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몽
# 004. 찾아라. 그럼 구할 것이다.
내가 에디 미첼의 홍콩 근무 제안을 받아들인 이유는 경력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냥 워싱턴에 남아 있었을 것이다.
워싱턴은 세계의 정치 권력이 모이는 곳이었다.
CIA에서 성공하려면 정치권 인사와의 인맥은 큰 도움이 된다.
에디 미첼과의 거래를 통해 이런 모든 것을 뛰어넘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에디 미첼이 죽은 이상 이런 것은 모두 헛된 희망이었다.
나에게 남은 것은 에디 미첼의 실적 세탁을 하느라 찍힌 무능력자라는 낙인이었다.
무능력자라니···.
태어나서 류오린에 오기 전까지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평가였다.
자존심도 많이 상했지만, 임무라는 생각이 지금까지 꾹 참았었다.
그런데 이런 노력이 다 헛수고가 된 셈이었다.
이제 투자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볼 시점이었다.
사실 투자를 직접 해 볼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매일 투자를 하는 사람들 속에서 반년을 보냈는데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나에게는 재량권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이 그 기회가 아닐까? 나에게는 내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천만 불이 있잖아?’
내 눈은 어느 사이에 컴퓨터로 향했다.
주식투자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바로 연휴 직전 에디 미첼의 지시로 주식이 사들인 주식들이었다.
가끔 에디 미첼이 가망이 없다고 생각해서 나에게 떠넘긴 주식 중에서 오히려 가격이 오른 적이 있기는 했다.
그렇지만 에디 미첼에게 넘겨받은 주식들 대부분은 하루라도 빨리 매각하는 것인 좋은 주식들이었다.
에디 미첼의 사고 소식이 아니었다면 이미 다 팔아 치웠어야 할 주식이었다.
지금이라도 주식을 팔아서 손해를 줄여야 했다.
확인해 보니 사들인 주식 중 유럽의 온라인 쇼핑몰인 Letsbuyit.com이나 유럽 최대 소프트웨어업체 중 하나인 Intershop Communications 같은 회사 주식은 어제 하루 사이에도 가격이 많이 내려갔다.
“일단, 이 쓰레기 같은 주식부터 다 팔아치워야겠군.”
두 주식에서만 하루 사이에 수십만 달러를 손해를 본 생긴 셈이다.
차트를 보니 지난 9월부터 12월 말까지 내려간 주가만 60%가 넘었다.
“도대체 에디 미첼은 이런 쓰레기 같은 주식을 왜 산 거야? 팔 수나 있을지 모르겠네.”
너무나 쓰레기 같은 주식이었다.
에디 미첼도 무언가 이유가 있어서 가지고 있었겠지만 죽은 사람에게 물어볼 수도 없었다.
무슨 이유에서든 가지고 이런 주식을 아직 가지고 있다가 결국 나에겐 넘겼다.
이전의 경험대로라면 예상 밖의 악재가 곧 생긴다는 의미였다.
이 사무실에서도 주식거래를 할 수 있게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나는 바로 현재 가격보다 많이 낮춰 주식을 내놓았다.
역시 무슨 악재가 있는지 생각보다 두 회사의 주식은 잘 팔리지 않았다.
몇 번 연이어 가격을 낮추고서야 겨우겨우 두 회사의 주식을 매각할 수 있었다.
잠깐 사이에 두 회사 가격은 내가 처음 확인한 가격보다 15% 정도 더 떨어져 있었다.
에디 미첼에게서 산 가격이 시장가보다 5% 정도 높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두 주식에서만 20% 정도 손해를 본 셈이었다.
다행히 주식들 대부분이 24시간 거래가 가능한 시장에 상장된 주식들이라서 지금도 매각할 수 있었다.
다른 주식들도 하나하나 매각해 나갔다.
매각이 전부 끝났을 때는 이미 오후 1시가 넘었다.
점심도 먹지 못하고 한 거래의 결과는 에디 미첼이 나에게 넘겼을 때보다 10% 정도 손해였다.
하루 늦게 거래해서인지 아니면 전 세계 증시가 하락장이어서 그런지 에디 미첼과의 거래 중에서도 가장 손해가 많이 난 경우였다.
“가장 비중이 높았던 Letsbuyit.com이나 Intershop Communications에서 20% 정도 손해를 봤다는 점을 고려하면 다른 주식에서는 나름 선방한 셈이네.”
크리스마스 직전인 금요일 22일에 사서 27일 팔았으니 단 5일 만에 100만 달러를 손해 본 셈이었다.
그것도 중간에 크리스마스 연휴가 끼어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거래일 단 2일 만에 난 손해였다.
서둘러 팔아서 손해를 본 측면도 있다. 하지만 기술주가 떨어지는 추세만 봐서는 시간이 더 가봐야 손해만 더 커졌을 것이다.
주식을 다 팔아치웠으니 본격적으로 투자를 시작해야 할 순간이었다.
“그래 한 번 해 보지 뭐···.”
어차피 천만 달러, 아니 이제는 백만 달러가 줄어서 구백만 달러를 다 날리더라도 내 인생이 완전히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한 번 모험을 해 보기로 했다.
어차피 여기서 해고당해서 돌아갈 수는 없었다.
그렇게 되면 CIA를 발판으로 미국 주류사회에서 성공하려던 내 계획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남은 구백만 불을 다 날린다고 해도 CIA에서 받을 대우와 다를 것이 없었다.
조금 잃는 것이나 전부를 잃는 것이나 마찬가지 상황이었다.
아니 어쩌면 CIA는 설사 돈을 다 날린다고 해도 무언가 해 보려고 했다는 점을 높게 평가할 수도 있었다.
사실이 아니더라도 이렇게 믿을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지금으로서는 회사에 계속 있자면 수익률을 높이든 거래를 해서 회사에 수수료 수입을 가져다주든 해야 했다.
거래를 어느 정도는 유지하면서 기왕이면 이익을 얻는 편이 좋았다.
물론 그중에서 좀 더 쉬운 방법은 거래해서 회사가 매매수수료를 벌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천만 불 중에서 남은 돈은 구백만 불.
이미 55%가 떨어진 수익률은 단기간에 올릴 수 없다.
나는 일단 류오린 사이트에 접속해서 회사 내 정보를 찾아보았다.
괜찮은 정보 몇 개를 건지기는 했지만, 확신할 수는 없었다.
개별 회사의 주가 흐름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었다.
더구나 900만 달러가 그리 큰 금액은 아니지만, 회사 하나에 투자하기에 적은 금액도 아니었다.
이 정도 금액을 투자하면 주가는 물론이고 주가의 흐름까지 변할 수 있었다.
요즘 같은 시기에는 언제 무슨 일이 있을지 몰랐다.
특히 아시아 회사들이 공개하는 정보는 믿을 수가 없었다.
만약 투자한 회사가 갑작스럽게 파산이라도 하면 돈을 전부 날릴 수도 있었다.
아무리 구백만 불을 날릴 각오를 하고 있다고 해도 처음 거래에서 다 날릴 수 있는 모험을 할 필요는 없었다.
회사 내의 정보망에서 별다른 종목을 찾지 못한 나는 사무실 입구에서 가지고 들어온 신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신문은 과거의 사건들만 나오지만 그런 기사에서도 충분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주가는 논리적인 분석보다는 이런 기사를 통해 형성되는 군중심리에 더 많은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 몇 달간 투자회사 일하며 얻은 내 생각이었다.
신문을 뒤지던 내 눈에 대만 정부가 마조열도(Matsu Islands, 馬祖列島)와 금문(Kinmen, 金門)이 중국 본토와 교류하는 것을 허용할 예정이라는 기사가 들어왔다.
상업적인 교류에 국한된 허용이었지만 이 기사는 중국보다는 대만에 의미가 큰 기사였다.
최근 들어서 대만과 중국 사이의 국력 격차는 급격히 커지고 있었다.
격차가 커지면 커질수록 대만이 느끼는 위기감도 커졌다.
그런 면에서 이번 교류 허용은 대만 증시에 큰 호재였다.
문제는 올해 일 년 내내 대만 증시가 좋지 않았다는 부분이었다.
대만의 증시 지수는 대만 자취안 지수(Taiwan Capitalization Weighted Stock Index, 臺灣加權股價指數)였다.
대만도 미국 닷컴버블의 영향으로 2월 초 한때 10,000포인트가 넘었던 주가지수가 지금은 4,700까지 떨어져 있었다.
대만의 자취안지수는 올해 2월 고점 대비 67% 정도 떨어진 상태였고 작년 말과 대비해서는 40% 정도 낮았다.
아무리 중국과의 직접 교류 허용이 호재라고 해도 개별 회사 주식에 투자하기에는 위험부담이 컸다.
일단 내가 대만 회사에 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어쩔 수 없군. 일단 자취안지수 인덱스에 투자해야겠군.”
중국과의 교류 허용을 나만 호재로 생각하는 것이 아닌지 자취안지수는 조금씩 오르고 있었다.
내가 잠시 망설이는 사이 4700대였던 자취안지수는 어느 사이에 4800 가까이 상승했다.
흐름을 탄 듯 보였다.
나는 재빨리 자취안지수 900만 불을 전부 대만 자취안 지수 지수연동형 펀드에 투자했다.
약간의 모험이었다.
나도 만약 누군가 다른 사람이 자신의 투자금을 900만 불을 한 곳에 투자하는 것은 미친 짓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어차피 900만 불은 내 돈도 아니었고 모험을 걸어도 될 것 같다는 강한 예감이 들었다.
결정적으로 나는 다음 주에 기술주에 대한 대형 호재를 알고 있었다.
100% 확실하지는 않지만 50% 정도는 확실한 대형 호재였다.
그 호재라면 기술주는 반등할 수밖에 없고 기술주 위주로 성장했던 대만 증시도 마찬가지였다.
투자한 직후부터 자취안지수는 무섭게 상승하기 시작했다.
나는 사무실의 컴퓨터를 끄고 책상 위에 놓여있던 투자 관계 서류를 가방에 챙겼다.
에디 미첼이 건재할 때는 이 서류를 누가 훔쳐 가더라도 협박할 대상은 내가 아니라 에디 미첼이었을 것이다.
그 에디 미첼이 CIA의 보호를 받고 있다는 것 생각하면 서류가 도난당하더라도 아무런 타격이 없었다.
그렇지만 이제 이 서류가 도난당한다면 위협을 받을 사람은 에디 미첼이 아니라 나였다.
CIA가 나를 에디 미첼 정도로 보호해 줄 리가 없었다.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 놓기에는 불안했다.
사무실에 있는 금고는 최첨단으로 어지간한 전문가라도 여는 것은 어려웠다.
그렇지만 어려울 뿐 열지 못하는 금고는 없었다.
심지어 아무도 없는 빈 사무실에 놓인 금고라면 시간은 무제한이라고 봐야 했다.
사무실에서 챙긴 서류를 나는 근처 대형은행의 개인금고에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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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말하면 그날 이후 내 류오린에서의 생활도 변하기 시작했다.
우선 가장 먼저 태도가 달라진 사람은 왕 웬준 팀장이었다.
내가 관리하는 투자금을 내가 직접 매매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겉으로는 AAM에서 류오린에 맡긴 자금을 류오린의 직원인 내가 사고판 것이었다.
그것도 요즘 늘어나는 온라인 매매가 아니라 직원인 내가 오프라인으로 매매한 것이기 때문에 0.5%의 수수료를 류오린이 받게 된다.
구백만 달러의 주식을 사고판 것이기 때문에 류오린의 수입은 총 천팔백만 달러의 0.5%인 만 달러 정도였다.
그렇지만 왕 웬준이 관심을 가진 것은 수수료가 아닌 거래 주식 그 자체였다.
그런 수입보다 내가 매각한 주식이 급락하고 사들인 자취안지수가 무섭게 상승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내가 폭등 직전에 자취안지수를 산 것을 안 주변 팀원들이 나를 보는 눈도 달라졌다.
아직은 호의적인 눈으로 바뀐 것은 아니지만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 것은 확실했다.
‘이것도 나쁘지 않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