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몽
#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왕 웬준의 사망 이후 어수선한 한 주가 지났다.
사건은 침입한 강도를 막다가 생긴 우발적인 죽음으로 결론으로 끝이 났다.
왕 웬준의 시체는 본토에서 찾아온 그의 가족에게 인계되었다.
사건이 종결되자마자 회사에서는 새로운 팀장에 상하이에서 온 웬 지하오 부팀장을 임명했다.
이미 예상했던 일이기는 했지만, 팀원들 사이에 잠깐 말이 돌았다.
웬 지하오의 팀장 임명이 예상했던 일이었다면 이어진 후속 인사는 아시아 팀은 물론이고 회사 내의 사람들을 대부분을 놀라게 했다.
부팀장에 장 샤오이가 임명된 것이다.
회사에 온 지 보름이 채 안 된 20대 중반의 여자가 회사 내 가장 중요한 부서의 부팀장이 된 것이었다.
당연히 말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류오린으로 오기 전 경력이라고 해봐야 미국에서 대학을 나오고 골드만삭스에서 2년 정도 어소시에이트(Associate)로 근무한 것이 전부였다.
논란이 있거나 말거나 나나 리안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우리 둘은 이미 예상한 일이었다.
왕 웬준이 회사에서 밀려나기 전에 죽은 것뿐이었다.
엔 지하오가 상하이방 소속이고 장샤오이가 양상쿤의 동생 양 바이오의 일족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이렇게 될 줄 알았다.
양상쿤은 이른바 8대 원로 중 하나로 태자당 중에서도 핵심 중의 핵심이었다.
양상쿤, 양바이오 형제와 그 일족을 중국에서는 '양가장'이라고 부를 정도의 막강한 세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태자당 소속의 장샤오이가 단순히 직원으로 일하기 위해서 류오린에 왔을 리 없었다.
우리는 류오린 내 논란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다.
"경찰 놈들 때문에 일주일을 허송세월했는데 다음 주에도 마땅히 투자할 곳이 없네."
리안이 시세 창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정신없는 와중에 태국 증시에서 발을 뺀 게 어디야. 계속 태국에 놔뒀으면 이번에 손해가 클 뻔했잖아."
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말이야. 진짜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한 주 사이에도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른다니까. 아니 태국공항에서 폭발사고가 터질 줄 누가 알았느냐고···. 그것도 신임총리가 출장 때문에 공항에 간 바로 그날 말이야. 아무래도 노린 것 같지?"
리안이 물었다.
금융산업 개혁 조치 발표로 상승세였던 태국의 증시는 한주 사이에 6% 정도 폭락했다.
이유는 공항에서 폭발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인명 피해도 없었고 재산 피해도 적었지만, 시점이 문제였다.
리안이 말처럼 탁신 총리가 출장을 위해 공항에 간 바로 그날 공항에서 폭발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가장 보안이 강화된 시점에 폭발사고가 있었다는 것은 터진 것이 우연이라고 보기는 어렵지. 그리고 그런 일을 벌일 정도의 세력은 태국에서 하나뿐이고···."
태국 정부 발표는 사고라지만 나나 리안은 폭발사고 배후에 태국에서 가장 큰 정치세력, 즉 군부가 있다고 추측하고 있었다.
탁신을 직접 노렸다기보다는 개혁조치에 대한 경고의 의미라고 봐야 했다.
의미가 무엇이든 공항에서 폭발사고가 발생한 것은 정치 불안뿐 아니라 관광이 경제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태국으로서는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이라도 태국 여행사에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다시 생각해봐야 하는 것 아니야?"
"글쎄···. 그래도 동남아 국가 중에서는 그나마 태국이 안전하잖아. 필리핀은 다시 쫓겨난 에스트라다 지지자들이 반대 집회를 한다고 하고 인도네시아는 언제 대통령이 쫓겨날지도 모르고···. 그렇다고 베트남이나 미얀마로 가기도 그렇고···."
"하긴 그렇기는 하지. 투자해도 손해는 안 보겠네."
리안이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큰 이익을 얻지는 못하겠지만···."
"어차피 돈을 벌려고 투자하는 것 아니야. 인맥에 투자하는 것이지. 그나마 태국에 인맥이 있던 왕 팀장이 사망했으니 리 레이나 리 슈 남매를 통한 인맥이 더 중요해졌어. 그걸 위한 투자라고 생각해. 투자회사 설립은 잘 되어가?"
투자회사 설립은 리안에게 맡겨준 상태였다.
홍콩에서 단순히 법인을 설립하는 것이야 몇백 불이면 해결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투자회사를 만들려면 세금 자문이나 법률 자문까지 할 일이 많았다.
"내가 할 일이 뭐 있나? 집안일을 오랫동안 도와주던 분께 진행 상황을 들으니 아무래도 한두 주는 더 걸릴 것 같아. 어르신들께는 다음 주 정도에 투자금 문제를 이야기하면 될 것 같아."
내가 리안에게 일을 떠넘긴 것처럼 리안도 다른 사람에게 일을 떠넘긴 것 같았다.
리안의 경우는 부자가 흔히 사용하는 방법···.
아랫사람을 부리는 방법으로 사용한 것이다.
"그런데 정말 내가 새로운 투자회사 대표를 임명해도 되는 거야?"
"그럼 내가 투자회사 대표를 맡을까?"
"그건 아니지만···."
잠시 말을 멈췄던 리안이 말을 이었다.
"어르신들 말 들어보니 투자금이 최소 천만에서 많게는 삼천만 불 정도는 모일 텐데···. 그걸 정말로 내가 추천한 사람에게 맡길 거야?"
리안이 물었다.
그는 진지한 표정이었다.
"도대체 너 매번 비슷한 질문을 하는 거야? 내가 널 믿느냐고? 그래 믿어."
"···."
정확하게는 리안 집안의 평판과 재산을 믿었다.
믿지 않았다면 리안에게 투자금을 맡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미 우리 둘이 관리하는 투자금은 지난번 태국에서의 투자로 천구백만 불로 늘어나 있었다.
더구나 새롭게 설립될 투자회사가 관리할 투자금은 내 투자금과는 성격이 달랐다.
투자회사의 대표에게 투자금에 대한 전권을 주지도 않겠지만 설사 대표가 투자금을 가로챈다고 해도 홍콩 유력자들의 돈을 가지고 어디로 도망간다는 말인가?
"새로운 회사 자금은 어떻게 투자할 생각인지 알 수 있어?"
"그건 왜 묻는 거야?"
"그 자금까지 관리하려면 지금 내가 따로 관리하는 고객 수를 줄여야 할 것 같아서···."
"왜?"
"네 투자금 관리하는 것이 보수는 좋지만, 꽤 시간이 오래 걸리거든···. 너 거의 매주 투자할 나라나 업종을 바꾸는데 매번 조사하자면 혼자서는 버거울 때가 있어."
"아···."
이건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다.
내가 혼자 투자할 때는 주로 ETF를 이용했다.
그래서 별다른 분석이 필요 없었었다.
리안은 개별 주식에 투자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나와는 업무량 자체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
"내가 리안 네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네. 우선 새롭게 받는 투자금은 크게 신경을 쓸 것 없어. 러시아에 그냥 장기 투자할 생각이거든."
"뭐?"
리안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말 그대로야. 러시아에 투자해서 계속 묻혀둘 생각이야."
"그건 조금···. 아무리 억지로 투자금을 떠맡게 됐다지만 그러면 내가 대인들 보기가···."
리안은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내 말에 많이 당황한 듯 보였다.
리안으로서는 단순할 투자자가 아니니 당연한 일이었다.
어릴 때부터 잘 알던 사이일 뿐 아니라 이전부터 리안에서 투자금을 맡기던 사람들이었다.
리안의 수익률은 꽤 높은 편이기는 하지만 아무리 능력이 좋아도 그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얻지 못하는 사람은 금융회사에 많았다.
일반적인으로 투자회사에서 가장 직원들이 가장 스트레스를 주는 일은 투자가 아니라 그 투자금을 끌어오는 일이었다.
투자회사의 직원을 자신의 하인 대하듯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 면에서 리안은 다른 투자회사 직원들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나?
나도 뭐···.
에디 미첼이 죽기 전에는 그와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당연히 실적 걱정은 없었지만, 갑자기 출장을 가서 어떤 사건이나 어떤 기업에 대한 보고서를 써내라고 요구하는 일은 자주 있었다.
무엇보다 앞으로 CIA에서 성공하려면 자신에게 잘 보여야 한다면서 대놓고 위세를 부리는 일도 자주 있었다.
에디 미첼은 상대하기 별로 유쾌한 사람은 아니었다.
지금은 뭐 내가 곧 투자자나 마찬가지였다.
CIA가 그나마 비슷한 위치였지만 다른 직원들이 당하는 대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미 투자금을 맡기기 전에 어디에 투자하는지는 비밀로 하겠다고 이야기했잖아. 너만 비밀을 지키면 그분들이 내가 어디에 어떻게 투자하는지 알 게 뭐야."
"그렇기는 하지만···."
"걱정할 것 없어. 연말에 투자 수익률을 보면 그분들도 별말 하지 못하실 거야."
"올해 러시아 경제가 그 정도로 성장할까?"
리안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리안은 여전히 불안한 표정이었다.
"얼마 전 골드만삭스에서 발표된 보고서 봤지. 앞으로 10년간은 브릭스 즉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이 크게 성장할 거야. 그중에서 러시아는 경제위기로 현 주가도 낮고 유가 상승이 맞물려서 아마 주가가 최소한 50% 이상 성장할 거야. 날 믿어."
"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리안이 안심하는 표정이었다.
같이 일을 하는 동안 리안과의 사이에 그 정도 신뢰는 쌓았다.
"아까 오늘 나스닥 선물 시세를 나스닥 상승세가 거의 멈춘 것 같은데···. 너 어떻게 할래? 나랑 같이 나스닥 선물에 투자할 생각 없어. 하락 포지션에 투자할 생각인데?"
"또 나스닥 선물에 투자하려고?"
"AAM의 투자금은 날리면 안 되니 내 돈만으로 해보려고 어차피 나스닥 선물 옵션으로 번 돈이잖아."
내 말에 리안이 고개를 저었다.
"선물옵션에 빠지면 정신을 못 차린다더니 에드릭 네가 딱 그 짝이네. 다음 주면 지수선물과 옵션, 개별종목 옵션의 만기일이 겹치는 트리플위칭데이야. 그 시기에는 전문가들도 순식간에 돈을 다 날리는 시기라고···. 지금은 너처럼 초보 트레이더가 뛰어들 때가 아니야."
리안이 말했다.
그는 나를 한심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건 나도 알아. 그래서 이번에는 옵션은 빼고 선물로만 해보려고···. 어차피 떨어져 봐야 개별 주가도 아니고 나스닥 지수가 얼마나 떨어지겠어."
"혼자서 해. 나는 하고 싶어도 할 시간이 없으니까."
리안이 거절했다.
나에 대한 리안의 믿음은 러시아 주가가 상승할 것이라는 말을 믿을 정도는 되지만 선물투자를 같이할 정도는 아닌 듯했다.
***
장 부팀장은 부팀장이 되고 며칠 만에 중국에 대한 오천만 불 화교 투자를 받으며 자신이 부팀장으로서 자격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냈다.
투자회사에서 간부가 되기 위해서는 단순히 투자 수익률이 높기만 해서는 안 된다..
투자회사의 간부라면 거액의 투자금을 끌어올 수 있는 인맥이 필요했다.
정황을 보면 이미 부팀장이 되기 전부터 진행하던 일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혼자서 오천만 불 투자를 끌어낸 이상 나이나 경력은 무의미했다.
그렇게 투자금 유치를 성공시킨 다음 날 장 부팀장이 나를 찾아왔다.
"다시 만나서 반가워요."
장샤오이가 웃으며 말했다.
"예?"
나는 순간 당황했다.
태국 출장에서 돌아오고 출근하면 매일 본 사람이 한 말치고는 뜬금이 없었다.
'다시 만나서 반갑다니··· 이건 또 뭔 소리야?'
"춘절 파티에서 보고 둘이 대화를 나누는 것은 처음 아닌가요?"
"그렇지요···."
나는 어색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대놓고 말할게요. 조금 있으면 팀이 나눠진다는 이야기는 들었을 거예요. 그때 제 팀에 들어오세요."
"···."
아니 이건 또 뭔 멍멍이 소리라는 말인가?
왕 웬준을 처리하니 또 다른 사람이 같은 소리를 하다니···.
그것도 배경을 생각하면 왕 웬준처럼 할 수도 없는 상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