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몽
# 빌리지도 빌려주지도 말아라.
회사 설립을 위에서 바쁘게 움직이느라 류오린에는 출근하지 못했다. 하지만 밤이면 AAM의 사무실로 가서 CIA에 보고하기 위한 정세보고서를 작성했다.
지금까지 한 번에 한 국가만 다루던 것과는 달리 한 번에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대만까지 세 국가에 대한 보고서를 썼다.
세 국가를 다뤘지만 세 국가에 대한 정보를 취합한 분석을 통한 예측은 간단했다···.
인도네시아는 와히드 대통령이 국회에서 자신의 회계부정에 대해 사과를 하기는 했지만, 탄핵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파키스탄의 경우에는 쿠데타 이후 파키스탄을 장악하고 있는 무라샤프는 군 내 장악력을 강하지만 이슬람 계열 정당과 사이가 좋지 않아서 도와주면 미국에 도움이 될 것이다.
현 대만 총리보다는 차라리 이번에 야당인 국민당 당수가 된 롄잔이 중국에 더 우호적으로 보인다.
대충 이런 정도였다.
지금까지 보고서가 어떤 식으로든 내 주식투자와 연관됐다면 이번에 쓴 보고서는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내가 굳이 바쁜 시간을 쪼개서 여러 나라에 대한 보고서를 쓴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나에 대한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서였다.
지금까지 한 번에 한 국가에 대한 보고서를 썼다.
이건 그 보고서를 쓰기 직전에 그 국가를 방문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행동이었다.
나도 나름대로 추적에 대비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차명으로 된 여권도 사용하고 묶는 호텔도 바꾸기도 했다.
그렇지만 만약 정보기관들이 나를 추격하면 행적이 드러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대만 모두 방문하지 않고 보고서를 썼기 때문에 혼동을 주기에는 충분했다.
두 번째는 직접 방문해서 조사할 시간이 없다 보니 깊이 있는 정보분석과 예측을 하기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질이 안 되면 양으로라도 빈틈을 메울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낮에는 법률 회사 직원들과 계속 회의를 하면서 회사들을 세우고 밤에는 보고서를 쓰느라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일주일을 보내야만 했다.
그렇게 회사 설립을 끝내고 회사에 돌아온 것은 3월도 며칠 남지 않은 29일이었다.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던 리안이 고개를 돌려 손을 들어 보였다.
"다 끝난 거야?"
리안이 말했다.
리안의 질문에 나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대충 일단 법인 설립은 끝났어."
"고생했네."
리안의 인사를 받으면 의자에 앉자 카이 황으로 커피포트를 들고 옆으로 다가왔다.
"수고하셨습니다. 차라도 한 잔 드시면서 숨 돌리시지요."
깎듯 한 모습이었다.
카이 황이 나를 대하는 모습은 회사의 상사에게 보이는 태도라기보다는 자신이 모시는 리안의 지인에게 대하는 태도에 가까웠다.
리안이야 이런 태도가 자연스러울 수도 있지만, 전부터 카이 황의 이런 모습이 부담스러웠다.
오늘은 나름 오랜만이라서 그런지 더더욱 어색했다.
"매번 안 그러셔도 된다니까요. 커피 정도는 저 혼자 마실 수 있습니다."
"제가 할 일인데요."
카이 황은 내 말을 가볍게 거절했다.
"그럼 회의하면서 다 같이 앉아서 마시죠. 어차피 보고도 받고 처리결과도 이야기해야 하니까요."
회사를 출근하지 않는 동안에도 리안과 통화하면서 이야기를 나누기는 했다. 하지만 매번 주식을 매매할 때마다 이야기를 나눈 것은 아니므로 정확한 수익률은 알지 못했다.
우리는 사무실 한쪽에 있는 회의용 테이블로 향했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이 사무실에는 십여 명이 앉고도 남을 정도의 회의용 테이블이 있었다. 하지만 회의실이 우리 사무실로 용도가 변경되었다.
지금 사무실에 있는 회의용 테이블은 여섯 명 정도가 양쪽에 앉을 정도로 큰 테이블은 아니었다.
우리는 테이블에 각자의 노트북을 가지고 앉았다.
"어제까지 일본에 투자했던 주식은 전부 처분했어."
이주 전 나는 일본의 금리 인하와 은행 부분에 대한 개혁이 발표될 것이라는 정보를 듣고 일본 주식시장에 투자했다.
예전이라면 일본 주식은 지난주에 10% 이상 급등했을 때 팔고 다른 곳에 투자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세금 문제를 정리하느라 새로운 투자처를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다행히 지난주에도 5% 정도 추가로 계속 올랐다.
아마 월요일에 리안에게서 일본 주식시장의 상승세가 꺾일 것 같다는 말을 듣지 않았다면 여전히 일본에 투자하고 있었을 것이다.
리안의 말을 듣고 매각하기 시작해서 어제까지 다 처분할 수 있었다.
문제는 수익이었다.
어제까지 이 주 동안 닛케이 255지수는 16% 정도 올랐다.
하지만 우리는 지수에 투자한 것이 아니라 개별 주식에 투자했기 때문에 16%보다 많을 수도 있지만 적을 수도 있었다.
어떤 주식에 투자했느냐? 그리고 언제 팔고 사들였느냐에 수익은 큰 차이가 날 수도 있었다.
"일본 시장에서 얻은 이익은 어느 정도야?"
내가 물었다.
리안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비용을 제외한 일본 주식시장에 이주간 투자해서 얻은 이익은 4백만 불 정도로 현재 AAM의 투자금은 이천삼백만 불 정도로 늘어난 상태야."
"그럼 수익률이 대략 21%가 조금 넘는 거네."
이주간 닛케이 255지수의 상승률인 16%보다 5% 정도 높은 이익을 얻은 것이다. 실제 매매수수료나 비용을 제외한 금액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실제 리안이 올린 수익률은 5%보다 높다고 봐야 했다.
내가 주식투자에 관심을 가지면서 알게 된 사실 중 하나는 주가 상승률보다 높은 수익률을 올리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흔히 개인투자자는 시장을 이길 수 없다는 말이 있었다.
대부분의 개인투자자의 투자수익률이 주가수익률보다 낮은 것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렇지만 투자회사에 근무한다고 모두가 주가 상승률보다 높은 수익률을 기록하는 것은 아니었다.
단기간에는 주가 상승률보다 높은 수익률을 기록할 수도 있지만, 기간이 길어지면 투자자 대부분이 주가 상승률보다 낮은 수익률을 기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수십 년간 주가 상승률보다 높은 수익률을 기록한 투자자는 워런 버핏과 같은 전설들뿐이었다.
심지어 그 워런 버핏조차 닷컴버블기에는 비난을 받았다.
닷컴주식에 투자하지 않아서 상대적으로 다른 투자자들에 비해서 투자수익률이 낮았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나스닥이 최고점을 찍었을 때 워런 버핏의 투자수익률은 최악이었다.
하지만 지난달 워런 버핏이 이끄는 버크셔 해서웨이 닷컴버블로 인한 주가 폭락기에도 이익을 얻으며 자신의 결정이 맞는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리안은 그런 점에서 적어도 주식 매매에 관한 한 뛰어난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는 내가 처음 본 지난해 7월부터 거래를 할 때마다 주가 상승률보다 조금이라도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다.
당장 이주간 올린 5%의 추가수익률은 금액으로 따지면 백만 불이었다.
주식 매매가 끝난 이상 이제 성과급에 관해서 이야기할 시간이었다.
이전까지는 내가 류오린에서 받기로 한 성과급을 리안과 내가 반으로 나눠 가졌다.
그렇지만 이제 직원이 늘어난 이상 성과급의 비율도 다시 조정할 필요가 있었다.
"제가 없는 동안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나야 그냥 네가 정해준 주식 거래한 것뿐인데···. 언제나처럼 진짜 중요한 일은 네가 다 한 셈이지. 성과급이 통장으로 들어올 때마다 미안하다니까."
리안이 웃으며 말했다.
"그러게 미안하면 이제 안 받는 거야?"
나는 리안의 말꼬리를 잡았다.
"내 도움으로 백만 불이나 벌었는데 얼마 안 되는 돈 안 받아도 되잖아."
내 말에 리안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나를 바라보았다.
"얼마 안 되는 것은 아니지. 이번에 받을 돈만 해도 이만 불이 넘는데···."
나는 리안의 그런 모습에 미소를 지었다.
"이만 불이 될 리가 있겠어. 예전에는 우리 둘이 나눠 가졌지만, 지금은 직원이 한 명 늘었잖아."
나는 말을 하면서 카이 황을 바라보았다.
"저 말입니까?"
"예. 한 팀이 됐는데 받으셔야지요."
내가 말했다.
카이 황은 손을 내저으며 입을 열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제가 투자에 도움을 준 것도 없는데 그런 돈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카이 황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미 충분히 많은 일을 하고 계십니다. 오시고 나서 여러 가지로 많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제가 신경을 써야 할 일이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아닙니다. 제가 성과급을 나눠 받는다면 제가 하는 일에 비해서 과한 보상입니다. 빌리지도 빌려주지도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정도를 넘어선 보상에도 적용되는 말이죠."
카이 황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렇게 말씀하시면 제가 오히려 갚을 것이 많죠. 카이 황 씨가 아니었으면 세금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하십시오."
나는 자칫 큰 문제가 될 수 있었던 세금 문제를 이야기해준 것에 대해 카이 황에게 아주 고마워하고 있었다.
생각 같아서는 금전적 보상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회사의 출근하면서 리안의 집사라는 직분에 따라 행동하는 카이 황이 내 돈을 받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뭔가 오해하시는 것 같은데 성과급을 나눈다고 우리와 똑같이 받으시는 것은 아닙니다."
옆에서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리안이 끼어들었다.
"뭐야? 똑같이 나누는 거 아니었어? 나는 카이 아저씨라면 기꺼이 내 몫에서 떼어줄 생각이 있는데···."
"나야 똑같이 주고 싶지만 그러면 팀에 새로운 직원이 들어오면 그때는 어찌할 건데? 그 직원에게도 성과급 똑같이 나눠줄까?"
내 질문에 리안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안되지."
나는 카이 황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리안에게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받는 성과급은 거래할 때마다 류오린이 받는 0.5%의 매매수수료 중에서 5분의 1, 즉 0.1%입니다. 이번에 받을 성과급은 대략 4만 2천 불 정도 되죠. 나중에 팀이 독립하면 팀 몫으로 추가로 나올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이 정도입니다. 앞으로 받는 성과급 중에서 20% 정도를 팀원들 공평하게 나눌 생각입니다."
"그럼 카이 아저씨가 받는 성과급은 이천팔백 불 정도인가?"
리안이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카이 황 씨는 이 정도는 받으실 자격이 있습니다."
"그 정도라면···. 감사합니다."
카이 황이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카이 황도 이천팔백 불이라는 숫자에 크게 부담을 느끼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아마 카이 황이 앞으로 받을 성과급은 그가 생각 것보다 많을 것이다.
이번에는 복잡한 사정 때문에 이 주에 한 번 거래했지만 한 주에 한 번 매매하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그러면 한 주에 이천팔백 불을 받는 셈이었다.
매주 이천팔백 불만 받는다면 일 년이면 십사만오천팔백 불이었다.
홍콩에서 가장 많이 받는다는 투자회사의 직원들이 받는 연봉이 십만 불 정도였으니 그보다도 많은 액수였다.
심지어 이건 앞으로 투자금액이 늘어나지 않을 때 나온 액수였다.
여기에 내 개인 자금으로 세운 투자금에서 나오는 매매수수료까지 생각하면 카이 황이 연말에 어느 정도의 성과급을 받을지는···
'그때도 부담 크게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내가 카이 황에게 이렇게 많은 돈을 주려고 하는 것은 단순히 카이 황이 세금 문제를 지적해 준 것에 대한 고마움 때문만은 아니었다.
생각 같아서는 리안에게서 카이 황을 빼내 오고 싶었다.
내가 돈이 지금처럼 많지 않던 시절에도 리안이 가진 재산을 부러워해 본 적은 없었다.
그렇지만 카이 황이 리안을 대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굉장히 부러웠다.
하지만 카이 황은 단순히 돈으로 매수하려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카이 황이 말했듯이 사람은 은혜를 계속해서 입으면 나중에 그게 마음의 짐이 되는 법이었다.
지금 나는 단순히 카이 황이 모시는 리안의 지인일 뿐이었다.
만약 카이 황이 내게 조금 더 진심으로 신경을 썼다면 이번처럼 세금으로 걱정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바라는 것은 그 정도의 진심에서 나오는 도움이었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사무실의 문이 큰 소리를 내며 벌컥 열렸다.
인기척이나 노크도 없었다.
문이 열리고 들어온 사람은 바로 웬 지하오였다.
그의 표정은 한 눈에도 좋은 목적으로 오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