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몽
# 세금은 우리가 문명에 지급하는 가격이다.
"세금이요?"
"예. 이미 아시겠지만, 미국 시민권자는 개인 세금 보고 마감일인 4월 15일까지 해야 하지 않습니까? 에드릭 님처럼 해외에 근무하는 경우는 연기되지만 그래도 6월 15일까지는 세금을 신고하고 내야 합니다."
"세금은···."
지금까지 세금에 대해서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벤저민 프랭클린은 세금은 우리가 문명에 지급하는 가격이라는 말을 했다.
말 그대로 세금은 국가의 존립 기반 중 하나였다.
특히 미국은 죽음과 세금을 피해갈 수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세금 징수에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미국 국세청은 직원만 10만이 조금 안되는 방대한 조직이었다.
"에드릭 님 선물의 경우에는 시가로 평가해서 기본적으로는 40%는 단기자본소득으로 구분해서 최고 39.6%까지 적용되고 60%인 장기자본 이득도 소득세율에 따라 0, 15, 20%의 자본이득 세율이 적용되지만, 에드릭 님은 당연히 최고인 20%의 세율이 적용되는 것이 기본이지만···. 이미 모든 선물을 처분하셨으니 단기자본소득으로 구분됩니다."
카이 황이 말했다.
"미국 세법에 대해서 잘 아시나 보네요?"
내가 물었다.
내 질문에 대답한 것은 리안이었다.
"우리 집안 세금은 모두 카이 아저씨가 처리해. 캐나다에 있는 아버지나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내 동생 것까지···. 전문 회계사를 고용하고는 있는데 그놈들을 믿을 수가 있어야지. 카이 아저씨!"
리안이 고개를 돌려 카이 황을 불렀다.
"예! 말씀하시지요."
"그럼 에드릭은 세금을 얼마나 내야 하는 거야?"
리안이 카이 황에게 물었다.
그러게···.
나 세금을 얼마나 내야 하는 거야?
"단순계산으로도 선물이나 옵션으로 얻으신 소득 전체가 단기자본소득으로 구분되니 39.6%의 세율이 적용됩니다."
"39.6%요? ···."
순간 나는 말 문이 막혔다.
세율이 높다는 생각은 했지만 39.6%라니···.
거의 40%라는 말이 아닌가?
내가 선물옵션으로 번 것은 대략 팔천오백만 불 정도였다.
카이 황의 말대로라면 내가 선물 옵션으로 번 수익에 대한 세금만 해도 삼천삼백만 불이 넘었다.
그 외에 선물옵션을 통해 얻은 수입을 제외해도 류오린에서 받은 수익만 거의 백만 불이 넘었다.
이 근로소득에 대한 세금도 만만치 않았다.
"고용하신 세무사분은 뭐라고 합니까?"
카이 황이 나를 보며 물었다.
"집안 세금을 관리하던 분은 미국에···."
얼마 전까지는 나는 복잡한 계산을 할 것이 없었다.
더구나 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이 CIA였고 위장 연구소였기 때문에 CIA에서 알아서 처리해주었었다.
CIA에서 받는 소득과 연구소에서 받는 소득의 차이도 있었고 정식으로 밝힐 수 없는 비용을 처리해야 하는데 이런 것을 민간 세무사에게 맡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이렇게 거액을 벌고도 홍콩에서 따로 회계사도 고용하지 않고 있다는 말입니까?"
카이 황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리안이 거들었다.
"미국에 살았으면서도 미국 국세청 무서운 줄 모르는 놈이 여기에 있네. 하긴 자기 개인계좌로 그런 거액을 투자할 때부터 생각이 없는 놈인 줄 알았어. 법인 세웠으면 세금 한 푼 안 낼 수 있는데 왜 그런 멍청한 짓을 한 거야."
"그러게···."
나는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내가 이렇게 선물하고 옵션으로 돈을 벌 줄 알았으면 그렇게 했겠냐?"
말 그대로였다.
내가 1월 말에 선물 옵션에 처음 하기 시작한 것은 매매 타이밍을 연습하기 위해서였다.
이런 생각은 내가 매매에 재능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포기했다.
하지만 돈이 불어나는 재미에 선물 투자를 계속했고 나스닥의 유례없는 폭락이 겹쳐서 지금처럼 엄청난 금액을 벌어들인 것이다.
"세금을 줄이려면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카이 황이 말했다.
방법이 있다는 카이 황의 말에 나는 그를 바라보았다.
"그래요?"
"예. 단기자본소득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회계연도 기간에 얻은 투자이익에 대해 부과되는 세금입니다. 이번에 번 수익이 있어도 세금을 신고하고 내기 전에 다른 곳에 투자했다가 손해를 봐서 이익이 없다면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지요."
말은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 맞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해외 거주 미국인의 신고 기간인 6월 15일까지 오늘까지 번 돈을 다 까먹으면 세금을 낼 필요가 없다는 말이군요."
"그렇습니다."
"건방진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경험으로 봐서는 두 달 조금 남은 시간에 그렇게까지 손해를 볼 것 같지는 않은데요."
"물론 저도 에드릭 님이 그런 실수를 하지는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어지간한 바보가 아닌 이상 그런 실수를 계속할 수는 없죠. 하지만 그렇게 보이도록 서류를 만들 수는 있습니다."
"한마디로 투자를 실패한 것으로 조작을 해서 돈을 빼돌리자는 말이군요."
"맞습니다. 문제는 올해부터 파생금융상품 과세에 관한 새로운 법인 FAS 133조가 적용됩니다. 새로운 법이 시행되는 첫해인 만큼 파생상품 과세에 미국 국세청이 좀 더 신경을 쓸 가능성이 큽니다. 만약 미국 국세청이 의심스럽다고 판단하면 조사를 받을 수 있습니다."
"됐습니다."
나는 카이 황의 말을 중단시켰다.
최소 삼천삼백만 불의 세금을 내야 하는 상황에서 세금을 조금이라도 줄이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불법을 저지를 수는 없었다.
이미 소속도 뒤죽박죽이 되고 내 마음도 CIA에서 거의 떠난 상태지만 아직 나는 CIA의 직원이었다.
만약 조사가 시작되고 세금을 빼돌린 사실이 드러나면 가중처벌을 당할 가능성이 컸다.
더구나 조사가 시작되면 내가 투자 결정을 내린 이유까지 조사가 들어올 수도 있었다.
자칫 평생을 감옥에서 보내게 될 수도 있었다.
너무 위험했다.
"정당한 방법으로 세금을 줄이는 방법은 없습니까?"
내 질문에 카이 황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좀 어렵습니다. 아시겠지만 미국은 소득세의 경우 포괄주의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그게 불법적인 소득이건 하늘에서 떨어진 소득이건 비과세 대상이 아닌 소득의 경우 모두 세금을 내야 한다는 의미죠. 한마디로 에드릭 님이 탈세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빙하는 서류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그게 불가능합니다. 더구나 미국 시민권자는 해외에 있더라도 일 년에 한 번 미국 국세청에 모든 소득을 신고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중과세를 방지하기 위해서 머무는 국가에 세금을 내면 미국 국세청이 차액만 받는 제도도 있지만···. 에드릭 님이 비록 홍콩에 머물고 있다고 해도 나스닥 선물에서 투자해서 얻은 소득이니 미국 내에서 얻은 소득이라서 해당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홍콩은 해외에서 얻은 유가증권 수입에 대한 세금이 없으니 아예 해당 사항이 없고요."
홍콩은 해외에서 얻은 유가증권 수입에 대한 세금이 없다고?
"그래요? 그럼 리안이나 카이 황 씨는 이번에 얻은 소득에 대해서···."
"응, 우리는 세금 안 내."
"···."
어쩐지 개인계좌를 이용해서 선물에 투자한 것은 마찬가지인데 내 세금 이야기를 하는데도 리안이 태평한 표정을 짓고 있더라니···.
혼자만 세금을 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더 억울했다.
"너무 억울해할 필요 없어. 내가 너만큼 벌었으면 세금 어느 정도 내더라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
리안이 웃으며 말했다.
"진짜?"
내가 물었다.
"말이 그렇다는 거지. 세금 내는 것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내 질문에 리안이 크게 웃으며 대답했다.
진짜 한 대 치고 싶은 표정이었다.
하지만 나를 놀린 것에 대한 대가를 받아내는 것은 언제든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정당한 방법으로 세금을 줄이지는 못하더라도 어떻게든 세금 납부를 늦추는 방법이라도 찾아야 했다.
"어떻게 세금 납부를 늦출 방법이라도 없겠습니까?"
나는 카이 황에게 물었다.
현재 수익률이라면 삼천삼백만 불이 내년이면 얼마가 될지 알 수 없었다.
굳이 위험성이 높은 선물 투자를 할 필요도 없었다.
비교적 안전한 주식에만 투자한 AAM의 투자금도 3달 동안 두 배로 늘어나 있었다. 단순계산으로 이 정도 수익률만 기록해도 남은 9개월 동안 800%의 수익률이었다.
삼천만 불을 일 년 후에 삼억 불이 되는 것도 아주 불가능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할 방법은 최대한 세금 신고 날짜를 연기해서 10월 15일까지 신고 기간을 늦춘 이후에 그사이에 다른 곳에 투자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법인을 하나 세우고 거기에 투자해서 낼 사정이 있다는 것을 증빙하면 이른바 페이먼트 플랜을 선택해 분할납부가 가능합니다. 120일 이하의 단기프로그램과 120일 이상 최대 72개월까지 나눠 낼 수 있는 장기 플랜이 있는데 IRS의 승인을 받아야 해서 쉬운 일은 아닙니다."
첩첩산중이었다.
어지간히 이유로 미국 국세청이 72개월 즉 6년이나 되는 분할납부를 허용할 리가 없었다.
미국 국세청을 설득하려면 정말 제대로 준비해야 했다.
설사 그렇게 분할납부가 가능하게 되더라도 내야 하는 다달이 내야 하는 세금만 47만 불이 넘었다.
1월 말로 돌아가 개인계좌로 선물을 시작하려고 하는 내 뒤통수를 갈기고 싶은 심정이었다.
나는 카이 황을 보며 물었다.
"혹시 제 세금 신고를 도와주실 생각 없으세요?"
이야기를 할수록 카이 황이 굉장히 유능해 보였다.
카이 황이라면 72개월 분할납부 이야기를 꺼낸 것으로 봐서는 그는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죄송합니다. 저는 지금 하는 일도 벅차서 어려울 것 같습니다.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상황에서 금융 명세를 속속들이 알 수 있는 세금 납부를 도와드리는 것은 나중에 문제가 될 수도 있고요. 저 말고 유능한 다른 세무사분을 찾아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법률적 문제까지 처리하려면 아예 처음부터 세무분야를 처리할 수 있는 법무법인을 고용하시는 것도 괜찮고요."
카이 황이 완곡한 말로 거절했다.
생각해보니 그의 말이 맞았다.
아무리 리안과 친하고 그를 믿어도 그에게 내 모든 금융명세를 공개하는 것을 미친 짓이었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나는 다음 날부터 홍콩에 진출한 대규모 법무법인을 찾아다녔다.
적당한 법무법인을 고용해서 새로운 법인 설립과 그 법인에 대한 투자 그리고 세금 거래까지 전부 다 맡겼다.
법무법인은 며칠 사이에 미국 국세청에 세금 신고를 10월 15일까지 연기하는 신청을 하고 홍콩과 조세회피처에 법인을 설립해서 내가 직접 지배하고 있던 기존 5개의 회사와 연결했다.
분할납부를 위한 서류도 빠르게 준비하고 있었다.
변호사에게 들이니 10월 15일쯤에는 내 세금 관련 서류만 천이백 장 정도가 될 것이라고 했다.
비싸지만 받는 돈 만큼 일 처리는 확실했다.
하지만 일이 순조롭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출장을 꽤 자주 다니셨는데 비용처리를 하지 않으시겠다고요?"
변호사가 나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봤다.
세금 문제를 상담하다 보니 내가 쓴 비용 중 아주 많은 부분을 신고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신고하자면 내 행적이 그대로 드러나는데 이건 나중에 문제가 될 수가 있었다.
FBI나 CIA와 같은 사법기관이 범죄자를 추격하는 방법이 바로 카드 사용 명세였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내가 출장을 가는 동안 쓴 비용을 신고하면 그 자체로 내 행적이 그대로 드러난다는 문제가 있었다.
심지어 그중에는 다른 이름의 여권으로 출입한 기록까지 있는데 이걸로 어떻게 비용으로 처리하겠는가?
그런 비용처리는 할 수 없었지만 대신 지출을 통해 세금을 줄였다.
예를 들어서 리안이 루카스 아저씨라고 부르는 홍콩 부호에게서 리안의 옆집을 비교적 낮은 가격에 사는 일 말이다.
리안은 내가 집을 산 것을 엄청나게 기뻐했다.
기뻐하는 이유가 내가 이웃이 된 것 때문인지 아니면 그가 양아치라고 부르는 코디가 더는 이웃이 아닌지는 조금 의심스럽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렇게 되니 내가 1억 불을 모았다고 생각해서 CIA를 그만둬야 말아야 하나 고민했던 것이 우스워졌다.
미국 연방 국세청도 이렇게 두려워해야 하는 것이 내 현실이었다.
1억 불을 모았다고 CIA를 그만둘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내 착각이었다.
CIA가 과연 나에 대해서 알게 되면 내가 그만두는 것을 그대로 두고만 보고 있을까?
아니었다.
지금 생각하면 에디 미첼도 자신이 원해서 계속 CIA에 있었던 것은 아닐 것이다.
IRS 미국 연방 국세청이 내가 번 돈을 가져갈 수 있다면 CIA는 내 모든 것을 가져갈 수 있었다.
내가 CIA를 그만두려면 지금보다 훨씬 많은 힘을 가져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