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스파이, 슈퍼리치 되다-17화 (18/270)

서몽

# 017. 맑은 날에도 약간의 비는 내린다.

장이 마감하는 금요일.

리안은 아침부터 모니터 앞에 앉아 지난주 자신이 관리하는 고객들의 수익률을 살펴보았다.

나쁘지 않았다.

아니 좋은 편이었다.

특히 리안의 제안에 따라 한국에 투자한 고객들은 꽤 큰 수익을 올렸다.

지난주 한국의 증시는 7% 이상 올랐다.

일본과 인도를 제외하고 아시아 증시가 전체적으로 상승세였다고는 하지만 꽤 높은 상승률이었다.

당연히 리안에게 불만을 가지는 고객은 한 명도 없었다.

고객들의 수익률을 살핀 리안은 이번에는 에드릭이 관리하던 계좌를 살펴보았다.

어제 에드릭은 필리핀으로 떠나면서 리안에게 계좌 접근 권한을 주었다.

에드릭의 투자금은 이미 나스닥과 태국에 절반씩 투자되어 있었다.

며칠 전 대만에 대한 투자를 모두 매각하고 갈아탄 것이었다.

리안이 거래에 관여하는 것은 다음 거래였다.

잠시 모니터를 바라보던 리안은 자리에서 일어나 휴게실로 향했다.

에드릭의 수익률을 보고 있으니 자괴감이 생겼기 때문이다.

“리안 너도 쉬려고 나온 거야?”

휴게실로 리안을 따라 나온 팀원이 말을 걸었다.

수린(Su lin, 蘇霖)이라는 직원이었다.

평소 별다른 친분이 없는 그가 먼저 말을 건 것이었다.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했다.

“잠시 답답해서···.”

리안이 대답했다.

“에드릭과 투자를 함께 하기로 한다면서?”

수린이 물었다.

“맞아. 다음 주부터 조금씩 일을 같이할 생각이야.”

리안이 대답했다.

“팀원들이 다들 그 이야기만 하는 것은 알고 있지?”

“알아. 왜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도 알고 있고.”

리안은 팀 내에서는 리안 자신과 에드릭이 팀을 이룬 일이 큰 화제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에드릭이나 리안이나 모두 팀 내에서 아웃사이더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사실 리안이나 에드릭이나 류오린은 물론이고 투자회사에서는 이질적인 존재였다.

흔히 투자회사가 개인의 실적을 중요시한다고 알려졌지만 큰 투자는 대부분 팀 단위로 움직인다.

그래서 개인의 능력보다 팀워크를 더 중시하고 그건 뉴욕이나 런던보다 이곳 홍콩이 더 심했다.

동양권은 전통적인 유교 문화가 회사에 많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건 투자회사도 정도의 차이일 뿐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리안 자신의 경우는 조금 달랐다.

리안의 집안이 가진 재산과 홍콩 내에서의 인맥 때문이었다.

리안도 팀원들과 자주 어울리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도 가끔 팀원들이 모두 모이는 모임에는 참석했다.

에드릭 정도로 심하게 사람들과 거리를 두지는 않았었다.

에드릭은 그런 모임에 참석하는 것은 고사하고 자신을 제외하면 회사에서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

그는 매일 출근해서 팀 사무실 사방에 붙어있는 주식시황판조차 보지 않았다.

출근해서 하는 일이라고는 아시아 각국에서 발표한 공식 발표나 홍콩의 다른 투자회사들이 발간한 보고서를 읽지 않으면 신문을 보는 것이 일과의 전부였다.

마치 활자 중독에라도 걸린 그의 모습은 투자회사의 직원이라기보다는 연구원이나 도서관 사서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얼마 전까지 팀원들은 그런 에드릭을 무시했었다.

그가 낙하산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수익률도 나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정확히 얼마나 벌었는지는 모르지만, 꽤 높은 수익률을 올리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수익률을 올리는 와중에도 여전히 사람들과 거리를 두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아니 오히려 회사를 비우는 일이 전보다 많아졌다.

그런데 그렇게 팀에서 밖으로만 돌던 에드릭이 갑자기 리안과 같이 팀을 만들었다.

팀원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했다.

“조심해.”

수린이 말했다.

“그건 무슨 소리야?”

리안이 물었다.

“팀원들 사이에서는 에드릭이 네 재산을 노리고 너에게 접근했다고 하는 말이 있어.”

리안에게 다가온 수린은 무슨 비밀 이야기라도 하는 것처럼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알아보니 원래 가지고 있던 투자금이 반 토막이 났다면서···. 투자금이 지금보다 줄어들게 되면 회사에서 쫓겨나게 되니 너희 집안에서 투자금을 받으려고 너에게 접근했을 수도 있어.”

“헉···.”

수린의 말에 리안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에드릭 최근 투자 수익률이 얼마인지 모르는 거야?”

리안이 물었다.

“높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그거야 시장이 갑자기 좋아져서 그런 거지. 그게 에드릭의 실력이겠어? 팀장에게 압력을 받고 어쩔 수 없이 한 투자에서 우연히 높은 수익률을 얻은 거지. 그것 믿고 돈 맡겼다가는 무슨 꼴을 보려고···. 하여간 리안 너는 누가 부잣집 도련님 아니랄까 봐···. 순진하다니까.”

수린은 에드릭의 높은 수익률이 전적으로 시장의 상승세 덕분인 것처럼 이야기했다.

약간의 시기와 질투가 섞인 것 같았다.

“혹시 집안의 돈을 맡길 일이 있으면 나에게 말하라니까. 내가 아는 중국회사 하나가 투자금을 구하고 있는데 말이야. 완전 대박이야.”

수린이 리안에게 투자를 권유하기 시작했다.

많이 보던 모습이었다.

리안의 집안에 대해 섣불리 아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리안이 보기에는 한마디로 웃기는 일이었다.

특히 지금 수린처럼 마치 중국 투자에 관한 중요한 정보를 알고 있다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더 어이가 없었다.

중국 투자?

중국의 인맥?

아마 류오린 직원 중에서 중국 본토의 인맥이라는 면에서는 리안보다 더 확실한 사람이 없을 것이다.

비록 리안의 가족이 홍콩 반환 직전에 캐나다에 이민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중국 내 인맥이 부족해서는 아니었다.

리안의 아버지가 현재 중국의 정권을 장악하고 상하이방과 사이가 그리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당장 내년에 주석으로 취임할 후진타오 부주석의 중국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파벌과는 사이가 좋았다.

수린이 이런 사실을 모르는 것만 봐도 그가 가진 정보력의 한계를 볼 수 있었다.

그렇다고 리안이 수린 같은 인물에게 이런 중국 내 인맥을 이야기할 생각이 없었다.

“에드릭이 지난 몇 주간 어느 정도의 수익률을 얻었는지 정확히 알고 이야기하는 거야?”

리안이 물었다.

“얼마나 되는데?”

수린이 물었다.

그도 소문으로만 듣던 에드릭의 수익률이 궁금한 표정이었다.

에드릭이 높은 수익률을 얻었다는 이야기는 있었다.

하지만 수린은 물론이고 리안도 정확한 수익률은 몰랐다.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그의 투자계좌에 대한 권한을 넘겨받은 이후였다.

“우선 지난 한주 투자 수익률은 11%였어. 그에 비해서 내 투자 수익률은 7%였지.”

리안의 말에 수린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11%? 그리고 너도 7% 수익률을 얻었다는 말이야? 한 주 만에?”

수린이나 다른 팀원들이 주로 투자하고 있는 곳은 상하이 증시였다.

중국 상하이 증시의 지난주 상승률은 소수점 이하였다.

한마디로 거의 변화가 없었다는 의미였다.

그에 비하면 에드릭의 11%는 말할 것도 없고 리안의 7% 수익률도 엄청난 수익률이었다.

“참고로 에드릭 수익률 11%는 이미 처분해서 확정된 수익률이야. 류오린에 지급한 매매수수료와 증권 당국에 내는 세금을 뺀 순수 수익률이지. 나와의 수익률 차이는 4%야. 엄청난 차이지. 단순계산으로 에드릭이 나보다 한 주 동안에 1.57배의 이익을 더 얻은 거야.”

수린이 리안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한 주 수익률이 11%라면 지난 연말부터 오늘까지 보름 조금 넘는 동안 에드릭이 얻은 수익률이 얼마나 될까?”

리안이 수린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글쎄···.”

수린이 리안의 말에 기가 죽은 듯 몸을 움츠렸다.

“50%야. 무려 50%···. 운이라도 그 정도 수익률이면 먼저 나서서 에드릭에게 전 재산을 맡기고 싶은 수익률 아니야? 안 그래? 너라면 맡기고 싶지 않겠어?”

“그야 그렇지.”

기가 죽은 수린은 갑자기 시계를 보더니 몸을 돌렸다.

“나는 고객에게 올 전화가 있어서 그만 들어가 봐야겠네.”

말을 마친 수린은 급히 사무실로 들어갔다.

리안은 그의 뒷모습을 보며 그를 비웃었다.

‘어디서 온실의 화초 같은 놈들이 수작을 걸어.’

리안은 다른 팀원들을 높이 평가하지 않았다.

왕 웬준 팀장이나 수린을 비롯한 팀원들이 본래부터 능력이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류오린의 트레이더들은 처음 회사를 설립할 때 홍콩과 상하이 투자회사에서 영입해 온 인재들이었다.

그렇지만 지난 몇 년간 중국에 대한 투자를 담당하는 팀원들에게는 별다른 노력 없이도 대박이 확정되어 있었다.

리안이 듣기로는 본래부터 아시아투자팀이 중국에만 투자하는 팀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팀원들은 홍콩이나 중국에서 모인 엘리트들이었다.

이들도 한 곳에 투자하는 것에 대한 위험성을 모를 리 없었다.

하지만 아시아 경제위기는 이런 중국 투자에 대한 의존도를 높였다.

지난해 기술주 붕괴 이후 리안을 제외한 팀원들은 중국 시장에만 매달리게 되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냥 중국에만 투자하면 50% 이상 이익을 얻을 수 있는데 어떤 고객이 주가가 하락하는 나라에 투자하는 것을 그냥 두고 보겠는가?

문제는 중국 증시는 이미 침체의 그림자를 보이는 있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팀원들이 중국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얼마나 중국 증시가 떨어져야 정신을 차릴 것인지.’

팀원들 대부분은 전쟁터라는 국제금융시장에서 싸우기에는 독기가 빠져 있었다.

에드릭은 달랐다.

투자하는 종목은 다르지만, 에드릭도 다른 팀원들과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변화해야 할 상황이 닥치자 지난 반년 동안의 기술주 위주의 투자 패턴을 버리고 아시아 증시에 투자해서 뛰어난 성과를 내고 있었다.

“에드릭은 필리핀에서 뭐 하고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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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닐라에 도착한 둘째 날.

나는 마닐라에서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하고 있었다.

대화는 돈에 관한 내용이었지만 조금 거칠었다.

“여기서 힘을 더 주면 어떻게 될 것 같아?”

나는 손에 든 Tactical Pen을 목에 가져다 대며 말했다.

강화 알루미늄 Tactical Pen의 몸체는 그 자체로 무기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끝이 날카로웠다.

Tactical Pen은 필기도구도 쓸만했다.

하지만, 그보다는 자체가 예상치 못한 습격을 당했을 때 손에 쥐고 자기방어를 위해 만들어졌다.

미국에서 주로 호신용으로 사용되기 위해 개발된 것이다.

제대로만 사용하면 사람의 목에 구멍을 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대낮에 길거리에서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나를 해치면 너는 무사할 것 같아···.”

목을 겨누고 있는 Tactical Pen이 꽤 아플 텐데도 목이 잡힌 상대는 큰소리를 쳤다.

기가 센 자였다.

“글쎄···. 네 양아치 친구들에게 나를 지키려면 한 사람이라도 줄여야 할 것 같은데?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너라도 먼저 해치워야 한다고 말이야. 안그래?”

“나를···. 나를 해치면 네가 살아서 여기를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아!”

상대는 태연한 척하지만 이미 겁을 먹은 표정이었다.

나는 그를 무시하며 입을 열었다.

“네 목에 구멍을 나서 피가 솟구치면 입고 있는 옷은 버려야 하겠네. 이 양복 비싼 양복인데 아깝게 됐어.”

나는 주위를 둘러싼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

Tactical Pen을 든 손에 조금 힘을 주자 상대의 목에서 조금씩 피가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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