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몽
# 007. 고양이를 잡는 방법은 한 가지 방법만 있는 것이 아니다.
출근하고 난 후 팀원들을 시선을 통해 내 위치는 많이 달라졌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며칠 전과는 달랐다.
단지 내가 두 번의 투자로 각각 10%와 13%가 넘는 수익률을 올렸기 때문이 아니었다.
이건 내가 대리로 투자하는 AAM 처지에서나 이익이지 류오린이 얻는 이익은 따로 있었다.
투자회사 특히 나와 같은 유가증권 거래를 하는 팀에서 최고의 직원은 회사에 매매수수료를 많이 가져다주는 직원이었다.
물론 수익률이 낮은 투자회사나 직원에게 계속 자금을 맡길 투자자는 없었다.
아마 다른 투자자였다면 천만 달러를 잃었을 때 진작에 나를 해고하고 다른 직원을 찾아봤을 것이다.
보통은 투자 수익률이 높은 회사나 직원이 결국 더 많은 자금을 투자받아 회사에 더 많은 매매수수료를 가져다준다.
그렇지만 내가 아무리 AAM의 투자금만을 운용한다고 해도 법적으로는 나는 류오린의 직원이다.
당연히 내가 AAM의 투자금으로 거래를 할 때마다 류오린은 매매수수료를 얻는다.
그리고 지난 두 주일 사이 류오린에 벌어준 매매수수료는 적지 않았다.
작년 1월 22일에는 천만 불을 주식을 사들였고 다시 27일에는 구백만 불로 떨어진 주식을 팔아 다시 대만 자취안 지수 ETF에 투자했다.
다시 29일에는 구백구십만 불로 오른 대만 자취안 지수 ETF를 팔았고 어제오늘은 다시 나스닥 지수 ETF에 투자했다가 장 마감 전에 13% 정도의 이익을 남기고 다 팔았다.
총 여섯 번의 거래를 했다.
류오린 직원인 내가 한 거래였기 때문에 류오린은 거래마다 0.5%의 매매수수료를 벌어들였다.
지난 두 주일 동안 거래로 벌어들인 류오린의 매매수수료는 총 30만 불 정도였다.
나는 출근하자마자 나스닥 지수 ETF를 팔고 남은 현금 전액을 다시 대만 자취안 지수 ETF에 투자했다.
결국, 일곱 번의 거래로 류오린이 벌어들인 매매수수료는 35만 불을 넘어섰다.
이런 매매수수료에도 나에 대한 류오린의 회사 차원 생각이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 이익 때문이라면 애초에 내가 왕 웬준 팀장에게 불려가 경고를 받을 일 자체가 없었을 것이다.
비록 수익률은 낮았지만 내가 지난 반년간 류오린에 벌어준 매매수수료는 적은 금액이 아니었다.
반년간 내가 올린 매매수수료는 내가 받는 연봉에 몇 배였다.
내 연봉이 홍콩에서도 상위 10% 안에 든다는 팀의 다른 직원들보다 많은 연봉임에도 매매수수료에 비하면 적은 금액이었다.
그런데도 왕 웬준이 회사를 대신해 내게 경고를 했던 것은 그만큼 류오린이 에디 미첼과의 인맥에 대한 기대가 컸기 때문이었다.
이 정도 매매수수료 수입으로 류오린 회사 차원에서는 에디 미첼이라는 유럽 투자금융의 황제가 될 인맥을 놓친 것과 비교할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요 며칠 동안의 내 실적은 류오린 회사가 아닌 왕 웬준이나 팀원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기에, 충분한 액수였다.
바뀐 시선은 에디 미첼이라는 배경이 아니라 내 능력을 사람들이 인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막 나스닥 지수 ETF를 매각한 자금으로 대만 자취안 지수 ETF에 투자했을 때였다.
왕 웬준 팀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사무실로의 호출이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왕 웬준 팀장 사무실을 찾아갔다.
왕 웬준 팀장은 의자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를 호출하고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던 지난번과는 다른 대접이었다.
“어서 오게. 자리에 앉지.”
내가 자리에 앉자 왕 웬준이 직접 차를 권했다.
“이번에 본토에서 들어온 차네. 무이홍차인 금준미(金駿眉)라고 하지.”
금준미는 중국 홍차 중에서도 고급 홍차 중 하나였다.
“금준미라니···. 이름은 많이 들었습니다.”
“기문 홍차를 최고로 치는 사람이 많지만 내 입맛에는 이게 맞더군.”
본토 출신인 왕 웬준은 체면을 중시하는 사람이었다.
“좋군요.”
나는 홍차 맛은 잘 몰랐다.
하지만 일단 칭찬했다.
“오늘 새벽에 나스닥이 많이 올랐더군. 어제는 내가 좀 성급했던 것 같네.”
왕 웬준이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아닙니다. 팀장님으로서는 당연히 그런 반응을 보이실 만했습니다.”
“아니네. 자네가 전권을 가진 투자금이었는데 내가 월권을 한 것이지.”
왕 웬준이 사과하고는 잠시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나스닥 앞으로 어떨 거 같은가? 확인해 보니 14% 정도 올랐던데?”
아마 이게 나를 부른 진짜 이유인 것 같았다.
‘아···. 나스닥의 전망이라···.’
나스닥의 전망을 듣고 만약 괜찮다면 투자할 생각인 것 같았다.
이런 질문을 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실적으로 증명해야 하는 것은 나뿐이 아니었다.
내가 에디 미첼이 보낸 낙하산이라면 왕 웬준은 중국 본토에서 보낸 낙하산이었다.
류오린에 오기 전까지 중국 국영기업과 상하이의 투자회사에서 일했다고 알려져 있었다.
왕 웬준 팀장이 무능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중국 최고 명문인 청화대를 나왔다.
집안에 대해 정확히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중국과 회사 내에서 좋은 인맥을 가지고 있었다.
류오린의 주요 업무인 해외 화교 자본의 중국 투자에서 왕 웬준이 가진 이런 학맥을 꽤 유용하게 이용하고 있다는 소문이었다.
작년인 2000년 장쩌민의 삼개대표론(三個代表論)은 사영 기업가를 포함한 ‘선진 생산력’을 대표하는 계층도 공산당에 입당할 기회를 열어주었다.
획기적인 조치였다.
왕 웬준이 이런 조치에 수혜를 입어서 공산당에 입당할 것이라는 소문이 회사 내에 돌고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가 맡은 주요 업무는 아시아 증시에 대한 투자였다.
지난 한 해 아시아 증시는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대부분의 아시아 증시가 최소 30%에서 60% 이상 떨어진 곳도 있었다.
물론 중국 증시는 50% 이상 올랐기 때문에 실제 팀의 실적이 나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중국 증시에 외국인 투자는 금지되어 있으므로 숫자로 나타나는 실적은 마이너스였다.
더구나 왕 웬준 팀장은 이미 말한 것처럼 법학이었다.
아무리 중국에서도 기업에서 일했다고는 하지만 그런 경력이 류오린에서 해외 증시투자에 도움이 될 리가 없었다.
본토가 아닌 이곳 홍콩 출신 팀원 중에는 앞에서는 왕 웬준 팀장에게 아부하지만, 뒤에서는 이런 경력을 들어 무시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왕 웬준 팀장으로서는 만약 아시아 증시도 아니고 나스닥에서 성과를 낼 수 있다면 이런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었다.
나로서는 왕 웬준 팀장의 관계를 개선할 좋은 기회였다.
만약 나스닥이 앞으로도 실적이 괜찮을 것이라면 말이다.
문제는 내 예상은 그게 아니라는 점이었다.
“나스닥에 관한 일이라면 어제 팀장님이 말씀하신 것이 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왕 웬준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어제 내가 한 말이라니?”
“지금 당장은 앨런 그린스펀의 마법을 기대하고 급증했지만 그게 장기적인 해결책은 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팀장님 말대로 나스닥에 상장된 기업들의 수익이 떨어지고 장래성이 없는 것은 금리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문제니까요.”
“급등했지만 다시 떨어질 거로 생각한다는 말인가?”
“제가 신도 아니고 어떻게 알겠습니까만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저도 이미 새벽에 장 마감 직전에 나스닥 지수 ETF를 다 팔았습니다.”
“···.”
내 대답에 왕 웬준이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하던 왕 웬준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다음에는 어디에 투자할 생각인가?”
‘이 인간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분명 지난주 나를 불러서 경고할 때만 해도 조금은 나를 무시하던 왕 웬준이었다.
그런데 지난해 말 처음 대만 자취안 지수에 투자해 성공할 때부터 변하기 시작했다.
노골적으로 투자에 관해 묻기 시작한 것이다.
비록 내가 팀원이라고 해도 다른 사람의 투자에 묻는 것이 비상식적이었다.
아니 그건 어차피 팀장으로서 물어볼 수 있다고 해도···.
나를 뭘 믿고 투자에 관해 묻는다는 말인가?
이제 겨우 2번의 투자를 성공시킨 것에 불과했다.
“이미 오기 전에 지난주처럼 대만 자취안 지수에 투자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나는 그에게 대만 자취안 지수에 투자했다는 사실을 말했다.
어차피 팀장인 왕 웬준이 알려면 금방 알아낼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대만에 투자했다는 내 대답에 왕 웬준의 표정이 밝아졌다.
“대만 주식시장이 괜찮을 것 같나?”
왕 웬준 팀장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차피 대만은 여러 가지 호재가 있습니다. 이번 나스닥 상승이 대만 기술주에 영향을 줄 테고 지난주에 발표된 중국 본토에 대한 직접 교류도 있고요. 여기에 최근에 대형 은행 간 합병 호재도 있습니다. 최소 한두 주 정도는 괜찮을 것 같습니다.”
“대만이 괜찮다는 말이지···. 이번 일은 내 잊지 않겠네.”
말을 마친 왕 웬준은 내 반응도 보기 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투자한 곳을 들었으니 용무가 끝났다는 태도였다.
“그럼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나는 조금 황당했지만, 인사를 하고 사무실을 나왔다.
내가 왕 웬준 사무실에서 나와 자리로 돌아왔을 때 사무실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특히 나를 보는 시선이 그랬다.
보름이 안 되는 기간에 내가 벌어들인 35만 불의 매매수수료 수입은 바로 왕 웬준 팀장은 물론이고 팀원들 성과에 반영될 것이다.
상당수는 나에게 무언가 묻고 싶어 하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직접 다가오는 사람은 없었다.
팀원들이 우물쭈물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인간관계가 조금은 반성했다.
지난 반년 동안 팀 내에서 얼마나 겉돌았으면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겠는가?
반년 동안 팀원들과는 사적인 대화는 고사하고 회사 밖에서 술이나 식사를 같이한 적도 없었다.
아마 반년 동안 팀원들과 나눈 대화를 다 합쳐도 밖에서 만난 여자들과 하루에 나눈 대화보다 적을지도 모른다.
CIA 정보분석 요원으로 일하다가 갑자기 현장 임무를 맡게 되어 조심한다고 한 행동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쓸데없는 짓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팀원들의 시선이 기분 나쁜 것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기분이 좋았다.
내가 굳이 출근한 이유 중 하나는 이런 분위기를 즐기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내가 주식거래를 할 때마다 손해를 봤다.
그 사실은 알음알음 팀원들에게 알려졌다.
그때마다 팀원들은 나를 한심한 눈으로 바라보았었다.
나는 형식상으로는 류오린이 스카우트해온 직원이었다.
그들은 류오린과 에디 미첼 사이의 거래도 알지 못했다.
내가 에디 미첼을 위해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주식거래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도 알지 못했다.
그들이 보는 나는 운 좋게 투자금을 끌어와서 높은 연봉을 받으면서도 매번 거래할 때마다 손해를 보는 무능력한 놈이었다.
나로서는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