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스파이, 슈퍼리치 되다-0화 (1/270)

# 000. 큰 비밀은 지켜진다.

질로리 레녹스는 하늘을 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어제 미합중국 대통령으로 당선이 사실상 확정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기분이 나쁘면 그건 인간이 아니거나 적어도 정치인으로 자격이 없다는 의미였다.

이제 몇 달 뒤면 레녹스 자신은 미국의 대통령이 된다.

세계에서 가장 큰 권력을 가졌다는 그 미국의 대통령이 된다는 말이다.

미국 대통령 당선이 확정되면 많은 것이 달라진다.

레녹스는 태어났을 때 이미 억만장자의 상속자였고 오랜 세월 억만장자로 살아왔다.

대통령 당선은 그런 레녹스조차 놀랄 정도로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그중 하나는 CIA에서 대통령과 그 최측근에게만 전달된다는 일일 정보 브리핑(President Daily Briefing, PDB)였다.

16절지 10장 내외 보고서의 독자는 소수였다.

바로 미국 대통령 그리고 대통령에게 허가받은 소수의 고위관리였다.

오늘 질로리 레녹스에게 PDB를 직접 들고 온 사람은 바로 현 CIA 국장이었다.

공화당이 임명한 국장은 레녹스와는 가장 친한 친구 중 하나였다.

“알리스터! 어서 오게. 이렇게 보니 반갑군.”

질로리 레녹스는 CIA 국장 알리스터를 반갑게 맞았다.

“자네가 정말 대통령이 되다니···. 이 나라가 어디로 가는 것인지?”

알리스터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질로리 레녹스가 대통령 당선인이기는 하지만 이 정도 농담을 건네도 될 정도로 둘은 친한 사이였다.

“임명권자인 대통령 당선인에게 그런 말을 해도 되나?”

질로리 레녹스가 정색하며 말했다.

물론 질로리 레녹스도 장난이었다.

“됐어! 자네가 취임하면 제발 좀 나를 좀 자르고 다른 사람을 임명해주게.”

알리스터가 말했다.

피곤함에 지친 표정이었다.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지금은 새벽은 아니더라도 이른 아침이라고 할 수 있는 오전 6시 30분이었다.

보통 PDB가 보고되는 시간은 새벽 6시 직후였으니 특이한 일은 아니었다.

질로리 레녹스는 알리스터가 전해 준 PDB를 읽었다.

기대와는 달리 하나의 주제별로 각 한 장으로 구성된 PDB는 별다른 내용은 없었다.

“이게 백악관에 전달되는 PDB와 같은 내용이야?”

레녹스가 물었다.

“CIA 국장인 내가 그럼 가짜 PDB를 가져왔겠어!”

“뭐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별 것 없네.”

레녹스는 기업을 운영할 때부터 이런 비슷한 보고서를 받아왔다.

그때는 주로 경제나 기업 운영에 관한 내용이었다.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고 난 후에는 정치 분야나 국제 정세에 관한 내용이 포함되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기업을 운영할 때 보고받던 보고서와 별다를 것이 없었다.

대통령 당선인이 되고 받는 PDB는 조금 다를까 하는 기대를 했지만 별다를 것이 없었다.

“특별한 일이 있으면 안 되지. CIA 국장인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그렇지만···. 특별한 일이 없을 때는 CNN을 보는 것이 더 정확할 때가 많지”

알리스터가 자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언제부터 CIA 정보 보고가 이렇게 된 거야.”

질로리 레녹스가 말했다.

“냉전 붕괴 이후 계속 이랬다니 오래된 일이지.”

“그럼 아침부터 직접 찾아온 이유가 뭐야? 첫날이라서 직접 온 거야?”

레녹스가 물었다.

“취임하면 알겠지만, CIA 국장이 그렇게 한가한 사람이 아니야. 오늘 온 것은 대통령이 된 이상 꼭 알아둬야 할 정보가 있기 때문이야.”

일리스터의 말에 레녹스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꼭 알아둬야 할 정보?”

잠깐 살펴본 보고서에는 별다른 내용이 없었다.

“7쪽을 봐.”

“7쪽?”

질로리 레녹스는 알리스터의 말에 따라 보고서를 넘겨서 7쪽을 찾았다.

7쪽에는 질로리 레녹스가 익히 알고 있는 사람에 관한 내용이 나와 있었다.

대통령 일일 보고에 한 사람의 일정이 나오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보고서에 나온 사람은 충분히 그럴만한 위치의 인물이었다.

투자자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자체가 경제와 동일시되는 사람이었다.

그의 말 한마디에 주가가 움직일 정도였다.

“이 재수 없는 인간이 돈 벌었다는 이야기라면 매일 신문 방송 인터넷 할 것 없이 나오는 이야기잖아. 이게 뭐 특별하다는 거야?”

레녹스가 물었다.

7쪽에 나온 사람은 질로리 레녹스도 아는 사람이었다.

아니 모르는 사람이 오히려 적을 정도로 유명한 인물이었다.

과거의 전설적인 투자자인 워런 버핏이나 제이미 사이먼스를 능가한다는 평가를 하는 투자의 귀재···.

레녹스도 모임에서 개인적으로 몇 번 만난 적이 있는 인물이었다.

잘 알지만 좋아하는 인간은 아니었다.

너무 뛰어나서 다른 사람을 기분 나쁘게 하는 유형의 인간이었다.

억만장자였던 레녹스도 부러워할 만한 인간이었다.

누군가는 그를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만드는 인간이라고 이야기했다.

그 앞에서는 억만장자든 서민이든 별 차이가 없다면서···.

그의 한마디에 레녹스 가문이 대대로 운영해 온 회사가 벼랑 끝까지 몰린 적도 있었다.

딱히 레녹스를 겨냥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라면 석유화학 업종에 투자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말을 한 것뿐인데···.

거의 전 세계 석유화학 기업들의 주가가 하한가를 기록했다.

하지만 그건 옛날 말이었다.

이제 자신은 미합중국의 대통령 당선인이었고 몇 달 후면 대통령이 될 사람이었다.

아무리 그가 돈이 많아도 미국 예산에 비교하면 푼돈이나 다름없었다.

눈 아래 내려다봐도 되는 것이다.

“마지막 페이지를 보면 다른 정보보고가 있을 거야. 마지막 페이지는 오직 대통령만 볼 수 있는 내용이야.”

질로리 레녹스는 마지막 페이지를 읽어 보았다.

내용 자체는 별 것 아니었다.

다음 주 미국 경제에 대한 일반적인 전망이었다.

“이게 대통령만 볼 수 있는 특별한 내용이라는 거야? 별 내용 없잖아?”

“내용보다는 다른 것이 더 중요해서 그렇게 분류된 거야.”

알리스터가 말했다.

“그게 뭔 말이야? 정보브리핑에서 정보 내용보다 더 중요한 다른 것이 있다니?”

“출처. CIA 일일 정보브리핑이 다른 기관과 다른 점은 정보 출처를 특정한다는 점이야. 그 아래를 보면 정보 출처가 나와 있을 거야.”

질로리 레녹스는 알리스터의 말에 따라 정보 출처가 나온 부분을 찾아보았다.

“정보 출처가 Agent S? 금융투자자? 대통령에 건네는 보고서에 이건 뭐야?”

다른 보고서도 정보 출처를 감추기 위해서 직업이나 직책으로 쓰여 있는 예는 있었지만 이니셜이라니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오래전부터 가장 정확한 정보와 예측을 하는 것으로 유명한 사람이야.”

“아! 나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것 같아. 상원 정보위원회에서 가장 정확한 정치 경제 정보를 제공하는 정보원이 있다더니···. 그게 바로 이자야?”

“맞아.”

“그런데 왜 이름이 이따위야? Agent S?”

“그만큼 중요한 인물이라는 의미야. 그 보고서에서 진짜 중요한 것은 그 정보 출처고 내가 온 것도 바로 그 Agent S의 정체를 말해주기 위해서야. 나도 처음 CIA 국장에 취임했을 때 전임자에게 정체를 듣고 놀랐고 지금 현직에 있는 대통령도 마찬가지로 놀랐다고 하더군. 이제 자네가 차례가 온 셈이지.”

“도대체 이 Agent S가 누군데 내가 놀란다는 거야?”

“7쪽에 나온 주인공.”

레녹스는 잠시 알리스터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잠시 후 알리스터가 하는 말을 깨닫고 깜짝 놀랐다.

“설마 이 사람이 CIA 정보원이라는 말이야?”

“아니···. 정보원이 아니라 우리 요원이었어. 지금은 요원이라고 하기도 어렵고 정보원이라고 하기도 어려운 그런 미묘한 관계지. 협조자라고나 할까? 원래는 요원이었지만 지금은 우리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거물이잖아.”

정보원과 요원은 조금 의미가 달랐다.

정보원이 CIA의 정보를 주는 협조자라면 요원은 바로 CIA에 근무하는 직원이라는 말이었다.

Agent S의 정체는 예산이 수백억 달러가 넘는 CIA조차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거물이었다.

“잠시만 생각 좀 정리하고···.”

레녹스는 잠시 자신이 들은 말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이 인간이 CIA 요원이라고? 이 인간이 도대체 뭐가 부족해서 CIA 요원을 하는데? CIA가 이렇게 대단한 기관이었어? 이 정도 인물을 CIA 요원으로 영입할 만큼? 혹시 게이츠나 버핏이나 소로스도 CIA 요원이었나?”

알리스터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있어···. 그런 사람들을 영입하는 게 가능했으면 CIA가 세계를 정복했겠지. 너라면 CIA 요원이 되라면 됐겠어? 정치에 뛰어들기 전에 말이야.”

“안 하지. 내가 뭐하러 CIA 요원이 되겠어.”

질리노 레녹스는 정치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전에도 억만장자였다.

“맞아. Agent S도 억만장자가 된 다음에 CIA 요원이 된 것이 아니라 CIA 요원을 하면서 억만장자가 된 거야.”

CIA 요원으로 일하면서 억만장자가 됐다고 해도 놀랍기는 마찬가지였다.

Agent S가 지금의 재산을 모은 이야기는 질리노 네녹스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한 번도 투자에 실패하지 않은 투자의 신···.

미래를 예지할 수 있는 초능력자라는 말을 듣는 인물이었다.

생각해보니 상원위원회 위원인 친구도 정보원이 예지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말을 할 정도로 정확한 정보를 준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성공 신화 뒤에 그 과정에서 CIA의 도움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그렇다고 해도 놀랍군. CIA가 정보력이 뛰어난 것은 알았지만 요원을 억만장자 아니 이건 억만장자도 아니지···. 이런 정도의 부자로 만들 수 있을 정도로 CIA가 뛰어난지 미처 몰랐어.”

레녹스의 말에 알리스터는 고개를 저었다.

“그게 가능할 리가 있겠어? 설사 가능하다고 해도 해서는 안 되는 일이고···. Agent S의 성공은 온전히 그의 능력이야. CIA는 직접 도움을 준 것이 없어. 그리고 더 충격적인 사실은···.”

알리스터는 잠시 말을 끊었다.

“내가 지금 들은 것보다 더 충격적인 사실이 뭔데?”

질로리 레녹스가 조바심을 내며 물었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부자가 실제로는 CIA 요원이라는 사실보다 더 충격적인 사실이 뭐라는 말인가?

“CIA가 알아낸 바에 따르면 세상에 알려진 재산은 숨겨진 재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야.”

알리스터의 말에 레녹스는 잠시 말을 하지 못했다.

그 정도로 충격이었다.

“아니 지금 재산도 세계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부자인데 숨겨진 재산이 더 많다고?”

“요원에 따라서는 인류 역사상 최고 부자일 수도 있다고 하더군.”

알리스터가 말했다.

알리스터의 말에 레녹스는 자신도 모르게 화가 났다.

“CIA 요원이 그런 재산을 가져도 되는 거야!”

내심 어떤 식으로든 CIA의 정보를 이용한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 들은 막대한 재산을 그 짧은 기간에 모으는 것은 질리노 레녹스의 생각으로는 불가능했다.

“우리라고 조사를 안 해봤을 것 같아? CIA 정보를 이용했다는 증거가 없어. 애초에 처음 재산을 모을 때는 CIA 정보를 이용할 위치에 있지도 않았고···.”

“그래도 CIA 요원이 그런 재산을 가지고 있는 것을 가만두는 것은···.”

“가만두지 않으면? 재산도 이 정도면 권력이야. 돈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는 자네가 가장 잘 알잖아.”

그 말 그대로였다.

질로리 레녹스도 자신이 억만장자가 아니었다면 대통령이 되지 못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자신보다 더 부자라면···.

그렇지 않아도 투자자는 자신의 재산보다 훨씬 많은 돈을 움직일 수 있었다.

투자 불패로 소문난 Agent S가 투자하는 곳을 사람들은 따라가게 마련이었다.

“무엇보다 이 사실이 외부에 알려졌을 때 사람들이 받을 충격을 생각해봐. 너무 큰 비밀은 알려졌을 때 충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지켜지는 경우가 있었다. 이 비밀도 바로 그런 종류의 비밀이었다.”

레녹스는 어제 대통령에 당선이 사실상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었다.

그런데 오늘 자신이 올려다볼 인간이 하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도대체 이 자는 CIA의 도움도 받지 않았다면 그런 재산을 어떻게 모은 거야?”

레녹스는 진심으로 궁금했다.

레녹스의 질문에 알리스터가 입을 열었다.

“우리가 파악한 바로는 이 모든 일의 시작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