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몽
# 이유 있는 핑계.
리안은 수요일 오전 한국 증시 건설주를 모두 팔았다.
한국에 낸 증권거래세와 류오린에 지급한 비용을 제외한 이익은 백만 달러가 조금 넘었다.
"한 주 동안 수익으로는 괜찮네."
모든 거래를 마친 리안이 말했다.
"한 주에 18,000불이면 나쁘지 않지?"
내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금액이 크다 보니 류오린에 지급한 매매수수료만 18만 불에 가까운 금액이었다.
류오린과의 계약으로 그중 5분의 1이 내가 받는 성과급이 36,000불.
그중 절반인 18,000불이 리안의 몫이었다.
"그렇게 많은가?"
리안이 부자라고는 하지만 한 주에 18,000불을 버는 것은 절대 적은 금액이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 추세대로라면 그 금액은 점점 더 많아질 것이다.
잠시 생각하던 리안이 입을 열었다.
"내 몫이 너무 큰 것 아니야?"
리안의 몫이 많은 것은 사실이었다.
리안이 유능하기는 하지만 지금 리안이 하는 일은 리안이 아니더라도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았다.
그렇지만 내가 리안을 파트너 선택한 것은 단지 그의 능력 때문이 아니었다.
"부잣집 도련님 티를 내는 거야? 너는 그 돈 없어도 부자라 이거야?"
내 말에 리안이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그런 게 아니라···. 중요한 종목 선정은 에드릭 네가 다 하는데 똑같이 나누는 것은 아닌 것 같아서···."
"하는 일에 비해서 돈을 많이 받는 것 같으면 그 돈만큼 일하면 되잖아."
돈값을 하라는 내 말에 리안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무슨 일? 도대체 한 주에 14만 홍콩 달러를 받을 만한 일이 뭔데?"
"기본적인 일이지. 우선 지난번에 왕 웬준 팀장과 이야기해보니 내 계좌의 거래명세를 마음대로 보는 것 같더라고···. 계속 그런 식이면 곤란하지 않겠어?"
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음···. 알았어. 내가 위에 이야기할게. 이제 내가 관리하는 계좌인데 위에서 마음대로 거래 명세를 살피면 안 되지. 그리고 다음은?"
리안이 별 것 아니라는 듯 말했다.
내가 조사한 바로는 리안의 아버지가 류오린에 상당히 많은 투자를 했다.
최대 주주는 아니지만, 대주주 중의 한 명이었다.
"내가 앞으로 지금보다 더 자주 꽤 오래 회사를 비울 수도 있을 것 같아. 그리고 내가 회사에 출근하지 않는 동안 연락이 안 될 수도 있고 말이야. 그런 때 리안 네가 책임지고 위에서 내려오는 압력을 막아줘. 지금 왕 웬준 팀장은 물론이고 혹시 나중에 새로운 팀에 가게 되면 말이야."
내가 굳이 리안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만약을 위한 대책이었다.
CIA 본부에서 지난주처럼 갑작스러운 지시가 내려올 수도 있었다.
그렇게 내려온 임무 중에는 이번처럼 하루 이틀에 끝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이번도 단테 패트릭에게 모든 일을 맡기고 왔으니 바로 올 수 있었다.
여론 공작까지 해야 했다면 이번 주까지 일본에 머물러야 할 수도 있었다.
그런 경우 회사와 계속 연락할 수는 없었다.
홍콩에서 출국한 적이 없는데 다른 여권으로 한국이나 일본에 가야 할 때도 있을 수 있었고 회사에는 태국으로 출장을 간다고 이야기했지만 말레이시아에 가야 할 때도 생길 수 있었다.
이런 경우 당연히 전화를 계속 가지고 다닐 수는 없거나 가지고 있더라고 꺼놓아야 했다.
내가 지금 다니고 있는 류오린은 홍콩과 본토의 합작기업이었다.
그리고 본토에서 온 자금과 인력은 중국 공산당과 연결되어 있었다.
류오린에 근무하고 있는 본토 사람, 당장 왕 웬준 팀장도 공산당 고위층과 인맥이 있었을 뿐 아니라 나중에 본토에 돌아가서 공산당에 입당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심지어 나중에 곧 생기는 팀은 본토 고위직의 자금을 해외에 빼돌리는 것이 주요 목적일 수도 있는 팀이었다.
언제 나에 대한 조사가 들어와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설사 그런 염려가 없더라도 CIA에서 내려온 임무를 수행할 때 내 행적을 류오린에 알리는 것은 위험할 수도 있었다.
"그건 뭐 굳이 나에게 이야기할 필요도 없는 거 아니야? 지금처럼 실적을 내면 누가 뭐라고 하겠어?"
리안은 내가 쓸데없는 걱정을 한다는 표정이었다.
리안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처럼 실적을 내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 상황이 좋지 않으면 거래를 해서는 안 될 때가 있을 텐데 그러면 실적 압박이 올 것이 뻔하잖아."
"그렇기는 하지. 지금 시장 상황 보면 어느 나라 증시에 투자해도 손해를 볼 때가 있을 텐데 그럴 때는 투자를 쉬어야지."
이런 세계적인 경제 위기에는 특히 세계 증시가 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때는 아무리 골라도 투자할 곳이 없을 수도 있었다.
"더구나 그런 와중에 내가 출장까지 가야 하면 위에서 보기에는 눈에 거슬릴 수도 있고 말이야. 너야 회사 사람이니 당장 수익이 없더라도 장기적으로 생각해서 심한 압박이 없겠지만 나는 일 년 반 후면 떠날 사람이라고 생각할 테니 있을 때 최대한 뽑아 먹으려고 할 수도 있잖아."
류오린에서 리안을 심하게 압박하는 것은 어려웠다.
나와 같이하는 거래도 아니더라도 실적도 좋았고 그의 고객 중 상당수는 대부분 리안의 집안과는 잘 아는 사이였다.
여기에 류오린에 지분까지 있었다.
리안이 마음대로 해외 투자팀에 있다가 아시아 팀으로 옮길 수 있었던 것은 수익률도 좋지만 바로 이런 배경이 있기 때문이었다.
내 경우는 조금 달랐다.
내가 개인적으로 거액의 투자금에 대한 전권을 가지고 있고 수익률도 좋지만 나는 명목상 만 류오린의 직원일 뿐 외부인이었다.
외부인이라는 것이 왕 웬준 팀장과의 갈등이 있을 때 유리한 점이기도 했지만 반대로 불리한 점도 많았다.
류오린에서는 나나 내가 관리하는 투자금이나 어차피 내년 중반이면 떠날 자금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류오린 입장에서는 투자금을 회사에서 관리하고 있을 때 최대한 이익을 내려고 하는 것이 당연했다.
어떤 식으로든 압력을 넣어서 거래하려고 할 가능성이 컸다.
"무슨 말인지 알았어. 아무리 너무 걱정하지 마. 투자회사가 매매수수료가 주요 수입이라고는 하지만 우리 정도 수익률만 꾸준히 얻으면 위에서도 마음대로 압박을 할 수 없지. 지금 추세대로라면 일 년 정도면 금액이 몇 배가 될 수 있어. 그러면 지금 여러 번 거래하는 것보다 그때 한 번 거래하는 것이 훨씬 류오린에게도 이익이잖아."
"그렇게 생각하면 좋겠지만 사람 마음이 그게 아니니 문제지."
사람은 나중에 몇 배를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불확실한 미래보다 적더라도 현재의 확실한 수익을 더 원하는 법이었다.
사람이 근시안적이라기보다는 경제학적으로도 현재의 확실한 이익을 얻는 것이 더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걱정하지 말라니까. 날 믿어. 돈을 받으면서 그 정도는 해야지."
리안이 오른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툭툭 치면서 말했다.
자신이 있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리안의 그런 모습이 미소를 지었다.
"든든하네."
"그런 쓸데없는 걱정은 잊어버리고 다음 투자에 관해서 이야기하자."
리안이 말을 화제를 돌렸다.
"지난번 이야기했던 것처럼 인도네시아에 투자해?"
"잠시만···."
나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종합주가지수를 확인해 보았다.
"어제보다 조금 떨어지고는 있는데···. 이거···!"
"왜?"
내가 뭔가 발견한 듯한 소리를 내자 리안도 급히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종합주가지수를 확인했다.
"아···. 지수는 떨어졌는데 거래량이 몇 배나 늘었네. 뭔가 있나 본데···."
리안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차트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나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떨어지고 있으니 급할 것은 없지만 사들여서 손해를 볼 것은 없을 것 같아. 오늘부터 조금씩 사들이면 될 것 같아."
"걱정하지마! 그렇지 않아도 월요일에 네 말 듣고 인도네시아 대형주에 대해서 분석해 놓았어. 사들일 종목이나 가격도 대충 결정했고···. 나만 믿어."
리안은 말을 마치고 미리 정해놓았던 자카르타 증시의 주요 기업 차트를 하나하나 띄우기 시작했다.
나는 잠시 리안이 주식을 사들이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았다.
잠시 지켜보았지만 점점 흥미를 잃었다.
어떤 주식을 사도 그게 제대로 사들이는 것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으니 리안이 거래하는 기업들 이름 자체가 생소했다.
"힘내!"
나는 손을 뻗어 리안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말하고는 시선을 내 앞에 놓인 모니터로 돌렸다.
그리고 주가나 거래 창이 띄워져 있는 모니터에서 뉴스 검색 전용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야후에 들어가 일본 뉴스를 검색해 보았다.
'아, 제기랄!'
나는 속으로 욕이 저절로 나왔다.
오전에 확인했을 때는 여전히 모리 총리가 사고 소식을 듣고도 계속 골프를 친 것에 대한 비난이 뉴스의 중심이었다.
사고 발생한 지 겨우 이틀 만에 미국 시각 일요일 부시 대통령이 직접 이번 사고에 대해 사과까지 하면서 미국에 대한 비난 여론은 그리 크지 않은 상태였었다.
심지어 사고에 대해서 미국 대통령이 사과하는 것에 대해서 오히려 미국 내에서 비난 논평이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지금은 초점이 사고 원인에 집중되어 있었다.
이번 충돌 사고는 원자력 잠수함 견학을 하던 민간인의 실수로 급격히 잠수함이 상승하면서 생긴 일이었다.
다행히 아직 견학한 사람의 신상은 밝혀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미국, 특히 미 해군에 대한 비난 여론이 꽤 커진 상태였다.
'갑자기 일본 내 여론이 완전히 180도 바뀌었네. 이 정도라면 일본 정부 차원에서 나섰나 본데···. 역시 그냥 총리가 된 것은 아니라는 것인가?'
어차피 이제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미국 내 일본 여론이 나빠지고 있다는 사실에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이런 때 꼭 메일이 오던데?'
그 불안은 다음 날 현실이 되었다.
다음날 CIA의 지시를 받던 메일 주소로 하나의 메일이 도착했다.
CIA 본부에서 온 메일은 아니었다.
일본에서 만난 단테 패트릭에게서 온 메일이었다.
다시 한번 일본으로 와서 도와달라는 메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일본에 갈 생각이 없었다.
단테 패트릭은 같은 식당에서 연속으로 식사할 만큼 보안에 대해서 무관심한 요원이었다.
이미 모리 총리의 골프장 스캔들에 대한 여론 공작을 했다는 사실이 드러났을 가능성이 컸다.
그렇지 않아도 여론이 최악인 상황에서 골프장 스캔들까지 터졌고 모리 총리가 그게 단테 패트릭의 여론 공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면?
모리 총리로서는 단테 패트릭을 씹어 먹어도 시원치 않을 것이다.
단테 패트릭이 CIA 화이트 요원이자 대사관 직원이 아니었다면 어떤 꼴을 당했을지 모른다.
그런데 일본 정부의 감시를 받고 있을지도 모르는 단테 패트릭을 만나러 일본에 간다?
자살행위였다.
나는 단테 패트릭에서 지금 태국에서 조사하느라 일본에 갈 수 없다는 메일을 보냈다.
이런 작업은 철저하게 아이피를 감출 수 있는 장치와 프로그램이 깔린 AAM에서 이뤄졌다.
그리고 나는 곧바로 태국행 비행기를 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