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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장. 페로몬 (21/22)

19장. 페로몬

가을을 지나 겨울로 들어가는 저녁은 해가 짧다. 오후 다섯 시만 되어도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이슥한 저녁, 매일 승현은 은우를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그날 기자의 습격 사건은 정윤의 손에서 처리하다가 변 회장의 귀에 들어가게 되었다. 변 회장은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에 노발대발해서 정윤은 기자에게 손을 쓰는 것보다 아버지를 말리는 데 애를 먹었다. 그래도 지극정성인 승현이 은우의 곁에 있다는 사실이 안도하여 예전처럼 경호원을 붙인다는 둥 소리를 하지 않았다.

변 회장은 당장 그 기자를 상대로 고소를 진행했다. 최고라 불리는 회사의 법무팀이 만사 제쳐두고 소송을 진행했다. 변 회장은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게 하기 위해 본보기로 그 잡지사까지 고소했다.

승현은 변 회장의 일 처리를 보고 혀를 내둘렀다. 아마 자신이 정말 별 볼 일이 없는 사람이었다면 뼈도 못 추리지 않았을까 할 정도로 냉철한 변 회장의 모습에 몸서리를 쳤다.

헤드라이트를 끄면서 승현은 집 앞에서 은우를 내려놓았다. 다른 연인들처럼 이런저런 말을 주고받으며 대문을 열고 들어가는 은우의 손을 붙잡은 채였다.

“자, 형. 꺼내 봐요.”

“응? 아-”

은우는 무슨 말인지 깨닫고 주머니에서 약통을 꺼냈다.

승현에게 허락받은 약의 개수를 넘기지 않으려 은우도 조심했다. 승현은 약이 없으면 불안해하는 은우를 생각해 더 줄이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하루에 열 개 이상을 허락하지 않았다. 사실 용법을 지킨다면 이 열 개도 많은 것이었지만.

“음… 오늘은 일곱 개 먹었네요.”

“응.”

승현는 더 줄이고 싶었지만, 조금씩 천천히 줄여 나가고 있었다.

“잘했어요. 조금씩 더 줄이면 되겠다.”

“…응, 그럼 나 이제 들어간다.”

은우가 커다란 문으로 들어가 사라지려고 하는데 승현이 손을 놓지 않아서 은우는 의아하게 응시하며 잡은 손을 흔들었다.

“이거 놔야 들어가지.”

“…안 들어가면 안 돼? 오늘 외박했으면 좋겠는데.”

“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갑자기, 또 이상한 야한 말 할 거면 빨리 집에 가.”

“이상한 말이라니요! 이제 곧 결혼이 코앞인데… 안 들어가도 되지 않나? 싶은 거죠. 나하고 같이 있으면 안 되냐고.”

또 어린아이가 떼를 쓰는 것처럼 구는 승현이 싫지 않았지만 은우는 고지식하고, 내성적인 데다가, 수줍음이 많았다.

한숨을 푹 쉬며 대꾸도 없이 은우는 몸을 돌려 들어가려고 했는데 강한 힘으로 승현이 박력 있게 몸을 벽으로 밀쳤다. 그러더니 대뜸 거칠게 입술부터 비비며 키스했다.

“흐읍!”

숨을 들이켠 은우는 눈을 질끈 감으며 승현의 허리에 손을 올려 옷자락을 감싸 쥐었다.

승현은 말랑한 입술을 한입에 크게 담아 입술로 잘근거리다가 혀로 질척거리는 소리가 나게 움직였다. 벌어진 은우의 입술 사이로 혀를 얽히게 감았고, 더욱더 깊게 입을 맞추려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이며 입술에 밀착했다.

승현에 비해 머리 크기 하나 정도 작은 은우가 살짝 발꿈치를 들어 승현의 목에 팔을 감았다. 승현은 자신의 얇은 허리를 한 손으로 받쳐 안더니 장난기가 슬금슬금 올라오는지 자신의 혀끝을 이로 작게 깨물면서 나머지 한 손으로는 자신의 엉덩이를 옷 위에서 크게 움켜쥐었다.

“으으…….”

키스하며 막힌 입에서 은우의 말소리는 나오지 않았지만, 엉덩이를 움켜잡는 손길에 은우는 지그시 감았던 눈을 살며시 뜨면서 승현을 밀어냈다. 밀려나기는커녕 승현은 양손으로 노골적인 손짓으로 은우의 엉덩이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야.”

떨어진 입술 사이로 미묘하게 떨리는 목소리가 뿜어져 나왔다. 살짝 겹쳐진 입술 틈새로 은우의 숨결이 스며들어 갔다. 승현은 주무르는 손을 슬쩍 엉덩이골로 향해 움직이며 지분거렸다.

“나 지금 형이랑 물고 빨며 섹스하고 싶은데, 어떡하지?”

“뭐… 뭘 어떡해. 너, 너는 맨날 그런 생, 각밖에 안 하지?”

“맞아요. 형만 보면 맨날 그런 생각밖에 안 들어요.”

“하지 말라고!”

“이걸 어떻게 잡아먹을까, 이걸 어떻게 녹여 먹어야 맛있을까. 이걸 어떻게 벗겨 먹을까, 저렇게 벗겨 먹을까. 아니면 핥아먹을까, 깨물어 먹을까. 혀로 이리저리 굴려서 먹으면 더 맛있겠지, 그런 거 연구하죠. 요즘 나의 최대 관심사라구요.”

화악 은우의 얼굴에 피가 쏠리며 붉어진 얼굴을 숨기지 못해 금방 승현의 가슴에 이마를 기대 숨기며 투덜거렸다.

“내가… 음식이냐?”

이렇게 노골적으로 자극적인 말을 하면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승현은 그 때문에 자꾸만 은우의 귓가에 수치스러운 음담패설을 늘어놓기 일쑤였다.

“형, 그걸 아직도 몰랐어요? 형 솜사탕 같아요. 피부도 보들보들해서 혀로 녹이면 녹을 거 같고. 근데 엉덩이는 쫀득한 치즈 같아요. 말랑말랑해서 쭉 잡아당기면 늘어날 거 같고, 젖꼭지는 사탕 같아, 빠는 맛이 있거든요. 아, 맛있겠다.”

“…뭐야, 그게. 이상해.”

“이상하죠? 저도 이상해요. 근데 맛있어서 자꾸 먹게 되네? 딱 그 노래 같아요. 손이 가요, 손이 가. 그거 누군지 몰라도 형 두고 만든 노래가 아닐까…. 근데 맛본 사람이 전 세계 나밖에 없어서 행복하죠, 나만 아는 맛.”

은우가 그를 상종하면 말려 버리는 탓에 고개를 그의 가슴에 파묻었다.

“아, 그래서 형…. 오늘은 나랑 같이 있으면 좋겠다.”

승현은 은우를 힘 있게 끌어안았다. 그렇게 자신의 하복부를 은우에게 밀착해 닿게 하면 은우가 닿은 성기에 당혹스러운 눈을 빠르게 깜박이며 자신을 올려다본다. 은우의 귀와 목이 빨갛게 달아오르는 게 눈에 보였다.

은우는 닿은 앞섶에서 승현이 반응을 보이기 시작한 성기가 느껴졌다. 요즘 더 시도 때도 없이 자신을 향해 불끈불끈하는 게 곤란한 참인데, 승현은 자신을 더욱 골려 먹을 심산인 건지 귓가에 입술을 바짝 가져가 대며 속삭였다.

“그러니까, 오늘은 새로운 요리법으로 잡아먹고 싶다.”

“야…….”

“형, 형! 지금 얼굴 엄청나게 빨개졌으니까… 꼭 딸기 같다. 딸기에는 휘핑크림 뿌려 먹어야 하는데, 하얀 거 알죠…? 아, 내가 하얀 거 뿌려 줄 수 있는데. 그거… 형, 딸기 먹고 갈래요?”

“너 좀 창피해…. 알아?”

“나 말고 형 더 창피하라고.”

“뭐?”

“딸기에는 연유도 맛있어요. 근데 연유도 하얀색이네요.”

변태처럼 웃는 승현 때문에 더없이 빨갛게 돼서 어쩔 줄 몰라 은우가 고개를 숙였다. 승현은 입술을 축였다.

“내가 이렇게 형이 빨갛게 되는 이유를 알았어요. 형, 지금 상상했죠?”

“아, 아니야! 내, 내가 넌 줄 알아?”

화들짝 놀라는 은우를 보며 콧소리를 낸 승현은 은우를 보며 아랫배에서 묵직한 무언가가 치고 올라오기에 은우의 입술에 다시 입술을 가까이 가져갔다. 은우가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말했다.

“아, 안 돼…. 오늘은.”

눈을 깜박거리는 은우는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고 아래로 떨궈 피했다. 승현은 은우의 목선에 큰 키를 구부려 얼굴을 묻었다.

“알았어요. 참아 볼게. 그럼 오늘 말고 내일 먹는 거로. 대신 내일은 형이 나한테 봉사하는 거로 해요.”

심호흡을 하며 은우를 품에 꼭 안더니 꾹 눌러 참으며 승현은 물러났다.

“아, 그럼 내일 우리… 딥스롯을 해봐요. 그 전에 내일 우리 약속 있는 거 잊으면 안 돼요!”

조금씩 승현은 멀어져 갔다.

“뭐?”

“형한테 오럴 섹스를 가르쳐 주려고 했는데, 저번에 보니까 그건 너무 잘하니까!”

은우가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승현은 멀어졌던 몸을 움직여 한달음에 달려와 입술에 쪽 소리를 내고 물러나더니 세워 둔 차로 가 버렸다. 그리고 냉큼 운전석으로 몸을 숨겼다.

은우만 멀뚱하게 서서 그 모습을 흘겨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급발진하는 승현을 가끔 따라가기 어려워 중얼거렸다.

“하아… 어쩌다 저런 놈한테 걸려서. 아니, 저런 놈을 좋아하는 내가 바보지.”

자신의 이 처지를 떠올리며 어깨가 축 처졌다. 선량한 얼굴을 가진 야만인은 야만인답게 머릿속에 든 것이 야한 것밖에 없다는 걸 깨닫고, 은우는 대문 안으로 들어가기 전 아주 잠깐 멀어지는 승현의 차 후미를 지켜봤다.

은우의 일상은 아침부터 자기 전까지 승현과 함께하는 기분이 들었다. 불과 몇 개월 전 승현이 자신의 주변에 없던 시간이 떠오르지 않았다.

정원의 미관으로 심어 놓은 정원수에서 잎이 떨어지고 차가운 바람이 숭숭 불기 시작했다. 기대하면서도 기대하지 않는 결혼이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었다.

결혼은 1월 중순에 하기로 했다.

승현은 내켜 하지 않는 얼굴로 자신에게 말했다. 정식으로 친구들에게 소개하고 싶다고. 그 자신이 저를 얼마나 배려하는 건지 그때 다시금 느꼈다. 친구들과 만나자고 이야기했을 때 자신이 겁을 냈지만, 곁에 승현이 없는 것도 아니었으니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다.

내일은 그래서 그 승현의 친구들과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

✻  ✻  ✻

다음 날이 되었다. 싸늘한 바람이 옷 사이로 스며들었다. 승현은 약속 장소에 나와 있으면서 걱정하는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원래라면 오늘도 직접 은우를 학교에서 픽업해 와야 직성에 풀리는데, 입이 거칠고 워낙 개망나니 같은 친구들이라 그들의 입단속을 시킬 심산이었다.

약속 장소인 호텔 로비의 카페에 앉은 친구들은 향해 승현이 단단하게 일렀다.

“잘 들어, 귓구멍 활짝 열고, 우리 은우 형 엄청 예민하고, 내성적인 사람이니까. 허튼소리 하면 주둥이 찢는다. 알았어?”

“미친 새끼, 장가간다더니 완전 콩깍지 단단히 쓰였구나.”

여전히 심드렁한 전민은 승현을 보며 나무랐다. 그날 승현의 이마에 소주병이 날아들어 퍼렇게 멍들었던 것은 매우 옅어져 잘 보이지 않았다. 두 사람은 오랜 시간 알고 지낸 탓에 서로의 성격을 알고 있었다. 화해 아닌 화해는 했어도 여전히 둘은 서로를 노려보며 으르렁거렸다.

이 바닥은 의외로 좁다. 그렇기에 절교하는 일이 쉽지 않다. 한 명이라도 자기편을 만들어 놔야 했다.

좁은 세상이기 때문이었기에, 은우를 둘러싼 소문이 빠르게 사그라지지 않고 퍼져 나갈 수 있었다.

승현은 호텔 카페 테이블에 놓인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얼음만 오도독오도독 씹으며 그들에게 주의사항을 설파했다.

“그리고 우리 은우 형 엄청 고상해. 할 줄 아는 욕이 미친놈이 전부니까. 너네 그 더러운 주둥이 간수 잘해라.”

“승현아, 그건 우리 중에 너가 제일 심하지….”

“아, 그런가.”

선우의 조곤조곤한 공격에 승현은 할 말을 잃고 뒷머리를 긁적였다.

“아무튼, 아무튼! 다들 알았어?”

친구들에게 강조하던 승현은 비아냥거리는 전민을 보니 다시 화가 뻗치기에 시종과 선우를 향해 버럭 화를 냈다.

“근데, 씨발. 저 좆만 한 새끼 누가 불렀어?”

“아, 아…. 진짜 좀 그만해. 너네 언제까지 싸울 거야. 초딩도 아니고.”

시종은 전민과 승현 사이를 중재했다. 하지만 승현과 전민은 서로 눈으로 욕을 주고받았다. 그러다 시종이 한숨을 쉬며 화제를 돌리기 위해 승현에게 물었다.

“그래서 그… 은우 형님은 언제 온다고?”

“아…. 오늘 다섯 시에 강의 끝날 거야.”

시계를 보며 승현은 은우의 시간표를 줄줄 꿰고 있다는 듯 말했다. 시계를 보며 곧 수업이 끝난다는 걸 보자 엉덩이가 들썩거렸다.

“어… 은우 형, 오늘 마지막 수업 듣는 교수님 늘 십 분 일찍 끝내 주던데…. 지금쯤 끝났을 거 같다.”

“그럼 곧 도착하겠네.”

친구들 중 누가 말했는지 모르겠지만 그 소리로 인해 승현의 엉덩이는 더욱 날뛰고 있었다.

뜨거운 데에 앉아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는 것처럼 승현은 몸이 들썩들썩하고 시계와 카페 입구만 번갈아 가며 쳐다봤다. 은우를 기다리는 승현은 강의가 끝나지 않았을까, 곧 오겠지. 그러면서도 빨리 왔으면 싶은 이상한 초조한 마음에 잠시라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야, 그렇게 궁금하면 전화를 해.”

선우가 마치 엉덩이에 뿔 난 강아지처럼 구는 승현에게 한 소리 했다.

“그런 거 안 해본 거 아니야. 우리 은우 형 수업 시간에 전화하는 거 존나 싫어해. 빡치면 수신 차단은 기본에 전화 끄고 안 받아. 그리고 도서관에 있을 때 전화하면 입에서 불 뿜어.”

“쯧쯧.”

친구들이 혀를 차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친구들이 보기에는 중증 환자가 따로 없어 보였다.

“그럼 어떻게 만나냐? 전화도 못 하게 하면?”

“어? 그런 건 가서 기다리면 돼.”

학교 앞에서 기다리는… 남자 주인공. 그리고 달려 나오는 여자 주인공. 순정만화에서 볼 법한 장면이 친구들의 머릿속에 그려지자, 그 한승현이 그랬을 생각에 몸서리가 쳐졌다. 그러다 선우가 호기심에 물었다.

“야, 그럼 처음에 어떻게 만났냐? 그때 파티에서 본 게 처음 아니야?”

“아아, 그랬지.”

그제야 승현은 제법 진정하며 말을 하기 시작했다.

“알잖아. 내 이 외모와 재력을 어필해서 못 꼬신 여자와 오메가들이 없었다는 거.”

“…뭐, 그래. 그렇다 치고.”

심드렁하게 앉아 있던 전민도 어느새 관심이 가는지 귀를 기울였다.

“처음엔 돈 좀 써서 뒷조사를 했거든. 근데 뭐가 없더라고, 근데 알고 보니까…. 뭐가 없는 게 맞긴 했지만, 아무튼 그래서 무작정 학교로 찾아갔지. 근데, 은우 형과 만나는 순간 그 생각을 못 했다는 걸 깨달았지.”

“무슨 생각.”

“아… 저 형이 나보다 돈이 더 많아. 돈으로는 안 꼬셔지는구나.”

그러자 전민은 꼴좋다며 박장대소를 했다.

“푸핫…. 미친 똘빡 새끼. 그걸 그때 알았냐?”

나머지 두 친구도 승현을 놀려 대며 배를 부여잡고 웃기 바빴다. 승현은 눈에 힘을 빡 주며 덧붙였다.

“…너네 1,800페이지짜리 하드 커버로 된 전공 서적으로 위협당해 봤냐? 그때, 목숨의 위태로움을 알았다.”

“뭔 소리야?”

승현은 첫 만남 때 강렬한 무기를 떠올렸다. 아주 나중에 돼서 은우의 책장에서 은우가 그 자신을 지키기 위해 무기로 쓸 기세였던 전공 책을 확인했었다. 무려 1,837페이지로 구성된… 엄청나게 묵직한 책이었다. 승현은 다시 시계를 보며 입구로 고개를 고정하고 가만히 있지 못하자 시종이 말했다.

“야, 뭐 해! 정신 차려, 한승현!”

“왜 안 오지? 삼십 분 전에 수업 끝났을 텐데.”

승현은 다시 심각한 표정의 얼굴을 했다.

“설마 또 이상한 기자가 꼬인 거 아니겠지?”

시종은 반 모지리가 된 것 같은 승현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시계를 보여 주며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퇴근 시간에 중심가를 삼십 분 안에 도착하라는 건 무리가 아닐까?”

그렇지만 승현의 영혼은 이미 은우의 곁으로 가 있는 것처럼 이곳에 없었다. 목을 거북이처럼 쭉 빼서 두리번거렸다. 다시 초조해서 테이블에 올려둔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남은 얼음을 입에 털어 넣고 오도독오도독 씹다가 머리를 거칠게 헝클어뜨렸다.

곱게 세팅한 머리카락이 부스스해지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승현은 기대에 찬 얼굴이었다. 친구들에게 은우를 자랑하고 싶기도 했다.

친구들은 승현을 보며 혀를 차더니 제각기 핸드폰을 보며 게임을 하거나 SNS에 열중했다. 묘한 긴장감이 그들을 감쌌다. 승현의 친구들의 눈에도 조금 호기심과 기대하는 눈빛이 있었다. 그래서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그들은 핸드폰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분명 소문으로 알고 있던 그들은 은우와 만나거나 접할 일이 없었다. 하지만 그날 승현에게 걸려온 은우의 목소리와 말투의 느낌은 소문과 전혀 다른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 소문 말고도 일품 그룹의 집안사람은 언제나 소문이 가득했었는데 그런 사람과 독대하는 기회란 있을까 말까 한 자리였다. 긴장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었다. 실제로 만나게 된다니 없던 은우에 대한 궁금증도 생겼다.

그들도 알게 모르게 긴장감을 감춘 채 손에 들린 작은 기계에 더욱 열중했다.

“어…. 왔다!”

긴장한 얼굴을 감추지 않은 승현은 한참을 입구만 뚫어지게 사수하더니 소리를 냈다. 동공이 확대되며 얼굴에 웃음이 피어나 중얼거렸다.

세 친구는 일제히 하던 딴짓을 멈추고 승현의 말에 반응하며 고개를 들었다. 손을 번쩍 들어 승현은 은우를 불렀다. 그의 행동은 영락없는 퇴근 하는 주인에게 꼬리치는 강아지와 같았다.

한편 은우는 수업이 끝나자마자 승현과 약속한 장소로 향했다. 으리으리한 호텔이었다.

사람들이 번잡하게 오가는 입구에서 은우가 매너 있게 실례한다는 눈인사를 하며 카페 안으로 깊숙하게 들어왔다. 그리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손을 세차게 붕붕 흔드는 승현을 발견하고 발걸음을 천천히 옮겼다.

승현의 자리에는 모르는 낯선 사내 세 명이 더 있었기에 은우는 티가 나지 않게 주먹을 말아 쥐었다가 폈다.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승현을 포함해 세 명의 낯선 사람들이 앉은 채로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흠…….”

그들의 시선을 피하지도 못했지만 은우는 어쩐지 참을 만했다. 그중에서 가장 뜨겁게 쳐다보고 있는 게 승현이어서 다행이었다.

은우를 바라보고 있는 승현의 눈에 꿀이 뚝뚝 떨어졌다. 걸어오는 은우가 마치 천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의 주변 모든 것이 다 예뻐 보였다.

걷는 은우의 걸음에서 느껴지는 기품은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유독 여리고 가는 머리카락이 흔들릴 때마다 습관적으로 은우가 자연스럽게 쓸어 넘기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당장 저 가느다란 손가락을 물고 빨고 싶었다.

은우의 손가락과 승현의 손가락에는 투닥투닥거리며 샀던 반지가 똑같은 페어로 반짝거렸다. 승현은 지금, 이 순간 가장 행복한 미소를 지어내고 있었다.

“미안, 많이 기다렸지?”

은우가 승현을 향해 톤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승현은 댕댕은 같은 얼굴을 은우에게 향했다.

“으으응! 아니, 괜찮았어요. 별로 많이 안 기다렸어요.”

승현의 행동에 세 친구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여기서 제일 눈알 빠지게 은우를 기다린 건 승현이었고, 역시 자기가 데리러 갔어야 한다는 둥 구시렁거렸던 것도 승현이었는데, 그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은우에게 살살 순한 웃음을 지어 보이고 있었다.

승현의 친구들이라는 건 은우보다 나이라 어리다는 것을 의미했지만, 은우는 너무나도 반듯하게 허리를 살짝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세 친구들은 가볍게 안녕? 정도를 들을 줄 알았는데 너무도 격식을 갖춘 인사에 그들을 엉거주춤하게 일어나 같이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아, 안녕하세요.”

전화에서 느꼈던 은우의 분위기가 지금 보이는 모습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 적잖이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전화기 너머로 들렸던 목소리와 분위기에서 느껴졌던 다른 점을 지금 절실하게 체감했다. 익히 들었던 소문과 전혀 달랐다.

“형, 빨리 앉아요.”

승현은 은우의 팔을 잡아당겨 옆에 앉혔다. 그리고 한 명 한 명 소개했다.

“형, 이쪽은 최시종. 그, 사홍무혁회사 아들이고. 이쪽은 이선우, 유명한 해외 자동차 부품 만드는 곳 아들이에요. 그리고 쟤는 박전민이라고 하고요. 부모님이 로스쿨 교수예요. 대대로 법조계.”

“아아…….”

은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옅은 미소로 한 명 한 명과 눈을 차분하게 마주치며 다시 인사를 주고받았다. 제법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응시했는데, 승현은 은우의 몸을 돌려 바라보게 하더니 말했다.

“그리고 나는 A&C 그룹 둘째이고, 형이랑 결혼할 사람.”

조금 긴장이 풀리는 은우가 웃음을 감추지 못하며 부드러운 얼굴로 승현을 흘겨봤다.

“아, 뭐야.”

승현 덕분에 안심이 되어 경직되어 굳었던 몸이 풀렸다.

“근데 너는 여기서 뭘 했는데, 머리가 이렇게 엉망이야? 강풍이라도 맞은 거 같아.”

은우가 헝클어진 승현의 머리카락을 세세하게 보며 한 올 한 올 정돈해 주는 손길이 상냥하고 또 부드러웠다.

“그래요? 엉망이 된 줄 몰랐는데.”

승현은 방금까지 은우가 늦게 와서 머리를 쥐어뜯었다고는 말하지 못했다.

가느다란 은우의 손끝이 승현의 이마에 스쳤다. 승현도 가만히 은우의 손길을 받으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정돈이 끝난 은우를 살짝 품에 안은 승현은 친구들에게 돌아보며 당당하게 말했다.

“아, 이쪽은 일품 그룹 둘째 변은우, 알지? 특기와 취미는 공부야.”

“뭐야… 나 놀리는 거지?”

“놀리긴요. 내 자랑이지.”

은우가 밉지 않게 승현을 노려봤다. 승현은 입꼬리를 주욱 찢어 올려 웃었다.

세 친구들은 얼빠진 얼굴을 하고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처음 본 은우의 모습을 본 그들은 말을 잃었을 뿐이었다. 한 번도 어디에서도 본 적도 볼 수도 없던 은우의 모습이 지금 그들 눈앞에 있었다.

은우가 도착하자 다 같이 저녁을 먹기로 했다. 호텔 라운지에 있는 이탈리아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처음에는 가볍게 먹고 헤어질 계획이었다.

주로 친구들과 승현의 대화를 은우는 듣는 입장이었다. 웃는 얼굴로 그들의 대화에서 욕이 절반이 넘는 거친 말이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었다.

설마 싸우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되어 은우는 덜컥 정말 싸우면 말려야 하나 걱정하는데, 금방 웃고 떠드는 것을 보며 싸우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 남몰래 가슴을 쓸어내렸다.

승현의 친구들은 장가간다는 승현을 두고 옛날 과거를 하나씩 꺼내 은우에게 폭로하며 재미있다는 듯이 큭큭 웃어 대기 시작했다. 은우는 처음 듣는 별천지 같은 그들의 모험담에 놀라운 표정으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더니 승현은 그들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씨발놈들, 이제 그만 얘기해!”

막 고등학생 때 몰래 술 먹고 클럽 가서 놀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던 차였는데 은우가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그때 진짜, 학교 교칙이 빡세서…. 한승현 담 넘어 다녔어요. 월담.”

“야, 그때 생각 안 나냐? 왜, 그다음 날 술 너무 많이 먹어서 변기통 붙잡고 살았던 거. 한승현 과거는 이제 시작이지.”

친구들에 의해 드러나는 과거사가 은우는 신기할 따름이었다. 계속 이야기를 듣기만 하고 하지 않는 은우를 향해 시종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시종은 은우의 모습이 소문과 다르다는 걸 알고 궁금증이 솟아났다.

“형은… 학교 다닐 때 뭐 해봤어요?”

“뭘 해봐?”

은우는 이제 타겟이 자신에게 쏠리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친구들에게 되물었다.

“아, 그러니까… 뭐, 예를 들면…. 승현이처럼 서너 명의 애인과 한꺼번에 사귀어 본다든지….”

은우가 부끄러워하며 고개와 눈을 아래로 내리깔며 말했다.

“아… 아니…….”

더욱 친구들은 색다른 은우의 모습에 놀라워서 그의 일탈이 궁금해져 꼬치꼬치 캐묻기 시작했다.

“그럼 학교 수학여행 갔을 때, 숙소 탈출해서 친구들하고 술 같은 거 안 마셔 봤어요? 옆에 온 여학교 애들 안 꼬셔 봤어요? 형은 고백도 많이 받아 봤을 거 같은데….”

은우가 곤란한 눈빛으로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말했다.

“그게… 나는, 수학여행을… 안 가 봤어.”

은우는 창피해져서 얼굴이 빨갛게 되었다.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혼자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본 적도 없었다.

“……예?”

오히려 놀란 새된 목소리로 친구들이 톤이 높아진 목소리로 반문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지 서로 눈빛으로 의견을 구하는 듯했다. 승현은 그 무서운 변 회장의 얼굴을 떠올리니 그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납득했다.

“그럼… 형. 소개팅이나, 헌팅 포차 이런 데 가서 만남을 해봤다든지…? 클럽 같은 데 가서 마음에 드는 사람이랑 부비부비를 해봤다든지?”

그들은 은우의 일탈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할 수 있는 것들을 나열해 봤다.

“클럽이나 포차 이런 데는… 다 술 마시는 데 아니야? 거기는 미성년자 못 들어가잖아.”

그걸 몰라서 묻는 게 아니었는데 누구 하나 말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서로 할 말을 잃어 서로를 쳐다봤다. 그리고 거기에는 승현도 놀란 눈으로 큰 눈만 끔벅끔벅거리며 은우를 쳐다봤다. 알면 알수록 승현도 은우가 놀라웠다. 그중 제일 놀란 얼굴로 전민이 소리를 내며 물었다.

“아니, 그럼 대학은 어떻게 다녔어요? 친구들이랑 술 마시면 다 나오는 얘기들인데, 엠티는요?”

“……그게, 그게.”

은우가 더욱 곤란하게 멋쩍은 미소로 머리를 긁적이더니 민망하다는 듯이 입술을 오므리다가 승현을 힐끗거렸다. 승현의 눈빛도 엄청 궁금하다는 눈빛이어서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친구들과 승현은 은우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궁금해서 은우의 말을 기다렸다.

“나는, 그게… 술을 안 마셔 봤어…. 엠티도… 응, 나는 한, 번도 안 가 봤어….”

은우의 말은 그야말로 그들과는 대척점에 선 인물이라는 것이었다.

“……예?”

설마 대학 졸업을 앞두면서도 술을 안 마셔 봤다는 이야기를 생각도 못 한 얼굴들을 친구들은 했다.

승현은 이해했다는 고갯짓을 보였다. 생각해 보니 지금까지 은우가 술을 먹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은우가 꼬박꼬박 챙겨 먹는 거라고는 ‘억제제’뿐이었다.

친구들의 얼굴은 경악과 놀람으로 물들어 있었다. 자신들과 결이 전혀 다른 인물이었다. 몰래 술 마시고 담배 피우는 일이 예삿일이었던 그들은 은우가 신기했고, 반대로 은우는 그들이 신기했다. 그들은 그러다 보니 은우에 대한 호기심이 폭발했다.

“그럼… 승현이 말고 다른 애인이랑 자 본 적은 있어요? 아…. 맞다 애인 없었다고 했지….”

은우 같은 사람에게는 무엇을 어디까지 조절해서 물어봐야 할지 몰라서 그들은 눈을 깜박거렸다. 아무것도 모르는 은우 앞에서 무슨 말을 해야 적당한지 감이 없었다. 그러다 승현은 심각한 어조로 친구들에게 몸을 기울여 가까이하더니 아주 중대한 사실을 밝혔다.

“은우 형 방에 큰 TV가 있거든? 내가 은우 형 방에 갈 때마다… 난 형이 지금까지 그걸 튼 걸 본 적이 없어.”

“그럼 방에서 뭘 해? 설마… 들어가자마자…?”

음흉한 소리로 야릇하게 승현을 보자 승현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아, 물론, 그렇기도 한데…. 맨날, 형은 방에서 책만 봐.”

“뭐?”

신기한 눈을 한 그들은 은우를 뚫어지게 쳐다보자 은우가 쑥스러운 듯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

“내가 그랬지? 취미와 특기가 공부라고.”

고개를 끄덕이다 선우가 불쑥 은우에게 물었다.

“형, 그러면 야동은 본 적 있어요?”

“…….”

은우가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면서 볼이 붉게 타올랐다. 그가 고개를 완전히 아래로 두고 들 줄 모르는 사람처럼 있자 그 모습에 오히려 화색이 도는 승현이 말했다.

“헐, 있구나…. 그건 또 어떻게 봤네!”

이제 드디어 은우와 대화거리가 생긴 건가 싶어서 이제 야동 이야기를 꺼내려는데 은우가 조금 더 놀리면 이제 울 것 같은 얼굴로 말했다.

“그게… 고등학교 도, 동아리였는데…. 치… 친구들이… 동아리 방에서 보고… 있… 있었는데 내가 모르고 들어갔, 어…. 그래서….”

“아…….”

기운 빠진 소리가 일제히 친구들에게서 흘러나왔다. 사람이 어쩜 저럴 수 있냐고 묻는 눈빛으로 그들은 승현에게 말하는데 승현도 눈빛으로 자신도 모른다고 되받아쳤다.

은우의 뒷조사도 거리낄 것 없이 하고, 불같은 변 회장의 성격을 미루어 보면 지금까지 은우의 행동거지를 짐작했을 때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라 여겼다.

“그러니까, 이제 이 이야기는 그만해. 썩어 빠진 니들하고 급이 다른 인간이야. 보호해 줘야 하는 사람이라고.”

승현이 말렸지만, 친구들의 호기심이 다른 쪽으로 반짝거렸다.

“어? 형, 그럼 동아리 뭐 했어요…? 음… 꽃꽂이 이런 건가?”

그들이 생각하기에 은우에게 어울릴 것 같은 동아리를 떠올린 게 겨우 꽃꽂이였다. 하지만 은우가 옅은 미소로 밝게 말했다.

“나, 나… 좀 성격이 조용하고 내성적이라고 해서…. 좀 고쳐 볼까 하고 밴드부 했었어. 그것도 일 년밖에 못 했지만.”

역시 은우는 반전 있는 남자였다.

“예?”

“응. 처음에는 되게 떨렸고 무서웠었는데, 끝날 때 되니까 섭섭하더라.”

“거기서 뭐 했는데요? 피아노 치고 그런 연주?”

“아니, 나 노래.”

이건 또 다른 쪽으로 튄 내용이라 신선한 충격을 받은 얼굴을 한 그들을 향해 은우는 다시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승현은 번뜩이며 음흉한 말이 떠올라서 그냥 내뱉으려다가 친구들이 있다는 것을 보고 은우의 귓가에 속삭여 은우만 들리게 했다.

“…아아, 그래서 형이 섹스할 때마다 형 신음 소리가 그렇게 예뻤나 봐요. 내 귀에 내지를 때 얼마나 흥분되는지….”

은우는 빨개진 홍조가 귀로 번져 귀까지 붉게 물들어 승현을 노려봤다.

“야…! 그… 그만해.”

웃는 승현을 무시하려 은우는 테이블에 놓인 음식을 앞에 두고 포크로 깨작깨작 찔러 댔다. 승현의 친구들은 먹는 것도 멈추고 멍한 눈으로 두 사람을 바라봤다.

귀에다 뭐라고 중얼거렸기에 은우가 부끄러워하면서도 승현을 밀어내지 못하고 승현에게 안겨 있는 모습은 어느새 부럽기까지 했다.

“저… 궁금한 거 있는데, 하나 더 물어봐도 되나요?”

선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 뭔데?”

“형은 왜 사교계 데뷔 안 했어요? 보통 스물두 살에 한다고 해서 저희 모두 그때 할 생각이거든요.”

껍질이 벗겨진 새우를 오물오물 입에서 씹으며 삼킨 은우가 대답했다.

“아… 나는, 경영권 포기했어. 형한테 모두 양보했거든. 그래서 할 필요가 없었어.”

물컵을 들어 물을 마시던 승현은 자기 집에서 같이 밥을 먹고 승겸을 누르던 은우의 모습을 떠올렸다. 어느새 은우는 반도 못 비운 그릇을 두고 포크를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반 정도 남은 그릇을 자연스럽게 승현에게 슥 밀어 넣었다. 약속 장소에 오기 전 습관적으로 억제제를 먹은 은우는 식욕이 사라져 버렸다.

밥을 다 먹고 자리를 일어나려는데 세 친구 중 누가 말을 꺼냈다.

“우리 이대로 헤어지기 좀 아쉬운데 같이 술 한잔해요. 형, 술 한 번도 안 마셔 봤다면서요. 어때요?”

은우는 눈을 깜박이며 되물었다.

“어?”

은우는 슬쩍 승현에게 시선을 돌렸다. 승현은 자신을 가볍게 안아 주며 말했다.

“내가 옆에 있으니까 괜찮아요. 물론 형이 싫다면, 일어나요.”

“음…….”

아주 잠깐 고민하는 눈으로 은우가 눈동자를 굴렸다. 승현을 위해서라고 생각해 결국은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그렇게 다소 등쌀에 떠밀리듯이 호텔 바에 향했다. 막상 은우는 그곳에 발을 디디니 신기했다. 이것도 처음 경험하는 자리였다.

잔잔한 클래식이 흐르고 사람들의 말소리가 백색소음처럼 바닥에 내려앉았다. 조명은 어두웠지만, 바텐더가 서 있는 긴 바에는 제법 조명이 밝았다. 단정한 바텐더는 하얀 마른행주로 투명한 유리잔과 와인잔을 닦고 있었다. 남녀 커플로 보이는 몇 쌍의 커플이 바에 놓인 높은 스툴에 앉아 술잔을 부딪쳤다.

대체로 술집이나 바는 시끄럽다고 생각했던 은우는 생각보다 조용했고 좀 어두운 카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공기 중에 떠다니는 지울 수 없는 알코올 향은 실험실에서 맡았던 냄새와 다르지 않아 콧잔등을 찡긋거렸다. 생각보다 폭신한 소파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가 은우는 테이블에 몸을 가까이 기댔다. 승현과 친구들은 메뉴판을 보며 고민했다.

“음, 은우 형은 처음 술 마셔 보니…. 주량이 대체 얼마인지도 모르겠다…. 뭘 시켜 줄까.”

승현은 세상에서 제일 신중한 얼굴로 고르고 골랐다. 딱딱한 직원이 검은 동그란 쟁반에 컵과 술을 가지고 왔다. 은우에게는 승현과 친구들과는 다른 것 내려놓았다. 은우가 무엇이냐 물어보기도 전에 승현이 말했다.

“형은 처음이니까 부담 없이 칵테일 시켰어요.”

말만 들었던 칵테일을 신기하게 은우는 쳐다봤다.

“너무 술맛이 안 나면 형도 모르게 과음해서 취할 수 있으니 적당히 씁쓸한 맛이 나는 술을 고르긴 했어요.”

“응.”

은우는 괜히 술을 먹기 두려워 아직 입에 대지 못하는데 친구들이 건배 제의를 했다.

“자, 이렇게 만난 것도 신기한데 건배 한번 해요.”

“아, 응응.”

은우를 제외한 네 사람의 손에 들린 건 온더록스였다. 서로 잔을 부딪치니 짠 청아한 유리 소리가 났다.

“나는 너랑 다른 거네?”

은우가 승현이 손에 쥔 술과 달라서 신기하게 말했다. 자신의 손에 들린 갈색빛 액체에 오렌지 슬라이스와 레몬 슬라이스, 그리고 붉은 체리가 어우러진 칵테일이었는데, 승현은 그냥 얼음이 담긴 갈색빛이었다. 칵테일 이름은 모르겠고, 얼음도 채워져 있어서 시원한 술을 은우는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술을 입술에 가져가 조금 마셨다.

“어때요? 맛있어요?”

궁금해서 승현이 묻자 고개를 한번 끄덕이며 은우가 미소 지었다.

“음……. 생각보다. 분명, 쓰다고 배웠는데.”

혀끝에 남은 향이 오렌지 주스 맛이어서 감칠맛을 맛보았다.

“생각보다 술의 그 에틸 에탄올의 향이 느껴지지 않아. 나는 실험할 때도 별로 그 향기를 안 좋아해서 숨도 안 쉬고 했는데, 이거는… 술이 들어간 과일주스 같아.”

은우는 동그란 눈으로 호기심 깊게 잔을 들여다봤다.

“그래도 도수 높으니까 많이 마시면 취해요.”

“그래?”

“응, 당연하죠.”

다시 홀짝 은우는 입술을 적셨다. 마치 분석하는 눈빛으로 은우가 맛을 보다가 술이 이런 거라면 먹을 만했다는 게 은우의 생각이었다. 그러다 주변을 둘러보며 신기한 눈으로 주변을 구경했다. 이런 곳을 다녀본 적이 없는 은우는 할 줄 아는 게 너무 없었다.

“형, 볼링이나 당구 같은 건 쳐 봤어요?”

신기한 듯 주변을 둘러보기만 하는 은우를 향해 선우가 물었다.

“어?”

은우가 고개를 선우에게 고정했다. 생각해 보니 정말로, 할 줄 아는 게 너무 없었다.

“아니…. 구… 구경은 해본 적… 있어.”

이제 놀랍지도 않은 일이라는 친구들의 반응에 은우가 멋쩍게… 어색한 웃음으로 말했다.

“이, 이상하지…? 그런 것도 할 줄 모르는 게….”

오히려 승현은 더 잘됐다는 표정으로 은우의 기운을 북돋아 주었다.

“뭐 어때요, 지금부터 해보면 되지. 나중에 우리 내기하면 심판 형이 해주면 되겠다. 공평하게.”

“그…래?”

친구들이 웃으면서 그게 공평하게 되겠냐, 은우 형이라면 칼같이 공평할 것 같다는 둥, 서로 논조를 이어 가는 와중에 승현은 은우의 귓가에 가까이 다가가며 작게 속삭여 주었다.

“모든 첫 경험은 나와 함께, 맞죠?”

배 속이 간질거리는 감각으로 은우의 몸과 목이 움츠러들어 휘어지게 웃는 눈으로 승현을 응시했다. 수줍은 미소는 어두운 조명에서도 환하게 반짝거렸다.

은우와 반대로 승현은 굉장히 활동적인 생활을 했다. 모든 걸 몸으로 직접 겪어야 한다는 한 대표는 승현이 철들기 시작할 때부터 거칠게 키웠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생각해 보면 승현은 이제 스무 살이었는데 벌써 요트 운전도 할 수 있었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일 년도 안 됐으면서도 직접 차도 운전한다는 것이 신기했다. 은우는 자기 자신이 조금 특이한 케이스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승현과 그의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은우는 이 호텔 바에 들어오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자신이 모르는 세상 사람들을 구경하는 눈동자가 이리저리 굴렀다. 자신은 나이만 스물네 살일 뿐…. 영락없는 애 같았다.

슬쩍 고개를 돌려 옆에 앉은 승현의 무릎 위에 올려진 커다란 손이 보였다. 은우는 손을 살짝 뻗어 커다란 손을 잡았다. 승현은 놀라거나 당황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꽉 잡아 주었다.

술잔 속에 들어 있는 얼음이 유리잔과 부딪쳐 찰랑 소리가 났다. 은우는 홀짝 마셔 입술을 축였다. 얼음이 녹아 전체적으로 맛이 옅어졌다. 그러다 문득 승현이 마시는 것과 자신이 마시는 것과 같은 건가 묘한 궁금증이 올라왔다.

분명 술이 쓰다고 알고 있었는데, 지금 마시는 건 과일주스 같아서 슬쩍 손을 뻗어 승현의 손에 쥔 잔을 빼앗았다.

“이거… 너랑 나랑 같은 거야? 색은 비슷한데….”

“한번 마셔 볼래요?”

칵테일을 마시던 은우는 술이 이 정도면 먹을 만했다는 착각과 함께 먹어도 술이 안 취하는 거 같아서 호기롭게 먹어 보겠다고 했다.

“……응.”

그리고 입술을 축이며 조금 입안으로 술을 밀어 넣었다.

“……윽!”

아주 소량의 액체가 입술을 지나 혀에 닿는 싸한 알코올의 향기가 역해 뱉지도 못하고 금방 꿀꺽 삼켰더니 식도를 태울 것처럼 뜨거운 감각이 올라왔다.

역한 향기와 맛은 은우가 모두 지식으로 알고 있는 것들이었는데…. 은우는 인상이 저절로 구겨져 놀란 얼굴로 입을 가리며 승현을 응시했다. 역한 냄새가 가시지 않아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으으… 알면서 당했어.”

몸서리가 쳐지는 거 같아 부르르 몸을 떤 은우는 사람이 먹지 못할 것을 먹은 기분이 들어 우웩, 하는 소리를 냈다. 분명 술이 무슨 맛을 낸다는 걸 알았는데….

분명 알고 있었는데…….

이 순간 은우는 자신이 술을 굉장히 잘 먹는 줄 알고 착각했다. 혀에 남은 화끈거리는 맛이 아직도 남은 거 같아서 다시 반쯤 남은 물을 끝까지 마셨다.

“이거, 엄청… 써…. 아, 으, 목이 타는 거 같아. 너무 맛없어.”

아무렇지 않게 술을 마시는 승현과 그의 친구들을 보며 은우는 괴물 보듯이 훑어봤다. 이렇게 쓴지 몰랐던… 위스키의 맛은 최악이었다.

승현의 눈에는 가득 사랑스러움을 담겨 있었다. 찡그리며 구겨진 인상을 펼 줄 모르는 은우의 손에 자신의 잔을 빼 들었다. 승현은 그러면서 은우에게 입가심하라고 테이블에 놓인 포도 한 알을 톡 떼어 은우의 입속으로 넣어 주었다.

“이거 형이 마시는 거에도 들어 있는 거예요.”

우물우물 포도를 씹으며 은우가 되물었다.

“뭐?”

“이것도 위스키로 만든 칵테일이니까.”

“정말?”

고개를 끄덕이는 승현을 보다 은우는 눈을 깜박거리며 호기심 가득하게 칵테일 잔을 들어 다시 입을 축였다.

“그럼 난 계속 칵테일만 마셔야겠다.”

알고 나니 정말 쓴 위스키의 맛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했다. 이렇게까지 분위기가 좋을지 몰랐는데 이들의 분위기는 상당히 좋았다. 경쾌하게 건배하는 소리로 몇 번의 술잔이 부딪쳤다.

시간은 제법 흘러 벌써 밤 열한 시가 되어 갔다. 은우는 벌써 같은 칵테일을 세 잔이나 마셨더니 승현의 말대로 위스키로 만든 칵테일의 도수가 만만치 않았다. 그럼에도 맛있다고 홀짝 마셔버린 은우의 얼굴에는 발그레한 홍조가 떠올랐다.

“나, 화장실…….”

취기가 올라오는 은우가 승현에게 귀띔을 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시야가 뿌연 것이 마치 뇌에서 보는 것과 인식하는 것의 딜레이가 생기는 기분이었다.

아, 이것도 알고 있어.

배웠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은우는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형, 같이 가 줄까요?”

승현은 되물었지만, 은우는 고개를 도리질을 치며 한 발짝 떼었다가 휘청거려 넘어지려고 하자 동물 같은 감각으로 승현은 은우를 부축했다. 결국 은우를 부축하며 승현은 따라나섰다.

“…괜찮아, 나 혼자 갈 수 있어!”

“혼자 갈 수 있는 거 알죠. 근데 내가 형 따라가고 싶어서 그런 거예요.”

부루퉁한 표정으로 휘청이는 은우의 뒤를 쫓는 승현은 은우가 넘어지지 않을까 안절부절못하는 양손이 은우를 보호했다.

화장실 세면대에 양손을 짚고 은우는 거울을 들여다봤다. 분명 정신은 괜찮은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 기분은 취한 것 같았다.

“…형, 괜찮아요?”

옆에서 기대선 승현은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은우를 보고 있었다. 은우가 태연한 미소를 보여 주었다.

“응? 응. 괜찮아… 아마 약… 먹었더니 그래서 더 그런 건가 봐. 처음 술 먹은 데다가… 더 그러네?”

“힘들면 갈까요?”

“아니, 좀 더 이따가. 난 재밌어, 이런 거 처음이라…. 친구들 재밌네.”

“내 친구들이지만 형이 기분 나빠 하지 않아 줘서 고마워요.”

은우가 세면대의 수도꼭지에서 물을 틀어 정신을 차려 보려고 차가운 물로 세수를 했다. 동시에 승현은 핸드타월을 몇 장 뽑아 오더니 물방울이 떨어지는 은우의 얼굴을 세세하게 닦아 주고 머리카락의 물까지 닦아 주며 말했다.

“못돼 처먹은 새끼들이긴 하지만, 재밌죠.”

“어릴 때부터 친구들이야?”

“네, 전민이 새끼랑은 같은 산부인과 출신. 지긋지긋해요.”

은우는 승현이 친구들을 못되게 말하면서도 그들을 신뢰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승현은 씩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다 내 꼬붕들이에요.”

“그게 뭐야.”

큭큭 웃는 은우는 승현의 손길을 받으며 어깨를 들썩이며 웃더니 승현에게 초승달처럼 휘어지는 눈을 하고 올려다봤다.

“너희 같은 걸 두고 물이유취라고 하는 거야.”

은우는 어깨를 한번 으쓱하고 뜻을 가르쳐주지 않은 채 화장실 문을 나섰다.

“물… 뭐라고요? 무슨 말이에요? 그게.”

승현은 쪼르르 은우 뒤를 쫓으며 물어보는데 은우는 대답도 하지 않고 자리로 돌아가 친구들에게 말했다.

“미안, 기다렸지?”

“아니에요. 우린 두 사람이 화장실에서 오래 있을 줄 알았죠.”

익살스럽게 큭큭 웃는 것이 엉큼한 생각을 했다는 게 보였다. 은우는 그들을 흘겨보며 자리에 앉는데 승현은 대뜸 친구들에게 소리를 냈다.

“너네 물이유취라는 말 알아?”

좋은 말인지 나쁜 말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그러자 전민은 마시던 술잔을 내려놓으며 뜬금없는 소리를 한 승현에게 말했다.

“몰라, 신조 욕이냐?”

그들의 반응에 은우만 아는지 큭큭 웃으며 소리를 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점점 취하는 기운에 은우는 처음 겪어 적잖이 당황하고 있었다. 몸이 가만히 있으려고 하는데 몸은 가만히 있지 못했다. 새로운 경험이긴 하지만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경험이어서 은우는 취하지 않은 척하려고 눈에 힘을 주고 앉았지만, 승현에게 완전히 기댄 상태였다.

결국 은우 맞은편에 앉은 시종은 조심스럽게 은우를 보며 말했다.

“야, 근데… 은우 형…. 취한 거 같은데….”

시종 옆에 앉은 선우도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보기에도 그런 것 같은데?”

힘을 준다고 얼굴과 눈에 힘을 준 은우의 얼굴은 부루퉁한 입술로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시종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형, 괜찮아요?”

“…응? 응, 그럼!”

취한 탓인지 풀린 눈으로 한 박자씩 느려진 은우가 괜찮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승현은 은우가 술도 처음 마시는데 이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은우의 팔을 잡고 일어났다.

“어…? 승현아…?”

풀린 은우의 혀가 발음이 꼬였다. 그 모습도 귀여웠지만, 승현은 은우의 짐들을 가방과 핸드폰 책들 소지품을 챙겼다.

“미안, 형이 많이 취한 거 같아서 먼저 일어난다.”

승현은 친구들에게 눈인사를 보냈다.

“어, 어, 그래. 나중에 다시 보자. 그때도 은우 형도 같이 불러.”

친구들의 인사에 은우가 작게 구시렁거렸다.

“나… 괜…찮은데….”

하지만 곧바로 은우는 휘청하며 넘어질 뻔하자 이번에는 테이블의 모든 이가 손을 뻗어 은우를 잡으려고 했지만, 누구보다 승현이 빠르게 은우의 허리를 감아 부축했다.

“가… 간지러, 승현아….”

승현에게 안기는 자세가 익숙해서 은우가 승현의 품에 웃으며 안겨 들였다.

“그럼 간다. 연락할게.”

승현도 매달리는 은우가 익숙했다. 개의치 않은 얼굴로 친구들에게 인사를 했다.

“어, 어… 그래.”

친구들의 얼빠진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은우의 새로운 모습을 오늘 처음 보게 되어 놀라운 날이기도 했다.

은우가 승현에게 거의 매달리다시피 해서 걸었다. 승현은 한쪽 어깨에는 은우의 가방과 은우의 책을 한쪽 어깨에는 은우를 매달고 어두컴컴한 호텔 바를 나왔다.

반질반질한 대리석이 깔린 고급스러운 복도가 길게 뻗어 있었다. 술에 취해 기분이 업된 은우가 헤실헤실 웃으며 복도를 성큼성큼 앞서 걸어가기 시작했고 승현은 은우를 앞에 두고 걱정스러운 얼굴을 한 채 물었다.

“은우 형, 정말 괜찮아요?”

“응, 응…. 아주 쪼오금 취한 거 같아.”

손을 들어 손톱만큼 취했다고 말하는 모습이 엔간히 조금 취한 것 같지 않았다. 평소에는 보여 주지 않을 애교 넘치는 몸짓은 어른스러운 은우를 안다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걸을 수 있겠어요?”

“야! 넌 날 맨날 뭐로 보고. 그럼! 완전 걸을 수 있지! 봐봐!”

똑바로 걷는다고 씩씩하게 걷는 은우가 자꾸 휘청거리며 갈지자로 걸었다. 승현은 은우 뒤를 바짝 따라가다가 몇 번 부축하기를 망설여졌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은우를 마치 목장에서 양몰이를 하듯 은우를 호텔 엘리베이터로 몰았다.

폭신한 카펫이 깔린 엘리베이터는 스펀지를 밟는 기분이었다. 뭔가 푹푹 땅으로 꺼지는 감각은 싫지 않았다.

은우가 보여 주는 모든 게 새로운 모습이라 승현은 뒤에서 은우를 끌어안았다. 오늘 색다른 모습을 많이 보고 들었다. 은우가 말해 주는 과거는 승현에게도 신기했었다. 그래서 오늘 승현은 취할 새도 없이 은우를 관찰했다.

띵-

엘리베이터가 도착 음을 냈다.

“이제 집에 가?”

어딘지도 모르고 은우가 이제 취해서 승현에게 물었다.

“조금 쉬었다가 가야지. 술 먹은 거 회장님이 알면 혼날걸요?”

“아… 아빠 무서운데…. 그럼, 음, 음. 어떡하지? 아! 그럼 형한테 말하자!”

배시시 웃으며 꼼수를 부리는 은우가 귀여웠다.

“그래요. 정윤 형한테 말해요. 그러니까 조금 쉬었다가 가요.”

“응, 응, 그래.”

은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높은 층에서 엘리베이터는 멈췄다. 미리 체크인해 둔 호텔 룸으로 승현은 은우를 또다시 몰아넣었다. 휘청이는 은우는 폭신한 바닥을 걸었다. 복도에도 카펫이 깔려 구두 굽 소리가 나지 않았다.

호텔 방 앞에서 카드키를 꽂아다가 빼며 어두운 방문을 열었다. 호텔의 방문은 상당히 무거워 힘이 들어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높은 층의 호텔 룸답게 도시의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어둠이 깔린 도심은 하늘에 별이 있지 않았다. 모조리 땅에 떨어져 바닥에 별이 내려앉아 움직였다. 차량의 불빛들이 반짝거리며 살아 있는 것처럼 빛났다.

무게감 있는 방문이 스르륵 닫히기 무섭게 승현은 어깨와 손에 들린 은우의 짐을 모두 바닥에 내팽개치고 휘청이는 은우를 벽에 밀치더니 입술을 찾아들었다.

“으음.”

은우도 술에 취해 머리의 이성이 정지된 듯했다. 처음에는 부끄럽게 빼고 그랬을 법인데, 지금은 그런 것도 없이 승현의 키스를 받아냈다. 입술을 헤집고 넘어오는 승현의 혀끝을 은우는 쪽쪽 빨았다. 곧이어 승현의 혀가 날름거리며 여린 은우의 볼살을 훔치고 뜨거운 숨을 불어 넣으면 데워진 은우의 숨결이 다시 넘어왔다.

불도 켜지 않은 방은 조명이 필요가 없었다. 창문 아래에서 반짝이는 별들이 조명이 되었다.

은우의 눈동자가 반쯤 감긴 채로 어스름한 조명에 반짝거렸다.

“형, 졸려요?”

“…음, 조금… 졸려.”

승현은 참을 수가 없어서 은우의 부드럽고 얇은 스웨터를 밑에서부터 끌어 올려 훌렁 벗겨냈다. 그리고 다시 쪽쪽 작은 키스를 하며 말했다.

“그렇지만 나랑 지금 섹스할 수 있겠어요?”

은우가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할래, 할 수 있어. 할 거야. 너랑….”

“그럼 자면 안 돼요. 알았죠? 졸린 거 참아 봐요.”

“응, 참아 볼게…. 승현아, 키스해 줘.”

“알았어, 이리 와요.”

은우의 얇은 턱을 잡고 벽에 고정한 채 승현은 키스를 끈적하게 해주었다. 질척거리며 혀가 얽히는 소리가 호텔 방을 채우기 시작했다.

스웨터 안에 입은 은우의 셔츠를 단추를 위에서부터 톡톡 풀어냈고 동시에 입술을 아래로 미끄러뜨렸다.

“으응…….”

술에 취해 칭얼거리는 은우의 목소리가 울렸다. 은우의 목선과 어깨에서 입을 맞추는 승현은 혀에 매끈한 살결이 감겼다.

아직 오메가의 페로몬은 나지 않았는지만 향긋한 은우의 살냄새가 풍겼다. 몇 개 남지 않은 셔츠의 단추를 잡아 뜯고 싶은 욕구를 누르고 손으로 끝까지 풀어낸 승현은 이제 은우의 바지를 벗기기 시작했다.

“아아, 간지러워….”

머리를 도리질 치는 은우는 승현의 어깨 위로 양손을 올리고 벽에 등을 기댄 채 서 있었다. 기분 좋은 흥분에 가빠지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다가 내뱉는 은우의 가슴이 크게 부풀었다가 줄어들었다. 승현이 입술이 마른 상체로 내려 입을 맞추며 혀로 할짝거렸다.

혀가 한 번씩, 그리고 입술을 스칠 때마다 은우는 흠칫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승현이 은우의 고운 복숭아색을 가진 젖꼭지를 크게 입술로 물었다.

은우는 등을 꼿꼿하게 세우고 젖꼭지를 빠는 승현의 머리를 감싸 안으며 그의 머리카락을 둥글게 말아 쥐었다.

“하아, 응…. 승, 현아…. 그거… 좋아….”

오늘따라 빠른 반응을 보이며 거부하지 않는 은우의 귓가에 승현은 진한 남자의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더 빨아 줄까?”

“…응. 더, 더 해줘. 많이 해줘.”

은우의 입술에 뽀뽀를 내리찍으며 승현은 야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나도 내 옷 벗겨 줘요. 그럼 내가 기분이 더 좋을 때까지 빨아 줄게.”

“응.”

은우가 손을 뻗어 승현의 재킷을 벗겼다. 툭, 작은 먼지와 함께 승현의 향수의 향기가 풀썩거림으로 피어올랐다. 아니, 향수가 아니라 승현의 페로몬이었다. 기분 좋게 달아오르는 향기. 두툼한 승현의 라운드 티셔츠를 허리에서부터 끌어 올렸다.

승현은 은우를 도와 옷을 벗었다. 속에 입은 하얀 티셔츠가 드러나자 은우는 손을 뻗어 남은 하얀 티셔츠도 돌돌 말아 올려 벗겨냈다. 은우의 얼굴이 재밌다는 듯이 웃고 있었다.

작고 가는 손가락이 승현의 골반에 걸친 벨트도 툭 풀었고, 바지의 단추도 풀어 지퍼를 지이익 내리더니 은우는 고개를 들어 승현을 올려다보았다.

“다 됐다.”

웃는 얼굴로 승현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승현은 은우의 등을 살며시 벽에 밀쳐 놓고 성대를 그릉그릉 울렸다.

“어떻게 빨아 줄까요?”

“…음, 혀로, 핥아 주면서….”

“지금까지 빨아 줄 때 그게 제일 좋았어요?”

“응.”

고개를 끄덕이는 은우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승현은 얼굴을 다시 은우의 젖꼭지에 가서 닿게 했다. 은우가 원하는 대로 혀로 길게 핥으며 젖꼭지를 핥아 올렸다. 그리고 둥글게 유륜을 혀로 쓰다듬었고 다시 혀로 길게 핥아 침이 잔뜩 묻게 했다. 한 번씩 쪽쪽 입안에 담아 빨다가 혀로 핥았다가 희롱하며 빙글빙글 솟은 돌기로 장난쳤다.

“으으… 응, 너무… 좋아. 아아….”

쪽쪽 빠는 자극적인 소리를 만들어내는 승현은 은우의 속옷까지 끌어 내려 동그란 엉덩이를 잡아 가볍게 들어 올렸다. 가벼운 몸은 쉽게 들려 자신에게 매달렸다.

은우는 흥분에 발가락이 오므려졌다가 펴지며 신음을 흘렸다. 승현의 목에 매달린 은우는 발꿈치를 가볍게 들어 그의 허리에 감아 승현이 이동하는 대로 따라 움직였다. 성큼성큼 걸어가면서 허리를 구부린 승현은 소리를 내며 빠는 젖꼭지에서 입술을 떼지 않았다.

나른하게 술과 흥분에 취한 은우는 본능에 침잠해 승현의 등을 길게 쓰다듬었다. 그리고 입술과 혀로 애무하는 승현을 느끼고 어깨를 들썩거리며 큭큭 웃었다.

“좋아?”

승현이 묻자 나긋한 은우의 성대가 반응했다.

“응… 좋아. 근데 좀… 창피해….”

“……괜찮아.”

“응.”

승현은 이를 세워 진득하게 빨아 당기던 젖꼭지를 괴롭히면서 잘근잘근 씹었다. 그러자 은우의 교성이 입안에서 구르는 소리가 들렸다. 달뜬 신음을 들으며 승현은 푹신한 침대 위에 은우를 눕혀 몸 위를 점령했다.

흥분에 무릎을 모으고 비비는 은우의 다리를 벌리게 하며 한 손에 잡히는 작은 페니스를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우웅… 응…!”

직접적으로 성기에 강하는 자극에 은우의 몸이 비틀어졌다. 하지만 그건 승현을 거부하는 몸짓이 아니었다.

승현은 작은 귀두를 살살 손끝으로 비비며 자극하자 성기에서 젖은 체액을 한두 방울 떨구기 시작했다. 젖은 체액을 손가락에 묻힌 승현은 페니스에 전체적으로 펴 바르듯 문지르며 속삭였다.

“여기 만져 주니 좋아요…? 또 어디 만져 줄까요? 좋으면 좋다고 해야지 내가 계속해 주지…. 그렇죠?”

“응… 하아, 으응. 아아…. 안에도 만, 져 줘….”

술과 열에 취한 은우는 귀와 목까지 빨갛게 된 채 다리를 승현 앞에서 더 벌렸다.

“어떻게 만져 줄까요?”

승현은 한쪽 입꼬리를 끌어올려 웃으며 은우의 갈빗대를 쓸어내리다 허리를 손가락으로 어루만졌다.

“하아, 응……. 이걸로… 여기….”

은우는 뜨거워진 손으로 승현의 손을 잡아당겼다. 그리고 벌린 다리 사이로 승현의 손을 밀어 넣고 회음부와 열기를 품은 입구에 가져갔다.

간질거리는 감각이 은우의 내장 속까지 간질거리게 하는 감각이었다. 가느다란 신음을 흘리는 은우는 눈을 깜박거리며 가만히 있는 승현을 의아해서 올려다보았다. 승현은 눈을 가늘게 뜬 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숨을 한 번 훅 들이켠 승현은 냉큼 은우가 벗기지 못한 자신의 속옷을 귀찮다는 손길로 벗어 던져 버렸다.

은은한 야경의 인위적인 별빛이 반짝이는 창가에 빛이 흘러들어 서로의 몸이 빛이 났다.

승현은 은우의 몸 위로 겹쳐 누른 채 손을 아래로 뻗어 구멍에 가져갔다. 그의 손을 기다렸다는 듯이 은우가 흠칫 떨며 단 숨을 내뱉었다.

“아아, 응…. 좋아, 거기….”

“평소에도 예쁘더니 오늘은 더 예쁘네. 속마음을 안 숨겨서 그런가?”

오늘따라 순종적으로 굴고 본능에 충실한 은우가 무엇보다 속마음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있는 그대로의 반응을 숨기지 않았다.

은우는 술기운을 빌려 평소에는 애간장이 다 녹을 때까지 괴롭혀야 하던 말과 행동을 지금은 술술 내뱉으며 했다. 승현은 손으로 회음부를 쓰다듬다가 손가락에 힘을 주어 체내로 파고들었다.

“아아, 안에… 승현아…!”

뜨거운 내벽은 젖어 자신의 두꺼운 손가락을 삼켰다. 손가락 마디를 이용해 넣었다가 빼며 근육을 마찰해 애무하는 승현은 혀로 끌끌거리며 은우의 귓가에 속삭였다.

“벌써 이렇게 젖을 정도로 좋아요? 손가락으로 안쪽 쑤셔 주는 거 기분 좋죠?”

“흐읏…! 응응, 아아, 읏! 더…….”

흥분에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는 은우는 열락에 젖은 눈물을 머금은 채 승현에게 매달렸다. 손가락을 삼킨 내벽의 근육이 요동치면서 손가락을 낭창하게 감싸 쥐며 조였다가 풀었다.

승현은 오메가 성감대를 슥슥 손가락으로 문질러 대기 시작했다.

“으응, 승…현아…. 응! 아- 읏!”

화끈거리는 뜨거움이 은우는 온몸에서 피어났다. 손가락을 따라 심장 뛰는 박동을 은우는 느꼈다. 자지러지게 반응하며 허리가 들썩일 정도로 은우가 흥분하며 작은 페니스에서 투명한 체액이 천막에 빗물이 흐르듯 줄줄 흘렸다.

승현은 무심하게 그의 몸속에서 손가락을 빼냈다. 손가락을 따라 묻어 녹은 점막이 묻어 주르륵 딸려 나왔다.

“형, 벌써 쌌어요?”

“으으… 응…. 그, 게 너가 너무… 좋아서….”

“오늘 왜 이렇게 예쁜 말만 골라 하지? 내가 그러면 형한테 야한 음담패설을 할 수가 없잖아요.”

몸속을 압박하며 헤집어 놓던 이물감에서 해방된 은우가 작은 한숨을 몰아쉬다가 큭큭 웃었다.

“…그래도, 가끔… 그런 말 하는 네가 싫은데, 또 좋아.”

느릿하게 눈꺼풀이 감겼다가 뜨이는 모양새의 은우가 꼭 잠들 거 같아서 승현은 다급하게 은우의 뺨을 가볍게 툭툭 쳤다.

“형… 지금 잠드는 거 아니죠?”

“으… 응? 응……. 아직, 너랑 더 할래. 할 수 있어….”

“알았어요. 그럼 잠깐 일어나 봐요.”

“하아…….”

혹시나 은우가 잠들어 버릴까 봐 승현은 은우의 손을 잡아 일으켜 앉혔다. 그리고 은우의 손을 단단한 자신의 페니스로 가져가 움켜쥐게 하더니 말했다.

“이거 형… 배 속에 넣고 싶죠?”

“으…. 하아…….”

단단하게 발기한 자신의 페니스를 은우가 가느다랗게 덧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번에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 잘하던데, 입으로 하는 거, 그러니까 오늘도 잘 빨아 줘요.”

“또?”

“또라니… 빨아 주는 거 봐서 나도 기분 좋게 해줄 테니까. 해줄 거죠?”

은우는 살살 성기를 쓰다듬으며 미간을 찡그리더니 투덜댔다.

“이거 입에 다 안 들어간다고, 숨도 막히고, 목에 넣으면 아픈데….”

승현은 투덜대는 은우의 목을 끌어당겨 입을 맞추다가 가벼운 힘으로 은우의 목덜미를 눌러 성기에 대며 말했다.

“해줄 수 있죠?”

젖은 눈과 입술로 은우가 눈꺼풀을 깜박거렸다. 그러다 누르는 승현의 힘이 아니라, 은우는 천천히 몸을 아래로 숙여 승현의 하복부로 눈을 내리깐 채 입을 벌려 발기한 승현의 페니스를 삼켰다.

승현은 침대에 한쪽 팔을 뒤로 침대를 물러 몸을 지지했고, 다른 손은 은우의 뒷머리를 쓰다듬었다. 입술이 성기에 닿는 순간 아랫배에 움찔하며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성기에 닿는 입술과 혀에 기분이 좋아 승현은 고개를 뒤로 젖히며 뜨거운 숨과 신음을 뱉었다.

“후우… 으읏.”

승현의 신음 소리는 굉장히 섹시하게 울렸다. 아주 낮은 목소리가 진동해서 은우의 고막을 흔들어놨다. 그래서 은우는 승현의 신음 소리를 듣는 게 좋았다.

그래서 그의 성기를 더욱더 진하게 애무했다. 은우가 먼저 입안에 들어온 귀두에 입술을 비비다가 혀를 내밀어 빙그르르 원을 굴렸다. 그리고 그 선단 끝의 요도의 끝부분을 공략하며 일부러 빨대로 음료를 마시는 것처럼 끝을 빨았다.

천천히 혀를 내밀어 귀두목을 감싸 쥐어 문지르다가 심지가 단단한 뿌리 부분을 혀로 추어올리고 입술로 물어 빨았다.

“읏… 하아.”

흥분으로 젖은 승현의 낮은 신음이 울리자 소름이 돋을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은우는 더더욱 질척한 소리를 만들어내며 성기를 빨기 시작했다. 입술과 혀로 성기 기둥에 피가 쏠려 불거지는 핏줄을 혀로 핥아 올렸다.

다시 깊게 입속 깊숙하게 밀어 넣고 고개를 천천히 움직여 자극을 더 했더니 붉은 입술과 색이 다른 성기가 맞물린 부분에 투명한 침이 고였다.

“하아, 하아…. 승현아.”

은우가 막혔던 숨을 몰아쉬며 승현을 올려다봤다. 승현의 진한 눈동자와 마주쳤더니 은우는 소름이 돋아나며 기분이 좋아졌다.

“…내가 이렇게 빨아, 주면… 조, 좋아?”

은우가 수줍게 물었다.

“그걸 말이라고 물어요? 당연히 좋지, 형도 내가 빨아 주면 좋다며.”

“정말?”

은우는 고개를 끄덕이는 승현의 대답을 보고 나서야 입술을 벌리고 침으로 젖은 성기를 재차 입에 담았다.

승현은 쫀쫀하게 귀두를 조이기 시작하는 목구멍의 조임으로 사정감이 몰려오는 것을 힘주어 참으며 은우의 뒷머리를 쓰다듬었다. 작은 머리통이 힘들면 조금 목구멍에서 뺐다가 다시 밀어 넣어 성기를 조여 빨았다.

느릿하게 은우가 움직이며 자신의 성기를 빠는 모습을 보자니 은우가 한없이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이제 막 성기 기둥을 혀로 살살 어루만지며 핥는 은우의 턱을 잡고 승현을 일으켜 세웠다.

“하아, 하아…….”

입을 크게 벌려 숨을 쉬는 은우의 붉은 입술에 성기를 빠는 행위로 인해 침으로 젖어 턱가로 흐르고 있었다.

“여전히 오늘도 예뻐.”

“하아… 응…….”

젖은 입술을 본능적으로 혀로 훔치는 은우의 모습이 색정적으로 비쳤다. 승현은 은우를 가볍게 뒤로 밀쳤더니 은우가 뒤로 벌러덩 넘어졌다.

순식간에 시야가 빙글 돌며 바뀐 은우가 눈을 깜박거렸다.

“…근데… 너 왜 자꾸 나한테 예쁘다고 해?”

은우의 발음이 술과 몰아쉬는 숨 때문에 뭉개지는 와중에도 굉장히 근엄한 표정으로 승현에게 말했다.

어깨를 큭큭 들썩이며 웃는 승현은 은우의 위로 스윽 올라가며 대답했다.

“예쁘니까.”

“…난! 예쁜 게 아니라구!”

씩씩거리는 은우가 무섭게 혼내는 말투로 미간에 주름이 잡힌 채 화난 목소리를 만들었다.

“나는… 멋있는 거라니까?”

“뭐? 맛있는 거 아니고?”

“장난 아니야! 내가, 내가! 너보다… 형님이거든!”

푸핫, 승현은 웃었다. 술에 취해서 꼬장을 부리는 건지 인상을 구기는 은우를 내려다봤다.

“너, 너… 지금 나 무시했지!”

누가 봐도 은우는 미인형인데, 멋있는 것과는 사뭇 거리가 멀었다. 거기다 자신의 밑에 깔려서 엄청 근엄하고 진지한 표정을 짓는다고 해도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

승현은 그저 사랑스럽다는 표정으로 은우의 허리를 끌어안았는데 은우가 쉽게 목에 팔을 둘러 안겼다. 그것마저도 귀여워서 푸후, 웃음을 참지 못하고 웃었다.

“너… 너, 또 왜 웃어? 지금 나 비웃었지?”

은우가 다시 형님 모드로 말했다.

“아니야, 멋있는 은우 형님.”

목소리의 굵기부터가 다른 승현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마치 어린아이를 달래듯 ‘형님’이라고 불러주며 어르고 달래자 금방 은우가 헤실헤실 웃었다.

“응응, 승현아. 너도 멋있는 거 시켜 줄게. 멋있는 승현아.”

금방 기분이 풀어져 형님이라 불린 게 좋은지 은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맑게 웃었다.

“형님 소리가 좋아요?”

“응, 나… 아까 너무 속상했단 말이야.”

그제야 은우가 폭 안겨서 풀이 죽은 목소리를 냈다.

“왜?”

“나, 나만… 아무것도 할 줄 몰라.”

시무룩해서 속상했다고 털어놓는 것도 딱 어린아이 같아서 승현은 마른 등을 길게 쓰다듬으며 그를 위로해 주었다.

“난 너무 좋았는데요. 우리 형님이 아무것도 할 줄 몰라서.”

“놀리는 거야?”

“아니, 나랑 첫 경험 할 게 많잖아요.”

“…….”

“뭐든 처음을 나랑 하기로 했잖아요? 기억 안 나요?”

은우는 고개를 획획 흔들었다. 가는 머리카락이 승현의 목선에 닿아 부서졌다.

은우는 얼굴을 파묻으며 승현에게서 피어나는 알파의 페로몬을 맡으며 황홀한 감각으로 흥분하기 시작했다.

승현도 킁킁 숨을 들이켰다. 아직도 은우에게서 피어나는 오메가의 페로몬은 없었다. 은우가 오메가로서 페로몬을 완전히 잃을까 걱정이었다. 언제까지 은우에게 오메가의 페로몬이 난다고 속일 수 있을지… 알 수는 없었지만, 할 수만 있다면 은우를 위해 끝까지 숨길 생각이었다.

길게 등을 쓰다듬던 승현의 커다란 손이 은우의 엉덩이를 조물조물 주물렀다. 손길에 반응하며 은우가 몸을 밀착해 매달렸다.

“야…. 형님이라며 내가….”

“그럼 내 엉덩이 만질래요?”

“뭐? 싫어……!”

“그럼 이건 만지게 해줘요. 귀여운 형님 엉덩이.”

“너…….”

은우는 삐친 소리를 내려는데 승현의 손길이 자극적이어서 말문이 턱 막혀 버렸다.

“멋있는 은우 형님, 여기 이렇게 말랑한 건 귀엽죠. 그거 알아요? 형님. 엉덩이가 너무 작아서 한 손에 잡혀요. 거기다 엄청엄청! 말랑거리고… 무엇보다….”

누가 봐도 승현은 놀리는 말투였지만 은우는 그런 판단력이 얇아져 알아차리지 못했다.

“흐읏.”

작은 신음 소리를 낸 은우는 엉덩이 살을 가지고 노는 듯한 승현의 손길에 반응했다. 승현은 침을 꿀꺽 삼키며 입가에 웃음을 머금은 채 귓가에 바람 소리 비슷하게 낮게 속삭였다.

“…무엇보다 이 엉덩이 살이 골반하고 부딪쳐서 출렁이는 게 귀엽고 예뻐. 쫀득쫀득거리죠.”

“…너, 너… 또 놀려!”

귀까지 빨개진 은우가 말을 잃고 얼굴을 손바닥으로 감췄다.

“그럼 이제 멋있는 은우 형님의 귀엽고 예쁜 엉덩이를 내가 좀 예뻐해 줘도 괜찮죠? 이제 내 차례인 거 같은데.”

“…….”

“은우 형님이 늠름한 내 물건을 예뻐해 줬으니까.”

“아아, 아…….”

품에 안고 있는 은우를 침대에 눌러 고정하며 승현은 가는 양다리를 잡아 들어 올려 자신의 앞으로 주르륵 끌어당겼다.

안 그럴 것처럼 보이면서도 은우의 구멍은 벌름거리며 삽입을 기다리고 있는 게 보였다. 단단한 자신의 페니스를 움켜쥐고 은우의 회음부에 귀두를 문지르다가 구멍에 끼워 맞췄다.

“으응……!”

크기가 남다른 승현의 성기가 닿는 감촉에 은우는 몸을 흠칫 떨었다. 승현은 망설임이 없었다. 그렇게 큰 페니스를 은우의 몸속으로 욱여넣었다.

“하악… 앗!”

갑작스럽게 벌어진 근육의 압박감과 꽉 몸속에 들어차는 감각으로 은우는 상체가 들썩거렸다. 게다가 삽입되면서 승현의 성기의 단단한 표면이 자신의 성감대를 압박하며 마찰하게 되어 은우는 고통과 함께 쾌락을 느꼈다.

“아흣… 으으!”

허리를 크게 움직이는 승현은 떠는 은우의 몸을 위에서 눌렀다. 여린 살을 무자비하게 가르며 성기가 깊숙하게 파고들었다.

“하악! 아-! 으윽! 승현…아, 아앗! 갑…자기 너무 기, 깊어…! 하아….”

“괜찮아. 형, 이거 좋아하는 거 맞잖아?”

“하읏…. 응, 그… 그런데… 으응, 조, 조금만…. 응…? 처, 천히… 흐으응.”

애원하는 말에도 불구하고 승현은 허리를 거칠게 퍽퍽 소리가 날 정도로 쳐올리기 시작했다. 은우가 몸속으로 단단한 성기가 들어와 비벼질 적마다 끙끙 앓는 소리를 냈다. 마지 강아지나 고양이 같은 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렇게… 좋아요?”

“하으응! 아앗, 아!”

“후으…….”

방금 은우가 빨아 주면서 사정감을 참았던 승현은 곧 사정할 것 같아서 돌연 허리를 놀리는 것을 멈추더니 숨을 고르게 쉬었다.

“하응, 응…. 승, 승현아… 제발….”

은우의 고개가 옆으로 돌아가 자지러진 신음을 내뱉었다. 허리를 저릿하게 울리는 희열에 모든 걸 승현에게 내맡겼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때였다. 승현의 눈이 크게 뜨였다.

“……은우… 형?”

승현의 목소리가 떨렸다.

“……응?”

헉헉 가는 숨을 쉬는 은우가 허리를 꿈틀거리며 승현을 올려다봤다.

승현은 믿을 수가 없었다. 아주 미약하지만, 은우에게서 피어나는 향기가 있었다.

침대에 누워 나른하게 눈을 지그시 감은 은우가 승현의 움직임을 기다리다가 슬쩍 묘하게 바뀐 승현을 응시했다. 그의 커다랗게 열린 눈동자 흔들리며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승, 현아……?”

알파나 오메가는 자신들이 내뿜은 페로몬이 무슨 향을 내포하고 있는지 맡을 수가 없었다. 은우는 줄곧 자신의 몸에서 오메가의 페로몬이 났다고 생각했다. 은우는… 지금까지 그 페로몬이 나오지 않는다는 걸 몰랐다.

지금 승현은 아직 미약하지만, 환상처럼 황홀한 은우의 오메가 페로몬을 느꼈다. 그가 흘려내는 향기를 맡으려 은우의 몸 가까이 숙여 밀착했다.

“형, 나 안아 줘요.”

할 수만 있다면, 승현은 은우에게서 피어나는 페로몬을 온몸에 묻히고 싶었다.

“응…? 응, 이렇게?”

은우가 손을 뻗어 승현의 근육으로 굴곡진 등을 감싸 안았다.

결국 야만인은 정복하고 말았다.

“형, 안은 팔 놓으면 안 돼요. 놓으면 잠도 안 재우고 밤새 괴롭힐 거니까.”

“으, 응, 아, 알았어….”

등을 감싸 안은 작은 손가락에 힘이 들어간 게 느껴졌다. 승현은 방금과 허리 놀림의 빠르기는 느리지만, 힘있게 은우의 구멍에 파고들었다. 그러면서 길게 성기를 빼면서 다시 밀어 넣기를 반복하며 센 힘으로 내벽에 부풀어 오른 오메가의 성감대를 비벼 댔다.

“으으으! 승현아…! 아악…! 조, 좋아, 응, 응! 하아, 읏! 그거, 제발…!”

승현이 놓지 말라고 해서 은우는 겨우 떠는 손가락이 매달려 있었다. 손끝을 세워 승현의 등에 손톱자국을 냈다.

“형… 어떻게 좋은지 말해 봐요.”

“앗, 하읏! 응!”

은우는 힘겹게 그를 끌어안고 있었고 젖은 눈물이 쾌락의 흔적이 되어 뚝뚝 흘리더니 허벅다리를 발발 떨기 시작했다.

승현은 은우의 페로몬을 맡으면서 믿을 수가 없었다. 은우의 몸에서 피어나는 향기가, 거짓말하는 거 같았다. 기어이, 그의 몸에서 자신은 페로몬을 끄집어냈다.

“씨발… 후우….”

승현은 입에서 욕지거리가 나왔다. 감정이 격해져서 주체가 되지 않았다. 은우의 엉덩이를 꽉 잡아 벌려 더욱더 깊게 성기를 밀어 넣으려고 힘을 주었다.

은우가 아래에 짓눌려 끙끙댔다. 페니스의 단단한 기둥으로 구멍의 부어오른 근육을 문질러 주며 귓가에 속삭였다.

승현은 은우의 페로몬이 품은 향기를 더욱더 끌어내고 싶었다.

“형 내 물건이 크고 단단해서 좋은 거죠? 여기 찔러 주면 좋죠?”

“하아-! 응응…. 그거! 좋…아!”

열에 젖은 은우의 신음 소리가 갈라졌다. 순수하게 대답한 은우는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승현은 씩 웃으면 되받아쳤다.

“나도, 형… 여기 물 많이 흘러서 좋아요. 다른 오메가와 다르게.”

거짓말같이, 농담으로 했던 그 말이 사실이었다.

은우의 향기는 딸기 향을 닮은 새콤한 향이었다. 그조차도, 은우다웠다.

승현은 세차게 허리를 쳐올리니 은우의 고개가 뒤로 젖혀졌다. 입이 동그랗게 벌어져 숨을 토해내는 은우는 당장 숨 쉬는 것도 힘겨워 보였다.

승현이 지독하게 성감대만 문질러 놓으니 은우는 제정신으로 있을 수가 없었다. 절정에 다다른 은우는 빳빳하게 솟은 작은 페니스에서 말간 투명한 액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승현은 딸기에 연유 뿌려 먹는 기분이었다.

페니스를 집어삼키고 있는 내벽은 꿈틀거리다 요동치더니 꽉 조여 사정을 유도했다. 그 감각과 은우의 새콤한 과일 향이 승현을 뒤흔들어 놓아 급격하게 사정감이 휘몰아쳐 아까부터 참고 있던 정액을 뿌려냈다. 배 속에 가득 미끈거리고 점성을 가진 정액이 채워졌다.

잠시 사정 후의 여운을 느끼던 승현은 은우의 몸속에서 빠져나왔다. 두꺼운 페니스를 따라 하얀 정액이 주르륵 흘렀다.

은우는 흠칫하며 엉덩이골로 미끌거리는 정액이 흐르는 간지러운 감각에 소름이 오스스 돋아나며 몸이 완전히 풀어졌다.

“하으응… 으음.”

몸의 열기가 아직 남은 은우가 작게 신음했다.

“좋았어요? 한 번 더 할 건데….”

땀에 젖은 은우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 주는 승현은 다정했다.

“…응, 엄청…. 엄청, 좋았어….”

기어갈 듯한 목소리고 대답하는 은우는 눈을 감실감실거렸다.

하필 은우는 오늘 먹은 칵테일이 40도가 넘는 위스키로 만든 술이었다. 은우는 그걸 다 마셨을 뿐 아니라 석 잔을 마셨고, 거기다 이렇게 뜨거운 섹스까지 하고 나니 기운이 사라지고 있었다.

“아직 형 자면 안 돼요!”

“응… 응…. 안 자…. 나도 더 할… 수 있어….”

하지만 은우는 거의 인사불성이 되어 잠에 빠져들어 가고 있었다.

“안 돼! 그럼 형… 일단 씻겨 줄 테니까 씻고 자요. 아직 자면 안 돼.”

“응, 나 씻고… 싶어. 근데… 나 어떡하지…. 너무 졸려….”

“형은 그냥 가만히 있어요.”

승현은 결국 몸을 일으켜 은우의 팔을 잡아당겼더니 은우가 힘겹게 반은 잠이 들어 자는 상태로 일어났다. 일으킨 몸에 남겨진 승현의 정액이 허벅다리로 주룩 흘렀다.

겨우겨우 승현은 어르고 달래서 은우를 씻겼다. 막 샤워를 끝내고 훈기를 몸에 서 뿜어내며 물기가 떨어지는 은우의 가는 머리카락을 승현은 수건으로 탈탈 털어 주었다.

“개운해요?”

“……응.”

늘어지는 은우를 살살 달래 가며 몸을 닦고 침대에 눕혔다. 이미 반쯤 잠들었던 은우는 침대에 눕자마자 순식간에 잠들어 버렸다. 하얀 시트에 파묻힌 은우를 힐끗거리다 고개를 아래로 내렸다.

새콤한 은우의 딸기 향이 이제 사그라들어 나지 않았다. 하지만 은우에게서 페로몬의 향기가 흘러나온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흥분이 돼서 승현은 심장이 벌렁벌렁거리고 속이 출렁거렸다. 엎드린 은우의 어깨에 입술을 내려 입을 맞추다가 주변을 돌아봤다.

호텔 방은 난잡하게 어지럽혀져 있었다. 옷가지가 널브러진 것이 우리 둘이 들어온 길을 만들어 낸 것처럼 듬성듬성 놓여 있었다.

승현은 샤워 가운을 허리에 동여매고 난장판이 된 바닥에서 옷을 가지런히 정돈하며 널브러진 짐을 주워 방에 갖춰진 소파에 올려놓았다. 어느 정도 짐을 정리하고 승현은 잠든 은우의 곁으로 다가가 허리를 내려 걸터앉았다.

“형……. 우리 한 번 더 하기로 했잖아. 일어나 봐요.”

크고 따뜻한 손을 뻗어 대꾸도 없이 잠든 은우의 머리카락 속에 깊게 찔러 넣고 매만졌다.

“씨발… 내 딸기….”

아쉬운 입맛을 다시는데 은우는 미동도 없이 곤히 잠든 채였다. 그러다 어쩔 수 없이 승현은 벗어 둔 옷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능숙하게 화면을 조작하더니 통화를 눌렀다.

기계의 신호음이 뚜뚜 울리다가 끊어졌다.

-어, 무슨 일이야?

기계 속 너머로 전화를 받은 건 정윤이었다.

“저 승현이에요, 형.”

-어, 그래. 승현아. 이 시간에 무슨 일이야? 나한테 전화도 다 하고?

전화기 너머로 사무실인 듯한 분주한 소리가 들리기에 습관적으로 승현은 시간을 확인했다. 늦은 밤이었다. 정윤은 무슨 일 때문인지 퇴근조차 못 해 회사에 머무르는 듯이 보였다.

“아직 퇴근 안 하셨나 봐요? 바쁘세요?”

-우리들이야 늘 바쁘지, 거기다 연말이잖아…. 그래도 전화받을 정도의 시간은 있다. 무슨 일인데? 또 은우한테 무슨 일 있어?

정윤도 전화 온 김에 감시 한숨을 돌리며 쉬는 듯해 승현은 심각한 일이 아니라고 말하는 말투가 가벼웠다.

“아니, 별건 아니구요. 형.”

승현은 새근새근 잠든 은우의 뒷머리를 쓰다듬으며 전화기를 바짝 귀와 입에 댔다.

“오늘 은우 형이… 술을 한잔 마셨는데 취해서요. 지금 잠들었거든요. 그래서 오늘은 외박할 거 같다고….”

전화기 너머의 정윤이 실소를 터뜨리며 웃었다.

-푸핫! 그게 별일이 아니야?

승현은 웃는 정윤의 얼굴이 그려지는 듯했다.

-그리고 뭐? 술을 마셔? 은우가? 거기다 외박까지? 평소 안 하고 다니는 짓을 다 하고 다니네.

정윤의 목소리는 화를 내는 목소리는 아니었다. 승현은 곯아떨어진 은우의 잠든 얼굴을 매만지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은우가 걸리적거리는지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려 얼굴을 숨겨 버렸다.

-흐음… 그러니까 나보고 너희 둘 총알받이 하라는 거잖아. 그렇지?

“음… 꼭 그런 건 아닌데….”

-아니라고? 우리 아버지한테 전화 안 하고 나한테 전화한 건 나보고 대신 혼나라는 거잖아?

승현은 큭큭 웃었다. 아까 은우가 술에 취해 정윤에게 전화하자고 한 이야기를 할까 말까 고민했다.

“아시면서…….”

승현은 에둘러 표현했지만, 정윤이 콕 집어 요점을 파악하기에 승현은 이실직고했다.

-어째 사고는 맨날 너네 둘이 치고 수습과 뒤처리는 내가 하는 거 같다?

“정윤 형밖에 없으니까요.”

승현의 말을 끝으로 아주 잠깐의 고요함이 흘렀다. 정윤은 나지막하게 물었다.

-그래, 그렇다 치고. 어쩌다가 술도 안 마시는 애가 술을 다 마셨어?

“아아, 오늘 제 친구들 만났거든요. 근데 이것저것 이야기하다가… 은우 형은 해본 게 없더라구요. 그래서… 오늘은 일단 술을 마셔 봤죠.”

-은우…가 좀 그렇게 컸지. 아버지가… 원래도 아무것도 못 하게 하셨어. 그나마 어떤 계기로 그게 더 심해지셨지. 은우가 그러다 사춘기 때 유일하게 했던 반항이 동아리 활동이었는데.

승현은 아까 은우가 말했던 것이 생각나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아까 은우 형이 그 얘기는 했었어요.”

-그래? 그때 하겠다고 했을 때는 말도 마라. 아버지는 은우 학교 안 보내려고 했다. 겨우 사정해서 은우가 일 년만 해보고 싶다고, 해보겠다고 해서 딱 일 년만 약속받고 한 일이었거든.

승현은 그 무서운 변 회장의 얼굴을 떠올리니 왠지 납득이 갔다. 게다가, 그래도 그 변 회장의 고집을 꺾은 은우도 대단해 보였다.

“그래서 형한테 전화했죠. 은우 형이 형한테 전화해서 말하자고 하던데요?”

그 소리에 전화기 너머 정윤은 큭큭 웃었다.

“근데 형. 저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은우 형… 좋아요.”

정윤은 웃음을 멈추고 웃는 말투로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런 게 다 있어요. 저와 은우 형, 둘만의 비밀이랄까….”

-어이구.

정윤은 비아냥거리는 말투였지만, 여전히 부드러운 어조를 보였다. 다시 두 사람은 전화기를 두고 미세한 바람 소리로 웃었다. 다시 잠깐의 정적이 흐르더니 정윤은 목소리가 밉지 않게 흘렸다.

-알았다, 그때도 그랬지만, 영악한 새끼. 아버지한테 점수 잃는 게 싫다, 이거지?

“에이… 설마요. 형이 저보다 훨씬 더 훌륭하시니까요.”

승현은 슬금슬금 은우의 옆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알았어. 그 말 믿어 보지 뭐. 집에 말은 해놓을게. 내일 얌전히 은우 집에 가져다 놔라.

“고마워요. 형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잘 부탁합니다.”

핏, 정윤의 웃는 소리 뒤로 통화는 끊어졌다. 승현은 휴대폰을 내려놓고 은우의 옆으로 파고들어 누웠다. 줄곧 웃음이 나서 승현은 큭큭 웃었다.

“은우 형, 우리 결혼하고 신혼집 생기면… 맨날 이렇게 같이 자는 건가?”

혼자 중얼거린 승현은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은우의 몸을 끌어안았다. 잠결에 작은 투정을 부리면서도 은우는 쉽게 품을 내어주었다.

이제 가시거리에 도달한 결혼식이 다가왔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보내면서 승현은 행복한 삶을 떠올렸다.

워낙 무데뽀로 승현이 밀어붙인 탓도 있지만 두 사람은 집안의 용인 아래에 거의 결혼한 부부와도 같은 생활을 영유하고 있었다.

어딘가 늘 불안한 오메가인 은우와 그 옆에서 해바라기처럼 은우만 바라보는 승현의 모습은 정윤을 포함한 변 회장의 마음마저 녹였다.

듬직한 체격에서 느껴지는 안정감을 주는 승현이라면. 아직 나이로는 어린 승현은 미숙하게 보여도 의외로 냉철한 면이 있어서 승현과 함께라면. 변 회장은 어느 정도 못 본 척 묵인해 주었다.

은우에게 있어서 승현은 새로운 세상과 같은 느낌이었다.

온실 속의 화초로, 탑 안에 갇혀 살았던 공주로. 지난 세월을 은우는 살았다. 모든 것이 제약이었고 불가능이었던 은우는 색다른 경험을 승현과 함께했다.

물론 승현은 은우를 제일 위험하게 노리고 잡아먹는 건 야만인의 습성이었지만, 그럼에도 가장 안전하게 보살핌을 받는 곳은 그의 품속이었기에 은우도 승현에게만큼은 마음을 열었다.

은우의 얼음처럼, 차갑고 두꺼운 빗장을 녹인 유일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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