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스파이, 슈퍼리치 되다-42화 (43/270)

서몽

# 누가 팀장이 될 것인가?

팀을 만들자는 내 말에 리안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또 자리를 비워야겠네. 예전에는 장이 열린 시간에 자리를 비운 적이 없는데···. 너와 일을 하고 이건 걸핏하면 자리를 비우게 되네."

말을 마친 리안이 고개를 돌려 다른 팀원들을 둘러보았다.

다른 직원들은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모두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거나 전화 통화를 하고 있었다.

심지어 얼마 전 부팀장으로 임명된 장 샤오이도 마찬가지였다.

직원 중 주식시장이 열려있는 동안 자리를 비우는 사람은 없었다.

언제 시장의 흐름이 바뀔지 혹은 언제 고객의 전화가 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뭔 소리야. 나와 만나고 수익률이 떨어졌어? 아니면 고객의 수가 줄었어?"

"그건 아니지."

리안이 말했다.

그는 양 손바닥을 위로 들어 보였다.

우리는 회의실로 향했다.

"팀장에서 무슨 소리를 들었기에 팀을 만들자고 하는 거야?"

회의실에 들어오자마자 리안이 말했다.

"투자하고 싶다더군."

"투자?"

리안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래 투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좀 빠른데···."

"빠르지."

"나는 사실 어르신들이 투자하겠다고 하신 일도 좀 이해가 안 갔거든···. 이 바닥에서 한두 달 혹은 일이 년 운이 좋은 사람은 많아. 그런데 그 사람들이 너처럼 빨리 투자를 하겠다는 사람들이 몰려오는 예는 없어. 더구나 어르신들은 나보다 훨씬 많은 경험이 있는 분들이잖아. 너에게 내가 보지 못한 뭔가가 있나?"

리안이 말했다.

리안은 눈을 과장될 정도로 크게 뜨고 나를 위아래로 살폈다.

"그런 장난은 나중에 내 애인에게나 하지."

"너 때문에 애인 만날 시간도 없어. 이건 일주일 단위로 나라도 바꾸고 업종도 바꾸니 시간이 없어 시간이···."

"한 이 주 동안은 거래도 하지 않았는데 뭔 소리야."

"그거야 왕 팀장도 죽고 너도 조사를 받고 팀장이랑 부팀장도 임명되고 시장도 안 좋고 이런저런 일이 한꺼번에 겹쳐서 생긴 일이지. 뭐, 덕분에 좀 여유를 가지고 쉴 수 있게 됐으니 나야 좋지만···. 지금은 왕 팀장 집에 침입했다가 죽은 강도에게 고맙기까지 하다니까. 중국 본토 출신이라는데 위로금이라도 보낼까 봐."

리안의 입에서까지 왕 웬준에 대한 일이 나오자 나는 조금은 움찔했다.

'왜 나를 만나는 사람마다 왕 웬준의 죽음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인지?'

머릿속으로는 왕 웬준은 상사였고 최근에 생긴 가장 큰 일이니 이야기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왕 웬준을 죽인 나로서는 왕 웬준의 죽음에 관한 말이 나올 때마다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마치 상대방이 내가 왕 웬준을 죽인 것을 알고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정작 왕 웬준을 죽일 때나 왕 웬준을 죽인 다음에도 나는 살인에 대한 별다른 느낌이 없었다.

내가 영화에 나오는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가 아닌가 하는 생각마다 들 정도였다.

왕 웬준의 죽음이 가져온 영향을 느낄 때마다 한 사람의 목숨이 이 정도로 중요하구나 하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왕 웬준의 이름이 나오는 것이 껄끄러웠던 나는 화제를 돌렸다.

"헛소리하지 말고···. 지금 농담을 할 때가 아니야."

내 말에 리안이 웃으며 말했다.

"뭘 심각하게 생각해. 어르신들이 웬 팀장과 같이 투자를 할 리가 없잖아. 그분들 중에는 본토의 권력자들과 친하게 지내고 있는 분들도 있지만, 공산당을 피해서 홍콩으로 건너오신 분들이 더 많아. 본토에 호의적인 분들도 본토의 정치인들이 직접 나서면 모르겠지만 웬 팀장 정도로 급이 낮은 인물과 같이 투자하실 분들이 아니야."

리안의 말에 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웬 팀장은 자신이 대단한 사람인 줄 착각하고 있더군."

"그런 사람이 있지. 자신이 속한 조직의 힘이 자신의 힘인 줄 착각하고 자신이 대단한 사람인 줄 착각하는 사람들···. 더구나 웬 팀장은 상하이에서만 근무하다 막 홍콩으로 왔으니 여기가 다른 세상이라는 사실을 아직 실감하지 못하겠지."

리안의 말대로 자신이 속한 조직이나 집단의 힘을 자신의 힘으로 착각하는 사람은 아주 흔했다" 내가 조금 전에 그에게 홍콩이 다른 세상이라는 사실을 이야기해주고 오기는 했는데···."

내 말에 리안이 다시 고개를 저었다.

"그런 사람들은 현실을 겪어보기 전까지는 말해도 소용이 없어. 웬 팀장은 상하이방에 소속이니 더 그렇겠지. 현 장쩌민 주석이 1989년에 총서기가 됐으니 웬 팀장이 대학 다닐 때부터 상하이방의 이름이면 못 하는 것이 없었을 테니까. 아마 당장 너에게 자신의 힘을 보여주려고 할걸."

"팀장이라고는 하지만 웬 팀장이 할 수 있는 것이 뭐가 있겠어?"

"실제로 할 수 없으니 더 너를 괴롭히겠지. 사무실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괴롭히려고 하면 어떻게 할 거야? 사무실에서 했던 것처럼 밖에서도 할 수 있어?"

"그건···."

아무리 내가 참지 않기로 했다고 해도 밖에서 웬 팀장의 멱살을 잡을 수는 없었다.

어쨌든 여기는 나름의 서열 문화가 존재하는 아시아였다.

웬 팀장도 망신을 당하는 것이겠지만 대놓고 웬 팀장에게 그런 짓을 했다가는 내 평판도 바닥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밖에서 웬 팀장과 부딪치면 부딪칠수록 나만 손해였다.

"어렵겠지. 팀장 사무실에서 나올 때 표정 보니 어떤 일이 있었을지 짐작이 가는데 조금 더 참지 그랬어. 왕 팀장과는 상황이 다르잖아. 투자 제안은 어차피 말도 안 되는 소리니 그냥 어르신들을 이야기하면서 잘 거절하지···."

"나도 잘 지내고 싶지. 그런데 웬 팀장이 AAM에 투자하겠다잖아."

"AAM? 진짜로?"

"진짜지 그럼."

"그 정도면 완전 맛이 간 것 아니야? 나도 나중에 시간을 두고 말을 꺼내려고 조심하는 데 본토에서 오자마자 어디에 투자하겠고? 감히 누가 음식에 손을 대려는 거야."

이상한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잠시만 너도 뭘 하겠다고?"

내 말에 리안이 급히 고개를 저으며 서둘러 입을 열었다.

"생각만 하고 있다는 거지. 지금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잖아. 웬 팀장이 AAM을 노리는 상황이 중요한 거지."

"···."

"AAM이 사실상 네 소유라는 사실을 웬 팀장이 어떻게 안 거지? 왕 팀장이 죽기 전에 이야기했나?"

"뭔 소리야. AAM이 내 것이라니···. 내가 자금 운용에 대한 전권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AAM이 내 것은 아니야···."

"뭐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어쨌든 웬 팀장 보기보다 멍청하네."

"멍청하다니 그건 또 뭔 소리야?"

"그게 그렇잖아. 뭐가 중요한지 앞뒤를 못 가리는 인간이네. 투자하겠다는 것을 보니 최근 AAM의 투자수익률을 보고 욕심이 생긴 것 같은데 그게 바보지 뭐야."

"바보라니···. 욕심이 생길 수도 있지. 투자수익률이 111%라면 적은 것은 아니잖아."

리안의 말에 나는 조금 기분이 묘했다.

웬 팀장을 욕하는 거야 나쁜 일은 아니지만, AAM의 투자수익률을 무시하는 듯한 리안의 말에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작년 말부터 내가 올린 투자수익률은 내가 CIA를 그만둘 결심을 하게 된 이유였다.

에디 미첼이 떠넘기는 주식을 세탁하느라 구백만 불까지 떨어졌던 AAM의 투자금은 지금은 천구백만 불까지 늘어나 있었다.

금액으로는 천만 불 수익률로만 따지면 111%가 넘었다.

이게 별것이 아니라니···.

"투자수익률로만 보면 대단하지. 그런데 AAM의 투자 계좌는 작년 말만 해도 반년 만에 투자금 중 55%를 손해를 본 그런 계좌였어. 그걸 두 달 만에 천구백만 불까지 늘린 것이 바로 다름 아닌 리안 너지. 그럼 AAM과 리안 둘 중에 뭐가 더 중요할까?"

"···."

내 입으로 말하기 쑥스러운 질문이었다.

리안도 나에게 대답을 들을 것이라고 한 질문이 아닌지 다시 입을 열었다.

"당연히 너지. 물론 투자라는 게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자금이 없으면 실력을 발휘할 기회가 없지만 너는 이제 그것도 아니잖아. 왕 팀장 죽는 날 정리한 나스닥 선물 옵션에서 번 돈만 천오백만 불이었나? 아니지, 생각해보니 지난주에 나스닥 선물에 또 투자했잖아. 일주일 사이에 또 10% 이상 떨어졌으니 그게 도대체 얼마야? 아직 유지하고 있어?"

"아니 어제 정리했어. 네 말대로 이번 주 금요일이 지수 선물, 옵션, 그리고 개별 옵션까지 만기일이 겹치는 트리플위칭데이잖아. 그래서 좀 일찍 정리했어."

"그래서 얼마를 벌었는데?"

리안이 물었다.

AAM의 투자 계좌는 리안도 접근할 수 있었지만 내 개인계좌는 리안도 알 수 없었다.

"이런저런 비용이나 수수료 떼면 한 사천만 불 정도?"

어제 정리하고 나서 조금 놀랐다.

이번에는 말 그대로 나스닥에 하나만 터져도 큰 사건이 연이어 터졌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세계적인 기업인 시스코, 에릭슨, 모토로라, 레이저 피시, 케이블&와이어리스가 연이어 대량 해고를 발표했다.

작년 4분기 실적 부진을 발표한 회사는 더 많았다.

이미 지난달에 25% 가까이 떨어졌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역대 최악의 한 주가 될 뻔했다.

이렇게 번 사천만 불을 원금 천오백만 불과 합치면 내 개인계좌에 있는 돈만 오천오백만 불이었다.

일부 투자회사 사람들이 왜 선물 옵션 같은 파생상품에 한 번 빠지면 정신을 못 차리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마 나도 AAM의 투자금이 원금 이천만 불을 거의 다 만회하지 못했으면 천오백만 불을 벌었을 때 멈췄을 것이다.

"아···. 생각하니 아깝네. 제길 그때 나도 투자해야 했는데···. 이러니 내가 웬 지하오 그놈을 바보라고 생각하는 거야. 아니 AAM에 투자하면 뭐해? 네가 이제 AAM의 투자금이 아니라 네 돈으로 투자하면? 수익률은 제로 아니야. 제로···. 하여간 어설프게 자본주의를 배우니 정말 중요한 것이 돈과 사람 중에서 사람이라는 사실을 모른다니까. 그에 비해서 어르신들은 그런 사실이 현명하신 거지."

"그분들도 만만하지는 않잖아. 너에게 전화를 계속하셨다면서?"

"정말 비슷하다고 생각해?"

"그야 뭐···."

"당장 나에게만 전화하시지 너한테 연락하신 분 있어?"

"아니···."

생각해보니 나에게 연락을 해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리안이 어르신분들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알아내려면 내 연락처를 알아내기는 쉬웠다.

심지어 그중에는 내가 머무는 호텔의 주주도 있었지만 찾아온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네가 회사에 근무하고 있는 것 다 아는데 왜 나한테만 연락했겠어. 나를 편하게 생각하신 것도 있고 너를 아직 완전히 믿지 않는 이유도 있겠지만 거물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 너라는 사람에게 나쁜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서지."

"영광이라고 생각해야 하나?"

"영광까지야. 진짜 네가 거물이 될 확신이 있으셨다면 직접 움직이셨겠지. 그냥 내가 있으니 일방적으로 강요를 하기는 뭐하지만 직접 움직일 정도의 거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 거지. 한마디로 내가 생각할 적에는 너는 현재로서는 어중간한 상태야."

"어중이떠중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줘서 고맙네요."

"하하···."

어중이떠중이라는 내 말에 리안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하여간 팀을 만들겠다는 이유는 알아들었어. 나도 뭐 팀을 만들어도 나쁠 것은 없다고 생각해. 우리가 팀을 만들면 팀에 들어오겠다는 팀원들도 꽤 있을 테고···. 하지만 문제가 있어."

리안이 말을 마치고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문제라니?"

내가 물었다.

"팀이 만들어지면 누가 팀장을 맡을 건데?"

리안이 물었다.

내가 예상하지 못한 질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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