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몽
# 누가 개자식이 될 것인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단테 패트릭은 나를 무슨 외부 팀의 요원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말하는 것으로 봐서는 단순히 외부 팀 수준이 아니라 뭔가 특수 임무를 수행하는 특수팀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어디서 이런 오해가 시작됐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단테 패트릭이 자신에 대해서 착각하고 있다고 해도 그 사실을 상대에게 말할 생각은 없었다.
단테 패트릭이라는 요원을 찾으라는 지시를 따라 만나기는 했지만, 단테 패트릭이라는 이름이 본명인지도 알 수 없었다.
이번 일을 총괄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정확한 직책도 알 수 없었다.
이 세계에서 누군지도 정확히 모르는 상대에게 자신에 대해 말하는 일은 자살행위였다.
우선은 이번 일을 되도록 성공적으로 끝내고 시간을 벌어야 했다.
호텔로 돌아온 나는 단테 패트릭에게서 받은 자료와 신문에 난 기사 그리고 미국과 일본의 정치권 반응을 조사했다.
아니나 다를까 뉴스가 나올 때마다 점점 미국에 비판적인 기사가 늘어나고 있었다.
당연히 일본인의 반미감정도 높아지고 있었다.
사고 희생자 가족들이 하와이로 떠났다는 보도도 이어졌다.
희생자 가족이 사고 현장 바다에서 통곡하는 장면이 나오기라도 하면 여론은 더 악화할 것이다.
나는 밤을 새우면서 대응전략을 생각해 봤지만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죽은 사람들을 살려낼 수는 없었다.
지금 상황도 심각했지만 그나마 지금은 정확한 사고 상황이 나오지 않고 있었다.
만약 사고가 미 해군 핵잠수함 함장의 명백한 실수라는 사실이 보도되면 지금보다 더 여론이 나빠질 것이다.
여기에 그 실수가 외부인이 핵잠수함의 조종실에 들어갔다가 난 사고라는 사실이 나오면 그때는 말 그대로 끝이었다.
미국의 일본 내 영향력을 생각하면 이런 일로 주일 미군이 철수하는 일까지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무슨 사건이 있을 때마다 주일 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사람이 나올 것이다.
최대한 빨리 여론의 방향을 돌려야 했다.
이런저런 자료를 읽던 내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이거 뭔가 이상한데? 혹시···.'
나는 시간을 확인했다.
새벽 6시였다.
밤을 꼬박 새운 셈이었다.
창문 밖은 아직 어두웠다.
이른 시간이었지만 나는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섰다.
확인할 정보가 있었다.
***
단테 패트릭은 어제와 같은 장소에서 이번에는 비스테카 피오렌티나 (Bistecca alla Fiorentina)를 먹고 있었다.
비스테카 피오렌티나도 스테이크라는 것을 생각하면 스테이크를 어지간히도 좋아하는 것 같았다.
영어 발음에서는 전혀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없었지만, 단테 패트릭이라는 이름 자체가 이탈리아식 이름이었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본명이 단테 패트릭이 아니더라도 실제로 피오렌티나에서 이주한 이탈리아 이민자의 후손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테 패트릭은 어제와는 다르게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무려 스테이크를 먹던 것을 멈추고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어서 오게! 주문하겠나?"
"괜찮습니다."
나는 단테 패트릭의 제안을 거절했다.
아침부터 스테이크 같은 음식을 먹기는 부담스러웠다.
"자네도 알겠지만 밤사이에 상황이 더 나빠졌어."
"그렇더군요."
"백악관에서는 아침에 대통령께서 직접 사과 성명을 발표하기로 했네. 그 전에 어떤 식으로든 여론을 반전시킬 계기를 마련해야 해."
아침은 물론 워싱턴 시각이 기준이었다.
도쿄와 워싱턴의 시차는 14시간이었다.
"대통령의 사과 성명까지는 12시간에서 14시간 정도 남았군요."
단테 패트릭이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여론의 반전이 없다면 아예 사과 성명이 없을 수도 있어. 아무런 성과가 없을 것이 뻔한 사과는 하지 않겠다는 것이 백악관의 분위기라더군."
어찌 보면 역설적인 이야기였다.
반미감정을 돌릴 계기를 만들기 위해서 미국 대통령이 사과하는 것이 아니라 반미여론을 돌릴 계기가 생긴 다음에 사과하겠다는 의미였으니 말이다.
그만큼 세계 최강국인 미국 대통령의 사과는 말 그대로 외교 관계에서는 최종병기였다.
최종병기는 효과가 있는 것이 확실할 때나 사용할 수 있는 무기였다.
"어제부터 자민당 신문사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아무래도 모리 요시로 총리가 이번 사고를 계기로 여론을 반전시키려는 것 같습니다."
"우리도 가장 걱정하는 것이 그거야. 일본 정부의 협력이 있어도 쉽지 않은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그렇지 않아도 모리 요시로 총리의 국정 장악력이 떨어져서 총리 지시가 있어도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상황에서 딴생각을 하는 것 같으니···. 답답할 뿐이야."
잠시 고개를 젓던 단테 패트릭이 말을 이었다.
"오죽하면 다른 임무를 하는 자네 팀을 불렀겠나. 자네 팀 최근 보고서를 보면 아시아 국민의 여론에 대해서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것 같아서 내가 특별히 유럽러시아 팀 소속인 자네 팀을 본부에 요청한 거네."
"말씀대로 지금 일본 모리 요시로 총리는 반미감정을 이용하더라도 위기 상황을 빠져나가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어제자 일부 신문 기사를 보면 자신에 대한 비난을 모두 미국에 떠넘기려는 의도라고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역시 정치력 하나는 무시할 수 없는 인물인 것 같습니다."
모리 요시로 총리의 상황은 최악이었다.
측근들은 정치자금 문제로 구속되고 당 내부에서는 사퇴하라는 압박을 받고 있었다.
여기에 국민의 지지율도 최악인 상황이었다.
경제도 최악이라서 반전의 계기가 찾기도 어려웠다.
당장 몇 달 안에 자민당 총재 선거가 열리는 것이 확실한 상황이었다.
내부의 혼란을 외부의 적을 만들어서 벗어나려고 하는 것은 흔한 방법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어느 나라보다 미국과 협조관계인 일본의 총리가 이번 사고를 이용할 생각을 한다는 것은 좀 충격적인 일이야. 방법이 없겠나?"
단테 패트릭이 물었다.
"동양속담에 선즉제인 후즉제어인(先則制人 後則制於人)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먼저 치고 나가면 남을 제압할 수 있지만 뒤늦게 하면 남에게 제압당하게 된다는 뜻이죠."
"나도 알고 있는 말이군. 자네는 우리가 먼저 치자는 말이군."
"그렇습니다."
"자네 방법이 있나 보군!"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제가 사고 당일 모리 요시로 총리의 일정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부분이 있더군요."
"재미있는 부분이라니?"
단테 패트릭이 초조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제 주신 보고서를 보니 사고 발생 즉시 우리 측에서 모리 요시로 총리에게 사고 소식을 알린 것으로 나와 있더군요."
"그랬지."
"우리가 그 소식을 알릴 당시 모리 요시로는 골프를 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데 총리 일정을 보니 우리가 사고 소식을 알린 이후에도 한 시간 반 정도 후에 골프장을 떠난 것으로 되어 있더군요."
"허···. 그게 사실인가?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단테 패트릭이 말을 더듬었다.
그 정도로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자국민이 사고를 당한 소식에도 골프를 계속 치다니 정상적인 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제가 새벽에 골프장에 가서 확인했습니다. 당시 골프장에 있던 직원의 증언도 확보했고요."
"모리가 우리를 이용하기 전에 먼저 그를 개자식으로 만들자는 말이군."
"맞습니다. 언론에 흘리는 것 정도는 어려운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CIA였다.
일본 언론 중에서 CIA와 연결된 기자가 없을 리가 없었다.
더구나 특종이 아닌가?
내 대답에 단테 패트릭이 잠시 고민에 빠졌다.
"좋은 방법이기는 한데···. 모리 요시로가 가만있겠나? 내각 조사실도 일본 내 사건에서는 나름 유능해. 결국, 우리가 한 일이라는 사실을 알아낼 텐데···. 모리는 총리이기 이전에 자민당 최대 계파의 수장이야. 이번 사건으로 총리에서 쫓겨나는 것이 확실하겠지만 물러난 이후에 사사건건 미국과 각을 세울 수 있어."
단테 패트릭의 말에 나는 속으로 혀를 찼다.
아니 지금 모리 요시로가 불만을 가지는 것을 걱정할 때라는 말인가?
취임한 지 며칠 되지도 않는 대통령이 직접 사과를 해야 할 정도의 큰일이었다.
"자네도 알다시피 다음 총리로 가장 유력한 후보인 고이즈미도 넓게는 모리 요시로 파벌이야."
말을 마친 단테 패트릭이 나를 바라보았다.
단테 패트릭의 그런 모습을 보니 왜 그가 현장 요원이 아닌 관리직으로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지금 단테 패트릭의 모습은 CIA 요원이라기보다는 전형적인 보신주의 공무원의 모습이었다.
더구나 그걸 왜 나에게 묻는다는 말인가?
짜증이 났지만 어쩔 수 없었다.
"도움이 될지는 모르지만 제가 오늘 만난 골프장 직원들에게 모리 요시로 총리와 같이 골프를 친 사람들에 대해서 이상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상한 이야기라니?"
"같이 골프친 사람들이 아무래도 야쿠자 간부들인 것 같다는···."
"아! 하긴 모리 요시로가 예전부터 야쿠자와 유착설이 꽤 있었지. 같이 사진도 많이 찍혔지. 혹시 정확히 누군지는 모르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직원들도 정확히 모르는 것 같더군요. 제가 일본 야쿠자에 대해서 아는 것도 없고 해서···."
"좋아! 그렇게 가도록 하지. 다른 팀원들은 일본에 도착했나?"
"그건 왜 물으시는 것인지?"
"도착했으면 어떤가? 이번 일을 자네 팀에서 전적으로 해보는 것은 어떤가? 우리가 해도 되지만 그렇게 되면 자네 팀 성과를 가로채는 것이 되지 않겠나?"
단테 패트릭이 몸을 사리기는 하지만 그래도 양심은 있는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일이 밝혀졌을 때 일본 정보기관과의 관계를 위해서 우리 팀에 떠넘기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느 경우든 나는 더는 관여할 생각이 없었다.
아니 관여하려고 해도 팀원이 있어야 뭘 하든지 할 것 아닌가?
"괜찮습니다. 시간도 촉박하고 일본 사정에 밝은 일본 현지 팀이 맡는 것이 최고의 방법입니다. 무엇보다 저희 팀은 지금 해야 할 일이 많아서 이쪽 일을 할 여유가 없습니다."
"아쉽군. 이번에 다른 팀원들도 만나고 싶었는데···. 알겠네. 수고했네. 그럼 지금부터는 이쪽에서 맡지. 자네 팀이 한 일에 대해서는 본부에 제대로 보고하겠네."
"잠시만요. 보고서에 저희 팀이 한 일에 대해서는 제외해주십시오."
"제외해달라고?"
"예! 저희는 지금 중요한 작전을 수행 중입니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서 팀명이나 저에 관한 내용은 모두 비밀로 해주십시오."
"하지만···."
"그리고 이런 협조 요청에 응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지금 중요한 시기라서···."
나는 단테 패트릭에게 비밀로 해주기를 거듭 요청했다.
내가 예전처럼 CIA를 통해 국무부나 백악관의 요직으로 가려는 생각이라면 이번 일은 나름의 경력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좋네. 자네 팀 사정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감사합니다."
나는 내 생각대로 일이 돌아간다고 생각했다.
"아니네! 내가 오히려 더 고맙지. 일본 지부장님과 주일 대사님, 그리고 본부와 백악관을 제외한 다른 곳에는 자네 팀에 대한 일을 비밀로 하겠네."
'뭐라고요? 지부장, 대사, CIA 본부, 백악관에 알린다고요?'
나는 단테 패트릭의 말에 얼굴이 그대로 굳어졌다.
어디가 비밀로 해준다는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