분위기를 차갑게 했다.

“난 싫어! 내가 왜 같이 그런 사람이랑 밥을 먹어야 해?”

이쯤 되니 오히려 철없이 구는 듯한 승겸을 향해 승현은 피식 조소를 보였다. 승겸은 예상과 달리 승현이 냉정하게 받아치니 더 울컥해서 말했다.

“…나, 나한테까지 그, 그 사람이 꼬리치면… 어떡하냐. 더, 더럽게…! 딱! 질색…이다!”

“허, 참…….”

승현은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밴댕이 소갈딱지만 한 속내를 가진 승겸을, 은우가…? 말도 안 되는 상상이라서 승현은 웃음이 픽픽- 삐져나왔다. 뼛속까지 얼어붙게 할 정도로 차가운 미소를 승겸에게 던진 승현은 이성적으로 말했다.

“…은우 형이, 형을……? 그 망상은 설마 형의 희망 사항이야?”

이제 정말 큰일 날까 봐 한 대표가 끼어들어 승현을 말렸다.

“승현아…….”

하지만 승현은 위협적으로 승겸에게 한발 크게 다가가 위압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승현은 그날 은우의 아버지인 변 회장이 내던 분위기를 따라 해봤다. 사람을 찍어 누르는 듯한 분위기. 승현은 그날의 변 회장을 떠올리며 그 모습 그대로 승겸을 찍어 눌렀다.

승겸은 승현에게 바짝 움츠러들어 뒤로 주춤 물러났다. 간이 콩알만 해진 것 같은 승겸을 보며 승현은 위협적인 눈빛으로 저 바닥 아랫사람을 대하는 듯이 차가운 미소로 말했다.

“…내가 은우 형을 얼마나 힘들게, 어떻게 꼬셨는데. 형 주제에……. 상상으로라도 자위는 하지 마라. 그게 더 역겨우니까.”

승현은 주먹을 꽉 쥐었다 풀며 한 대표에게 몸을 돌렸다.

“아버지, 그럼 은우 형이랑 밥 먹는 날짜 정해 줘요. 빠르면 빠를수록 좋아요. 여름 방학 끝나기 전에. 우리 은우 형 학기 시작하면 대학원 준비랑 졸업 논문 쓴다고 바빠. 아버지가 형 스케줄에 맞춰요.”

한 대표는 승현의 분위기에 놀라서 말을 더듬거렸다.

“그, 그래…. 알았다.”

“그럼 올라가 볼게요.”

승현은 한 대표를 향해 허리를 숙이더니 서재 문을 부서져라 닫고 나갔다. 한 대표는 승현의 모습을 보며 웃음이 지어졌다. 승현에게서 변 회장의 모습이 보였다.

✻  ✻  ✻

승현의 욱하는 성질로 기인해 성사된 식사 자리였다. 은우에게 승현은 어째서 이런 식사 초대 자리가 생겼는지는 말하지 못했다. 승겸이랑 대판 싸우다가 욱하는 마음에 내뱉었다고 하면 은우가 화를 낼 거 같아서 승현은 그 부분은 입을 꾹 다물었다.

정식으로 식사 초대를 하는 한 대표를 은우는 거절할 수가 없었다. 예의 반듯한 은우는 승현이 밥 같이 먹자고 조를 때는 거들떠보지도 않았으면서 한 대표의 가족 식사 초대에는 거절하지 못했다.

승현은 은우를 데리러 가기 위해 집 앞으로 향했다.

“와- 형…. 이렇게 예쁘게 하고 나올 줄 몰랐죠! 난 요정인 줄 알았네.”

커다란 철문을 열고 나오는 은우는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는데, 승현의 농담이 모두 진담으로 들렸다.

“…그, 그렇게 이상해? 그런 이상한 거로 보이면 안 되는데…. 옷 갈아입고 올까?”

요정이 이상하다고 하는 건 줄 알고 은우가 고개를 반쯤 뒤로 돌리려고 하자 승현이 은우의 어깨를 양손으로 잡고 미소 띤 얼굴을 지어 주었다.

“아니! 형, 지금 딱 좋아요. 딱 예뻐.”

“예… 예쁘면… 아, 안 되는데…. 안 되겠다. 기, 기다려…. 옷 갈아입고 올게.”

“아니에요! 형 옷 갈아입고 오면 늦을걸요?”

승현은 시간을 가늠하는 척하며 말하자 은우가 몸서리치며 제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아! 그럼… 안 돼.”

슈트 차림을 잘 하지 않은 은우는 어색해서 소매 끝을 잡아당겼다. 핏기가 가신 얼굴에는 불안한 빛이 역력해 눈꺼풀을 깜박거렸다. 아차, 은우가 생각난 듯이 주섬주섬 주머니를 뒤적이다 약통을 꺼냈다. 그러자 그 손을 승현이 잡았다. 멍한 얼굴로 승현을 올려다보는 은우가 멍한 소리를 냈다.

“어?”

“형, 나오기 전에 약 먹지 않았어요?”

“…어? 어, 음……. 먹었나? 안 먹은… 거 같아.”

고개를 기울이며 기억을 떠올리는 은우가 고개를 저었다.

“내가 알아. 형은 무조건 먹었어.”

차마 은우에게 약 먹지 말라고도 할 수 없는 승현은 작은 한숨을 쉬었다.

“…아닐…걸?”

얼마나 긴장했으면 약을 먹었는지 기억도 못 할까. 은우가 멍하게 있자 승현은 웃으며 긴장을 풀어 주려고 했다.

“너무 긴장하지 마요. 그냥 내가 형이 하도 나하고 밥을 안 먹어 줘서 우리 아빠한테 일렀어요. 은우 형이 나랑 밥을 너무 같이 안 먹어 준다고, 같이 밥 좀 먹게 해달라고.”

“…뭐라고?”

어떻게 반응을 보여야 할지 은우가 놀라 되물었더니, 승현은 어른스럽게 대답했다.

“그런 이유로 밥 먹는 거고 거창한 이유 없으니까! 그러니까, 긴장하지 말라고요. 아니면 내가 뽀뽀해 주면 긴장 풀리려나?”

“하, 하지……!”

씩 웃은 승현은 은우가 방심한 틈을 타 약통을 가져가 버렸다.

“야……!”

하지만 이제 은우는 예전처럼 예민한 모습을 보이진 않았다. 승현이 있어서 은우는 알파의 페로몬이 무섭지 않았고, 오메가의 페로몬을 겁내지 않았다. 살포시 승현은 은우의 어깨를 당겨 품에 안았다.

“약은… 일단, 집에 도착하면. 형한테 맡기면 시도 때도 없이 먹을 거 같아. 정 못 참을 때 먹어요. 내가 시간 맞춰서 줄게. 그리고 나 있으니까… 그렇게 걱정하지 말고.”

승현은 은우의 손을 잡아당겼다. 은우의 뒤를 힐끗 보며 말했다.

“짐은 다 챙겼어요?”

가만히 승현에게 안겨 있던 은우가 뒤를 돌아 슬쩍 보며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음… 아직인가 봐.”

“근데 뭘 이렇게 많이 준비했어요?”

은우네는 겸사겸사 승현의 집에 예단을 보내기로 해서 사람들이 차곡차곡 차에 짐을 싣고 있었다.

“모르겠어. 엄마가… 다 해서.”

은우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다 작게 하품을 했다. 승현과 함께다, 라는 것이 이렇게 안심이 될 줄은 몰랐다. 약을 먹었어도 긴장하면 하품도 안 하는데, 지금은 승현이라는 존재 덕분에 약 기운을 오롯이 느꼈다. 졸음이 몰려오는 은우가 이마를 살짝 승현의 가슴에 기대며 한숨을 내쉬었다.

“졸려요?”

“응, 조금…….”

승현은 은우를 조수석에 태웠다. 어느 정도 짐이 실리는 걸 확인 하고 나서 승현은 은우를 데리고 집으로 향했다. 은우의 집에서 차로 약 십 분에서 이십여 분 거리. 은우가 창틀에 팔꿈치를 괴고 멀뚱하게 밖을 보다 승현을 향해 하품을 찍- 하더니 말했다.

“하암…. 나 그러고 보니, 너희 집 처음이다.”

약 기운이 몰려와 졸린 얼굴을 하는 은우는 슬슬 정신 차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눈에 힘을 주었다. 긴장을 늦추지 않으려 가볍게 볼을 두드렸다. 알게 모르게 긴장하는 은우는 손바닥을 허벅다리에 슥슥 가볍게 문질러 닦았다.

“그렇게 긴장 안 해도 된다니까요. 아, 다 왔다. 저기예요.”

은우의 모습에 승현은 강조했지만, 은우의 얼굴은 서서히 긴장으로 굳어졌다.

“후우…….”

다 왔다고 알려 주는 승현의 말소리에 아직 들어가서 밥을 먹기도 전인데 벌써 밥이 코로 들어가는 건지 목으로 들어가는 건지 모를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속이 꽉 막혀 체한 기분에 한숨을 푹푹 내쉬며 굳은 얼굴빛을 감추지 못했다.

기꺼이 은우를 위해 운전기사가 된 승현은 천천히 집 앞에서 차를 세웠다. 그리고 금이야 옥이야 은우의 손을 꼭 잡고 안으로 들어갔다. 변 회장 앞으로 가면서 담판을 지어 허락 맡을 그때도 승현은 은우의 손을 잡고 집으로 들어갔는데, 오늘도 승현은 은우의 손을 잡고 걸었다.

현관문을 열기 전, 은우는 불안한 목소리로 승현의 손을 잡아당겼다.

“승현아…. 나, 약… 하나만 먹으면 안 될까?”

“괜찮아요. 긴장할 거 없어요. 그러니까 약은 이따가.”

눈을 깜박이는 은우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자 승현은 안심을 주는 미소를 지었다.

“그렇지만… 걱정돼.”

승현은 빙긋 웃기만 하며 은우의 손에 힘을 더 주면서 현관문을 열었다.

이 정도 규모의 집들이 대개 그러하듯 현관문을 열면 중문이 나오고, 중문을 넘으면 거실로 향하는 복도가 길게 있었다. 은우의 집도 그래서 그리 놀랍지는 않았다.

승현과 은우는 물이 흐르듯이 복도를 미끄러져 나갔더니 커다란 거실이 나왔다. 현대적인 감각이 엿보이는 거실은 고풍스러운 은우의 집과 다른 느낌이었다. 거실로 들어서며 무늬가 새겨진 간유리가 끼워진 문 앞에서 승현은 큰 소리를 냈다.

“은우 형 왔어!”

승현의 목소리는 너무 컸다. 그 우렁찬 소리에 도리어 은우가 흠칫 놀랐다. 문을 여니 역시나 잘 차려입은 승현의 아버지인 한 대표와 어머니가 앞에 서 있었다. 그리고 두 부모님 반 발짝 뒤로 물러 서 있는 승겸은 똥 씹은 표정으로 불쾌감을 감추지 않은 채 있었다.

“안녕하세요. 한 대표님, 이사장님.”

은우가 공손하게 허리를 굽혀 한 대표와 승현의 어머니를 향해 인사를 했다. 은우의 어머니는 문화, 의료 등에 걸친 재단을 운영 중이라면, 승현의 어머니는 사학, 장학 등에 걸친 재단을 운영 중이었다. 승현의 어머니가 나긋하고 고상하게 반겼다.

“기다리고 있었어요.”

“아, 엄마. 배고파. 인사는 이따가. 밥부터 먹자.”

이 타이밍에 서두가 길어질 법했는데, 승현이 타이밍 좋게 툭 꼬리를 잘랐다. 배를 문지르는 모습에 승현의 어머니는 쿡쿡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알았다. 들어가서 밥부터 먹자.”

식당으로 들어가니 식탁에는 식탁 바닥이 무슨 무늬가 있는지 보이지도 않을 만큼 음식이 담긴 접시가 빽빽했다. 하나같이 손님맞이한다며 푸짐하게 차려진 요리는 식탁 다리가 부러지지나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식탁의 가장 윗자리에 한 대표가 앉았고, 한 대표의 왼편에 은우가, 맞은편엔 승현의 어머니가 앉았다. 당연히 승현은 은우의 옆자리를 차지했고, 승현과 마주 본 자리가 승겸의 자리였다.

일단 식사가 시작되니 대화도 사라지며 음식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은우는 약 때문에 식욕이란 전혀 없는 상태에서 긴장까지 하니 더욱더 입안에 음식을 떠넘긴다는 것이 부담스러워서 느릿하게 젓가락을 움직였다. 은우의 그릇에 담긴 음식이 처음과 별다르지 않게 줄어들지 않았다.

은우 맞은편에 앉은 승현의 어머니가 거의 비워지지 않는 은우의 그릇을 힐끗거리더니 걱정스러운 억양으로 은우를 응시했다.

“어머… 입에 안 맞아요?”

은우는 고개를 퍼뜩 들어 흐릿한 미소를 지었다.

“아, 아뇨. 이사장님! 전부 다 맛있습니다. 하나같이 다 제가 좋아하는 것들이에요. 이렇게 차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승현의 어머니가 화답으로 미소를 지었지만, 걱정의 말투는 여전했다.

“그런데… 잘… 못 먹는 거 같아서. 입맛에 안 맞으면 억지로 먹을 필요 없는데….”

“죄송합니다. 그냥… 제가….”

은우가 죄송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며 소리를 낮췄다. 은우를 아니꼬운 표정으로 승겸은 쳐다보았다.

“그냥 제가…….”

약의 부작용 때문에요, 라고 입을 열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며 변명을 늘어놓기도 전에 승현이 대뜸 말을 끼어들었다.

“우리 형 밥 되게 조금 먹는다고. 이렇게 많이 주면 다 못 먹어. 내가 저번에 형 밥 먹는 거 봤는데, 진짜 개똥만큼 먹어.”

심각하게 무거워질 법한 분위기가 승현의 농담에 풀렸다. 그러면서 승현은 보란 듯이 은우의 밥그릇에서 밥을 절반 이상 퍼서 제 밥그릇에 옮겼다.

“너는 밥 먹는데 말이 그게 뭐니.”

맞은편에 앉은 승현의 어머니가 못 말린다는 듯이 승현을 나무라며 어색하게 웃음을 은우에게 던졌다. 은우는 이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꼭 버퍼링에 걸린 것처럼 버벅대기 시작했다.

“아… 아, 스, 승현아…. 괜찮아…. 다, 다 먹을 수 있…어.”

자신의 밥그릇에서 숟가락으로 밥을 크게 한 숟가락, 두 숟가락 옮기는 승현의 손을 따라 시선을 옮기면서 은우는 안절부절못하며 좌불안석으로 눈치를 살폈다.

“안 돼요. 먹지도 못하는데 억지로 이거 다 먹고 소화 안 되면 그게 더 큰일이야.”

이제 조용히 상석에서 국그릇에서 국물을 마시던 한 대표도 거들었다.

“그래, 먹을 수 있을 정도만 먹어야지.”

은우는 그제야 민망하다는 듯 옅은 미소를 지으며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덕분에 한풀 경직된 분위기를 내던 은우의 표정이 부드럽게 풀렸다.

딱딱한 식사 자리가 될 뻔했으나, 한 대표도 이사장도 모두 자신에게 잘해 주어 은우는 긴장이 완전히 풀어졌을 때 식사는 끝이 났다. 식사를 마치고 거실로 나왔을 때는 은우네 집에서 보낸 예단이 거실에 가득 쌓여 있었고, 소파 테이블에는 단출한 다과상이 차려져 있었다. 과일과 다과가 아기자기하게 놓여 있었다.

소파에 차례대로 앉아 은우가 향긋한 커피잔을 손에 들며 말했다.

“이렇게 환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 대표도 손에 커피잔을 들며 은우를 향해 미소 지었다.

“아니야, 당연한 거지.”

가식 없는 한 대표의 미소를 보며 은우도 마음이 놓였다. 승현의 어머니는 정성스럽게 보내온 물건들을 하나씩 풀어 보며 “아니, 뭘 이런 걸 다….”라고 중얼거리면서 입가에 미소가 사그라지지 않았다.

다른 꾸러미를 풀었을 때 그녀는 감탄을 늘어놓으며 손뼉을 짝 부딪쳤다. 화가의 그림이었고, 그녀는 그림을 세세하게 관찰했다.

온화하고 화목한 분위기가 사람들 얼굴에 있었다. 딱 한 사람 승겸을 제외하고.

은우는 늘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고 있었기 때문에 승겸이 자신을 향해 노골적으로 적의를 보이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저 자신이 괜한 상처를 받을까 그에게 일부러 시선을 주지 않았다.

그가 무슨 이유에서 자신을 향해 적의를 보이는 건지… 은우는 생각하지 않아도 알았다. 그래서 은우는 더욱 승겸과 마주치지 않고, 될 수 있으면 그의 신경을 거스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괜히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들을 상대한 뒤 상처받는 건 은우 저 자신이었기에.

웃는 얼굴을 보이며 승현의 부모님과 대화를 하는 은우는 일부러라도 아니, 우연이라도 승겸 쪽을 바라보지 않았다.

승현은 그런 승겸이 계속 마음에 들지 않아 자신의 형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눈빛으로 사람을 찔러 죽일 수 있을 것 같은 매서운 눈을 승겸과 부딪치며 치열한 눈싸움 중이었다. 스파크가 파바밧, 튈 정도였다.

예단을 하나하나 풀어 보던 승현의 어머니가 얼굴에 미소를 띤 채 은우의 맞은편 자리에 앉으며 조심스럽게 은우에게 말을 건넸다.

“우리 승현이 어디가 좋아서… 허락한 거예요?”

승현의 부모님도 은우가 소문과 다르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 일말의 의심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그들도 최악의 상황인 파혼을 늘 염두에 두고 있었고,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을 셈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은우를 직접 대하고 대화를 나누고 보니 항간에 떠도는 소문들은 역시 헛소문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느꼈다.

“예?”

은우는 너무 바보처럼 되묻고 말았다. 은우의 반응이 너무 순진해 승현의 어머니가 손으로 입가를 가리고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그녀의 얼굴은 훨씬 편안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니, 이렇게 반듯하고 공부도 잘한다면서요. 승현이는… 옛날부터 필요할 때 말고는 공부하고 담쌓고, 놀기는 엄청나게 놀아서…. 이렇게 두 사람이 극과 극인 성향인 거 같아서, 궁금해서 물어봤어요.”

승현의 어머니는 자신에게 질문해 놓고 내심 대답을 기대하는 표정이었다. 자세를 살짝 고쳐 앉으며 은우 자신의 입술에 시선을 고정하고 몸이 자신에게 살짝 쏠려 있었다. 이번에는 은우가 편안한 웃음을 입을 손으로 가려 웃었다.

뜸을 들이며 고민하는 은우를 두고 승현도 승겸과의 보이지 않는 전쟁을 잠시 휴전 선포를 했다. 퍼뜩 엄마에게 뭘 그런 걸 묻냐고 화를 내려고 했지만, 입가를 가리고 슬쩍 곁눈질로 자신을 살펴보는 은우를 보았다.

승현은 가슴이 출렁거리고 초조해지면서 불안해졌다. 내가 생각하기에 은우가 자신을 좋아하는 이유라고 한다면…….

머릿속에 떠오른 기억은, 모조리… 야한 생각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은우가 자신을 좋아하는 이유는 ‘섹스할 때 지치지 않는 힘’밖에 없었다. 한 번도 은우는 자신에게 맨정신으로는 좋아한다고 말해 주지 않았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승현은 안 되겠다 싶어 소리를 크게 올렸다.

“아니, 엄마…. 그런 걸 왜 물어!”

승현의 어머니가 새침하게 대답했다.

“궁금하잖니.”

은우가 눈동자를 굴리며 서서히 입술을 벌리고 소리를 냈다.

“음… 글쎄요.”

승현은 은우의 입을 가로막으려고 했는데, 은우가 아주 잠깐 고민한 빛을 내며 예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아이 같은 어른이잖아요.”

이제 승현의 두 부모님이 반대로 바보처럼 되물었다.

“예?”

한 대표도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무슨 의미인지 묻는 눈빛이었고, 승현의 어머니도 놀란 얼굴빛이 역력했다. 은우가 수줍게 웃으며 커피잔을 테이블 위에 조심히 내려놓고 말했다.

“그러니까 잘은 표현하지 못하겠지만요. 승현이는… 덩치는 엄청 큰데 아이 같고, 말할 때 가끔 늙은 아저씨 같은데 또 애처럼 조르기도 엄청 조르고, 막무가내로 떼 부리는 것도 많은데요. 근데 무엇보다요…. 승현이는 제가 말하는 건 다 믿어 줬어요. 그래서 승현이는… 제가 믿을 수 있어서요. 그리고….”

말하던 은우는 제법 부끄러운 듯이 눈을 깜박거렸다. 승현만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 주었고 믿어 주었다.

“제가… 승현이에게 의지하는 부분도 좀 많이 크거든요. 그래서 저도… 승현이가 저를 좋아하는 만큼 저도, 승현이 좋아하게 됐어요.”

“아아…….”

부모님은 이내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래서 어른인데 아이 같아요. 그리고 가끔 엄청 귀엽고, 멋있기도 해요. 그러다가도 또 엄청 애늙은이 같은 면도 있고… 정말 철도 없죠.”

은우가 활짝 농담을 하자 두 부모님의 얼굴에 환한 웃음꽃이 만개했다. 은우를 바라보는 승현의 어머니의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제 아들을 좋게 말하는 모습이 싫을 리가 없었다. 그녀의 미소에 은우가 화답하는 미소를 보이다 옆얼굴이 뜨거워서 고개를 무의식적으로 돌렸다.

승현의 뜨거운 시선이 얼굴에 고정되어 있었는데, 부담이 될 정도로 노골적이어서 얼굴에서 웃음이 서서히 사라지더니 미미하게 떨면서 굳어졌다. 승현의 눈이 당장 무슨 일을 칠 것처럼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그 무슨 일은… 말하지 않아도 머릿속으로 생생하게 그려졌다.

“…올해 대학 졸업이라고 하던데, 대학 졸업하면 회사 물려받는 건가?”

한 대표의 눈에도 은우가 꼭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였다.

“아, 아뇨!”

은우는 황급히 승현에게서 시선을 떼어 말을 걸어오는 한 대표에게 집중했다. 지금의 승현은 너무 위험하다고 본능적으로 알아챘다.

“음? 그렇다면?”

의아하게 한 대표는 커피를 한 모금 후루룩 마시더니 되물었다.

“저는 이미 고등학교 때 부모님께 말씀드렸습니다.”

“부모님께?”

한 대표는 느긋하게 은우와 대화를 더 하고 싶은 눈치였는데, 승현은 안절부절못하는 강아지처럼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대화를 빨리 끝내라는 무언의 압박을 넣으며 기다리고 있었다. 은우가 승현의 마음을 어렴풋이 눈치를 챘다.

“회사 경영은 제 친형이 하는 게 맞다고, 저는 경영이나 회사에 손대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후루룩 표정을 커피잔으로 감추는 한 대표는 많은 생각을 하면서 되물었다.

“흐음… 그럼 뭘 할 셈이지?”

은우가 다시 예쁘게 웃었다.

“…대신 저는 하고 싶은 공부 시켜 달라고 했습니다. 회사나 그런 거에 관계없이 자유롭게 공부하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공부?”

은우는 고개를 확고하게 끄덕였다.

“네. 저는 대학원 석, 박사 한 뒤 신약 개발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똑 부러진다고 표현해야 하나, 야무지다고 해야 하나. 한 대표와 이사장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아깝지 않은가? 손에 쥐고 있는 게.”

“음…. 그런 생각도 안 해본 건 아니지만, 제가 욕심낸다고 할 수 있는 게 없더라고요. 차라리 그럴 거면, 형을 응원하고 지지해 주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습니다.”

승겸은 너무 귀가 얇아서 사람에게 잘 휘둘리고, 재목인 승현은 아직 어려 철이 없었는데, 은우를 보니 두 부모님은 어느새 달곰한 꿀이 뚝뚝 떨어지는 눈빛이었다.

“우리 승현이 이번에 학점이… 아주 형편없었는데….”

승현의 어머니가 놀리는 건지 아니면 걱정하는 건지 알쏭달쏭하게 말했다.

방긋 웃는 은우가 미소로 승현을 곁눈질로 살피다가 나빠 봐야 얼마나 나쁘겠나 싶어서 걱정도 없이 웃는 소리로 이사장에게 시선을 던졌다.

“정말요? 얼마나…….”

승현이 손사래를 거세게 치며 끼어들었다.

“아… 엄마! 안 돼! 그거 이사장 직권 남용이야! 아, 은우 형! 뭘 그런 것까지 궁금해해요, 더 이상 궁금해하지 말아요!”

이사장은 눈을 가늘게 뜨면서 승현의 망신살을 주려는 듯 은우에게 승현의 태도를 일러바쳤다.

“글쎄, 학고라고 총장님한테 연락 와서 창피해 죽는 줄 알았어요….”

“……학…고요?”

은우가 천천히 눈을 깜박이며 승현에게 얼굴을 돌렸다. 평생 학고라는 대척점에 선 삶을 살았기에 학고라는 건 전설 같은 존재였는데, 실제로 그걸 받는 사람이 있었다니. 그리고 그걸 받는 사람이 자신의 옆에 앉아 있다니…. 은우는 알면서도 그게 무엇이냐고 묻고 있었다.

이때 기회를 틈틈이 노리던 승겸이 마침 꼴 좋다는 듯이 끼어들었다.

“학점이 올 F면 빵점이라서 학고지, 아마.”

“뭐라는 거야, 아니거든! 하나 D 받은 거 있다!”

순간 승현은 당황한 얼굴이 되었다. 은우의 얼굴이 눈에 띄게 굳어지고 있었다. 은우에게 승현이 아니라고 해명하려는데, 이번에는 한 대표가 다시 끼어들어 들었다.

“그럼 아예 회사에 손을 대지 않을 생각인가?”

굳은 얼굴을 펴고 은우가 한 대표로 시선을 던졌다.

“아, 네. 아마 저는 그럴 생각입니다. 이미 친형이 경영 수업하고 있어서요. 잘하리라 믿고 있습니다. 저는 아마 그렇게 된다면 어머니께서 하시는 문화 재단을 물려받을 생각입니다.”

한 대표는 고개를 끄덕이며 신중한 숨으로 말했다.

“그게 제일 중요하지. 그럼… 기업을 운영하는 집안의 은행 아닌가.”

그러자 승현의 어머니는 이미 은우에게 홀딱 넘어간 건지 덧붙여 말했다.

“맞아. 이사장님 그림 보시는 안목이 너무 탁월하시니, 나중에 우리 재단도 같이 맡아서 하면 되겠네. 나는 이사장님과 그림 보러 다녀야겠네요.”

손뼉을 치며 흐뭇하게 웃는 승현의 어머니가 말하자 승겸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게 변하며 싸늘하고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어머니! 아직… 두 사람 결혼도 안 했습니다.”

그 순간 화기애애했던 분위기가 차갑게 식어 버렸다. 와장창 평화가 깨지며 승겸은 식어 버린 분위기에 찬물을 더욱더 끼얹었다.

“나중에 어떻게 될 줄 알고요. 내일 갑자기 무슨 일이 발생할지도 모릅니다. 섣불리 그런 판단 하시면 안 됩니다.”

노골적으로 싫어하는 승겸의 분위기를 은우가 목도할 수가 없었다. 티가 나지 않게 승겸을 살폈다.

처음부터 자신에게 단 한 번도 호의적이지 않았던 승겸은 근본적으로 어딘가 다른 느낌이었다. 은우는 승겸이 자신의 소문 때문에 싫어하는 거로만 판단해 그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연회장에서 만나는 사람들마다 조롱과 혐오로 자신을 대하는 것과 승겸은 다른 것이었다. 승겸의 눈빛에는 조롱과 혐오가 아니라, 경계심과 분노… 같은 것이었다.

승겸을 쭉 살펴보다 은우는 그와 눈이 마주쳤다. 승겸은 자신과 시선이 마주쳤다는 걸 알고 흠칫하더니 지레 겁에 질린 것처럼 시선을 피해 테이블에 놓인 과일에 손을 뻗었다.

아아… 그런 거구나.

은우는 아주 짧은 찰나의 순간이었는데 승겸의 속내를 알아차렸다. 승겸은 자신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승현을 싫어하고 경계하는 것이었다. 승겸은 지금 불안해하고 있었다.

힘의 원리로 승겸은 지금 보이지 않는 낭떠러지에 매달려 있는 것이었다. 은우는 활짝 웃으며 한 대표를 향했다.

파워 게임.

은우는 자신은 정윤에게 양보했어도 승현이 둘째라는 이유로 첫째인 승겸에게 모두 양보할 필요는 없었다.

“아아, 한 대표님. 이제… 아버님이라 불러야겠지요? 물론, 아직 결혼은 한 게 아니지만요.”

한 대표가 아둔한 사람이 아니라면 지금 한 말이 모를 리가 없었다.

“저는 결혼하면, 말씀드린 대로 제가 경영을 하진 않지만요. 물론 정윤 형을 지지하겠지만, 그때 되면 저는 당연히 제가 승현의 편입니다.”

은우도 노골적으로 승현과 승겸에 대해 입장을 표했다. 형제의 회사 승계를 두고 싸우는 일은 너무 많이 봤고, 들었고, 알고 있었다.

비열하고 얍삽해 보이는 승겸은 승현을 밀어내려면 불법적인 일이라도 서슴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뻐꾸기가 알에서 태어나 둥지의 알을 모두 밀어내 버리듯이, 승현이 아직 힘을 쓰지 못할 때 승겸은 먼저 태어났다는 지위를 이용해 승현의 싹을 자르려 들 것이었다. 바보처럼 당하고만 있을 승현이 아닌 걸 알지만, 은우는 먼저 태어났기에 사회적으로 우선순위에 놓이는 승겸을 견제하려면 그만큼 힘이 있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역시 은우도 변 회장의 아들이었다.

“흠흠…….”

눈을 갸름하게 한 한 대표는 은우와 승현을 살피다가 힐끗 눈동자를 굴려 승겸의 반응을 살폈다.

승겸은 괜스레 과일을 집던 손이 멈춰 버리고 어깨를 위로 들썩이다 노골적으로 불쾌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한 대표는 은우의 말에 숨겨진 의미를 알았지만, 승겸은 은우의 속뜻을 읽지 못해 그저 불편한 기색을 보였을 뿐이었다.

한 대표는 은우의 던진 말에 내심 혀를 내둘렀다. 역시……. 그 일품 그룹 변 회장이 후계로 삼고 싶어 할 법했다고 여겼다. 은우는 자신에게서 승겸의 입지를 더욱 좁히고 승현의 입지를 키웠다.

그렇다고 대놓고 승현을 키워 줄 한 대표는 아니었지만, 은우에게 보기 좋게 자신의 패를 보여 줘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한 대표와 은우, 그리고 승겸이 미묘한 파워 게임을 밀고 당겼는데 승현은 지금 세 사람 사이의 미묘한 텐션과 분위기에는 관심도 없다는 듯 소리를 냈다.

“그럼 이제… 그만 다 떠들었지?”

승현은 들썩이는 엉덩이를 풀썩풀썩하며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은우의 팔을 잡아 일으키며 가족을 내려다봤다.

“스, 승현아?”

대화는 끊어지고, 한순간에 끊어져 버린 긴장의 실에 은우가 엉거주춤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인석아……!”

한 대표도 풀어진 얼굴로 승현을 나무랐다.

“아…! 이제 그만하고, 은우 형 내 방 구경시켜 주러 가도 괜찮지? 오늘 형 우리 집 처음 왔잖아. 거기다 내 방도 처음이고.”

그러더니 은우의 팔을 잡고 승현이 힘세게 잡아당겼다.

“자, 잠깐만…. 승현아.”

은우가 질질 끌려가며 한 대표에게 애매한 미소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승현이 2층으로 향하는 계단에 진입하기 전에 획 몸을 돌렸다.

“방해하지 마!”

씩 웃는 승현의 웃음은 음흉해 보이기도 했는데, 은우가 화르륵 불타는 듯이 빨갛게 되며 승현의 팔을 뿌리쳤다.

승현은 씩- 웃는 얼굴로 센 힘을 은우에게 자랑하며 2층 계단을 성큼성큼 올라갔다. 친절하게 여기는 무슨 방이고, 여기는 뭐고 하는 설명 따위는 없었다. 승현은 자신의 방문을 벌컥 열었다.

“야… 갑자기 왜 그래…. 대화 중인데, 무슨 짓이야…. 팔 아파.”

승현은 방에 들어오자 손을 놓아주었고, 은우는 승현이 잡아끌었던 팔을 슥슥 문질렀다.

“하, 참 나. 이제 ‘야’래.”

흥분에 낮게 웃는 승현의 목소리에 은우가 반응했다.

“어?”

“내숭 떠는 것 봐. 맨날 나 부를 때 ‘야’라고 부르는 게 99퍼센트면서, 아까 우리 엄마 아빠 앞에서는 ‘승현아’래. 이러면 꼴리잖아. 예뻐서.”

방을 구경시켜 주겠다고 해놓고 은우는 방을 구경하기도 전에 뒷걸음질로 물러났다.

“…미, 미쳤어?”

“이렇게 예쁘면… 나 좀 곤란하지.”

승현은 슬금슬금 은우에게 다가가며 속삭였다.

“아니, 형…. 나는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요?”

“무슨… 걱정……?”

물러서는 은우를 확 잡아당긴 승현은 귓가에 숨소리 가득하게 소곤거렸다.

“…아까 우리 엄마가 나를 좋아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왜, 왜 그래에…. 이것 좀… 놔….”

빨개진 양 볼이 수줍게 빛나고 있었다.

“형이 나를 좋아하는 이유가 내 물건만 좋다고 할까 봐.”

“야! 미…. 생, 생각이… 없…어?”

순식간에 딸기처럼 익은 얼굴이 된 은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뒤로 슬금슬금 밀려난 은우는 어느새 구석으로 몰렸다. 승현은 확 재킷을 벗고 셔츠 단추를 툭툭 풀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는 은우는 그가 너무 위협적으로 보였다.

“…왜, 왜 옷을 버… 벗고 그래…!”

시선을 어디에다 둬야 할지 모르는 은우가 어색하게 방을 둘러봤다. 그러고 보니 승현이 자기 방에 야한 거 많다고 했던 말이 왜 지금 생각이 나는지, 더더욱 홍옥처럼 되더니 목과 귀까지 불그레해졌다.

“방 구경…시켜 준…다며.”

“아, 그건 핑계! 본 목적은 형이랑 내 방에서 떡 치려고. 내 방은 처음이잖아요.”

은우는 이 상황을 어떻게든 모면하려고 승현을 막아섰다.

“너… 드디어 미…친 거야? 아래층에 부모님 다 계신데? 제정신….”

어느새 남자로 변한 승현은 위협적으로 말했다.

“가만히 있어요.”

“진짜… 너 왜 그래….”

승현은 이제 말로 하기를 멈추고 은우의 손목을 잡더니 꿈틀대며 단단해지는 자신의 성기로 가져가 만지며 말했다.

“형이 이렇게 만들었잖아요!”

“내가 언제! 너, 너……!”

화들짝 놀란 은우가 손을 황급하게 떼려고 했는데, 승현은 더더욱 못된 사악한 웃음을 지으며 속삭였다.

“이거 빨아 주면… 내가 형을 안 벗길 텐데, 어떻게 할래요?”

“시, 싫어…….”

“그건 선택지에 없어요. 선택지는 첫 번째, 빨아 준다. 두 번째, 내가 형을 벗겨 녹여 먹는다. 세 번째…. 음, 형이 나를 잡아먹는다? 아, 세 번째 선택지는 좀 좋은 거 같은데.”

“그게 뭐야…. 그런 게 어디 있어!”

손가락을 접으며 말하던 승현은 막무가내로 씩 웃었다.

“어디 있긴, 여기 있지. 그런데 형이 그것도 다 싫다면 내가 좋아하는 선택지 뽑을게요.”

승현은 그러면서 은우를 두 팔로 끌어안아 품에 가두며 은우의 엉덩이를 양손을 뻗어 꽉 잡아 주무르기 시작했다. 포악한 야만인의 손에 농락당하는 은우가 발버둥을 쳤다.

“야아아!! 너, 하지… 마…!”

“형, 지금 빠르게 내가 생각해 봤는데요. 난 첫 번째가 좋은데, 어쩔 수 없으니까 선택한다면 두 번째를 골라서 내가 형을 벗겨서 맛있게 녹여 먹는다. 이거 할래요.”

“승현아…….”

“그럼 빨아 주면 인내심을 다해 참아 볼게요. 난 사실 내 방에서 진심으로 섹스하고 싶은데.”

“머릿속에 든 게 그런 거밖에 없지!”

“맞아요. 형만 보면 그런 생각뿐이에요. 아직 혈기왕성이니까.”

승현은 늘 진심이어서 은우는 눈동자가 흔들렸다. 입술을 지그시 깨물어 승현을 올려다봤는데, 눈빛이 이 순간에도 한없이 진지했다.

“난 형이 내 거 물고 있는 거 상상만 하면 미칠 거 같아요. 응? 형….”

“…지, 진짜지? 더… 안 할 거지?”

도망가는 방법도 없었고, 선택할 길도 없었다. 은우는 불쌍한 처지를 위로하며 야만인의 손에 놀아났다. 파르르 떠는 눈빛으로 승현을 응시했는데, 그 눈빛을 승현은 알아차리고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천천히 은우는 승현의 앞에서 허리를 내리고 상체를 숙였다. 작고 가는 손을 뻗어 승현의 앞섶으로 뻗었다.

지이익.

바지 버클을 잡아 내리니 소리가 났다. 승현이 말한 대로 발기한 성기는 꿈틀거리며 점점 더 단단해지는 것이 보였다. 은우는 눈을 이리저리 굴려 어떻게 해야 하나 싶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자신이 나서서 그의 성기를 빤다는 것이… 은우는 꼭 문란하게 느껴졌다.

느릿하게 입술을 동그랗게 벌린 은우는 얼굴 앞에 꼿꼿하게 고개를 든 커다란 성기를 입술로 가볍게 물어 입에 담았다. 혀에 닿는 매끈한 표피에서 느껴지는 열기가 묘했다. 혀를 굴려 귀두를 살살 쓰다듬으며 핥았다. 힘을 바르는 모양새로 은우는 입안에 고인 침으로 승현의 성기를 핥았다.

“후우…….”

승현은 아랫배에서 시큰한 감각과 뜨거운 열기가 달궈져 입 밖으로 길게 뿜어 식혔다. 식은 피는 아랫배로 쏠려 불끈거리는 기분에 휘말렸다.

예쁜 은우가 무릎을 꿇고 앉아 성기를 핥는 모습은 꿈에서나 그렸던 그림이었다. 은우 기절해 몰래 했을 때와는 차원이 다르다고 말하고 있었다.

승현은 꿈을 꾸는 것보다 훨씬 진한 쾌감이 몰려왔다. 눈을 아래로 내리깔며 은우의 동그란 머리통을 쓰다듬었다.

“으음…. 하아.”

은우는 잠시 숨을 고르고 싶어 성기에서 입술을 떼어냈다. 성기를 핥는다는 행위로 양 볼이 부끄러움으로 달아오른 은우는 얼굴에 있는 모세혈관이 팽창해 혈색으로 물들었다.

크게 숨을 후읍, 들이마신 은우는 다시 혀를 삐쭉 내밀어 선단을 사탕 빨듯이 쬽, 줍- 빨았고, 작은 손을 들어 커다란 성기 기둥을 가볍게 감싸 쥐었다.

동그란 머리를 쓰다듬는 승현의 손이 미약한 힘을 주어 성기를 입안에 깊게 닿기를 원하는 듯해서 은우는 머리가 이리저리 움칫 움직이다가 성기를 목구멍 깊숙하게 밀어 넣었다. 숨이 막힐 것만 같은데 이상한 쾌감이 몰려왔다. 은우는 숙 빼내며 숨을 헉헉 쉬다 깊숙하게 수욱, 밀어 넣는 것을 멈추지 못했다.

“읏… 형, 기분 좋아. 하아….”

승현의 입에서 낮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 그의 신음이… 액체가 되어 은우의 전신으로 흘러내렸다. 간혹 이렇게 승현이 흥분에 욕을 내뱉기라도 한다면… 그가 섹시하게 다가왔다.

물론 승현에게 직접적으로 그렇다고 말로 표현하지 않았다. 대신 은우는 혀를 이용해 그가 더욱더 좋아할 만하게 귀두목을 빙글빙글 돌렸고, 입술로 귀두를 오물거려 자극했다. 입가에 고인 침이 입술과 성기를 타고 흘렀다.

“하아, 하아….”

은우가 숨이 차서 숨을 몰아쉬었다.

승현은 불끈거리는 성기를 은우의 입안에 흔들고 박고 싶은 욕구가 차올랐다. 하지만 은우가 거북해하고 싫어할까 봐 꾹 눌러 참았다. 은우가 꼼꼼하게 혀로 성기 구석구석에 입을 맞추며 핥는 모양새가 틈이 없는 성격이 드러났다.

음란하게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는 은우가 예뻐 보려 턱을 가볍게 잡아 은우를 들어 올렸다. 저항하지 않는 은우가 따라 올라와 승현은 그의 입술에 얼굴을 가까이해 키스했다.

“…형, 예쁜 거 알죠?”

“뭐가… 그렇게 또….”

은우도 양 볼을 붙잡은 승현의 손등을 위에서 겹쳐 잡았다.

뜨거워진 숨이 서로에게 끼쳤다.

은우의 붉어진 입술이 움직이는 것이 볼수록 승현은 신기했다. 자신의 눈에 인형같이 보이는데, 은우는 살아 있는 사람이어서 움직이는 게 신기했다.

“빠는 인형이잖아요. 형, 인형처럼 예뻐 가지고.”

“뭐라…고?”

인형 취급하는 게 마음에 안 들어 은우가 눈을 도끼눈을 뜨고 승현을 노려봤다. 하지만 서글서글하게 웃는 승현의 큰 눈이 휘어져 붉은 입술에 뽀뽀하며 자신의 어깨를 눌렀다. 정말 그의 손에 놀아나는 인형처럼 몸이 움직여졌다.

“이제 다시 빨아 줘요, 형.”

흥건하게 젖은 발기한 성기를 승현이 은우의 얼굴에 가까이 들이 대자 고개를 돌리려던 은우는 피할 길이 없었다.

“진짜 너…….”

“알았으니까, 나 지금 진짜 허리 놀리고 싶은 거 참고 있는데.”

벗어날 길도 없었고, 속내로 벗어나기도 싫었던 은우는 흔들리는 눈으로 승현의 성기를 입안에 크게 담았다. 혀를 세워 귀두의 갈라진 틈으로 혀끝을 세워 자극했다. 서서히 성기의 뿌리 부분부터 길게 혀를 세워 쓸어 올렸다가 귀두를 입술로 오물거리고 다시 입천장을 이용해 귀두를 긁었다.

“흐읏, 형…. 조금만 참아 봐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진 승현은 은우의 뒷머리를 잡아 강하게 누르더니 허리를 뭉근하게 놀리기 시작했다.

“으읍……!”

은우가 양손을 승현의 허벅다리에 얹어 밀어냈지만, 승현은 허리를 천천히 앞뒤로 움직였다. 자신의 매끈한 볼살을 귀두로 쿡쿡 찌르다가 다시 입천장을 긁었고, 그러다 승현은 목구멍을 벌려 길게 밀어 넣었다가 뺐다.

“후우, 으읏!”

승현은 세차게 허리를 쉬지 않고 움직였다. 그러다 결국 은우의 입안에 사정했다.

“으음!”

아몬드 모양의 눈이 움찔했다. 입안에 뿌려지는 점액질이 입천장과 볼 안쪽에 닿았다.

“…켁! 콜록, 콜록.”

눈물이 찔끔 난 은우가 어디서부터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손을 당황해 멈췄다. 승현이 무자비하게 쑤셔 댔던 목구멍도 따끔거렸고, 입안에 미끈하며 묘한 맛을 내는 정액이 흘렀다. 그와 동시에 눈물도 한 방울 주룩 흘렸다.

“괜찮아요?”

“…콜록. 너… 같으면… 괜, 찮겠…냐! 콜록!”

승현은 티슈를 몇 장 뽑아 와서 은우의 턱에 흐르는 하얀 정액을 닦아 주었다.

“뱉어요.”

“응.”

하얀 티슈에 은우가 침과 함께 사정한 분비물을 뱉어냈다.

“다 됐어요?”

“하아…….”

한숨을 내쉬며 은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왠지 섹스한 것처럼 추욱 바닥에 늘어져 앉았다. 고작 이것뿐이었는데 기진맥진해졌다. 가만히 승현의 손길에 온몸을 내맡겼다. 승현이 행위의 뒤처리를 하는 걸 지켜보았다.

“여기, 이것도 닦아.”

방금 턱에서 흘러 바닥에 떨어진 정액을 손가락으로만 가리켜 승현에게 지시했더니 승현은 금방 티슈를 뽑아 오며 말했다.

“어디요?”

“여기.”

“아아.”

이렇게 보면 말 잘 듣는 강아지 같은데… 싶은 은우는 시키는 대로 바닥을 닦는 승현을 지켜보며 생각했다. 뒤처리가 끝난 건지 승현은 은우를 번쩍 안아 들었다.

“뭐야…. 설마 또 하려고?”

은우가 미심쩍은 표정으로 승현을 노려봤다.

“하고 싶어요? 난 완전 찬성이지.”

“약속했잖아.”

승현의 방에 있는 소파는 창가에 배치된 기역 자 모양의 소파였다. 승현은 창가에 놓인 소파에 은우를 꼭 안은 채 등을 대고 깊게 앉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괜히 약속했어! 아무것도 안 해요. 이렇게 안고 있으려고….”

가만히 승현의 품에 있으면서 은우가 눈을 가늘게 뜨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였다.

“너… 좀 수상한데?”

“뭐지? 형의 그 목소리는, 기대하는 건가? 그 수상한 짓을?”

“하기만 해!”

“수상한 짓이 어떤 건지 알고 그렇게 말해요? 날 뭐로 보고.”

“너니까 미리 얘기하는 거야.”

“이렇게 형이 나에 대해 기대하는 바가 크다면, 기대에 부응해야 하는 것도 인지상정 아닌가요.”

“어떻게 알아들어야 그렇게 알아듣는 거야?”

“열린 마음으로 들으면 형의 속마음이 다 들려요. 꼭 뭔가 해야 할 거 같은데…. 어떡하죠? 약속도 있고, 하고 싶고.”

승현이 자신의 등을 강하게 눌러 끌어안으며 음흉한 미소로 말하기에 은우가 높은 목소리로 반사 작용을 보였다.

“진짜 하지 마! 안 돼! 아래층에 부모님 계시잖아. 그리고 무슨 열린 마음이야. 머릿속에 그런 생각밖에 안 들었지?”

“딩동댕-! 그럼 얌전히 나한테 안겨 있으면 안 할게.”

승현은 늘 자신에게 존댓말을 해준다. 승현의 성격으로 봐서는 존댓말 같은 건 어울리지 않았는데, 꼬박꼬박 존댓말을 썼다.

하지만 간혹, 아주 가끔씩 승현이 존댓말이 아니라 반말을 할 때가 있었다. 그때마다 묘하게 승현의 거친 상남자의 재질이 느껴졌었다.

그래서 승현에게 왜 존댓말을 쓰냐고 묻고 싶었지만 물어서는 안 될 것 같아서 은우는 여태껏 묻지 못했고, 앞으로도 묻지 못할 것 같았다. 언젠가는 말해 주겠지.

아무것도 안 하겠다는 승현에게 안도한 숨을 작게 쉬며 은우는 승현의 가슴에 귀를 대고 창밖을 응시했다. 여름의 해는 길었고, 뜨거운 햇살이 창가로 스며들어 왔지만, 에어컨 바람이 시원해서 여름의 태양도 기분이 좋게만 느껴졌다.

은우는 승현의 체온인지, 태양의 뜨거운 온도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때 승현이 소리를 냈다.

“언제부터 은우 형…. 아까 보니까 빠는 기술이 능숙하게 됐을까. 어디 가서 나 몰래 빨아 봤나?”

“…무슨 소리 하는 거야, 갑자기.”

“그냥……. 계속 형이 빨아 주는 거 생각했거든요.”

“그만 생각해!”

“싫단 말이에요. 오럴 섹스로 내가 알려 주려고 했는데… 보니까 잘하는 거지. 형은 공부도 잘해서 빠는 거 한 번만 보여 줘도 기억하고 응용하는 능력이 대단한 건가? 머리가 좋으면 그런 것도 응용이 돼요?”

대꾸할 가치도 없어서 은우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그래도 형의 오럴 섹스 첫 상대는 나였네요. 그렇죠?”

은우가 가만히 승현에게 기댔던 머리를 들어 그를 향해 눈을 깜박이며 말했다.

“너는 머릿속에 든 생각이 정말 야한 생각밖에 없지?”

눈을 굴리며 승현은 보기에도 못된 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뒷머리를 쓰다듬더니 은우의 귓가에 음흉한 쉭쉭 소리로 속삭였다.

“전에도 말했잖아요. 똑똑한 형이 까먹었을 리도 없고. 형만 보면 불끈불끈한다니까? 형만 이렇게 보고 있으면 야한 말밖에 안 떠올라요.”

“야……!”

은우가 발버둥을 치며 그의 품에서 벗어나려고 했더니 승현은 자신을 놓아주지 않았다.

“형, 도망가면 기대하는 그 어떤 일 할 거예요.”

그 힘을 이기지 못한 은우는 승현을 안았다.

“…여기서는 싫어.”

승현의 귓가에 은우가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승현은 큭큭 작은 소리로 웃었다.

여기서는 싫다. 그러니 다른 곳에서는 괜찮은 거라 멋대로 판단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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