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스파이, 슈퍼리치 되다-28화 (29/270)

서몽

# 오해와 실수.

토요일 밤.

'도대체 이게 뭔 일인지 모르겠네?'

도쿄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블랙베리로 받은 메일을 생각했다.

메일 내용은 '요원 S'는 최대한 빨리 도쿄로 와서 CIA의 요원 중 한 명을 만나라는 내용이었다.

내용은 하와이 인근에서 고등학생들이 탄 해양 훈련 선박이 미 해군의 원전 잠수함과 충돌한 일에 대한 사후 대책 논의였다.

너무 정보가 없었다.

어떻게 하면 미 원자력 잠수함이 해양훈련 선박과 부딪칠 수는 있는지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충돌지점이 다른 곳도 아니고 하와이라니···.

단순한 실수라고 하기에는 이상한 사고였다.

하지만 그보다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바로 '요원 S'라는 부분이었다.

그게 나를 지칭하는 단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에디 미첼이 살아 있던 시절 그는 가끔 나를 Agent S라고 부르고는 했다.

별다른 의미는 없었다.

내 성이 '손(Son)' 씨였다.

에디 미첼은 자신의 '아들'과 구분하기 위해 S라고 부른다고 이야기했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그게 전부가 아닌 것 같았다.

만약 S가 단순히 에디 미첼이 내 성의 첫 글자를 따서 부르는 것이었다면 CIA에서 나를 '요원 S'라고 부를 이유가 없었다.

해양훈련 선박이 침몰한 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다고 나를 도쿄로 부른다는 말인가?

"도대체 본부에서는 나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좀 더 자세한 상황을 알려면 아무래도 도쿄로 가서 CIA의 요원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봐야 할 것 같았다.

나는 공항 화장실에서 면세점에서 구매한 안경과 옷으로 갈아입었다.

CIA 셔먼 켄트 정보학교를 졸업한 이후 처음 만나는 CIA의 요원이었다.

변장이라고 하기는 뭐하지만, 평소 입던 옷을 입고 가기에는 불안했다.

약속장소는 도쿄 미국대사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루비 잭의 스테이크 하우스(Ruby Jack’s Steakhouse&Bar)라는 식당 겸 술집이었다.

둘러보니 어느 정도 격식을 갖춘 식당이었다.

시간이 시간이니만큼 식사하는 사람보다는 간단한 술을 마시는 사람이 많았다.

근처에 여러 국가의 대사관이 있어서인지 외국인이 꽤 있었다.

나는 입구에 서 있는 종업원을 향해 입을 열었다.

"단테 패트릭이라는 이름으로 예약이 되어 있을 텐데요?"

"이쪽으로 오십시오."

종업원이 안내한 곳에는 뒷문이 있는 좌석이었다.

창가에서 떨어진 외딴 탈출로가 있는 뒷문에 있는 것으로 봐서는 전형적인 스파이들이 선호하는 좌석이었다.

그 좌석에는 6피트, 즉 183㎝ 정도의 사내가 커다란 스테이크를 썰고 있었다.

식성이 말해주듯 30대 중반에서 40대 초반의 건장한 체격이었다.

고급 양복 사이로 근육질의 몸이 은근히 드러나 있었다.

CIA 베테랑 요원으로 보였다.

"저도 배가 고프네요. 스테이크 주문되나요?"

나는 종업원을 돌아보며 말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종업원이 자리를 떠난 후 스테이크를 썰던 사내가 고개를 들었다.

잠시 나를 올려다보던 사내가 입을 열었다.

"팀원 중의 말단을 보냈나 보군. 분명 중요한 일이라고 했을 텐데···. 하여간 이래서 외부 팀은···."

나를 보며 고개를 설레설레 젓던 사내가 말을 이었다.

"자네가 무슨 죄가 있겠나. 일단 앉게."

"···."

나는 사내의 말에 따라 자리에 앉았다.

단테 패트릭은 내 위아래를 잠시 훑어보았다.

"자네 경력이 얼마나 되나?"

단테 패트릭이 물었다.

"그런 것을 말해야 합니까?"

나는 탁자 아래 왼손을 꼭 잡았다.

긴장으로 손에서 땀이 흘러나오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딱 봐도 신입인데 센 척할 필요 없어. 길어야 일 년 이년? 맞지?"

"···."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상대가 내가 경력이 없다는 사실을 바로 눈치챈 것은 별로 이상하지 않았다.

내가 지금 신경을 쓰는 것은 그전에 내뱉었던 사내의 말들이었다.

말단이니 팀원이니 외부 팀이니 하는 단어들···.

아무런 정보도 없는 상황에서 섣부른 대답은 위험했다.

"좋아. 자네 경력이 뭐가 중요하겠나. 자네 팀원들이 다 도쿄에 온 것은 맞나?"

단테 패트릭이 물었다.

'이 자는 내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구나. 아니면 뭔가 착각하고 있든지···.'

"저도 지시를 받자마자 온 것이라서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모르겠습니다."

내가 대답했다.

상황을 정확히 알기 전에는 일단 내 상황에 대해서는 숨기기로 했다.

"개판이네."

단테 패트릭이 막 뭐라고 말을 더하려는 순간 주문한 스테이크가 나왔다.

나는 단테 패트릭을 무시하고 스테이크를 썰기 시작했다.

내 나름의 기세 싸움이었다.

탁!

단테 패트릭이 손에 들고 있던 나이프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지난 몇 주 동안 만든 태국이나 필리핀 정보예측 보고서가 그럴듯해서 불렀더니 형편없잖아."

"그런 쓸데없는 소리를 할 거면 그냥 가겠습니다."

"허···. 신입이 아주 당돌하네?"

단테 패트릭이 불만에 찬 표정으로 나이프를 다시 집어 들었다.

"아니면 도쿄까지 부른 이유나 설명해 주시든지요."

"뭐···. 좋아! 이런 개판인 팀인지 모르고 추천했으니 어쩔 수 없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해봐야지."

단테 패트릭은 한 손으로는 포크를 스테이크 조각을 든 채로 옆에 있던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 건넸다.

나는 서류를 읽어 보았다.

서류는 사고에 대해서 자세히 나와 있었다.

하와이 인근 해역에서 미군의 로스앤젤레스급 핵잠수함인 USS 그린빌(Greeneville)이 일본의 해양 훈련 선박인 에히메마루(Ehime Maru)와 충돌해서 훈련 선박이 침몰하고 9명이나 사망한 생각보다 큰 사고였다.

3명의 선원, 그리고 2명의 교사, 그리고 결정적으로 훈련을 받던 학생 4명이 사망했다.

그것도 단순한 사고가 아니었다.

잠수함 함장의 판단 실수로 난 인재였다.

전적으로 미 해군의 잘못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지난번 일본을 방문했을 때 알아본 일본인의 미국에 대한 감정은 말 그대로 최악이었다.

내가 방문했던 그 주에 오키나와 미군 사령관이 오키나와인을 비하하는 발언을 한 것이 원인이었다.

몇 년 전 미군의 강간 사건으로 그렇지 않아도 나쁜 오키나와 주민들의 반미감정에 기름을 끼얹는 발언이었다.

그 분노가 채 잊히기도 전에 또다시 미군의 실수로 9명의 일본인이 사망한 사건이었다.

심지어 그중 4명은 고등학생이었다.

어느 사건이나 학생이 희생자가 된 사고는 충격이 더 컸다.

단순히 일본의 반미감정이 높아지는 것을 떠나서 주일미군의 주둔에 대한 철수요구가 나올 수도 있는 대형사건이었다.

전략적 중요성을 생각하면 주일 미군의 철수는 미군이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

주일 미군은 러시아 태평양 함대를 막는 최전선이자 최근 성장하고 있는 중국 해군을 막는 전략적으로 잃을 수 없는 중요성을 가지고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사고가 발생한 겁니까?"

나는 미 해군 중에서도 최고 엘리트인 원자력 잠수함 함정이 이런 실수를 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게 문제야. 잠수함 조정실에 외부인이 있었거든···. 그 손님이 관람하는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던 거지."

"외부인이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본 내용이 맞는다면 USS 그린빌은 로스앤젤레스급의 핵잠수함이었다.

그런 핵잠수함의 조종실에 외부인이 들어온다는 것이 말이 되는 소리인가?

"텍사스 출신의 석유업계 관련자네. 이 정도면 이야기해도 무슨 이야기인지 알겠지?"

이해할 수 있었다.

최근 텍사스 석유업계 관계자 중에서 가장 출세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현 미국 대통령인 부시 대통령이었다.

"대선 때 선거자금이라도 많이 냈나 보군요. 아니면 예전부터 친분이 있었든지요."

지난 대선 때 텍사스 석유업계가 부시에게 막대한 선거자금을 지원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부시 대통령의 과거를 생각하면 자신과 친한 사람에게 핵잠수함 견학을 허가했다고 해도 별로 놀란 일이 아니었다.

"그거야 모르지. 어쨌든 서류를 보면 알겠지만···. 이래저래 사실이 밝혀지면 걷잡을 수 없는 상황까지 치달을 수 있어."

맞는 말이었다.

일본은 10년 동안 최악의 경제 상황이었다.

일본인들 상당수는 그 시작이 미국과 맺은 플라자 협약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나마 조금 살아나려던 일본 경제는 작년 미국의 닷컴버블 붕괴로 시작된 다시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상황이 안 좋을 때 가장 손쉬운 방법은 누군가 미워할 사람이 찾는 것이었다.

지금 상황대로라면 그 대상이 미국이 될 가능성이 컸다.

"이 정도 사고라면 그냥 넘어갈 수는 없겠는데요. 워싱턴에서는 어떻게 나올 예정인지 아십니까?"

사람이 9명이나 죽은 사고였다.

특히 고등학생이 4명이나 된다는 것은 치명적이었다.

"국방부와 국무부 장관들의 사과가 있을 예정이라고 알고 있네. 당연히 하와이 주둔 사령관의 사과도 있을 것이고···."

단테 패트릭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 정도로는 모자라지 않겠어요. 아직 사고 정황이 나오지 않아서 그렇지 만약 미군의 실수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걷잡을 수 없이 여론이 나빠질 수 있습니다."

"자네 말은 그럼···."

단테 패트릭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본 일본인들은 사과 엄청나게 좋아하더군요. 나름대로 용서도 잘하고요. 수조 원의 손해를 끼쳐도 회사 사장이 앞에 나서서 고개 숙이고 사과하면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더군요."

"백악관에서 나서야 한다는 말이군."

"뭐···. 백악관도 비슷한 생각일 겁니다. 그들 중에도 일본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특히 어차피 사고 원인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면 왜 핵잠수함 조종실에 외부인이 들어갔느냐는 말이 나올 겁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누구인지도 나올 테고요. 물론 대통령이 연관됐다는 말이 나올 리는 없지만 어지간한 사람은 텍사스 석유업계 관계자라는 신분만으로 백악관과 연결하는 사람이 나올 겁니다. 나중에 사실이 밝혀지기 전에 미리 사과하는 것이 낫지요."

"백악관이 나서서 사과하면 미국 내 여론이 안 좋을 거네."

"그거야 제가 알 바가 아니지요? 그건 미국에 있는 분들이 신경을 쓸 내용이죠. 일본 내 반미감정이 악화하는 것 막는 방법을 말하는 것입니다."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던 단테 패트릭이 고개를 끄덕였다.

"말단이 제법이네. 하지만 그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되기는 어려워.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네."

단테 패트릭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지금으로서는 다른 이야기를 하기에는 정보가 부족한 것 같습니다. 조금 더 조사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팀원들과 이야기를 해보려고 하는 것인가? 자네를 보니 다른 팀원들도 기대가 되는군. 어때 내일 다른 팀원들도 볼 수 있는 건가?"

단테 패트릭의 시선이 점점 부담스러워졌다.

있지도 않은 팀원을 보겠다니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그건 제가 결정할 사항이 아닌 것 같습니다."

단테 패트릭이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외부 팀이라서 그런지 비밀이 많군."

단테 패트릭이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외부 팀은 뭐라는 말인가?

이 정도면 죽은 에디 미첼이 존경스러울 정도였다.

어떻게 있지도 않은 팀이 있다고 꾸민 것인지?

아무래도 단순히 기술주에서 난 손해를 위장하기 위해서 속인 것이 아닌 것 같았다.

지금 죽은 사람에게 물어볼 수도 없고 답답할 뿐이었다.

그렇다고 오늘 처음 만난 단테 패트릭에게 사실을 이야기할 수도 없었다.

"좋네. 하지만 시간이 많지 않아. 내일 아침에 여기서 다시 보세. 스테이크 말고도 다른 요리도 기가 막혀."

별로 기대는 되지 않았다.

여기 스테이크는 내 취향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내 머릿속은 다른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나는 미리 잡아놓은 호텔로 걷기 시작했다.

2월 겨울의 도쿄 밤거리는 추웠지만 내 머릿속은 어느 때보다 무거웠다.

CIA 베테랑 요원과 만남에서 나름 잘 대처한 것 같았다.

하는 말로 봐서는 이번 일에 대한 어느 정도 권한을 가진 것처럼 보였다.

현장보다는 관리직이라고 봐야 했다.

문제는 그런 요원조차 나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런 오해를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지금으로서는 혼란스러울 뿐이었다.

이 오해를 어떻게 해야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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