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스파이, 슈퍼리치 되다-27화 (28/270)

서몽

# 바라는 것과 가지고 있는 것.

회의실에서 돌아온 나는 HSBC로 옮겼던 투자액을 되돌렸다.

옆에서 지켜보던 리안이 내가 왕 웬준과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물었다.

"팀장이랑 무슨 이야기를 한 거야?"

"그냥 잘 이야기했어."

나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얼버무렸다.

자세한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었다.

왕 웬준과는 그의 체면을 살려주는 선에서 적당히 타협했다.

그에게 내가 자신의 명령을 따라야 하는 직원이 아니라 사실을 확인시켰다.

나는 직원으로 일하고는 있지만, 그 전에 거액을 투자하고 매주 막대한 매매수수료를 회사에 지급하는 투자자의 대리인이었다.

왕 웬준이 지금 상황이 좋지 않기는 하지만 적으로 삼을 필요까지는 없었다.

류오린에서 나는 어디까지나 외부인이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왕 웬준을 팀장에서 끌어 내리거나 아예 해고하게 시킬 수는 없었다.

어떻게 방법을 찾으면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왕 웬준의 비리를 찾을 수도 있고 그의 윗선이라고 할 수 있는 류오린의 부사장 혹은 중국 본토의 후견인과 사이를 갈라놓는 방법도 있었다.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다.

막말로 새로운 팀장이 왕 웬준보다 더 낫다는 보장이 없었다.

아니 나중에 내가 다른 팀에 속하더라도 왕 웬준이 팀장으로 있는 것이 나았다.

내가 먼저 선택권을 포기할 이유는 없었다.

돈을 다시 돌려놓기는 했지만 나는 바로 투자에 나서지는 않았다.

내가 이번에 투자하지 않은 것은 단순히 왕 웬준 사이의 힘겨루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지금은 1월 말에 있었던 연준의 추가 금리 인하로 시장이 요동치는 상황이었다.

1월 초에 있었던 금리 인하에 이어 월말의 금리 인하는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금리 인하 덕분에 한 달 동안 주식이 꽤 오르기도 했다.

그렇지만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현재 상황은 금리 인하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막말로 경제 전망이 좋다면 미국의 연준이 한 달에 2번이나 금리를 인하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그런 사실은 증시에 투자하는 사람들 모두가 알고 있었다.

전 세계 증시가 말 그대로 동반 폭락하는 상황이라서 새로운 투자처가 마땅히 없었다.

이런 하락 장세에서 돈을 벌려면 공매도나 지수 하락에 선물이나 옵션에 투자하는 매도 포지션을 취하는 수밖에 없었다.

선물이든 옵션이든 잘못되면 위험이 컸다.

지금은 매수 포지션 즉 상승에 투자하는 것만으로도 높은 이익을 얻는 지금 상황이었다.

아무리 시장흐름에 대해 확신한다고 해도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었다.

AAM 회사 계좌를 통한 거래를 중단했지만 내가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어렵네."

나는 잠시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었다.

어깨를 펴고 몸을 좌우로 움직여 보았다.

손을 뒤로해서 목덜미를 주물렀다.

"잘 안돼?"

옆에서 지켜보던 리안이 물었다.

"쉽게는 안 되네."

내가 주식 투자자로서 가장 큰 약점은 차트를 읽는 것이나 매매타이밍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었다.

이런 기술은 직접 거래를 해보지 않으면 익힐 수 없는 종류의 기술이었다.

내가 리안을 영입한 이유였다.

하지만 주식 투자에 뛰어든 이상 언제까지 직접 거래하는 것을 피할 수만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AAM의 거래를 멈추는 동안 내가 류오린에서 받은 연봉과 성과급이 들어있는 계좌로 직접 매매를 해보기로 했다.

내 모니터를 바라보던 리안이 입을 열었다.

"무슨 생각인지는 알겠는데 처음부터 너무 무리하는 것 아니야?"

리안은 여전히 내 모니터에 시선을 집중시킨 상태였다.

그가 내가 처음부터 너무 무리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당연했다.

내가 매매를 직접 해보기로 하면서 시작한 것은 주식거래가 아니었다.

나스닥 선물 그중에서 최근 가장 뜨고 있다는 나스닥 100 선물 mini였다.

거래 금액이 더 많은 나스닥 100 선물 대신 나스닥 100 선물 mini를 택한 이유는 나스닥 100 선물 mini가 거의 24시간 거래되고 상대적으로 금액이 낮았기 때문이었다.

나스닥 선물 계좌 개설 비용이나 유지 비용을 제외하고도 나스닥 선물 100 거래 하나는 지수에 100달러를 곱한 액수였다.

즉 현재 나스닥 지수를 2800이라고 할 때 선물 거래 하나를 체결하기 위해서는 28만 불이 든다는 의미였다.

내가 가지고 있는 계좌에 있는 돈으로는 2계좌도 사는 것이 고작이었다.

나스닥 100 선물 mini는 역사는 나스닥 100 선물에 비해서 짧지만, 금액이 5분의 1이었기 때문에 빠르게 거래량이 늘어나고 있었다.

물론 5분의 1이라고는 하지만 어제자 나스닥 지수가 2772라는 것을 생각하면 나스닥 선물 미니 거래 계좌 하나에 55,440불이었다.

어지간한 다른 팀원들의 연봉과 맞먹는 금액이었다.

나는 내가 가진 돈 중 거의 전부를 털어 겨우 나스닥 100 선물 미니 10계약을 체결했다.

"시카고 지수 선물은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금융회사 직원들이 참여하는 시장이야. 에디릭 너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네가 낄 판이 아니라고···. 간이 큰 것인지 겁이 없는 것인지···."

나는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숫자 하나가 움직일 때마다 계약 하나를 사고팔 때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나스닥 선물 레버리지는 대략 22배 정도였다.

지수 1포인트에 4,400불이 움직였다.

일주일 단위로 거래를 할 때는 느끼지 못했던 짜릿함이었다.

수요일 장이 열리기 전 나는 내 선물 거래 창을 닫았다.

그리고 리안에게 고개를 돌렸다.

"이제 다시 시작하자고···."

리안이 기다렸다는 듯이 AAM 계좌에 접속했다. 그리고 어깨를 움직여 몸을 풀었다.

아마도 그동안 내가 언제 이야기를 초조하게 기다린 듯했다.

"선물 계좌는 청산한 거야?"

리안이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하락이 뻔히 예상되는데 내가 왜 계좌를 청산하겠어. 선물 만기일까지 그냥 놔두려고···."

내가 선물 투자를 하면서 느낀 사실은 내가 이런 매매에 재능이 없다는 현실이었다.

나는 나스닥 지수가 최소 두 주나 세 주 동안은 하락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리고 내 예상대로 나스닥 지수는 하락하고 있었고 그건 선물지수도 마찬가지였다.

전체적인 하락장이라고 하지만 등락이 없을 수는 없었다.

나는 나름 확실하게 시장 방향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 그 등락 폭에 따라서 선물을 사고팔았다.

그런데 아침에 결산해보니 제일 처음 사고 계속 가지고 있었을 때와 비교하면 오히려 손해가 났다.

여기에 매매수수료나 세금까지 합하면 손해는 더 커졌다.

시장의 방향을 정확히 알고도 이런 상황이니 만약 내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다면 말 그대로 답이 없는 상황이었다.

매번 미묘하게 거래 타이밍이 늦었다.

순발력이나 운동신경의 문제가 아니었다.

거래하려고 할 때마다 여러 가지 생각을 하느라 기회를 놓친 것이다.

현실은 현실이었다.

나는 거래에 재능이 없었다.

"나도 여유자금으로 선물을 사 놓을까?"

"그러든지···."

나스닥 선물 시장은 나나 리안 정도의 자금은 아무런 영향을 줄 수 없는 거대한 시장이었다.

"우리 거래부터 먼저하고 남은 시간에 네 돈으로 뭘 하든 네 마음이지."

"알았어. 생각해보고··· 그럼 이번은 어디에 투자할 거야."

"한국."

리안은 내 말에 한국 코스피 차트를 자신의 모니터 중 하나에 띄웠다.

"주가가 일주일 사이에 30포인트 빠졌네. 어제 조금 올랐다가 오늘 다시 내리고 있고···. 별다를 것이 없어 보이는데···. 특별히 한국 주식 사려는 이유가 있어?"

리안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가 보기에는 별다른 호재가 없어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어차피 크게 오를 것 기대하고 사는 것은 아니야. 하지만 호재라면 호재가 있기는 하지···."

나는 찾아놓았던 기사 하나를 모니터 중 하나에 띄웠다.

워싱턴 포스트 기사였다.

기사에는 두 가지 뉴스와 그에 대한 평가가 나와 있었다.

뉴스는 하나는 캐나다와 북한이 외교 관계를 수립했다는 뉴스였고 다른 하나는 EU 경제대표단이 북한을 방문했다는 뉴스였다.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고립된 국가 중의 하나였다.

그런 북한이 하루에 두 가지나 외부에 접촉을 가진 것에 대한 북한 외교 정책 변화에 대한 전망이 나와 있었다.

"둘 다 북한 외교뉴스잖아? 뭐···. 한국 증시가 북한 위험 때문에 저평가되고 있기는 하지만 그 정도로 뉴스만으로 투자한다는 것은 좀 그렇지 않아? 그리고 차트를 보니 어제 한국 코스피가 반짝 올랐던 것이 그 뉴스 때문인 것 같은데 이미 주가가 내려가고 있잖아."

리안은 여전히 회의적인 생각인 듯했다.

"작년 남북정상회담이 있었어. 하지만 이번에 부시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미국이 북한에 대한 강경정책으로 나설 가능성이 크지."

내가 오히려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자 리안은 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지금 한국 정부, 정확히는 김대중 대통령은 작년 남북정상회담을 자신의 가장 큰 업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하더군. 작년에 남북정상회담으로 노벨상을 받았으니 더 심해졌겠지. 그런데 미국 부시 행정부의 외교 정책 변화로 그 남북정상회담의 성과가 없어질 것 같은 상황이야. 이런 상황에서 너라면 어떻게 할 것 같아? 뭐라도 해보지 않겠어?"

"네 말은 알겠어. 대통령 임기도 1년 조금 더 남았는데 뭐라도 하려고 하겠지. 그런데 그 뭔가가 곧 발표된다는 보장이 없잖아?"

"너라면 이 정도 기회를 놓치겠어? 그리고 내가 찾아보니 내일 제5차 남북 군사실무회담이 예정되어 있어. 여기서 뭔가 발표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해. 같은 날 제1차 남북전력 실무회의도 열리고···."

"네 말이 맞을 수도 있지만 너무···."

나는 여전히 회의적인 리안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지금 한국의 대통령은 국외 망명 생활 동안 미국이나 유럽의 진보 정치인들과 꽤 넓은 인맥을 가지고 있어. 나는 캐나다와의 외교 관계 수립이나 EU 경제대표단 북한 방문 자체가 한국 정부와 조율을 통해서 이뤄졌다고 생각해. 그렇다면 늦어도 이번 주말 이전에 남북협력에 관한 발표가 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해. 중요 발표 전에 북한에 대한 이미지 개선 작업이라고 생각해."

내가 강하게 주장하자 리안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처음부터 투자 판단은 네가 하기로 했으니까. 나는 뭐 따라야지. 그럼 어디에 투자해야 하는 거야? 뉴욕에 상장된 코스피 ETF 아니면 한국 증시에 직접 투자?"

"내 생각대로 남북 경협 관련 호재가 발표된다면 건축 관련 주식을 사야지. 그리고 금융주?"

"알았어. 우선 한국 건축주에 대한 자료부터 모아야겠네."

리안은 여전히 떨떠름한 표정이었지만 아는 사람들을 통해 자료를 모으더니 오후부터 한국 건축 관련 주식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다음 날 제5차 남북 군사실무회담에서 '비무장지대 내 경의선 철도/도로 연결작업을 위한 DMZ 공동규칙안'에 합의됐다는 뉴스가 발표되었다.

당연히 발표직후에 건축주가 일제히 오르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예상한 그대로였다.

내가 긴급 지시로 주말에 도쿄로 다시 가야 했다는 사실만 제외하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