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스파이, 슈퍼리치 되다-14화 (15/270)

서몽

# 014. 말이 아니라 행동이 중요하다.

주가를 보던 리안이 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

“후유···. 한동안 대만 주가가 상승할 것처럼 보이네. 그럼 수익률은 더 커지겠어. 여기서 한 5%만 더 올라도 그게 얼마야.”

나는 리안의 칭찬에 말없이 미소를 지었다.

리안은 내가 계속 대만 자취안 지수에 투자를 유지할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내가 자만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정도도 나쁘지 않았다.

이미 왕 웬준이 말했던 해고에 대한 위협은 벗어났다고 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왕 웬준에게 말한 것처럼 내일이나 모레 정도에 대만 자취안 지수를 팔 생각이었다. 그리고 태국 지수에 투자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처음에 투자를 시작한 것은 해고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씩 주식투자에 재미를 느끼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 나에게 주가지수는 그냥 하나의 숫자일 뿐이었다.

CIA에 보냈던 분석 보고서에서도 주가지수도 중요한 경제지표였다.

하지만 주가지수보다는 GDP 성장률이나 이자율 무역수지 같은, 거시 경제지표가 더 중요하게 생각했었다.

애초에 개별 기업의 주가는 신경도 써 본 적이 없었다.

주가지수도 이런 거시경제지표와 그때그때 벌어지는 큰 사건의 영향을 받은 부가적인 요소일 뿐이었다.

지금도 이것은 마찬가지였다.

나에게 한나라의 주가지수란 거시경제라는 큰 흐름 속에서 그때그때 발표되는 경제지표나 정치적 사건에 영향을 받는 군중심리일 뿐이었다.

이런 생각에는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차트 분석이라는 것도 내가 하는 다른 예측과 다를 바가 없었다.

하지만 투자를 해 보니 예전에 보던 숫자가 단순한 숫자로만 느껴지지 않았다.

리안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여기저기 기사를 검색하던 내 눈에 기사 하나가 들어왔다.

지난 2000년 4분기 터키의 물가상승률이 39% 수준으로 내려갔다는 기사였다.

다른 나라였다면 39%라는 물가상승률도 제정신이 아닌 물가상승률이었다. 하지만 터키는 경제위기로 IMF 도움을 받기 전인 얼마 전까지 기본적인 물가상승률이 70%였던 국가였다.

다른 터키에 관한 다른 경제지표를 살펴보았다.

터키의 이자율이 46%였다.

이년 전 터키는 한 해에 300%가 넘게 주가가 상승한 나라였다.

‘어차피 며칠 후면 태국에 투자하기 위해서 팔 생각인데···. 대만에 투자한 자금을 반 정도 빼서 잠시 여기에 투자할까?’

물론 변동성이 그만큼 크다는 의미는 주식시장이 불안정하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잠시 투자하는 것이라면 나쁠 것이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속칭 말하는 감이 왔다.

그때 뒤에서 리안의 목소리가 들렸다.

“설마 터키에도 투자할 생각이야?”

“아니 뭐···.”

나는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터키 지금 말 그대로 ‘막장’ 상태야. 요 몇 주 사이에 외환위기도 있었고 감옥에서는 폭동이 일어나서 몇십 명이 죽어 나가는 사건이 일어났어. 심지어 이스탄불에서는 자살 폭탄 테러까지 있었다고. 투자해서는 안 되는 나라야.”

리안이 말했다.

그는 마치 내가 터키에 투자하면 세상이 끝나기라도 하는 말투였다.

리안의 목소리에는 흥분이 그대로 드러났다.

“뭘 그렇게 흥분해서 이야기하는 거야? 터키에 대해서 안 좋은 기억이라도 있어?”

내가 물었다.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재작년에 상승세만 믿고 작년에 투자했다가 꽤 손해를 좀 봤어. 그때 생각이 나서 좀 흥분했나 봐.”

리안이 말했다.

나는 순간 터키에 대한 투자가 망설여졌다.

나는 그나마 친한 동료가 저렇게까지 말하는데 굳이 투자할 필요까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틀 후 나는 점심시간에 같이 식사하러 갈까 해서 리안을 찾았다.

하지만 리안은 한동안 어디에 갔는지 찾을 수 없었다.

점심을 먹고 돌아온 나는 대만 자취안 지수 ETF를 모두 정리하고 태국에 투자하기 전 다른 나라 증시를 살폈다.

그리고···.

리안이 사라진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지금 확인해 보니 터키 증시가 요 며칠 사이 폭등해 있었다.

오늘까지 한 주 사이에 오른 지수는 15%···.

기사를 살펴보니 최근 경제 개혁에 대한 평가도 좋았다.

어제인 9일에는 연립정권 내 정치적 합의도 있었다.

그날 밤까지 터키의 주가지수는 10%가 더 올라 지난 한주 세계 주요국 증시 중 가장 높은 26.3%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그날도 오후 내내 리안은 회사에서 볼 수 없었다.

그날 나는 몇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주식투자를 할 때는 다른 사람의 말만 믿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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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안이 출근한 것은 다음 날 아침이었다.

회사를 그만둘 생각이 아니라면 출근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리안이 실적만으로는 팀 내에서도 수위권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 있었다.

투자회사가 성과를 중요시하지만, 이곳은 미국의 투자회사가 아니었다.

직원들 상당수가 중국계이기 때문에 동양 특유의 위계 문화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있었다.

“어제 갑자기 일이 생겨서···.”

처음에는 리안은 통하지 않을 변명을 하기 시작했다.

“무슨 일인데?”

“집안일이야.”

“자네 가족 중에서 홍콩에 사는 것은 자네 혼자 아니었어?”

내가 물었다.

리안이 순간 당황했다.

리안의 본가가 홍콩에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류오린은 본토에서 온 직원과 홍콩에서 온 직원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중 리안은 홍콩 출신 직원이었다.

다만···.

리안의 가족은 1997년 홍콩의 중국 반환 직전에 대규모로 외국으로 이주했다.

당시 꽤 많은 홍콩인이 이주했는데 리안의 가족은 그들 중 일부였다.

외국으로 떠난 가족과 달리 리안은 중국 반환을 하나의 기회로 생각하고 홍콩에 남았다.

“아니 그러니까···.”

리안은 말을 잠시 말을 더듬었다.

그가 순진하다기보다는 그만큼 큰 실수를 했기 때문이다.

“어제 내가 처분하던 시점에 내가 가지고 있던 대만 자취안 지수와 터키 주가 상승률 차이는 16% 정도였어. 이것만 해도 이백만 달러 정도 수익 차이더라고···.”

“···.”

내가 이백만 달러라는 구체적인 금액을 이야기하자 리안이 당황했다.

“자네를 원망하려고 하는 말은 아니야. 뭐, 리안 자네가 터키에 대해 부정적인 말을 했더라도 구매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린 것은 네가 아니라 나지. 사지 않은 것은 내 실수야. 그래도 사람 마음이 사실을 알면서도 아쉬움을 느끼게 되더라고···. 너도 나라면 비슷한 생각이 들지 않겠어? 안 그래?”

“뭐 그렇지···.”

리안의 안색이 점점 창백해져 갔다.

“그래서 내가 계산을 해봤다는 말이야. 월요일 자네 말을 들었을 때부터 수요일까지 대만 자취안 지수가 3% 정도 올랐더라도···. 그런데 말이야···. 그 이후로 터키 증시가 어제까지 얼마나 올랐을 것 같아?”

“글쎄···”

“한 23% 정도 되더라고···. 차이가 20%나 나더라는 말이야. 뭐 그래 봐야 그때 갈아탔더라도 260만 불 정도밖에 더 벌지 못했을 테니···. 단순히 16% 정도 차이라고 생각했을 때 210만 불이랑 얼마 차이가 나지 않더라고···.”

내가 구체적인 액수를 계속해서 리안에게 이야기했다.

내가 말을 흘릴 때마다 리안의 안색은 창백해져 갔다.

그리고 마침내 더는 참을 수 없게 된 듯 리안이 벌컥 화를 냈다.

“그래서 원하는 게 뭔데!”

소리를 지른 리안이 내 얼굴을 보며 말을 이었다.

“나 때문에 210만 불을 벌지 못하게 됐으니 나에게 그 이백만 불을 채워달라는 말이야 뭐야!”

순간 다른 팀원들이 우리를 바라보았다.

나는 손을 저었다.

“그럴 리가 있나. 우리 친구 아닌가 친구!”

리안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을 이었다.

“더구나 내 판단으로 투자를 하지 않은 거잖아. 그걸 한 마디 건넨 자네에게 책임을 묻는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지. 내가 그 정도로 경위가 없는 사람이 아니야.”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말에 리안이 흥분을 가라앉혔다.

“미안···. 내가 자네에게 화를 내려고 한 것은 아니라···. 나도 미안해서···. 조금 흥분했나 봐.”

“그래서 말인데···. 잠시 할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무슨 이야기인데?”

나는 잠시 말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전히 팀원 중 일부가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여기는 보는 눈이 있으니 휴게실로 가서 이야기하자. 너한테도 도움이 될 이야기야.”

리안은 떨떠름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지만 내 손을 뿌리치지는 않았다.

내 이야기에 흥미를 느꼈다기보다는 내가 본 손실(?)에 대한 미안함 때문인 것 같았다.

휴게실에는 사람이 없었다.

시장이 막 열린 시간에 휴게실에 올 사람이 있을 리 없었다.

내가 휴게실로 리안을 데리고 온 이유였다.

“할 이야기가 뭔데···?”

리안이 물었다.

나는 대답 대신 한쪽에 마련된 커피 추출기에서 커피를 내렸다.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이야기하자고···.”

나는 손에 든 커피잔을 리안에게 건넸다.

“거기 소파에 앉아봐.”

“할 이야기가 있으면 빨리해. 예정이 없이 회사를 비워서 아침에 처리할 일이 많아.”

리안의 말투는 퉁명스러웠다.

하지만 나는 리안의 태도에서 나에 대해 미안한 감정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긴 사람이라면 미안해해야지.’

말이 이백만 불이지.

큰 금액이었다.

몇 명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금액이었다.

더구나 나는 당장 지난달까지만 해도 매번 거래마다 손실만 보던 직원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터키 투자는 그런 손해를 만회할 대단히 좋은 기회였다.

“내가 알아보니 자네가 원래는 해외투자팀에 있었다고 하던데?”

리안과는 6개월이 넘게 옆에서 근무했지만, 그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어제 리안 없는 동안 팀원들에게 물어서 그에 대해 알아보았다.

“맞아. 그런데?”

리안이 되물었다.

“그리고 작년 초에 터키에서 큰 손해를 보고 이 팀에 왔다고 하던데 그것도 사실이야?”

“할 이야기가 있다니 그런 것은 왜 묻는데?”

커피를 마시던 리안의 손이 조금 흔들렸다.

터키가 리안에게는 일종의 금기어인 듯했다.

“혹시 오해할 것 같아서 말하는데···. 분명히 말하지만 난 해외투자팀에서 쫓겨난 것이 아니야. 아시아팀으로 온 것은 내가 회사에 먼저 요청한 거야.”

리안의 목소리는 날카로웠다.

어제 듣기로는 터키의 사정이 나빠졌을 때도 리안은 터키에 강한 확신하고 투자를 유지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손실이 커지고서야 터키 투자를 정리했다.

그리고 이 팀으로 옮긴 것이다.

터키 투자를 제외하면 해외투자팀에서도 에이스에 가까웠다고 한다.

성과가 좋은 것은 우리 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러니 승승장구하던 리안으로서는 터키 투자실패가 일종의 트라우마가 된 것도 이해가 갔다.

이런 사정을 듣고서야 내가 터키에 투자한다고 했을 때 말린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따지려는 것이 아니라··· 부탁할 일이 있어서 부른 거야.”

“부탁이라니?”

“월요일에 말했다시피 이제 내가 투자 종목을 선택해서 투자하잖아.”

“그런데? 투자 성과가 좋잖아? 어제 대만 자취안 지수를 고점에서 처리했으면 천삼백오십에서 천사백만 불?”

“고점까지는 아니어서 천사백만 불은 안 되고 비용이나 수수료 빼고 천삼백오십만 불 정도야.”

“지난번에도 말했지만 대단하네. 수익률이 35%인가?”

리안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35%는 팀의 에이스인 리안조차 놀랄 정도의 수익률이기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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