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스파이, 슈퍼리치 되다-2화 (3/270)

서몽

# 002. 훔친 물건을 사주는 사람은 도둑과 다를 것이 없다.

26일 나는 출근한 아침부터 인터넷을 통해 에디 미첼의 사고에 관한 뉴스를 찾아봤다.

별다른 뉴스는 없었다.

아무리 에디 미첼이 거물이라도 며칠이 지난 오늘까지 뉴스에 나올 내용은 아니었다.

혹시 존 베비스 팀장의 말대로 테러라면 뉴스에 나올 수도 있겠지만···.

며칠 만에 테러라는 사실이 밝혀질 리가 없었다.

아니 에디 미첼의 신분을 생각하면 테러라도 이런 뉴스에 나올 리는 없었다.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내가 뉴스를 찾아보는 것은 그만큼 불안했기 때문이었다.

에디 미첼의 죽음은 내 삶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에디 미첼이 했던 약속은?

에디 미첼이 죽고 나면 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이런 불안이 며칠 동안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내가 그렇게 혹시 있을지 모를 뉴스를 읽고 있을 때 전화가 울렸다.

-지금 내 방으로 오게.

내가 속한 아시아팀의 팀장인 왕 웬준(Wang Wenzun, 王文君)이었다.

내 진짜 보스는 죽은 에디 미첼이었지만 명목상 내 상사였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왕 웬준의 사무실을 찾아갔다.

가면서 보니 다른 팀원들은 바쁘게 전화기를 들고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주로 투자한 기업의 주가가 하락한 것에 대한 변명이었다.

올해 4월 이른바 닷컴버블이 붕괴하면서 세계 증시는 연말인 지금까지 폭락이 이어지고 있었다.

내가 사무실에 들어갔을 때 왕 웬준은 모니터 창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나는 책상 앞으로 다가가 그를 잠시 내려다보았다.

왕 웬준 팀장은 대륙 본토 출신으로 30대 중반이었다.

잠시 후 왕 웬준이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거기 자리에 앉지.”

왕 웬준은 나에게 자리를 권했다.

내려다보니 머리가 듬성듬성 빈 곳이 보였다.

다른 팀원들이 하는 말로는 앞머리가 빠지는 날이면 기침 소리도 조심해야 할 정도로 화를 낸다고 한다.

하지만 회사에서 겉도는 나에게 그나마 신경을 써 주는 사람이었다.

그의 호의는 내가 회사에 들어오면서 가져온 이천만 불이라는 거액의 투자금이라는 배경이 있었지만 말이다.

투자금의 출처는 에디 미첼이었다.

“어서 오게. 에디 미첼 도이치뱅크 본부장이 사고를 당했다고?”

왕 웬준 팀장이 위로의 말을 전했다.

그는 전부는 아니더라도 에디 미첼과 회사와의 거래 그리고 내가 에디 미첼과 하는 일이 무엇인지 같은 일을 알고 있었다.

“예.”

“정말 안타까운 일이야. 같은 투자회사에 일하는 사람으로서 내가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투자자였는데 말이야.”

왕 웬준이 말했다.

내가 아는 에디 미첼은 능력은 몰라도 인간적으로는 전혀 존경할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아마도 내가 에디 미첼의 죽음에 대해 슬퍼하리라 생각해서 건넨 말인 것 같았다.

회사에는 내가 에디 미첼이 믿고 자금을 맡긴 측근 중 하나라고 알려져 있었다.

왕 웬준도 그렇게 알고 있었다.

하지만 굳이 여기서 에디 미첼과 내가 개인적 친분이 별로 없는 사이라는 사실을 말할 필요는 없었다.

“안타까운 일이죠. 그렇게 갑자기 사고로 돌아가실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정말 대단하고 자신감이 넘치시는 분이셨는데···.”

나는 왕 웬준의 기대에 맞는 대답을 했다.

약간 슬픈 표정을 지으면서···.

물론 실제로도 안타까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에디 미첼은 나를 한 단계 위로 올려줄 동아줄이었다.

“안타까운 일이지. 살아 있다면 정말 대단한 일을 할 분이셨는데 말이야.”

“아까운 분이죠.”

“자네 말대로 안타까운 일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산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겠나?”

“···.”

나는 왕 웬준의 말에서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흔히 장례식장에서 흔히 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말투는 어딘지 모르게 냉정했다.

“그래서 말인데···. 자네는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인가? 자네가 내 팀에 있기는 하지만 지금까지는 자네 일에 간섭할 생각이 없었네. 어차피 우리 일이 무슨 짓을 하든 중요한 것은 성과가 아니겠나. 그래서 자네가 자주 외근이나 출장을 가는 것에 대해서도 아무 말 하지 않았던 것이고···. 하지만 에디 미첼이 사고로 사망한 이상 앞으로 투자금이나 투자 방향이 어떻게 되는지는 알아야 나도 위에 보고할 수 있지 않겠나?”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년 전 들어왔을 때부터 나는 아시아팀의 팀워크를 해치는 존재였다.

보통 투자회사의 유가증권 거래팀이 화합보다는 개인의 실적이 중요한 부서였다.

그렇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였다.

다른 사람들이 시세 창을 들여다보며 거래를 하거나 전화를 걸어 고객을 유치하는데 혼자서만 다른 일을 한다면 눈에 거슬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누구도 이런 내 행동에 대해 뭐라고 하지 않았다.

어차피 나는 이 팀에서 외부에서 들어온 낙하산이었고 실제로는 팀의 일원이 아니었다.

더구나 나에게는 내가 회사에 들어오면서 가져온 이천만 불의 투자금과 투자은행계의 거물인 에디 미첼이라는 후광이 있었다.

에디 미첼의 죽음으로 그중 하나의 축이 무너진 셈이다.

남은 하나의 축인 이천만 불의 투자금도 반쯤 무너져 내린 상태였다.

“그건···.”

“오늘 아침에 출근해서 보니 지난 반년간 자네 수익률은 -50%네. 한마디로 자네가 가지고 온 이천만 불 중에서 천만 불 정도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는 의미야. 당연히 자네도 알고 있겠지?”

왕 웬준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습니다.”

지난 반년간의 주식거래로 이천만 달러라는 투자금은 반 토막이 났다.

엄청나게 실패한 거래만 거듭한 것이다.

“약속했던 내년 초에 천만 불의 추가 투자는 가능한 것인가?”

가능할 리가 없었다.

투자하겠다는 에디 미첼이 죽은 상황에서 누가 밑 빠진 독에 물을 계속 부으려고 하겠는가?

무엇보다 투자할 사람 자체가 없었다.

류오린 투자는 (Luo Lin Investment, 羅琳投資)는 에디 미첼이 나를 이곳으로 보내서 하는 일이 도이치뱅크 은행 회사에서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사실과는 달랐다.

내가 홍콩에 온 것이나 류오린에서 내가 하는 거래는 에디 미첼의 독단적인 결정이었다.

도이치뱅크 내 에디 미첼의 최측근들조차 모르는 일이었다.

애초에 측근들과 같은 일이면 외부자인 나를 이곳으로 보냈을 리가 없었다.

에디 미첼이 죽은 이상 천만 불을 추가 투자할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그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불법인지 아닌지를 떠나서 이런 사실을 이야기하려면 에디 미첼이 어떻게 나에게 일을 맡겼는지를 설명해야 한다.

하지만 나는 할 수 없었다.

“앞으로 어떻게 할지나 정확한 사정을 알려면 며칠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본부장님의 갑작스러운 사고와 사망으로 지금은 여전히 그 사후 수습을 하는 중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저도 연락을 기다리는 중입니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물론 내가 기다리는 연락은 왕 웬준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도이치뱅크의 연락이 아니지만 말이다.

내가 기다리는 것은 내 담당자이자 팀장인 존 베비스의 연락이었다.

“음···. 좋네. 연락이 오면 말해주게. 하지만···.”

하지만?

또 무슨 할 말이 있다는 것인가?

왕 웬준이 내 얼굴을 자세히 살피며 말을 이었다.

“천만 불의 추가 투자가 들어온다고 해도 문제가 다 해결되지 않을 것 같아. 자네도 알겠지만, 천만 불의 추가 투자가 이뤄져서 자네가 관리하는 자금이 다시 이천만 불이 된다고 해도 문제는 수익률이네. 자네 거래 때문에 우리 팀의 전체 수익률에 엄청난 피해를 주고 있는 것은 자네도 알고 있을 거네. 자네가 거래를 많이 해서 매매수수료를 많이 받지 않았다면 다른 팀원들이 가만있지 않았을 거야. 진작에 들고 일어났겠지.”

“제가 조금 더 주의하겠습니다.”

에디 미첼이 사망한 이상 예전처럼 거래에서 큰 손해가 날 일은 없었다.

하지만 내 대답에도 왕 웬준의 표정은 여전히 나아지지 않았다.

지난 6개월 동안의 투자는 처음 투자금 이천만 달러의 절반에 가까운 천만 달러 손해였다.

지금까지 내가 수익률을 걱정하지 않았던 것은 에디 미첼을 통해서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에디 미첼은 도이치뱅크의 아시아 지역 투자에 곁다리로 투자에 류오린이 참여할 기회를 주었다.

그리고 내년에 도이치뱅크가 뉴욕 증시에 상장 예정이었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나를 통해 입은 손해를 한 방에 해결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런 계획은 에디 미첼의 죽음으로 다 무산이 된 셈이었다.

“자네에게 큰 수익률을 내라는 말은 하지 않겠네. 지금처럼 처참한 수익률만 아니면 되네. 그리고 수익률이 낮으면 거래라도 좀 자주 해야 하지 않겠나? 최소한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일정 금액 이상 거래를 하게. 그렇지 않으면 1년 계약이 끝나는 자네나 자네가 가지고 온 투자금 모두를 계약이 끝나는 내년 여름 이전에도 정리할 수밖에 없네.”

처음 내가 왔을 때는 1년 계약이었다. 하지만 계약 당사자들의 특별한 말이 없으면 자동으로 1년 더 연장되게 되어 있었다.

왕 웬준은 지금 그 연장계약을 거부하겠다는 협박을 하는 셈이었다.

왕 웬준도 투자금 이천만 불을 유치했던 일이나 에디 미첼을 통해서 도이치뱅크의 아시아 거래에 참여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지금 상황에서 과거를 이야기해봐야 이빨도 들어가지 않을 분위기였다.

“알겠습니다.”

나는 일단 대답했다.

에디 미첼이 죽자마자 형식적인 애도의 말을 건네고는 곧바로 추가 투자에 관한 확인과 매매를 더 많이 하라고 이야기하는 이들이었다.

의리라고는 없는 냉정한 반응이었다.

내가 일하고 있는 류오린(Luo Lin, 羅琳)은 홍콩 부호들과 중국 본토 기업이 합작한 형태였다.

최대 대주주는 회사 이름과 같은 류오린이라는 홍콩 부호였다. 그렇지만 지금은 거의 물러난 상태로 나도 육 개월간 얼굴은 고사하고 회사에 출근했다는 말조차 들은 적이 없었다.

회사의 실세는 내 눈앞에 있는 왕 웬준을 비롯한 중국 본토 출신들이었다.

이건 합작 상대인 중국 본토 기업이 사실상 중국 정부의 소유이기 때문이었다.

중국은 경제를 개방했다고 하지만 외환 유출에 대해서는 엄격한 정부의 허가가 있어야 하는 나라였다.

홍콩에 투자하려면 권력의 힘이 아니면 불가능했다.

지난 6개월 동안의 경험으로는 중국 본토 출신들은 겉으로는 체면과 명분을 중시하지만, 극도로 실리적이었다.

서로 이익이 될 때는 좋은 친구였지만 자신에게 더는 이익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됐을 때는 그보다 냉정할 수가 없었다.

“나는 자네가 지금까지 보여준 것보다 훨씬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하네. 인간적으로 자네를 좋아하기도 하고 말이야. 서로 얼굴을 붉히는 일은 없었으면 하네.”

왕 웬준이 나를 달래듯 말했다.

하지만 말을 돌려서 하고 있기는 하지만 결국 협박이었다.

“말씀 감사합니다. 최대한 노력해 보겠습니다.”

인사를 하고는 왕 웬준의 팀장실을 나왔다.

완전 사면초가 상태였다.

미국에는 고등학교 때부터 주식투자를 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류오린에 올 때까지 한 번도 주식투자를 해 본 적이 없었다.

에디 미첼과의 거래도 형식은 주식투자였지만 일방적으로 주식을 떠맡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이제 주식투자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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