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스파이, 슈퍼리치 되다-10화 (11/270)

서몽

# 010. 태풍 속에서도 갈대는 살아남는다.

차 안에서 리레이가 지금 만날 사람에 관해 이야기했다.

“지금 우리가 가는 곳은 타이락타이당의 선거사무실입니다. 그곳에서 만날 사람은 수리아 대인이고요.”

수리아는 태국에서는 비교적 흔한 이름이었다.

“올해 47세로 대학은 미국 버클리를 나왔고 자동차 부품 기업 여러 곳에서 근무했습니다. 탁신의 최측근 중 하나로 탁신이 집권하면 장관 자리 중 하나를 차지할 가능성이 큽니다. 참고로 말씀드리지만, 수리아 대인은 태국 최고의 학교 중 하나인 뜨리얌우돔쓱사 학교(Triam Udom Suksa School)를 나왔고 태국 최대 자동차 부품 기업인 Summit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뜨리얌우돔쓱사 학교는 리레이의 말대로 태국 전국의 수재들은 물론이고 상류층이 다니는 말 그대로 최고의 고등학교였다.

리레이의 말대로라면 태국에서는 귀족 중의 귀족이라는 의미였다.

중국 본토 출신인 것이 분명한 리레이가 그런 거물과 선거 전날 만날 정도로 친분을 어떻게 쌓았는지 궁금했다.

“어떻게 아는 사이입니까?”

내가 질문했다.

태국에 온 지 4년밖에 안 된 리레이가 만나기에는 너무나 거물이었기 때문이다.

“제가 전에 근무했던 회사와 수리아 대인 가문이 운영하는 회사가 이곳 태국에서 자동차 부품 합작공장을 설립했습니다. 합작공장 설립 이후에 제가 한동안 모신 분이 바로 수리야 대인이었습니다. 지금은 제가 운영하는 자동차 부품 회사의 투자자이시기도 하시죠.”

화교들 사이에서 장래성이 있어 보이는 동향 사람에게 투자하는 일은 흔한 일이었다.

화교가 동남아에서 경제권을 장악한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라고 평가받는 관행이었다.

“에드릭 손씨게 먼저 양해를 구할 일이 있습니다.”

“어떤?”

“수리야 대인께 오늘 찾아뵙겠다고 이야기는 해 두었습니다만···. 때가 때인지라 긴 이야기는 나누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리레이가 말했다.

나는 리레이의 말에 손을 저었다.

“그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내일이 투표일인데 외국인인 제가 얼굴을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죠.”

내가 말했다.

나는 수리아라는 사람에 대해 자세히 묻지 않았다.

지금까지 듣는 이야기만으로도 수리아라는 사람은 리레이에게 은인이었다.

객관적인 평가를 듣기는 어려웠다.

나는 다른 질문을 했다.

“왕 웬준 팀장님과는 어떻게 아는 사이입니까? 혹시 리레이씨도 청화대를?”

청화대를 나왔느냐는 내 질문에 리레이가 고개를 저었다.

“청화대가 아니라 화중과기대(華中科技大)를 나왔습니다.”

출신학교를 말하는 리레이의 말투에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당연한 것이 화중과기대라면 청화대 못지않은 명문대학이었다.

중국 전체에서도 특정 분야에서는 세 손가락 안에 들었고 아무리 저평가해도 중국 전체 대학 순위에서 10위 권 밖으로 밀려나 본 적이 없는 대학이었다.

만약 화중과학대가 후베이 무한이 아니라 북경이나 상해에 있었다면 베이징대나 청화대보다 높은 순위였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많았다.

화중과기대와 순위를 다투는 베이징대나 청화대 그리고 상하이교통대학은 모두 동부에 있었다.

화중과기대는 말 그대로 중국 중부에서 최고의 대학이었다.

처음 이야기를 나눌 때 짐작했던 것처럼 리레이는 중국에서도 최고 대학을 나온 엘리트였다.

중국은 지난 4년 사이에도 꽤 빠르게 발전하고 있었다.

리레이라면 중국에 남아 있었더라도 꽤 성공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상황판단이 빠르고 소신이 확고하지만 일에는 자기 생각을 고집하지 않을 정도로 유연했다.

“자동차 관련 전공이었죠. 태국에는 중국 자동차 회사에서 기술 이전과 합작 부품 공장을 위해 나왔다가 그대로 정착했습니다. 나름 성공했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본국에 남아 있는 것이 낫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리레이도 비슷한 생각이었는지 말과 행동에서 아쉬움이 그대로 드러났다.

“중국에 남아서 성공하셨을 수도 있겠지만 자동차 부품 공장을 하신다면 태국도 나쁘지는 않지요. 태국은 말 그대로 동남아시아 자동차 산업의 중심지 아닙니까?”

나는 나름대로 리레이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어차피 이미 지난 일이었다.

후회해봐야 소용이 없었다.

그리고 내 말처럼 태국에서 자동차 산업 전망은 나쁘지 않았다.

태국은 동남아시아 최대의 자동차 생산량을 기록하고 있었다.

전 세계 자동차 기업 중에서 태국에 공장을 세우지 않은 회사가 없을 정도였다.

“그렇기는 합니다만···. 요즘 태국인 중에는 우리 같은 외국인 투자자를 도둑놈 취급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걸 정치에 이용하는 사람이 바로 탁신 그 사람이고요. 최근에 들어왔더라도 같은 화교인데 자신들은 오래전에 들어왔다고 마치 다른 외국인들과 같은 취급을 하니···.”

동남아시아의 화교는 기본적으로 5대 화교라고 해서 출신별로 복건, 광둥, 해남, 조주, 객가로 나뉜다.

태국 화교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화교가 초저우 화교, 즉 조주 화교였다.

그런데 중국 경제를 개방하면서 새로운 화교가 등장했는데 그들이 바로 ‘신화교’였다.

바로 중국이 개방되기 시작하면서 새롭게 본토에서 이주해온 중국인들이었다.

20세기 초까지 화교가 해외로 이주하는 이유가 경제적인 이유였다면 리레이 같은 신화교는 좀 더 자유로운 생활을 위해서 이주한 경우가 많았다.

신화교는 리레이처럼 중국 내에서도 엘리트도 있지만, 아닌 경우도 많았다.

“다 선거에 이기기 위한 보여주기식 행동일 뿐 아니겠습니까? 지금 중국은 매년 8%~10%가 넘는 경제 성장을 하고 있습니다. 중국과의 교역 증가는 태국에 이익이 되는데 리레이씨 같은 신화교들을 차별하면 중국 정부는 물론이고 이곳 태국의 다른 화교들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선거가 끝나면 리레이 씨 같은 분들에게 좋은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내 말이 위로됐는지 리레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기는 하죠.”

“당장 리레이씨에게 투자를 하셨다는 수리안 대인이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리레이씨에게도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나중에 돈을 많이 버시고 여유가 생기면 중국에 투자하셔도 되고요. 홍콩에서 보니 아직 중국에는 기회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말씀이라도 고맙습니다.”

“중국에 투자하실 때 왕 웬준 팀장님이나 아니면 저를 통하시면 더 좋고요.”

물론 나는 리레이의 중국 투자를 중계할 생각은 없었다.

내 말은 나를 통해 투자하라는 말이 아니라 나중에 나도 리레이에게 도움을 주겠다는 형식적인 인사였다.

중국인들은 일방적인 도움보다는 서로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것을 선호했다.

외국인들에게는 비난받는 중국 본토의 관시라는 것도 근본적으로는 일방적인 도움이 아니라 서로 이익을 나눈다는 개념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인맥을 빌려주고 그 대가를 서로 나누는 개념으로 본인들은 뇌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왕 웬준은 나에게 리레이를 소개해 준 것은 자신의 관시를 빌려준 것이었다.

만약 내가 리레이를 통해서 무언가 이익을 얻으면 그 이익을 왕 웬준과 나누는 것이 바로 관시였다.

“중국에 투자할 일이 있으면 두 분을 통하겠습니다.”

리레이가 말했다.

왕 웬준만이 아니라 나와도 관시를 받아들인다는 의미였다.

이렇게 대화를 나누는 사이 타이락타이당의 선거사무소에 도착했다.

선거사무소는 말 그대로 보기만 해도 정신이 없을 정도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우리는 입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선거사무소 안으로 들어간 리레이가 한 사람을 데리고 나왔다.

체크 무늬 남방을 입은 중년 사내였다.

그는 내가 리레이에게 이야기를 들을 때 생각했던 이미지와는 조금 달랐다.

건장한 체격도 체격이었지만 몸 전체에서 어딘지 모를 위압감이 느껴졌다.

아랫사람을 부리는 익숙한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그런 분위기였다.

이른바 보스 기질이 있는 인물이었다.

‘이런 인물까지 탁신을 따른다니···. 탁신이 거물은 거물인가 보군.’

나는 수리아라는 사람을 보며 탁신에 대한 평가를 한 단계 높였다.

“자네가 찾아온 것을 보니 우리가 선거에서 유리하기는 유리한가 보군.”

중년 사내가 리레이를 보며 말했다.

농담조였지만 말투에서 가시가 숨겨져 있었다.

리레이에 대한 질책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저야 예전부터 타이락타이당의 최대 의석을 차지할 것이라고 이야기하지 않았습니까? 다만 타이락타이당의 공약을 생각하면 외국인인 선거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서거를 돕는 일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타이락타이당을 지지하는 마음은 애써 숨기고 거리를 둔 것입니다.”

리레이는 마치 자신이 타이락타이당을 위해서 거리를 둔 것처럼 이야기했다.

조금 전 말과는 전혀 다른 말이었다.

수리아도 리레이의 궤변에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나는 자네가 우리가 선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더라도 결국에는 연립정권에서 배제된다고 생각해서 거리를 두는 줄 알았는데?”

수리아의 말에 리레이가 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오해십니다. 대인께서 제 진심을 이렇게 몰라주시다니···.”

리레이가 말했다.

그는 한껏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수리아를 바라보았다.

수리아가 그런 리레이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고 해두지.”

수리아가 나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옆에 있는 젊은이는 누군가? 처음 본 사람 같은데?”

나는 얼른 수리아에게 한 걸음 다가가며 입을 열었다.

“에드릭 손이라고 합니다. 홍콩에 있는 투자사 류오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나는 수리아에게 내 소개를 했다.

“홍콩에 있는 투자회사 직원이 선거사무실에는 무슨 일로?”

수리아가 물었다.

“태국은 동남아시아 자동차 산업의 중심 아닙니까? 수리아 대인께서 Summit를 운영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내일이 지나면 좀 더 큰일을 하신다는 것도 알고 있고요.”

내 말에 수리아가 의뭉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큰일이라니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

반응을 보아서는 내가 CIA를 통해 전해 받은 여론조사 결과를 수리아도 알고 있는 듯 보였다.

“홍콩에서는 이번 선거에서 타이락타이당이 과반을 차지하리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수리아 대인께서 큰일을 하시지 않겠습니까?”

내 말에 수리아가 약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

홍콩에서 어떻게 그런 정보를 알았느냐는 듯한 모습이었다.

잠시 당황했던 수리아는 곧 평온을 되찾았다.

적어도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지었다.

“외국에서 온 손님이 그런 이야기를 하니 뭐라고 할 말이 없군. 관계자도 아는 사람에게 들을 말은 아닌 것 같네. 그리고 그런 말은 선거가 끝난 다음에나 할 이야기지.”

나는 조금 더 상대를 자극해 보기로 했다.

타이락타이당의 핵심관계자가 선거 판세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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