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스파이, 슈퍼리치 되다-32화 (33/270)

서몽

# 방콕에서 만난 미녀.

나는 방콕 공항에 도착해 짐을 찾자마자 공항에서 홍콩으로 전화를 걸었다.

"방콕에 도착했어?"

"이제 막 공항에서 짐 찾고 나오는 길이야."

"도대체 이번에는 갑자기 무슨 일로 태국에는 간 거야? 어제까지만 해도 아무 말도 없었잖아."

"지난주에 탁신이 총리로 취임했잖아. 여기 분위기가 어떤지 조사해 보려고···."

"그럼 미리 말이라도 하지···. 아침에 갑자기 회사도 들리지 않고 태국으로 간다고 해서 무슨 중요한 일이라도 있는 줄 알았잖아."

리안이 말했다.

그의 말투에서 내 갑작스러운 태국 출장이 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심정이 그대로 느껴졌다.

"파트너인 너를 믿고 온 거지. 어차피 내가 홍콩에 있어도 할 일도 없잖아. 거래는 어차피 너를 믿고 있으니까."

"믿어줘서 고맙네요."

"믿으니 거래를 다 맡기는 것이지."

"네가 너무 나를 믿어서 부담스러울 지경이야."

"주식은 다 사들였어?"

내가 물었다.

"설마 어제 네가 관리하는 계좌 확인도 해보지 않은 거야?"

"아니 뭐···."

리안의 질문에 나는 얼버무렸다.

수요일 리안에게 인도네시아 주식을 사라는 말을 한 이후로 따로 확인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인도네시아에 대해 잘 모르는 내가 본다고 해도 제대로 된 기업의 주식을 샀는지 혹은 적정 가격에 샀는지를 알 수가 없었다.

"이미 수요일 오후부터 어제 아침까지 해서 다 사들였지."

인도네시아는 3개의 시간대가 있었다.

그중에서 주식시장의 기준이 되는 시간은 당연히 자카르타 시각이었다.

그리고 그 자카르타 표준시는 홍콩보다 한 시간 빨랐다.

"너무 나를 믿지는 마. 혹시 내가 다 말아먹으면 어떻게 하려고 이틀 동안 확인도 하지 않은 거야. 아무리 파트너라도 그렇게 내버려 두다가는 큰일이 나는 수가 있어."

"미안, 조사할 일이 있어서 확인을 못 했어."

나는 리안에게 사과했다.

"됐어. 지금 확인해 보니 자카르타 종합 지수가 10포인트 올랐네. 이틀 만에 2% 오른 것을 보면 다음 주 화요일이나 수요일 정도면 한 4% 정도는 오를 것 같아."

"혹시 내가 연락이 없더라도 440포인트 정도까지 오르면 다 팔아줘. 어차피 매주 등락을 반복하는 것이니 그 이상 오를 여력은 없어 보이니까."

"알았어. 그런데 너 선물 계약은 어떻게 할 거야?"

지난달 말 나는 나스닥 선물에 류오린에 오고 난 후 받은 돈 거의 전부인 56만 불을 투자했다.

"놔도 내 생각에는 더 떨어질 것 같아."

하락을 예상하고 선물을 매도한 상태였기 때문에 하락하면 할수록 이익이었다.

이미 처음 매도했을 때보다 -14% 이상 떨어져서 큰 이익을 얻은 상태였다.

"너무 위험한 것 아니야? 레버리지도 풀배팅했던데···. 가격 조금만 올라도 청산될 수 있어."

"2월 말까지는 기다려 볼 생각이야. 난 최소한 2,200포인트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

"휴··· 알았어."

리안이 한숨을 쉬었다.

리안도 나와 비슷한 시기에 나스닥 선물을 매도했었다.

말하는 것으로 봐서는 그는 이번에 선물을 청산할 생각인 듯했다.

"그럼 자주 연락할게."

나는 일단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지난번 태국에 왔을 때 안내를 맡았던 리 레이의 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태국으로 출발하기 전 그에게 연락했었다.

내 전화를 받자마자 리 레이는 먼저 공항에 마중을 나오겠다고 이야기했었다.

"도착했습니다."

"공항에 저희 쪽 사람이 나가 있는데 길이 엇갈렸나 보군요."

"아···. 찾아보겠습니다.“

조금 당황스러웠다.

나는 당연히 리 레이가 직접 나올 줄 알고 사람을 찾아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조금 이상하게 생각했었다.

리 레이도 태국에서 자동차 부품 회사를 운영하는 바쁜 사람이었다.

갑작스러운 내 연락에 공항에 직접 나올 여유가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먼저 나오겠다고 이야기하고 난 다음에 다른 사람을 내보내는 것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지금 출국장 입구로 가시면 에드릭 씨의 이름을 종이를 들고 있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나중에 다시 전화하겠습니다."

나는 리 레이와 전화 통화를 끝내고 출국장으로 다시 돌아갔다.

그곳에는 여성 한 명이 에드릭 손이라는 종이를 들고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어딘가 초조한 표정이었다.

아마도 비행기가 도착한 지 꽤 시간이 지났는데 내가 나오지 않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녀의 뒤로 가서 말했다.

"리 대인이 보낸 분인가요?"

종이를 들고 있던 여성이 고개를 돌렸다.

'미인이네.'

20대 초중반 정도로 보였지만 미인들이 흔히 그렇듯 정확한 나이는 알 수 없었다.

"에드릭 씨?"

"제가 에드릭 손입니다."

여성이 들고 있던 종이를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리 슈(Li Xue, 李雪)라고 합니다. 오빠가 나오려고 했는데 오늘 중요한 미팅이 있어서 제가 대신 나왔습니다."

"···. 리 대인의 동생분이시군요."

'정말 일이 있어서 못 나온 것 맞아? 무슨 생각으로 동생을 보낸 거야?'

뭔가 의도가 의심스러워 보이기는 했지만, 티를 내지는 않았다.

아무리 미인이라고 해도 첩보 임무를 하는 와중에 만난 여자와 개인적인 일로 엮이는 것은 너무 위험했다.

"오히려 제가 죄송하네요. 그렇지 않아도 지난번 태국을 찾았을 때 폐를 끼친 것 같아서 이번에 대접이라도 하려고 했는데 오히려 더 큰 폐를 끼친 것 같네요."

리 슈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오히려 저희 오빠가 에드릭 씨 덕분에 빠르게 새 정부 관계자들과 손을 잡을 결심을 할 수 있었다면서 큰 도움이 됐다는 말을 자주 하셨습니다."

"제가 도움이 됐다니 그나마 다행이네요. 그래도 제가 도움받은 것이 있으니 홍콩으로 돌아가기 전에 제가 대접하겠습니다."

"오빠도 기대하고 있을 겁니다."

리 슈와 리 레이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는 공항 밖으로 나왔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차를 가져오겠습니다."

"예."

나는 리 슈를 기다리는 동안 입고 있던 양복 상의를 벗어서 손에 들었다.

갑자기 오느라 홍콩에서 입고 다니던 옷을 그대로 입고 온 때문인지 등에서 땀이 흐를 것 같았다.

홍콩의 2월 날씨도 다른 곳보다 따뜻한 편이었지만 이곳 방콕의 날씨는 따뜻한 수준을 넘어 땀이 날 정도였다.

지난번에 갔던 일본 도쿄가 겨울 날씨라면 홍콩은 가을 날씨였고 방콕은 여름 날씨였다.

"어디로 갈까요?"

리 슈가 물었다.

나는 그녀에게 내가 지난번 머물렀던 호텔을 알려주면서 덧붙였다.

"호텔 앞에서 내려주십시오."

내 말에 리 슈가 조금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오빠가 방콕에 머무는 동안 제게 안내를 부탁했습니다만···?"

예상했던 것처럼 아무래도 리 레이는 자신의 동생을 나와 엮으려는 것 같았다.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괜찮습니다. 호텔에 도착해서 경호를 함께 할 수 있는 분을 요청할 생각입니다."

"경호도 할 수 있는 가이드요?"

리 슈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지난번 필리핀을 방문했을 때 길에서 강도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렇군요."

리 슈가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아무 말 없이 앞을 보며 운전을 하던 리 슈가 입을 열었다.

"필리핀과는 달리 태국은 그런 일이 별로 없지만 그래도 사람이 필요하다면 제가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네요."

리 슈는 한 손으로 운전대를 잡은 상태로 글러브 박스(glove box)에서 명함 하나를 꺼냈다.

명함에는 스노우 투어 대표 리 슈라고 쓰여 있었다.

"작은 여행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직접 운영하시는 건가요?"

내가 물었다.

리 슈의 나이를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리 레이의 동생이라면 20대였다.

회사를 직접 운영하기에는 어린 나이였다.

"예! 세운 지는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태국의 관광이 유명하기는 하죠. 그런데 이미 기존 여행사들과의 경쟁이 힘들지 않나요?"

태국은 관광 사업이 GDP의 10%를 차지하는 관광 대국이었다.

일 년에 태국을 방문하는 해외 관광객의 수만 천만이 넘었다.

수십 조가 걸린 산업인 만큼 여행사 사이의 경쟁이 치열했다.

"쉽지는 않죠."

리 슈가 순순히 인정했다.

더구나 리 슈는 눈에 띄는 미녀였다.

태국 관광 중 상당한 부분이 매춘 관광이었다.

리 슈 같은 미녀가 여행사를 운영한다면 자칫 추문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었다.

"그래서 저희 여행사는 의료관광객 유치에 집중할 생각입니다. 태국은 의료 수준과 비교하면 훨씬 비용이 낮으니까요."

나쁘지 않은 생각이었다.

태국은 국가 전체에서 관광산업을 중요시하는 만큼 고객서비스를 훈련받은 인력이 충분했다.

여기에 태국의 주요 병원들은 기본적인 의료 수준에서는 국제적인 수준이었다.

물론 선진국 의료 수준과 비슷한 엄청나게 뛰어난 수준은 아니었다.

어차피 그런 치료를 태국에 와서 받으려는 사람은 없었다.

"지금 태국 관광객 중에서 의료관광객은 얼마나 됩니까?"

내가 물었다.

"정확한 통계는 없어요. 하지만 업계에서는 최소 30만에서 40만 정도는 될 거로 생각하고 있어요. 관광을 왔다가 간단한 수술을 하는 단계를 넘어서 지금은 태국 주요 병원과 외국 의료 기관 및 보험회사와 직접 협약을 맺으려고 하는 단계에요."

리 슈는 나이는 어리지만 나름대로는 충분한 조사를 철저히 하고 뛰어든 듯 거침없이 말했다.

"준비를 많이 하셨나 보네요."

"그럼요. 아직 자금이 모자라서 병원들과 직접 협약을 맺지는 못했지만 우리 회사 직원들은 모두 능력이 있어요. 제가 에드릭 씨에게 소개하려는 직원도 군에서 위생병으로 일한 경험이 있어서 경호는 물론이고 간단한 응급처치도 할 수 있어요."

리 레이가 리 슈를 공항에 내보낸 이유 중에는 그녀가 여행사를 운영하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직접 내보낸 데는 나와 어떻게 엮어보려는 이유가 우선이겠지만 말이다.

"물론 의료관광을 오신 것이 아니니 응급처치할 일은 없어야 하지만요."

리 슈가 덧붙였다.

나로서는 나쁠 것이 없는 제안이었다.

비록 위생병이라도 여행 가이드가 군 경험이 있다면 나쁠 것이 없었다.

태국은 군부 쿠데타가 아주 드문 일이 아닌 나라였다.

쿠데타가 일어나더라도 국왕의 인정만 받으면 정통성을 인정받는 나라였다.

태국의 국왕은 처음에는 군부의 꼭두각시로 내세운 존재였다.

하지만 어떤 명목상의 명분이라고 그게 오래 계속되면 그 자체로 힘을 가지게 된다..

쿠데타로 집권했던 군부는 여러 번 교체됐지만, 태국의 국왕은 오래 세월 집권했다.

그 세월이 오래되면서 태국 국왕과 군부의 관계는 역전되었다.

태국의 국왕은 이제 군부와는 별개로 살아 있는 신으로 국민의 존경을 받고 있었다.

이런 국왕의 인정만 받으면 군부 쿠데타 이후 집권하고 스스로 민간에 정권을 이양한 이후에도 처벌을 받는 일도 없었다.

민간으로 정권이 이양된 지 꽤 시간이 지났지만, 군부는 태국 국왕에게 충성하는 세력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제가 먼저 부탁을 드려야겠네요. 주말은 물론이고 다음 주에도 머물러야 할 것 같으니 충분한 사례를 하겠습니다."

룸미러를 통해 리 슈가 미소를 짓는 모습이 들어왔다.

"저희 여행사를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고객님! 후회하지 않게 해드리겠습니다."

미녀가 미소를 짓는 모습은 매력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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