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몽
# 일단 1억 불 정도만···.
내가 비밀로 해달라고 이야기할 때 상대가 바로 그 의견을 받아들일 줄 알았다.
아니 내가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실적을 가로채야 하는 것 아닌가?
단테 패트릭은 내 생각보다 훨씬 보신주의가 강했다.
자신이 실적을 가로챈 이후에 우리 쪽에서 보고하면 허위보고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내가 아니라고 이야기해도 소용이 없었다.
아무리 설득해도 보고하겠다는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보고를 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내 말만으로는 믿을 수 없다면서 팀장과 연결을 해달라고 이야기하는 데는 나도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내가 나이가 어린 것이 문제인 것 같았다.
설득하면서 이야기를 나눠보니 단테 패트릭은 아예 현장 요원도 아닌 것 같았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작년까지 행정관리본부(DA: Directorate of Administration) 소속이었던 것 같았다.
CIA는 크게 작전본부(DO :Directorate Of Operations), 정보분석국(DI: Directorate Of Intelligence), 과학기술본부(DS & T: Directorate of Science and Technology)의 세 본부로 나뉜다.
네 번째 본부로 행정관리본부(DA: Directorate of Administration)가 있었지만, 작년 2000년 대대적인 조직개편으로 폐지되고 그 기능은 여러 개의 부문으로 분산되었다.
아마도 조직개편 때 일본으로 넘어온 것 같았다.
하긴 현장 요원이라면 저녁을 먹은 식당에서 아침까지 먹는 행동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알기로는 규칙적인 생활은 요원으로서는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도 있었다.
정보 세계에서 상대는 항상 틈을 노리고 그 틈은 상대가 규칙적으로 하는 부분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정보기관에서 특정 음식이나 특정 물건을 좋아한다는 사실만으로 상대를 추적하는 일은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단테 패트릭이라는 이름도 진짜 이름 아니야?'
어쨌든 도통 말이 통하지 않았다.
단테 패트릭을 설득하려면 내 사정을 다 이야기하면서 팀장이라는 존재 자체가 없다는 사실을 이야기해야 할 것 같았다.
어제 처음 만난 단테 패트릭에게 이야기할 이야기는 아니었다.
아니 설사 상대가 누군지 안다고 해도 나에 대해 말할 수는 없었다.
작년에 셔먼 켄트 정보학교에서 배웠던 교관이나 같이 훈련받던 훈련생이 눈앞에 있다고 해도 뭐라고 하겠는가?
그리고 가능성은 작지만 내가 실제로 '요원 S(Agent S)'일 수도 있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를 이용한 기만 작전이 벌어지고 있거나 혹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요원 S라는 외부 팀에 소속된 상태일 수도 있었다.
단테 패트릭이 보안등급이 낮아서 그 사실을 모르고 나에게 메일을 보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아니면 어쩌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서류정리 미비로 조직에서 미아가 됐을 가능성도 있었다.
CIA는 방대한 조직이었다.
무엇보다 CIA 간부라도 해도 CIA 요원 전부나 비밀 작전 전체에 대해서 알 수는 없었다.
그게 설사 CIA 국장이라고 해도 말이다.
여기에 CIA에서 외부인을 프리랜서로 고용하는 예도 상당히 많았고 협조자로 포섭하는 예도 많았다.
나는 지금까지도 내 보스라고 할 수 있었던 에디 미첼이 요원이었는지 아니면 거물 협조자였는지 정확히 알고 있지 못했다.
아마 영원히 진실을 알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내가 단테 패트릭에게 그가 묻지도 않는 일을 떠벌릴 수는 없었다.
내가 권한도 없는 사람에게 비밀을 이야기하고 다닌다는 사실을 상부에서 알게 된다면 나를 제거하려고 할 수도 있었다.
어떤 정보기관이 마구 비밀 이야기를 하는 요원을 그냥 두겠는가?
그리고 그 제거는 단순히 CIA에서 해고되는 것이 아니라 내 목숨을 의미할 수도 있었다.
나는 별다른 배경도 없는 아시아계 말단 정보분석 요원에 불과했다.
내가 여전히 소속되어 있는지 의심스럽지만 내가 소속되었다고 생각했던 정보분석국(DI)가 정보는 공유되어야 한다는 생각하고 있었다.
반면 CIA 작전본부(DO)는 정보요원의 신상이 유출되는 것은 바로 곧 죽음이라고 생각하고는 했다.
작전본부는 사람들이 CIA라는 말을 들으면 먼저 떠올리는 바로 그 현장 요원들이 소속된 본부이기 때문에 이들이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당연했다.
결국, 내가 내 상황에 대해서 정확히 알려면 CIA 본부를 찾아가 정보분석국의 간부들을 만나야만 했다.
에디 미첼의 사망한 직후에도 CIA를 찾아갈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본부에 가서 누구를 만나서 무슨 이야기 해야 할지는 막막했다.
내가 뭘 하고 있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이야기하면 본부에서 무슨 생각을 하겠는가?
지금은 다른 이유로 CIA 본부를 찾아가기가 망설여졌다.
현재 투자자로 사는 생활에 점점 애착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애착이 점점 커지는 이유는 당연히 돈이었다.
한 달 조금 넘는 사이에 750만 불을 벌어들였다.
수익률로는 83%였다.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투자에 재능이 있었다.
투자로 내가 원했던 것들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이러니한 점은 내가 이런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자리와 자금을 준 사람이 바로 에디 미첼 그리고 CIA라는 사실이었다.
내가 아무리 재능이 있어도 아무런 경력도 없는 나를 어떤 투자 회사가 고용할 것이며 어떤 투자자가 지금과 같은 거액을 맡기겠는가?
회사에 들어가지 않고 개인 자금으로 투자를 했다면 내가 받는 성과급을 정도를 버는 데도 몇 년은 걸릴 것이다.
투자 회사에 들어가서 지금 정도의 자금을 움직이려면 그것도 몇 년은 걸릴 것이다.
CIA를 그만두면 이 모든 것을 잃게 된다.
아니 오히려 회사를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면 도이치뱅크에 빌린 차입금 중 남은 350만 불을 갚아야 할지도 모른다.
결론은 한가지였다.
단테 패트릭이 무슨 오해를 하고 있든 할 수 있을 때까지는 지금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적어도 도이치뱅크에서 빌린 이천만 불을 갚은 이후에도 내가 투자할 충분한 자금이 벌 때까지는 지금 상태를 유지해야 했다.
지금 추세라면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지는 않았다.
난 결국 단테 패트릭의 보고를 포기시킬 수 없었다.
"꼭 보고해야 한다면 어쩔 수 없죠. 그래도 되도록 저희에 대해서는 적게 언급해 주셨으면 합니다."
"하여간 현장 요원들은 정보가 드러나는 것에 대해서는 경기를 일으키니···. 그냥 요원 S(Agent S)라는 이름만 넣겠네. 태국, 필리핀 그리고 이번에 일본이었으니 다음 목적지는 어디인가? 혹시 인도네시아?"
"인도네시아요?"
"인도네시아 대통령도 오래 버티기 어려울 것 같던데 아닌가?"
아무래도 여기서 목적지는 단순히 인도네시아에 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나도 다 알고 있네. 필리핀 에스트라다 제거에 우리도 어느 정도 관여했거든···."
"그게 무슨···?"
아무래도 단테 패트릭이 단단히 오해를 하는 것 같았다.
나도 필리핀에서 에스트라다가 쫓겨나는 과정에서 미국의 정보기관이 관여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기는 했었다.
그런데 단테 패트릭은 거기에 우리가 관여된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 듯했다.
"아시아나 남미에서 포퓰리즘은 미국에 좋을 것이 없지. 보통사람들의 요구와 바람을 대변하려는 정치사상, 활동이라는 점에서 포플리즘은 결국 기득권의 이익에 반대될 수밖에 없고 미국과 각을 세우려는 경우가 많거든···. 뭐, 인도네시아 와히드 대통령 경우는 무능해서 별로 위협은 되지 않을 것 같지만···. 그래도 최근 중동과 사이가 나빠지고 있는데 이슬람 종교 지도자가 세계 최대 이슬람 국가의 대통령으로 있는 것은 좋지 않지."
"뭐 그렇기는 하죠."
아무래도 내가 모르는 사이에 CIA에서 인도네시아 대통령에 대한 작전이 진행되고 있는 것 같았다.
진짜 21세기에 이런 일이 아직도 벌어지고 있다니···.
예전 60년대나 70년대에 CIA의 제삼 세계 정부 전복이 쿠데타라는 형식으로 이뤄졌다면 이제는 국민봉기를 유도하는 형태로 바뀐 것 같았다.
"어쨌든 이번에 큰 도움 받았네. 나중에 내 도움이 필요하면 나에게 연락하게."
단테 패트릭은 나에게 명함 하나를 건네주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였다.
명함에는 단테 패트릭이라는 이름과 주일 미국대사관의 직책이 그대로 나와 있었다.
이른바 화이트 요원이라고 할 수 있었다.
'화이트 요원이 이런 공작을 해도 되는 거야?'
어쩌면 이 사람이 이번 일을 책임진다는 것 자체가 정보국의 기만 작전일 수도 있었다.
그건 내가 알 바가 아니었다.
문제는 이 사람과 식사를 같이 한 나도 노출되었을 가능성이 있었다.
아무래도 이번에 사용한 위조여권을 버려야 할 것 같았다.
나는 일본을 올 때 사용했던 위조여권을 사용해 한국에 입국했다.
그리고 한국에 입국하자마자 사용했던 위조여권을 폐기하고 다른 여권을 사용해 홍콩으로 돌아왔다.
월요일 출근해서 피곤한 얼굴로 기사를 검색했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리안이 말을 걸었다.
"주말에 뭘 했기에 그렇게 피곤한 얼굴이야?"
"이런저런 일···."
리안의 질문에 나는 얼버무렸다.
내가 주말에 한 일을 리안에게 말할 수는 없었다.
"여자를 한 명도 아니고 여러 명 만난 거야?"
"여자는 뭔 소리야?"
"너 작년에 여자 꽤 많이 만났잖아. 너 꽤 유명해."
"···."
홍콩에 온 이후에 꽤 많은 여자를 만난 것은 사실이지만 최근에는 그럴 시간이나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하여간 여자 적당히 만나. 내가 여동생을 소개해 주고 싶어도 네 난봉꾼 기질 때문에 소개해 줄 수가 없어."
"됐네요."
리안과 사적으로 가까워질 생각은 전혀 없었다.
"뭔 기사를 보는 거야."
리안은 내 컴퓨터 모니터를 쳐다보았다.
"아···. 모리 총리가 고등학생들이 탄 배가 침몰했다는 소식을 듣고도 골프친 이야기···. 하여간 일본 정치인들은 지도층으로서의 기본적인 책임감 자체가 없다니까. 지도자라면 다른 때는 무슨 짓을 하더라도 아랫사람들이 위기에 처했을 때는 앞에서 나서야지."
나는 조금 전까지 보고 있던 뉴스로 시선을 돌렸다.
월요일 일본은 물론이고 전 세계 외신은 에히메마루의 침몰과 모리 요시로 일본 총리가 그 소식을 듣고도 골프를 계속 치다가 3시간 후에야 관사로 복귀한 사실을 대서특필했다.
정작 사고 소식은 물론이고 미국 대통령까지 나선 사과보다도 모리 요시로의 행동에 대한 비난 기사가 주를 이뤘다.
사람들이 높은 지위에 있던 사람의 추락을 보고 즐거워하는 것은 본능이었다.
그리스신화 속 오이디푸스는 물론이고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이라는 햄릿, 오셀로, 리어왕, 맥베스 모두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의 몰락을 그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자신들보다 우위에 있던 사람들의 몰락을 즐긴다.
특히 그 사람이 모리 요시로처럼 예전부터 망언이나 문제가 되는 발언을 했던 사람이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이런 기사들이 내 제안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모리 요시로를 희생양으로 삼는 것만으로 일본 내 반미감정을 없애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렇지만 어쨌든 사고에 대한 비난 중 많은 부분을 모리 요시로에게 떠넘기는 데는 성공한 셈이었다.
스파이로서의 위기를 넘겼으니 이제 다시 투자에 전념할 때였다.
"이번에 사들인 한국 주식들은 내일부터 수요일까지 적당한 가격에 파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알았어."
리안은 자리로 돌아가 지금까지 사들였던 주가를 확인했다.
나도 내 자리에서 코스피 지수와 계좌 명세를 확인해 보았다.
5일 사이 한국의 코스피 지수는 4% 정도 오른 상태였다.
이 정도면 남북협력 호재로 오를 만큼 오른 셈이었다.
특히 건설주와 금융주가 많이 올라 우리가 사들였던 주식은 6%에서 7% 정도 전체적으로 지수보다 높은 상승률이었다.
"그런 다음은? 시장 상황이 좋지 않은데 이번에도 쉬는 거야?"
리안이 물었다.
"글쎄···."
나는 단테 패트릭을 만났을 때 들었던 인도네시아 상황이 떠올랐다.
"인도네시아 대형주 중심으로 구매해줘."
리안은 내 말에 인도네시아 주가를 띄웠다.
"한 주 단위로 등락을 반복하네? 지난주 꽤 많이 떨어졌으니 올라갈 타이밍이기는 한데···."
"그러니까. 뭐 대형주 위주로 사들이면 손해는 보지 않겠지."
"알았어."
리안은 인도네시아 대형주를 중심으로 주식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몸을 쫙 폈다.
기지개를 켜자 저절로 하품이 났다.
요일은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인데 나는 이제야 한 주가 끝난 기분이었다.
CIA 요원과 투자자로서의 두 가지 일을 한꺼번에 하려니 피로가 두 배가 되는 것 같았다.
한 달 전 나에게 누가 둘 중 하나만 그만둬야 한다고 물었다면 당연히 투자 회사의 직원으로서의 위장 신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내가 1억 불 모을 때까지만 참는다.'
계산상으로는 매월 20%의 수익률을 올리면 11개월이면 원금이 7.43배로 늘어난다.
도이치뱅크에서 빌린 2천만 불의 원금을 제외하고도 수수료를 1억 불 이상을 모을 수 있다는 의미였다.
당연히 20%의 수익률을 11개월 동안 올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불가능하여지라는 법도 없잖아?'
이미 한 달 조금 넘는 시간에 83%의 수익률을 얻었다.
이런 수익률을 얻을 수 있었던 이유는 미국 연준의 금리 인하로 내림세였던 세계증시가 상승세로 돌아선 영향이 컸다.
그렇지만 한 달 동안에 83%의 수익률을 얻었는데 한 달에 20%의 수익률을 얻는 것이 아주 불가능하게만 느껴지지 않았다.
올해 연말쯤에 내가 억만장자가 되는 것은 꿈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