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스파이, 슈퍼리치 되다-35화 (36/270)

서몽

# 투자의 목적.

리 레이는 공항에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내내 말이 없었다.

홍콩에서 온 손님을 마중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답답한 분위기를 참다못한 리 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뭔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어요?"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좀 이해가 가지 않아서···."

리 레이가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

"뭐가요?"

리 슈의 말투는 조금 날카로웠다.

"네 여행사에 투자 제의를 한 것이 뭔가 다른 의도가 숨어 있는 것 아닌지···."

오빠 리 레이는 자신을 걱정해서 하는 말이겠지만 리 슈는 그런 오빠의 걱정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리 레이는 어릴 때부터 여동생에게 약했다.

리 슈는 오빠가 자신을 위하는 것은 알지만 그런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이 차이는 얼마 되지 않는데도 자신을 너무 아이 취급하는 느낌이었다.

어릴 때야 그런 오빠가 든든했지만, 이제는 자신도 내년이면 25살이었다.

대학교도 졸업한 지 몇 년이 지났다.

이제는 여행사를 설립해서 운영하고 있는데도 오빠 리 레이는 항상 자신을 보호하려고 들었다.

"내 여행사가 어때서요?"

리 레이가 고개를 저었다.

가시가 돋친 듯한 리 슈의 말에 어찌할 줄 모르는 표정이었다.

"아니 네 여행사가 나쁘다는 말이 아니라···."

"손님 대부분이 우리 여행사에 대해서 만족하시거든요. 그런 서비스를 보고 장래성이 있다고 생각해서 투자하겠다는 것이 뭐가 이상을 한다는 거예요?"

"휴···."

리 레이가 잠시 한숨을 쉬고 말을 이었다.

"너도 내가 에드릭 손을 어떻게 만나게 됐는지는 알고 있지?"

리 레이의 질문에 리 슈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오빠가 상해에서 알게 된 홍콩 투자회사 사람의 소개였다면서요."

"맞아. 왕 웬준이라고 류오린이라고 홍콩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회사의 팀장이야. 에드릭 손은 그 팀원이지."

"그런데요? 홍콩 투자회사에서 동남아에 투자하는 일은 흔하잖아요."

홍콩은 아시아 금융의 중심이었다.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직간접 투자는 어떤 식으로든 홍콩을 통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홍콩 투자회사들은 아시아에 많은 직접투자를 하고 있었다.

외환위기 때 꽤 많은 홍콩 투자회사들이 파산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흔하지. 그런데 내가 홍콩에 전화를 걸어서 알아보니 에드릭 손은 주식에만 투자하지 직접투자는 하지 않는다는 거야. 네 회사에 투자한 것이 처음이라는 말이지."

리 슈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래요?"

오빠 말대로라면 조금 이상한 일이기는 했다.

주식을 통한 간접 투자만 하다가 직접 투자한 곳이 자신의 여행사라니···.

물론 리 슈는 자신의 여행사는 설립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꽤 장래성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태국은 오래전부터 관광 대국이었다.

최근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정치적으로 불안하면서 태국을 방문하는 관광객은 빠르게 증가하고 있었다.

자신의 여행사가 주력으로 하는 의료 관광 분야는 더욱 전망이 좋았다.

태국 의료수준은 동남아에서는 손에 꼽힐 정도로 비용 대비 훌륭했다.

오빠와 자신의 인맥을 통해서 중국 본토와 동남아시아의 화교 중에서 비교적 안전하게 수술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모집하고 있었다.

여기에 오랫동안 자신들의 리 가문과 인연이 있는 수난 클라한의 군 시절 인맥도 있었다.

이런 조건을 생각하면 스노우 여행사의 장래는 밝았다.

그렇지만 홍콩 투자회사가 먼저 직접투자를 제시할 만큼이라고 하면 조금 애매했다.

리 슈는 자신이 있었지만, 에드릭 손은 겨우 며칠 자신의 여행사를 이용해본 것이 전부였다.

단지 그 며칠 동안의 경험이 전부였다.

에드릭은 그 경험만으로 처음 10만 불을 투자하고 차츰 50만 불까지 늘려서 투자하겠다는 제안을 해왔다.

"그것만이 아니야. 주식 투자 수익률이 낮아서 직접투자를 했다면 이해라도 할 수 있겠는데···. 왕 웬준 팀장 말로는 주식 투자 수익률이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높다더군. 내가 여동생 회사에 투자한다는 이야기를 하자 오히려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묻더라고···."

"이상한 일이기는 하네요."

"이상한 일이지."

주식 투자로 충분한 이익을 얻는 상황에서 굳이 다른 투자처를 찾는다는 것도 이상하지만 그게 자신의 여행사라니 더 이상한 일이기는 했다.

정말로 숨은 의도가 있다면 투자받은 돈을 돌려주고 이번 투자 제의를 거절해야만 했다.

리 슈는 오빠 리 레이를 말을 더 듣고 투자를 받을지 거절할지 생각해 보기로 했다.

"에드릭은 만나면 만날수록 조사해 보면 조사해 볼수록 종잡을 수가 없어."

말을 마친 리 레이가 다시 고개를 저었다.

"조사라니 뭘 또 조사했는데요?"

리 슈가 물었다.

오빠의 입에서 조사라는 말까지 나오는 것을 보니 에드릭을 소개했던 사람에게 묻는 것 이상을 알아본 듯했다.

"특별한 것은 아니고 어디 출신인지,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 그리고 그 학교에서의 평판은 어떤지 하는 일반적인 것들이야."

"어디 학교를 나왔는데요?"

"그게 좀 특이해. 한국계 이민 2세인데 옥스퍼드에서 국제관계학을 전공했어. 그리고 워싱턴의 연구소에서 외교 관련 연구원으로 있다가 뜬금없이 작년에 홍콩 투자회사에 입사했다고 하더군."

리 슈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투자회사에 근무한다고 꼭 경제학이나 경영학을 전공할 필요는 없겠지만··· 오빠 말대로 특이하기는 하네요."

옥스퍼드에서 국제관계학을 전공하고 워싱턴에서 연구원으로 있었다면 국무부에 들어가 전문 외교관이 되거나 의원 비서를 거쳐 정계에 입문하는 엘리트 코스를 밟고 있었다고 봐야 했다.

그런데 뜬금없이 미국이나 영국도 아니고 홍콩까지 와서 투자회사에서 일한다는 것은 이상해도 너무 이상한 일이었다.

"그러니 내가 하는 말이야. 그런 경력에도 거액의 투자금을 관리한다는 것을 봐서는 뒤에 누군가 있는 것 같은데 왕 웬준 팀장에게 물어도 대답을 해주지 않더군."

"수상하네요."

"한국계라는 것을 생각하면 한국 정치인들의 비자금일지도 몰라. 작년이라면 한국에서 정권교체가 된 다음 해잖아. 전직 대통령들 모두가 거액의 정치자금을 받은 것이 확실하고 말이야."

리 슈는 오빠의 말에 덜컥 겁이 났다.

"그런 돈이면 투자받으면 안 되는 돈 아니에요?"

"비자금이라는 것이 확실하지도 않고 더구나 알아보니 류오린 투자회사가 배경이 막강해서 한국 사법당국이 건드리기는 힘들다고 하더라고···. 문제는 자금이 어떤 자금이냐가 아니라 도대체 왜 한국도 중국도 홍콩도 아닌 여기 태국 여행사에 투자하려고 하는지야."

오빠는 답답하다는 표정이었다.

리 슈가 보니 리 레이의 왼쪽 볼이 부풀어 올랐다.

리 레이가 심각하게 고민할 때 짓는 표정이었다.

그렇지만 리 슈는 아무리 생각해도 투자의 다른 목적이 숨어 있다고 생각하기 어려웠다.

"오빠 말대로라면 스노우에 투자하는 목적이 따로 있다는 말인데···. 그게 뭔데요?"

리 슈의 질문에 리 레이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걸 모르니 내가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던 거지. 혹시 너한테 개인적인 관심이 있나?"

리 레이의 말에 리 슈가 어이가 없다는 듯 쓴웃음을 지었다.

"저한테요? 그런 사람이 첫날 보고 연락도 없었겠어요. 수난에게 들으니 저보다는 오히려 가이드를 하는 중에 수난의 군 경력에 대해서 더 자세히 물어봤다고 하더라고요."

자신의 미모를 잘 아는 리 슈로서는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오빠가 마중을 내보낼 때만 해도 자신을 팔아넘기는 것 같아서 기분 나빴다.

그렇지만 상대가 자신에 대해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은 더 기분 나쁜 일이었다.

혹시나 동성애자가 아닌지 의심하기도 했지만, 수난 클라한의 말을 들으면 그것도 아니었다.

"어쨌든 단순히 수익률만 보고 네 회사에 투자하지 않은 것은 확실해."

"뭐, 우리에게 나쁜 감정이 있는 것만 아니면 상관할 일이 아니잖아요. 앞으로 자주 태국을 방문할 것 같으니 만나다 보면 무슨 목적인지 알아보면 되죠."

"그렇기는 하지."

리 슈는 에드릭의 투자 제안을 이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무슨 돈이든 상관없었다.

홍콩의 투자회사를 거친 돈을 추적할 수 있는 사법기관은 세계에서 그리 많지 않았다.

그리고 그중에 한국은 없었다.

무엇보다 사업을 시작한 리 슈로서는 홍콩 투자회사의 직원을 알아둬서 나쁠 일이 없었다.

더구나 투자도 투자지만 에드릭이라는 사람 자체가 유능해 보였다.

"그리고 저도 어제 이야기를 나눠보니 정보분석 능력이 뛰어나고 앞으로 있을 일에 대한 판단력도 뛰어난 것 같아요. 자주 만나면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오빠도 지난번에 도움받았다면서요?"

리 슈의 말에 리 레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지. 새로운 정부와 일찍 줄을 만들어 놓은 덕분에 도움이 되고 있지. 덕분에 이번에 공장 설립 허가도 빨리 나올 것 같고···."

"금융개혁 발표에 주가가 오를 것 같다는 말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왕 웬준이라는 오빠 지인 말대로라면 투자에 관한 판단도 정확하다면서요."

"왜? 오늘 투자받은 10만 불을 주식에 투자하게?"

리 레이가 리 슈를 혹시나 하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오빠!"

리 슈는 오빠의 그런 모습에 발끈했다.

"저를 어떻게 보고하시는 말이에요. 사업 확장에 쓰라고 준 돈으로 투자하면 그건 범죄에요."

"미안미안···. 그냥 해본 말이야."

"그래서 오빠는 어떻게 하실 생각인데요?"

"글쎄, 조금 투자를 해볼까?"

투자를 저울질하는 리 레이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리 슈가 얼른 입을 열었다.

"저도 제가 가지고 있는 돈 중에서 40만 밧화 정도만 투자해보려고요."

"40만 밧화나?"

40만 밧화면 달러로는 만 불 정도였다.

외환위기로 태국 일 인당 국민소득이 2000불 정도로 떨어진 것을 생각하면 적은 금액은 아니었다.

"그 정도는 해야죠. 투자수익률이 높다면서요?"

리 슈의 말에 리 레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왕 웬준 팀장 말로는 두 달 동안 천만 불 가까이 벌었다더군."

"좋네요. 그렇지 않아도 회사를 차리고 보니 돈을 쓸 곳이 아주 많더라고요."

회사를 운영하는 비용이 사업계획을 세울 때 예상하는 것보다 많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오빠가 회사를 운영하는 것을 도와주면서 쌓은 경험이었다.

그렇지만 실제 회사를 운영해보니 여행사를 운영하는 비용은 단순히 많은 정도가 아니었다.

처음 여행사를 세울 때 생각했던 것보다 운영비가 4배는 더 들었다.

"그렇게 믿으면 어머니가 주신 유산도 투자하지 그래."

리 슈가 고개를 저었다.

"아직 그 정도로 믿는 것은 아니에요."

어머니의 유산은 리 슈에게는 최후의 보루였다.

여행사를 폐업하면 폐업했지 어머니의 유산에 손을 댈 생각은 없었다.

어머니의 유산을 쓸 생각이었으면 처음 에드릭이 투자하겠다고 했을 때 거절했을 것이다.

***

홍콩으로 돌아온 소감은 두 가지였다.

춥고 답답하다는 느낌이었다.

2월 홍콩의 기온은 태국 방콕보다 적게는 10도에서 많게는 20도 가까이 차이가 났다.

하지만 그런 추위보다 더 먼저 느껴지는 것은 답답한 공기였다.

홍콩은 세계 대도시 중에서 가장 공기가 나쁜 도시 중 하나였다.

방콕도 그리 깨끗한 공기를 가진 도시는 아니었다.

낡은 차량도 차량이지만 가장 대기 질을 악화시키는 것은 방콕 주변의 일본기업의 공장들이었다.

하지만 그런 방콕조차 홍콩에 비하면 훨씬 나은 수준이었다.

여전히 홍콩의 답답한 공기에는 적응이 되지 않았다.

내가 8개월째 홍콩에 머물기는 했지만, 삼 분의 일은 외국에 있었다.

홍콩에 머물 때도 대부분 실내에 있었기 때문에 더욱 적응하기 어려웠다.

나는 택시를 잡아타고 머무는 호텔로 향했다.

장기숙박 중이었기 때문에 나는 프런트를 들리지 않고 곧장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에드릭 손 씨! 잠시만요.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내가 막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을 때 뒤에서 누군가가 나를 찾았다.

나는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프런트 쪽에서 호텔 직원이 나를 향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무슨 일이죠?"

내가 물었다.

"회사에서 리안 씨가 돌아오는 즉시 회사로 급히 와줬으면 한다는 연락을 주셨습니다."

"리안이요?"

"예."

"무슨 일인지는 모르고요?"

갑자기 무슨 일로 회사로 오라는 것인지 궁금했다.

"그건 저희도 잘···."

나는 내 옷을 확인해 보고는 손에 쥐고 있던 가방을 호텔 직원에게 건넸다.

"알았습니다. 가방 좀 제 방에 갖다 주십시오."

나는 팁으로 홍콩달러 20불을 직원에게 건넸다.

"알겠습니다."

나는 리안에게 무슨 일인지 물어보기 위해 전화를 걸까 하다가 그만뒀다.

어차피 호텔에서 류오린까지는 몇 분 거리였다.

전화하느니 그냥 가는 것이 나았다.

나는 호텔을 나와 류오린으로 향했다.

회사에 도착했을 때 사무실에는 전에는 보지 못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내가 태국으로 출장을 간 사이 예정되었던 새로운 팀원들이 충원된 듯했다.

하지만 내 눈에 먼저 들어온 것은 새로운 팀원들이 아니라 리안이 쩔쩔매면서 전화를 받는 모습이었다.

"어르신···. 그건 제가 혼자··· 결정할···."

나는 그런 리안이 신기했다.

리안이 내 옆자리에 앉은 것은 회사를 들어온 처음부터였다.

홍콩에 온 시간과 같은 8개월이었다.

그동안 리안이 누군가에게 허리를 숙이면서 전화를 받는 모습을 본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전화하다가 나를 발견한 리안이 손을 들어 잠시 기다리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건 제가 의논해 보겠습니다. 예 예···. 그럼 제가 찾아뵙고 결과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럼 들어가십시오."

리안이 끝까지 쩔쩔매면서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은 리안이 의자에 기대 그대로 몸을 젖혔다.

나는 그런 리안을 향해 물었다.

"뭔 일이야?"

리안이 몸을 젖힌 채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잠시 나를 바라보던 리안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리안은 내 손을 잡고 말했다.

"잠시만 회의실로 가자!"

나는 리안에 손에 끌려 회의실로 향했다.

회의실로 향하는 우리 둘을 바라보는 팀원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내가 없는 동안 무슨 일이 단단히 생긴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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