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스파이, 슈퍼리치 되다-6화 (7/270)

서몽

# 006. 위험이 없으면 얻는 것도 없다.

다른 나라 증시 폭락과 중국 증시 폭락은 그 의미가 달랐다.

중국을 제외한 나라들은 아시아 경제 위기나 러시아 경제 위기, 닷컴버블로 주가 급락에 경험이 있었다.

반면 중국은 1990년 다시 증시를 재개장한 이래 큰 위기 없이 성장해왔다.

중국은 증시 폭락을 감당할 경험이 없었다.

류오린 내에서 중국 증시에 가장 관심이 적은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나였다.

얼마 전까지 내가 하는 일은 간단했다.

에디 미첼이 처분하려는 주식, 주로 기술주를 장외시장에서 약간의 프리미엄을 주고 사서 매각하는 일이었다.

지금도 미국 국적인 나로서는 어차피 중국 증시에 투자하는 것이 한계가 있었다.

살만한 주식을 내 마음대로 사는 사실상 불가능했다.

중국 증시에 관심을 둘 생각도 여력도 없었다.

무엇보다 지금은 이른바 내 코가 석 자였다.

다른 팀원들의 분위기를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이유나 들어보세. 갑자기 휴가를 쓰겠다는 이유가 뭔가? 대만 증시에서 조금 이익을 보기는 했지만 자네 상황은 여전히 좋지 않네. 내가 막아주는 것도 한계가 있다는 말이야.”

왕 웬준이 휴가를 가려는 이유를 물었다.

왕 웬준의 표정은 여전히 완강해 보였다.

이유를 묻는 이유도 휴가를 허락하려고 묻는다기보다는 거절할 이유를 찾기 위해서인 듯 보였다.

아무래도 그냥은 휴가를 내주지 않을 분위기였다.

물론 휴가를 받지 않고 그냥 회사를 결근하는 방법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렇지 않아도 실적압박을 받는 상황에서 왕 웬준과는 더는 얼굴을 붉히고 싶지 않았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조금 사정을 털어놓았다.

“휴가라고는 하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미국 증시 움직임 때문입니다.”

“미국 증시?”

왕 웬준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제가 지금까지 거래했던 주식들은 주로 유럽과 미국의 기술주들이었습니다. 제가 가장 잘 아는 주식도 그런 기업들이고요. 좀 알아볼 것이 있어서 뉴욕 증시를 통해 거래하려고 하는데···. 홍콩과 뉴욕의 시차가 13시간이다 보니 회사를 출근하면서 거래하는 게 조금 어렵습니다.”

홍콩의 표준시는 뉴욕의 표준시보다 13시간 빨랐다.

뉴욕의 증시 개장 시간은 홍콩 시각으로는 한밤중이었다.

물론 시간 외 거래도 있기는 하지만 23시간 운영되는 나스닥 선물이나 옵션조차 시간 외 거래에서 유통되는 양은 적었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네. 그런데 그거라면 우리 회사에도 다우나 나스닥 같은 미국 증시를 통해 거래하는 팀이 있네. 잠시 그쪽에 보내줄 테니 그 팀에서 거래하는 것이 어떻겠나?”

왕 웬준이 타협책을 제시했다.

“갑자기 장소를 옮기는 것은 좀···. 나중에 다시 미국 증시에 투자하게 된다면 그때 한번 생각해보겠습니다. 이번에는 저도 미국 증시에서 이 정도 금액을 거래하는 것은 처음이라서··· 며칠만이라도 제가 편한 곳에서 마음 편하게 거래할 시간을 주십시오.”

나는 다시 휴가를 요청했다.

내 태도에 왕 웬준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휴···. 알겠네. 그럼 휴가 대신 조사 업무를 나간 것으로 처리해 주지.

“감사합니다.”

“이번은 이렇게 넘어가지만, 자네가 예전과는 다른 처지라는 것을 명심했으면 좋겠네. 에디 미첼 본부장은 이미 죽고 없네. 이제 예전처럼 자네가 마음대로 했을 때 사람들의 비난을 막아줄 사람이 없다는 말이네.”

“명심하겠습니다.”

나는 왕 웬준에게 인사를 하고 자리로 돌아왔다.

오늘부터 며칠 간은 나에게는 아주 중요한 날이었다.

아마 우연히 알게 된 어떤 정보가 아니었다면 직접 투자할 결심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류오린을 나오자마자 집으로 가는 대신 근처 가게에서 만두를 사서 AAM 사무실로 향했다.

각종 자료를 보며 시간을 보내고 홍콩시간으로 오후 10시 30분 뉴욕 시각으로 오전 9시 30분이 되자 블룸버그 티브이에서 요란한 벨 소리와 함께 다우와 나스닥이 개장되었다.

그리고 예상했던 그대로 나스닥이 폭락하기 시작했다.

미국 시각으로 오후가 되자 나스닥은 7%가 넘은 기록적인 하락을 기록했다.

1998년 러시아 경제 위기가 연상되는 폭락이었다.

나는 7%가 떨어진 시점부터 나스닥 지수연동형 펀드를 사들이기 시작했다.

장이 끝나기 직전까지 가지고 있는 투자금을 모두 나스닥지수연동형 펀드에 몰방했다.

미국 장이 끝나자 나는 컴퓨터를 끄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홍콩 시각 새벽 5시···.

이맘때 일출 시각이 7시라는 것을 생각하면 아직 해가 뜨려면 2시간이나 남았다.

아직 어두운 창밖을 보며 ‘내가 뭐 하는 짓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었다.

생각해보면 굳이 CIA에 들어올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주류사회, 그것도 공직으로 출세하겠다는 생각으로 들어온 CIA였다.

하지만 이게 진짜 옳은 방법인지는 지금은 잘 모르겠다.

내가 공직으로 성공하려고 한 것은 아버지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항상 한국에 관해 이야기하시고 하셨다.

아버지는 집에서는 한국말만 쓰게 하고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강조하셨다.

나중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아버지가 자신이 사랑하시던 한국을 떠난 이유가 본인 의사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는 권력을 피해 미국으로 온 것이었다.

아마 그때였을 것이다.

미국의 고위관리가 되어서 한국에 돌아가면 아버지를 쫓아낸 사람들이 어떤 반응일까 생각한 것은?

대학 때 아버지를 한국으로 쫓아낸 사람들이 현재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조사해보았다.

개인의 힘으로는 도저히 상대할 수 없는 위치에 올라가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그런 위치에 있을 수 있게 된 계기가 바로 아버지, 정확하게는 아버지가 가진 재산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CIA였다.

미국에서 소수민족인 아시아계, 그것도 한국계로서 공직으로 성공하는 것이 어려운 것도 사실이지만 이보다 쉬운 방법도 찾으려면 찾을 수 있었다.

홍콩의 빈 사무실에서 컴퓨터를 붙잡고 주식거래를 하는 모습은 처음 생각과는 많이 동떨어진 모습이었다.

‘이런 꼴로 도대체 언제 복수를 할 수 있을까?’

전화기를 들어 택시를 부르려다 모든 것이 귀찮아졌다.

나는 그대로 사무실 소파에 누워 그대로 몸을 기댔다.

내가 잠에서 깬 것은 오후 3시가 넘어서였다.

전화기에는 수많은 부재중 전화가 걸려와 있었다.

나는 가장 많은 부재중 전화를 걸었을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접니다.”

-지금 뭐 하는 것인가? 지금 위에서 들었는데 자네 투자금 천만 달러를 다 나스닥에 모두 넣었다면서? 이게 사실이야?

왕 웬준이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이미 예상한 반응이었다.

류오린의 계좌를 통해 거래한 이상 지금쯤은 류오린에서도 내 거래명세를 통보받았을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리고 이런 전화를 할 것도 예상했었다.

-내가 실적압박을 했다고 이런 미친 짓을 한 거야? 휴가를 쓴다고 하더니 이게 뭐 하는 짓인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증시가 폭락하는 상황에서 천만 불을 다 나스닥에 투자한 거야?

내가 투자한 금액은 천만 불이 조금 안 되지만 그건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내일 연준의 금리발표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금리 인하가 유력하고요.”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거야! 금리 인하 발표가 되지 않으면? 그때 손해는 어쩌고?

“러시아 경제위기 때도 다들 대공항이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이야기했지만 연준의 금리 인하로 무사히 넘겼죠.”

-그때와 지금이 같나! 그때는 심리적인 요인이었지만 이번에는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이 떨어지는 거야. 바로 기술주 폭등 자체가 신기루라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야. 전혀 성격이 다른 상황이야!

“알고 있습니다.”

-알면서 그런 투자를 한 거야? 금리 인하만으로 이런 상황을 어떻게 막는다는 거야.

“앨런 그린스펀이잖아요.”

1998년 러시아 위기 때나 지금이나 미국의 금리를 결정하는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의장은 앨런 그린스펀이었다.

-나도 앨런 그린스펀이 대단한 사람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어. 하지만 앨런 그린스펀은 신이 아니야.

“지금은 장이 닫혀서 팔 수도 없습니다. 일단 내일 연준의 발표 후에 다시 연락하겠습니다.”

-야!

나는 왕 웬준의 고함을 들으며 그대로 전화기를 껐다.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새로운 밀레니엄이 이제 막 시작된 것처럼 어떤 일들은 진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왕 웬준의 말대로 앨런 그린스펀이 기술주, 특히 제대로 된 기반도 없이 환상 속에서 시작된 인터넷 기업들을 살릴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절망적인 상황에서는 믿고 싶은 것을 믿게 마련이었다.

나스닥에 투자하는 많은 사람은 앨런 그린스펀이 1998년에 미국 경제를 살린 것처럼 이번에도 나스닥을 살릴 수 있다고 믿고 싶을 것이다.

앨런 그린스펀에 대한 이런 믿음을 그대로 보여준 사건이 바로 한 달 전에 일어났다.

12월 초 앨런 그린스펀은 주식시장의 하락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발언했고 그 발언이 알려지자마자 내림세였던 나스닥은 10% 이상 급등했다.

나스닥 하루 상승분으로는 역대 최고의 상승률이었다.

말 한마디로 역대 최고의 폭등을 끌어낸 앨런 그린스펀이 금리 인하를 한다면 그 영향은 얼마나 될까?

그리고 지금까지 앨런 그린스펀이라면 1998년에 그랬던 것처럼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충격적인 금리 인하를 발표할 가능성이 컸다.

중국인인 왕 웬준은 아마 월 가의 투자자들이 앨런 그린스펀에 대해서 가지는 믿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듯 보였다.

그게 그의 한계였다.

나는 초조하게 오후 10시 30분의 나스닥 개장과 앨런 그린스펀의 금리 인하 발표를 기다렸다.

그리고 앨런 그린스펀과 나스닥은 내 이런 기대를 배신하지 않았다.

내림세였던 나스닥 지수의 방향이 상승세로 급변했다.

그리고 그날···.

14.2%의 상승으로 시장이 마감했다.

한 달 전 기록한 나스닥 역대 하루 상승률을 4% 이상 뛰어넘는 급등이었다.

예상했지만 결과가 이렇게 나오자 오히려 선물이나 옵션에 투자하지 않은 것이 아쉬울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은 천천히 갈 때라는 생각에 마음을 가라앉혔다.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선물이나 옵션을 할 때가 아니었다.

뉴욕 시각으로 2001년 1월 3일 홍콩시간으로 2001년 1월 4일 나는 또다시 이틀 동안 백이십만 불을 벌어들였다.

나스닥이 하루 상승분으로는 역대 최고치를 갈아치운 다음 날.

나는 류오린으로 출근했다.

말이 다음 날이 자기 같은 날이었다.

뉴욕과 홍콩의 시차 때문이었다.

나스닥의 폐장을 확인하고 몇 시간 정도 쉬고 출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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