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스파이, 슈퍼리치 되다-19화 (20/270)

서몽

# 019. 불이 없으면 연기도 없다.

호텔 직원이 말한 시간 조금 더 지났을 시간.

한 사람이 호텔 방을 찾아왔다.

호텔 방에 찾아온 사람은 건장한 체격을 가진 30대 중후반의 사내였다.

키는 180㎝가 조금 안 되어 보였다.

“리코 멜라니아라고 합니다. 리코라고 불러주십시오.”

리코가 말했다.

사무적인 딱딱한 말투였다.

“에드릭입니다. 앉아서 이야기하죠.”

나는 리코라는 사내를 호텔 객실 창가에 있는 의자로 안내했다.

의자에 앉자마자 리코가 물었다.

“호텔 측에서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시내에서 소매치기 일당과 문제가 있으셨다고요?”

“지갑을 소매치기하려고 해서 잡았는데 바로 칼을 빼 들더군요. 겨우 붙잡았더니 그다음에는 일당 2명이 더 나타났고요.”

시내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리코가 잠시 내 위아래를 살폈다.

“혹시 전문적인 훈련을 받으신 적이 있으십니까?”

상대의 말에 나는 당황했다.

“무슨 말인지?”

내가 요원 교육을 받은 것을 눈치챈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보통 사람은 전문적인 소매치기가 지갑을 빼가는 것을 알아차리기 어렵습니다.”

내 지갑을 노린 소매치기는 단순히 가방을 들고 달아나는 단순한 자들이 아니었다.

전문적인 소매치기 훈련을 받은 자였다.

아마 내가 특수훈련을 받지 못했다면 언제 지갑이 없어졌는지도 모르고 당했을 것이다.

나도 훈련소에 있을 때 잠시 소매치기 훈련을 받았지만, 전문적인 소매치기 기술은 쉽게 배울 수 있는 기술이 아니었다.

그런 기술을 가진 소매치기는 대부분 소매치기 조직에서 기술을 배우는 경우가 많았다.

“필리핀에 소매치기가 많다는 소문을 들어서 조심하고 있었습니다.”

필리핀 마닐라의 소매치기는 유명했다.

관광객은 물론이고 필리핀 현지 사람들도 항상 가방을 자신의 몸 앞에 두고 주의할 정도였다.

“칼을 뽑아 든 소매치기를 붙잡기는 쉽지 않죠. 전문적인 소매치기들은 칼을 능숙하게 쓰거든요. 보통 사람은 상대가 칼을 뽑아 들면 몸이 긴장해서 제대로 된 움츠리는 것이 일반적이죠.”

“미국에 있을 때 호신술을 좀 배우기는 했습니다.”

“체격을 보니 운동도 정기적으로 하시나 보네요.”

리코의 말에 나는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조사를 받을 때 보통 사람이 흔히 보일 수 있는 반응이었다.

“지금 조사를 받는 건가요? 저는 경호원을 불렀는데 경찰분이 오셨네요.”

“죄송합니다. 경찰을 그만둔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리고 이건 경호 대상에 대해 알아야 해서 묻는 것일 뿐 다른 의도는 없습니다.”

이야기하던 리코의 시선이 내 가슴으로 향했다.

“스미스 왜건에서 나온 전술 펜(Tactical Pen)을 사용하시네요.”

“호신술을 배울 때 교관에게서 사용법을 배웠습니다.”

“괜찮은 방법이죠. 보통 사람이 평소에 칼이나 총을 가지고 다닐 수는 없으니까요. 잘만 사용하면 상대의 허벅지에 상처를 내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고요.”

리코가 말했다.

나는 놀라 리코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전술 펜으로 소매치기의 허벅지를 찌른 것은 호텔에도 말하지 않는 내용이었다.

“그건 어떻게?”

“오기 전에 조금 조사해봤습니다. 허벅지에 구멍을 내셨더군요.”

호텔 직원이 바로 연락을 했다고 해도 리코가 오는 데 걸린 시간은 한 시간 남짓이었다.

그 시간에 나와 소매치기 일당 사이에 있었던 일을 거의 다 알아낸 듯했다.

처음부터 취재를 당하는 것 같아 기분이 나쁘기는 했지만, 능력은 있는 것 같았다.

그게 인맥이든 수사력이든 아니면 다른 무엇이든···.

“한 명도 아니고 세 명이나 되는 상대가 칼을 들고 있는데 몸을 피하려면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게 문제라도 됩니까?”

리코가 손을 들어 저었다.

“아닙니다. 정당방위죠. 정당방위가 아니더라도 그런 일로 미국 시민을 체포할 수는 없고요. 더구나 이런 최고급 호텔에서 묵고 있는 손님이라면 말할 것도 없죠. 무엇보다 저는 더는 경찰도 아니고요.”

“그것 천만다행이네요. 제가 일반 호텔에서 묵는 평범한 아시아 관광객이었다면 꼼짝없이 체포될 수도 있었겠네요.”

내 말에 리코의 표정이 조금 굳어졌다.

잠시 후 리코가 어깨를 조금 으쓱하더니 입을 열었다.

“앙겔로 패거리 때문에 경호를 요청하신 것이라면 굳이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앙겔로 패거리요?”

“아···. 에드릭 씨가 허벅지에 구멍을 낸 기계 아니 기술자 이름이 앙겔로입니다. 경찰로 있을 때 저도 몇 번 잡아 처넣었던 놈이지요.”

“그렇습니까?”

별로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전문적인 소매치기 기술을 가진 기술을 가진 자들은 어느 나라나 그리 많지 않았다.

대부분 국가에서 경찰들이 파악하고 있는 범죄자였다.

다른 어떤 범죄자들보다 경찰의 눈치를 보고 경찰의 관리를 받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외국인 관광객에게 대뜸 칼을 뽑아 들다니···. 원래 그런 놈이 아닌데···. 아마도 평소 자신의 기술에 자신이 있는 놈이라서 현장에서 걸리니 순간적으로 당황했나 봅니다.”

체포한 적이 있다더니 아주 잘 아는 사이 같았다.

“앙겔로 패거리라는 소매치기 일당은 그럼 체포된 것입니까?”

내가 물었다.

내 질문에 리코가 처음 당황하는 표정을 지었다.

“글쎄요···.”

리코가 말을 흐렸다.

“소매치기가 누군지도 아시고 그 패거리에 대해서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하셔서 체포된 줄 알았습니다.”

“상처를 입었다고 체포를 할 수는 없죠. 에드릭 씨가 신고한다면 혹시 모르겠죠. 그런데 신고하시면 문제가 조금 복잡해지실 겁니다. 경찰서에 가서 조사도 받으셔야 하고요.”

리코는 내가 신고를 하지 않을 것을 다 안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신고할 생각은 없습니다. 이번 일로 문제가 없으면 된 거죠.”

“잘 생각하셨습니다. 이만 오천 페소입니다.”

리코가 갑자기 돈에 관한 이야기했다.

“이만 오천 페소요?”

“앙겔로 치료비입니다. 에드릭 씨도 경호원을 고용하는 것보다 이게 나을 겁니다.”

꽤 구체적인 금액이었다.

“앙겔로가 상처를 치료하는 동안 돈을 벌지는 못하겠지만 그거야 사람을 몰라보고 칼을 뽑아 든 본인 실수죠. 그건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나는 지갑에서 오백 달러를 꺼내 리코에게 건넸다.

리코의 말대로였다.

돈을 주는 것이 기분이 나쁘기는 하지만 굳이 원한을 키울 필요가 없었다.

내가 관광객이고 필리핀을 다시 오지 않는다면 소매치기에게 돈을 줄 필요는 없었다.

그렇지만 언제 다시 필리핀에 오게 될지 몰랐다.

아마 홍콩에 머물고 CIA에 계속 근무하는 이상··· 이번과 같은 임무가 언제 내려올지 몰랐다.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었다.

“오백 달러···. 달러로 주시면 앙겔로가 더 좋아하겠네요.”

최근 필리핀 환율이 1달러당 52페소 정도라는 것을 생각하면 달러로 주는 것이 단순 금액으로도 조금 더 많았다. 물론 큰 차이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이렇게 흔쾌히 돈을 주시니 말이 통하시는 분이네요. 이런 경우 돈을 주시는 것을 거부하고 문제를 키우시는 분들이 종종 있으십니다. 본인들에게 한 끼 식사비도 안 되는 돈인데도요. 헛된 돈이라고 생각해서 내는 것을 싫어하시는 분이 왜 그렇게 많은지···.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돈으로 해결하는 것이 가장 간단한 방법이죠.”

“맞습니다. 그런데 제가 중간에서 돈을 갈취한다고 생각하시지는 분도 있더군요. 에드릭 씨도 그런 의심이 들지는 않습니까?”

리코가 물었다.

“리코 씨가 그럴 분으로는 안 보이네요.”

“그렇게 봐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럼 저는 그만 가보겠습니다.”

리코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잠시만요.”

나는 몸을 돌려 방을 나가려는 리코를 잡았다.

“무슨 할 말이라도?”

리코가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마닐라에 머무는 동안 리코 씨에게 경호를 부탁하고 싶은데요? 한 사일 정도요.”

내 말에 리코가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혹시 제 일 처리를 의심하시는 것이라면 조금 그렇군요. 앙겔로에 대한 문제라면 더는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제가 사람을 보내서···.”

앙겔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의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주말에 마닐라 시내에 나갈 일이 있습니다. 소매치기가 앙겔로 패거리만 있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요즘 마닐라 시내가 좀 어수선하기도 하고요.”

소매치기 일당에게 도망치면서 내가 생각한 것은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부자들이나 유명 인사들이 경호원을 데리고 다니는 것은 예방의 의미도 있었다.

나를 건드리지 말아라.

이런 의미였다.

리코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나쁜 생각은 아니네요. 그럼 돌아가서 적당한 사람을 보내겠습니다.”

나는 리코의 말을 통해서 내 짐작이 맞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코는 경호하기 위해서 나를 찾아온 것이 아니었다.

이번 일을 해결하기 위한 해결사에 가까웠다.

“리코 씨 일 처리가 마음에 드네요. 제 경호도 리코 씨가 해주셨으면 하는데요.”

“말씀은 고맙습니다만 저는···.”

리코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천 달러 드리지요. 천 달러는 지금 이 자리에서 나머지 천 달러는 4일 후에요.”

나는 지갑에서 지폐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죄송합니다. 저보다는···.”

“사천 달러···.”

나는 당황한 리코의 얼굴을 보며 말을 이었다.

“이것도 적은가요? 그럼 오천 달러는 어떤가요?”

리코의 표정이 굳어졌다.

작년 필리핀의 1인당 GDP는 1,000달러였다.

뇌물 비중이 높다고는 하지만 필리핀 경찰이 받는 월급이 10,000페소 즉 200달러가 안 됐다.

“제게 단순히 경호를 원하는 것이 아니군요. 정확히 원하는 것이 뭡니까?”

당연히 경호원을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아니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경호원은 필요하지만, 그보다 더 원하는 게 있다는 말이 맞았다.

이번에 필리핀을 와보고 내가 느낀 것은 직접 정보 그것도 사람을 통해 얻는 정보의 중요성이었다.

간접적으로 필리핀 밖에서 짐작했던 것과 직접 오고 난 후에 겪은 현실은 조금 달랐다.

내가 원하는 것은 전직 경찰로서 리코가 가지고 있는 정보와 인맥이었다.

“이번에 리코 씨가 제 일에 도움이 되면 앞으로 계속 일을 같이했으면 합니다.”

리코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무슨 일을 말씀하시는 것인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혹시 불법적인 일이라면 할 생각이 없습니다?”

나는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 리코에게 건넸다.

“홍콩에 있는 투자회사인 류오린이라는 곳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투자회사 사람이 제게 무슨 도움을 바라는 것입니까?”

리코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솔직히 이야기하죠. 내가 필리핀에 온 것은 현재 대통령 탄핵 가능성에 대한 조사를 위해서입니다.”

“필리핀 대통령의 탄핵과 홍콩 투자회사가 무슨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네요.”

“그런 하나하나가 다 돈이 되는 정보죠. 탄핵이 결정되든 기각되든 주가는 물론이고 환율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으니까요.”

“말씀을 알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퇴직한 경찰에 불과합니다. 현직에 있을 때도 그런 중요한 일에 대해서는 알 위치에 있지도 않았고요.”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탄핵은 기각되리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알고 싶은 것은 다른 일들입니다. 예를 들어 아까 저와 다툼이 있었던 자들이 앙겔로 패거리라고 했나요?”

“그렇습니다만?”

“지금 제가 알고 싶은 것은 앙겔로 패거리에게 관공서가 밀집한 중심가에서 소매치기하는 것을 허락한 것이 경찰의 어느 선에서 결정된 일이냐는 것입니다.”

순간 리코의 표정을 굳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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