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몽
# 005. 다른 사람보다 네 일에나 신경 써라.
29일 왕 웬준이 나를 사무실로 불렀다.
“자리에 앉게.”
사무실에 들어서자 왕 웬준이 말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왕 웬준이 내 얼굴을 잠시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자네가 판 Letsbuyit.com이 파산보호 신청을 했더군. 팔기 전에 그 사실을 알고 있었나?”
왕 웬준은 내가 도이치뱅크 쪽에서 뭔가 정보를 들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아닙니다. 다만 가격하락 추세가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은 했었습니다.”
나는 솔직히 대답했다.
“내가 유럽에 있는 친구들에게 알아보니 파산보호 신청 전에 소문이 돌아서 50% 이상 급락했다고 하더군. 그런데 자네가 판 시점을 보니 그 소문도 돌기 전이더군. 정말 몰랐나?”
왕 웬준이 다시 한번 물었다.
그는 나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 못한 표정이었다.
“몰랐습니다. 아시잖습니까? 평소 제가 주식을 산 다음 날 바로 매각하는 것을요. 이번에도 그런 거래였습니다. 오히려 하루 늦게 팔아서 손해가 더 커졌죠.”
내 설명에도 왕 웬준은 여전히 의심스러운 표정이었다.
“Intershop Communications 이 수익 악화 공시를 하기 직전에 판 것도 같은 이유인가?”
“그렇습니다. 왜 그러시는 것인지?”
내 대답에 왕 웬준은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말을 돌렸다.
“그 주식들을 팔고 대만 증시에 투자했더군. 그리고 자네가 이틀 전 사들인 자취안지수가 어느 사이에 5300으로 올랐고 말이야.”
왕 웬준의 말대로 거래일 단 3일 만에 대만 자취안 지수는 500포인트 10% 이상 급등했다.
올해 내내 떨어지던 대만 자취안 지수가 완전히 상승세로 돌아선 것이다.
“운이 좋았습니다.”
“도이치뱅크 쪽에서 무슨 정보라도 얻은 것은 아니고?”
왕 웬준이 다시 추궁하듯이 물었다.
왕 웬준은 자취안지수를 사들인 것이 내 결정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 듯했다.
“도이치뱅크 쪽에서는 아직 별다른 연락이 없었습니다. 아시겠지만 도이치뱅크 쪽에서도 저에 대해서 아는 분들은 몇 명 되지 않고 그분들 대부분이 이번 사고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라서···.”
“그럼 대만에 투자하겠다는 결정은 어떻게 하게 된 것인가? 자네가 직접 한 것인가 아니면 다른 사람···.”
왕 웬준이 물었다.
“대만 쪽 지인들에게 정보를 듣고 제가 결정한 일입니다.”
“자네가 직접 했다는 말인가?”
“예.”
왕 웬준의 눈에 당황하는 기색이 스치고 지나갔다.
대만 증시에 대한 투자를 내가 결정했다고는 생각하지 못한 듯했다.
하긴 그가 반년 동안 지켜본 내 모습은 에디 미첼에게 주식을 사서 바로 파는 거래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뿐이었다.
일주일에 반 이상을 밖에서 외근한다는 핑계로 출근하지 않았다.
그나마 회사에 있을 때도 옆의 다른 팀원들이 바쁘게 전화를 붙잡고 고객 유치를 하고 차트를 보고 거래를 하는 데도 한가하게 뉴스나 보고 보고서나 읽고는 했었다.
“대만 쪽 지인이라면?”
“미국에 있을 때 알던 친구들입니다. 팀장님은 모르는 사람들이죠.”
“자네가 이제야 실력 발휘를 하는군. 전에도 말했지만 나는 자네가 형편없는 수익률을 낼 정도로 무능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
에디 미첼이 나를 선택한 것은 외국어에 능통한 CIA 정보분석이었기 때문이었다.
주식거래는 에디 미첼을 만나기 전에는 해 본 적이 없었다.
왕 웬준이 자리에서 일어나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하지만 이번 거래 시점은···. 혹시 내 압박 때문에 혹시 위험한 방법을 쓰는 것이라면 그건 곤란해. 혹시 그런 정보를 얻으면 나에게 먼저 이야기하고 거래를 해야 하네. 어쨌든 지금처럼 한다면 화요일에 내가 했던 말은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될걸세.”
속이 그대로 들여다보이는 이야기였다.
한마디로 내부정보를 들으면 자신에게도 알려달라는 이야기였다.
나는 그런 왕 웬준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말이야···.”
왕 웬준이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자네가 들은 정보에는 대만 증시가 얼마나 더 오를 것 같다고 하던가?”
왕 웬준이 대만 증시의 전망에 관해 물었다.
“글쎄요···.”
너무 노골적인 질문이라서 나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호재가 있어서 사들이기는 했지만 얼마나 오를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
말을 하면서 지금까지 왕 웬준에 대해서 가지고 있던 호감이 어느 정도 사라졌다.
내가 류오린 직원이기는 했지만, 실질적으로는 류오린이 아닌 AAM이 보낸 파견직원이었다.
투자 정보를 주고받을 사이가 아니다.
왕 웬준이 무언가 고민하는 표정이었다.
“대만 증시가 바닥을 친 것 같지?”
2000년 장 폐장이 몇 시간 남지 않은 시간이었다.
지난 며칠 사이 꽤 오른 대만 증시에 들어가도 될지 망설이는 듯했다.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잘 모르겠습니다.”
나는 딱 잘라 말했다.
대만 증시가 바닥을 쳤다고 생각하고는 있었다. 하지만 남에게 충고할 정도로 확신하는 것은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대만 증시가 떨어진 이유는 대만 증시가 10,000포인트까지 갈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이 바로 기술주의 급등이었기 때문이었다.
전 세계적인 기술주의 폭락 영향으로 대만 증시가 떨어진 것이기 때문에 중국과의 직접 교역 허용이 장기적인 호재가 될지는 알 수 없었다.
대만의 중국 본토와의 교류 허용은 비즈니스 교류에 국한된 한정적인 허용이었다.
대만 자취안 지수는 지난 거래일 3일 사이에 500포인트가 올랐고 지난주 금요일부터 따지면 600포인트가 올랐다.
단기간에 급상승했기 때문에 조정이 올 가능성이 컸다.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에게 섣부른 투자에 관한 정보를 말할 수는 없었다.
왕 웬준 팀장은 내 이런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표정이 굳어졌다.
왕 웬준 팀장이 나를 못마땅한 표정으로 보며 말했다.
“알겠네. 그만 나가 보게.”
“···.”
왕 웬준 팀장의 사무실을 나왔다.
자리로 돌아와 앉은 내 눈에 대만 자취안 지수가 조정을 받는 것이 들어왔다.
다른 사람들도 대만의 주가가 단기간에 많이 올랐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나는 즉시 가지고 있던 대만 자취안 지수 지수연동형 펀드를 모두 팔았다.
지수연동형 펀드를 모두 판 데는 왕 웬준 팀장에게 보여주는 의미도 있었다.
대만 증시에 대해 나도 확신하지 못해서 대답을 못 했다는 핑계를 만든 것이다.
에디 미첼이 살아 있을 때는 오히려 내 눈치를 봤던 왕 웬준의 눈치를 보는 것이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일단 현 상태를 유지하려면 왕 웬준의 눈 밖에 날 행동은 자제하는 것이 나았다.
내가 4800 정도에 사서 5300에 팔았다.
여기서 회사의 매매수수료 0.5%에다가 거래세를 비롯한 기타 세금 0.1%를 합치면 0.6%의 비용이 발생한다.
이런 비용을 빼고도 내가 단 3일 만에 얻은 수익률은 10%가 조금 넘었다.
내가 한 처음 주식거래치고는 괜찮은 투자였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래 봐야 에디 미첼이 죽기 전에 가지고 있던 천만 불에 조금 모자라는 구백구십만 불이었다.
그래 봐야 올해 여름부터 내 주식투자는 원금을 절반 넘게 날려 먹은 형편없는 실적이었다.
비록 에디 미첼에게서 주식을 떠넘겨 받는 것이지만 에디 미첼이 죽은 이상 이런 변명이 통할 리가 없었다.
어쨌든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내가 직접 한 첫 거래에서 백만 불을 벌어들 인 것이다.
‘이대로라면 이천만 불 투자금 금방 복구하겠는데?’
물론 나도 이번과 같은 대박은 쉽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위장 임무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반년이 넘게 투자회사에 다녔다.
출근한 날은 반도 안 되지만 투자회사에 다니다 보면 주워듣는 이야기가 있게 마련이다.
그중 하나는 주식시장에서 잘 모를 때 대박을 터트리는 ‘초보자의 행운’이었다.
이번 대박이 그런 ‘초보자의 행운’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지난 반년보다는 재미있고 긴장감 넘치는 3일이었다.
나는 2000년 폐장을 향해 다가가는 시계를 보며 내년 2001년을 기약했다.
남들은 들뜨는 연말연시였지만 나는 집에서 3일 내내 대기했다.
혹시 CIA에서 연락을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연락은 오지 않았다.
그리고 2001년 1월 2일 화요일.
연휴가 끝나고 다시 일상이 시작되었다.
작년에 온 세계가 새로운 밀레니엄의 시작을 축하했다. 하지만 정확한 의미에서 밀레니엄의 시작은 2001년 1월 1일 어제였다.
2000년은 새로운 밀레니엄의 시작이 아니라 밀레니엄의 끝이었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은 2000년을 새로운 밀레니엄의 시작이라고 여겼다.
흔히 세상은 진실보다는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더 중요할 때가 있었다.
2001년 2월의 분위기도 그랬다.
연휴가 끝나고 새로운 해의 시작이었지만 금융시장의 분위기는 냉랭했다.
특히 기술주 중심으로 무섭게 주가가 내려가고 있었다.
류오린 투자회사의 주 업무가 해외 화교 자본의 중국 투자를 중계하는 일이라지만 이런 분위기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더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2일 홍콩증시가 폐장하자 나는 팀장인 왕 웬준의 사무실로 찾아갔다.
나는 노크를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요?”
“무슨 일인가?”
“내일부터 모레까지 이틀간 휴가를 좀 쓰겠습니다.”
순간 왕 웬준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어수선한 상황에서 내가 새해 업무가 시작되자마자 회사를 쉬겠다고 하니 왕 웬준은 어이가 없을 것이다.
“지금 자네 장난하나? 지금 회사 분위기가 어떤지 알고 이러는 것인가?”
“죄송합니다.”
왕 웬준 팀장의 말대로 류오린의 분위기는 새해부터 뭔가 심상치 않았다.
이런 분위기는 역설적으로 작년 류오린이 매우 성공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중국 증시는 아시아 외환위기 당시에도 성장했다.
작년에는 중국 증시가 50% 이상 성장했다.
해외 화교 자본이 직접 증시에 투자하는 것은 아니었다.
중국 증시를 통한 외국인 직접투자 방법은 제한적이었다.
하지만 류오린을 통해 조달되는 자본 중에는 중국에 직접 투자되는 자금도 있지만, 상당수는 우회적으로 중국 증시에 투자되었다.
류오린의 직원들 대부분은 중국 본토 출신과 이곳 홍콩 출신이었다. 하지만 출신이 어디건 이들은 홍콩에서도 최고의 엘리트 중의 하나였다.
아시아에서 가장 빈부격차가 큰 도시 중 하나인 홍콩에서 상위 10%에 들었다.
이들은 최소 일억에 가까운 연봉을 받는 사람들이었다.
엘리트인 만큼 지금 상황이 태풍이 오기 전의 전조라는 사실을 느끼고 있었다.
작년 중국 증시만 급등한 것에 대한 불안감을 가지게 된 것이다.
다른 시장이 급락할 때 급등한 만큼 만약 떨어진다면 하락 폭이 다른 증시보다 클 것이라는 예상을 하는 사람이 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