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스파이, 슈퍼리치 되다-46화 (47/270)

서몽

# 동시에 두 장소에 있을 수는 없다. (1)

다음 날부터 우리 팀은 전날 분석한 일본 제로금리와 부실대출 정리에 가장 혜택을 받을 기업 중에서 닛케이 255에 포함된 대형주 위주로 사들이기 시작했다.

정확하게는 리안 혼자만 열심히 일하는 상황이 계속되었다.

리안이 열심히 일본에 투자하는 동안 나는 류오린에서 2001년 일본 경제 전망이라는 보고서를 쓸 준비를 했다.

보고서를 쓸 자료는 충분했다.

지난 한 달 반 동안 모리 총리 낙마를 위해서 단테 패트릭에게서 받은 자료와 내가 따로 준비했던 자료들과 일본에 투자를 준비하면서 리안이 모은 자료까지 너무 많아서 뭘 중심으로 쓸 것인지를 고민해야 할 수준이었다.

보고서를 쓰기 위해서 각종 자료를 최근 자료까지 살펴보니 일본 경제 전망은 한마디로 아주 비관적이었다.

무엇보다 그나마 일본이 오랜 경제 침체에도 버틸 수 있게 해주던 경상수지가 빠르게 나빠지고 있었다.

당장 2001년 1월 경상수지가 작년 1월의 3분의 1 수준이었고 2000년 가장 높았던 달에 비교하면 7분의 1 수준이었다.

이번 발표로 단기간에는 주가가 오르겠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기는 어려워 보였다.

보고서를 완성한 것은 일요일이었다.

전보다는 완성하는 데 오래 걸렸다.

낮에 류오린에 있을 때 자료를 정리하고 퇴근 후에 AAM 사무실에서 보고서를 쓰는 패턴이 문제였다.

낮에 자료를 정리하면서 생각했던 생각이 정작 보고서를 쓰면서 달라지는 경우가 많았다.

시간이 두 배는 더 걸리는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낮에 류오린에 있을 때 보고서를 쓸 수는 없었다.

전에는 내가 뭘 하는지 관심을 가지는 사람도 없었다.

그리고 무슨 보고서를 쓰냐고 물으면 왕 웬준에게 낼 출장보고서나 왕 웬준이 지시한 조사라는 핑계를 대고는 했다.

그런데 지금은 왕 웬준도 없었고 설사 왕 웬준이 있다고 해도 지금은 정식발령이 나지 않았을 뿐 내가 팀장이었다.

그렇게 주말이 지나고 19일 일본 중앙은행의 금리 인하를 발표하자 일본 증시가 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는 회사에서 미·일 정상회담에서 발표될 모리 총리의 일본 은행 개혁에 대한 정책이 발표를 기다리고 있었다.

미·일 정상회담이 정식으로 개최되는 시간은 19일 날이었다.

문제는 회담이 개최되는 장소는 미국 워싱턴이었다.

당연히 홍콩 시각으로는 19일 날 밤에서 20일 새벽이었다.

결국, 19일 밤에도 우리 팀은 퇴근하지 않고 회사에 남아 있어야만 했다.

다른 팀원들 정확하게는 리안과 카이 황이 발표를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나는 내 개인 계정에 접속해서 나스닥 선물 하락에 투자했다.

어차피 일본의 제로금리나 은행개혁은 장기적으로는 미국 국익에 이익이 되지만 당장은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지난 열흘 동안 반짝 반등했던 나스닥 지수가 월요일을 기점으로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가지고 있는 개인 계좌의 잔액 중 일부만 투자했다.

처음에야 어차피 없어도 되는 돈이라고 생각하고 부담 없이 전액 투자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내 개인 계좌로 관리하는 자금은 이미 오천오백만 불로 늘어나 있었다.

이미 직접 AAM의 천구백만 불을 3배 가까운 금액이었다.

나스닥 선물에 투자한 금액은 절반이 조금 넘는 삼천만 불 정도였다.

삼천만 불을 투자하는 동안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무래도 이번까지만 직접 선물에 투자하고 다음에는 좀 더 안전하게 투자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 거래를 마쳤을 때 옆에서 찻잔 소리가 들렸다.

"커피 드십시오."

낮은 중후한 목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깜짝이야!"

나는 깜짝 놀라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긴장한 상태에서 들린 목소리라서 그런지 말 그대로 심장이 멈추는 듯했다.

나는 급히 소리가 난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쟁반을 든 카이 황이 있었다.

"죄송합니다. 놀라게 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카이 황이 고개를 숙였다.

"아닙니다···. 그런데 인기척 좀 하고 다니세요."

"다음부터 주의하겠습니다."

카이 황이 다시 한번 사과했다.

그때 옆에서 자료를 살펴보던 리안이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왜 아저씨 탓을 해. 아저씨가 몇 번이나 너를 불렀는데 네가 못 들은 것인데···."

"아닙니다."

리안의 옹호에 카이 황이 손을 저으며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제가 이런 회사 생활은 처음이다 보니 실수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카이 황이 다시 한번 사과했다.

리안이 그 모습을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사무실에서 이 이상 더 소리를 내고 다녀요. 뭐···. 목에 방울이라도 달거나 신발에 징이라도 박아서 탭댄스라도 추고 다니라는 것도 아니고···."

카이 황의 거듭된 사과와 리안의 말에 내가 마치 큰 죄라도 지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냥 놀라서 무심코 한 말인데 죄책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내가 어서 사람을 구해야지. 저 꼴을 더는 두고 못 보겠네.'

바로 직원을 더 뽑든지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지금 당장은 이 화제를 바꿔야 할 필요를 느꼈다.

"불렀는데 제가 듣지 못한 것이라니 오히려 제가 미안하네요. 정신을 집중해서 일을 하다 보니 실수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내 사과에 카이 황이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제가 그런 것까지 고려해서 신경을 써야 했는데···."

"아저씨 그만 해요. 지금은 그게 팀장님을 위하는 일인 것 같네요."

리안이 카이 황의 사과를 막고는 내게 고개를 돌렸다.

"뭘 했는데 몇 번이나 불렀는데도 못 들은 거야?"

리안이 물었다.

"전에 내가 했던 거···."

내 말에 리안이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나스닥 선물?"

"맞아."

"설마 또 지수 하락 포지션을 잡은 거야?"

나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 대답에 리안이 잠시 말이 없었다.

아마도 고민에 빠진 듯했다.

잠시 후 리안이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생각에는 바닥을 찍고 오르는 중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너는 다르게 생각한다는 말이지. 진짜 고민되네. 벌써 두 번이나 네가 대박을 터트리는 동안 기회를 놓친 것을 생각하면 이번에는 너와 함께 투자해야 하는데···. 뻔히 보고도 세 번이나 기회를 놓치면 바보인데···."

"네 마음이 가는 대로 해. 괜히 나중에 나 원망하지 말고···."

내가 말했다.

이번에는 투자를 권하기도 어려웠다.

지난번 두 번의 선물 투자 때만큼 이번에는 확신이 없었다.

리안이 여전히 고민하고 있을 때 옆에서 듣고 있던 카이 황이 입을 열었다.

"선물 투자를 하셔도 되는 것입니까?"

"상관없습니다. 직원들의 주식 투자를 완전히 금지하는 회사도 있지만, 류오린은 이해관계가 충돌하지 않는 이상 제약이 없더군요."

내가 말했다.

이미 개인 계좌로 투자하기 전에 회사에 묻고 답변을 받아놓은 상태였다.

"아니요. 제가 회사에 들어와서 확인해보니 일반적인 주식 투자는 제약이 없고 나중에 신고만 하면 되지만 임원의 경우에는 선물이나 옵션 같은 파생상품 투자를 개인 계좌로 하는 것은 금지하고 있더군요. 류오린의 경우 팀장도 임원으로 분류되고 있습니다."

"예?"

나는 처음 듣는 소리에 잠시 당황했다.

"그런 소리는 처음 듣는데요?"

카이 황이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서류 뭉치를 가지고 왔다.

내가 보니 류오린 회사 내부 규정이었다.

카이 황이 임원의 선물 옵션을 비롯한 파생상품 거래를 금지한다는 내용을 보여줬다.

나는 고개를 돌려 리안을 바라보았다.

"리안 너 이거 알았냐?"

리안이 고개를 저었다.

"내가 알았겠냐? 회사 내부 규정을 다 읽어보는 사람이 어디 있어. 보통은 팀장이나 교육 때 내부 감사 부서 사람들이 알려주는 것이지."

"이런 규정이 있으면 미리 알려줘야 하는 것 아니야?"

"이렇게 갑자기 팀장이 될지 몰라서 그런 것 아니야?"

옆에서 우리 둘의 대화를 듣던 카이 황이 다시 끼어들었다.

"아마 정식으로 팀장으로 임명되면 그때 알려줄 생각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은 문제가 안 될 수도 있겠네요. 팀장이라는 것은 아직은 호칭일 뿐 정식으로 팀장이 된 것은 아니니까요."

나는 고개를 돌려 리안을 바라보았다.

"아직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네요. 리안 팀장님!"

팀장이라는 내 호칭에 리안의 표정이 굳어졌다.

"뭐? 팀장?"

리안이 나를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입을 열었다.

"어쩔 수 없지. 팀장이 되면 선물이나 옵션거래를 하지 못한다잖아. 나도 뭐 이번만 하고 선물 거래를 한동안 할 생각은 없는데···. 그래도 못하는 것과 안 하는 것은 다르지."

리안이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말해도 나는 팀장을 할 생각 없어. 너 지금 AAM에 대한 전권을 가지고 있으니 그냥 AAM 이름으로 하면 되잖아."

"그렇게 하다가 나중에 문제 생기면? 그냥 팀장을 하는 것이 어때?"

내 말에 리안이 곤란한 듯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리안이 카이 황을 바라보았다.

"아저씨 방법이 없을까요?"

리안이 말했다.

"제가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카이 황의 말에 나는 그에게 고개를 돌렸다.

자신이 있는 말투로 보아서는 뭔가 생각해 둔 것이 있는 듯했다.

"방법이 있겠어요?"

내가 카이 황을 보며 물었다.

"우선 아직 정식으로 팀장으로 임명된 것이 아니니 시간이 있습니다. 가장 좋은 것은 그동안 임원에서 팀장을 제외하도록 회사 규정을 바꾸는 방법이 있습니다. 리안도···님께 듣기로는 선물 거래로 엄청난 수익을 올렸다던데 그게 사실이라면 회사에서도 수익을 무시할 수 없을 것입니다."

"가능성이 있는 방법이기는 하네요. 하지만 내부 규정이라고는 하지만 한 명 때문에 쉽게 바꾸려고 할지···."

"그게 어려우면 지금의 체제를 유지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사실상 독립된 팀이지만 지금처럼 팀 내에서 머무는 것이죠."

카이 황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좀··· 그렇네요. 눈치채셨겠지만 지금 팀장과 우리 팀 정확히는 제가 사이가 별로 안 좋습니다."

내 대답에 잠시 무언가 생각하더니 카이 황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규정을 바꾸는 것이 어렵고 지금 상태를 유지할 수도 없다면 그냥 새로운 부서 이름을 유가증권 투자 사업부라는 식으로 조직명에서 팀이라는 이름을 빼는 방법도 있습니다. 팀이 아닌데 팀장이 있을 리가 없고 팀장이 아닌데 내부 규정을 영향을 받을 일도 없죠."

"뭔가 꼼수 같네요."

"원래 카이 아저씨가 예전부터 그런 꼼수를 잘 찾아냈어."

옆에서 듣고 있던 리안이 말했다.

"될지는 모르겠지만 생각은 해볼 수 있는 방법이네요. 그럼 한번 추진해 보세요."

나름 좋은 방법들이기는 하지만 카이 황의 말대로 된다는 보장은 없었다.

내가 지난 9개월 동안 겪은 경험을 통해 얻은 교훈 중 하나는 금융회사는 규정을 바꾸는 데 대단히 보수적이라는 것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금융회사에서 예외를 계속 인정하다 보면 대형 금융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이 컸다.

류오린도 어지간해서는 예외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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