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스파이, 슈퍼리치 되다-53화 (54/270)

서몽

# 소를 향해 달려들지 마라.

카이 후이는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다짜고짜 용건부터 말했다.

"웬 지하오에 대해서 알아볼 것이 있어서 오셨다고요?"

"아··· 예. 웬 지하오가 상하이에서도 꽤 유명한가 보네요?"

"그렇다기보다는 예전에 좀 알던 사이입니다. 대학도 같은 청화대를 나왔고요."

"아··· 예."

나는 상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없었다.

"오기 전에 웬 지하오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봤습니다. 알고 보니 꽤 거물과 엮여 있더군요."

"거물이라면 누구를 말씀하시는 것인지요?"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BJ인베스트먼트에 같이 일하는 우샤오후이(Wu Xiaohui, 吳小暉)라는 인물입니다. 꽤 유능한 수완가입니다. 천샤오루 대표의 신임을 받고 있을 뿐 아니라 부인이 항주 시장의 장녀인 루웬지죠."

"그 우샤오후이와 웬 지하오가 친한 사이입니까?"

"반대죠. 웬 지하오가 우샤오후이에게 밀려서 홍콩으로 간 것이니까요. 밀리기는 예전에 밀렸는데 상하이에서 버티다 버티다 못해서 최근에 홍콩으로 갔다고 하더군요."

웬 지하오가 실적에 목을 매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로서는 홍콩이 남은 마지막 기회인 것이다.

"그럼 웬 지하오를 처리하려면 우샤오후이를 만나야 하겠군요. 자신에게 밀렸던 사람이 실적을 쌓아서 다시 돌아오는 것을 원하지 않을 테니까요."

"그런 생각을 하기에는 너무 차이가 벌어져서···."

"그래도 자신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진 사람이 기회를 잡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을 텐데요?"

우샤오후이를 만나면 나는 기꺼이 웬 지하오가 그를 노리고 있다는 말을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렇게는 한데···."

카이 후이가 잠시 말을 멈추고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혹시 돈 좀 가지고 있습니까?"

"돈이요?"

"예. 우샤오후이가 거래 관계가 좀 분명합니다. 본인에게 직접 선물하는 것은 좀 그렇고 여자에게 줄 선물 정도면 괜찮을 것 같네요."

변호사라는 인간이 노골적으로 뇌물이 필요하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으로 봐서는 카이 황과는 많이 다른 성격인 것 같았다.

내 모습을 거절이라고 생각했는지 카이 후이가 다시 입을 열었다.

"비싼 선물은 필요 없습니다. 단지 예의를 차릴 정도면 충분하죠. 총액 한 오만 불 정도 선물이면 적당할 것 같네요."

오만 불이라면 중국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전혀 적당해 보이지 않는 금액이었다.

어떤 중국 노동자는 평생을 벌어도 모으지 못할 금액이었다.

더구나 카이 후이의 말대로라면 그건 만나기 전에 주는 선물일 뿐 내 말을 들어준다는 보장도 없었다.

들어준다고 해도 그때는 또 다른 선물을 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까지 해서 웬 지하오를 제거해야 하는지 조금 의문이었다.

그렇지만 웬 지하오와는 별개로 중국에서 새로운 관시를 만든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알겠습니다. 선물을 어떻게 보내드리면 되겠습니까?"

내가 물었다.

"제 사무실로 보내시면 제가 알아서 전달하겠습니다."

카이 후이가 말했다.

'설마 카이 황의 친척이 선물을 떼어먹지는 않겠지.'

나는 호텔 지하 가게에서 목걸이와 귀걸이를 사서 카이 후이의 사무실로 보냈다.

그리고 바로 그날 카이 후이에게서 4월 1일 일요일 밤에 우샤오후이와 약속을 잡았다는 전화가 왔다.

"일요일이요?"

오늘이 29일이니 4월 1일이면 겨우 3일 뒤였다.

카이 후이가 말한 대로라면 우샤오후이는 중국 권력층과 가까운 인물이었다.

아무리 카이 후이가 능력이 좋아도 그런 인물과 바로 약속을 잡을 수는 없었다.

미리 조사해놓은 것만 봐도 예전부터 이미 준비를 해놓았다고 봐야 했다.

준비해놓은 사람은 카이 황일 테고 말이다.

"그전에는 어렵습니까?"

나는 이왕이면 조금 앞당길 수 있는지 물었다.

어차피 해결할 일이라면 빨리 해결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급하다고 소를 향해 달려들면 안 되죠.?

하지만 카이 후이는 내 말을 받아들이지를 않았다.

진짜 약속을 앞당길 수가 없어서인지 아니면 시간을 끌어서 가격을 높이려는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쓸데없이 내 조급한 모습만 보여 약점만 드러낸 셈이었다.

그날 오후부터 나는 그대로 곯아떨어져 일어났을 때는 다음날 점심때였다.

다행히 약속 시각에 늦지는 않았다.

오늘 만날 사람은 홍콩 법률회사에서 내 회사 설립을 도와준 변호사 중 한 명에게 소개받은 사람이었다.

자신과는 중국인들이 난다(南大)라고 불리는 남경대학(南京大學)에서 같이 법학을 공부한 사이로 카이 후이가 근무하는 진두와 중국 법률회사 1, 2위를 다투는 다청(大成) 소속의 변호사였다.

카이 황이 미리 준비해놓은 것을 모를 때 상하이에서 조사를 위해 만나기로 한 사람이었다.

내가 다청의 변호사를 소개받은 것은 간단한 이유였다.

어느 나라나 대형 법률회사는 인맥과 정보가 모이는 저수지였다.

약속 장소에 나온 사람은 모범생이라고 할 때 머리에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그런 인상을 주고 있었다.

172 정도의 키에 안경을 낀 마른 체격이었다.

날카로운 눈빛은 만만치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임순(Lim Xun)이라고 합니다."

"에드릭 손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서로 악수했다.

"듣기로는 미국인이라고 하시던데 중국어가 굉장히 유창하시네요?"

"감사합니다. 다행이네요. 꽤 노력했는데 아직은 부족합니다."

임순도 자연스러운 표준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듣기로는 광둥 출신이라고 하던데 말에서는 전혀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없었다.

"홍콩에 있는 친구에게 손 선생에 관한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굉장히 뛰어난 투자 감각을 가지고 계시다고요?"

"제가 고객이라서 과장했나 보네요. 그냥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중국에서는 행운을 대단히 중요시하죠. 저희 조부께서는 평소에 능력이 뛰어난 사람보다는 운이 좋은 사람과 가까이하라고 하셨습니다. 능력이 있어야 운도 따라오는 법이라고요. 에드릭 손 씨와 이번에 좋은 인연을 맺었으면 좋겠네요."

"하하···."

상대의 이어지는 과한 칭찬을 나는 웃음으로 받아넘겼다.

조금 칭찬이 지나치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홍콩 법률회사를 통해서 소개받을 때부터 어느 정도는 예상한 일이었다.

홍콩 법률회사에서는 내가 몇 달 만에 팔천오백만 불을 벌어들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임순에게 어느 정도까지 말했는지는 모르겠다.

변호사에게는 비밀 유지 의무가 있지만 적어도 내가 선물 투자로 큰돈을 벌었다는 사실 정도는 임순에게 알려줬을 것이다.

아부에 가까운 말을 한다고 해서 임순에 대한 선입견을 품을 생각은 없었다.

누군가는 아부하는 사람을 멀리하라고 하지만 상대방의 칭찬은 처세술의 한 방법일 뿐 능력과는 관계가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이곳에서 알아보고 싶은 것이 있으시다고요?"

임순이 본론을 꺼냈다.

임순을 만나서 알아보려고 한 일은 어느 정도 해결된 상태지만 카이 후이만 믿고 있을 수는 없었다.

차선책을 마련해 놓을 필요가 있었다.

"같이 일하는 사람이 상하이에서 어떻게 지냈는지를 좀 알아보려고 합니다."

"같이 일하는 사람이라면···."

"BJ인베스트먼트에서 일했던 웬 지하오라고 사람입니다."

미소를 짓던 임순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런 일인 줄은 몰랐네요. 그건 좀 곤란하겠습니다."

임순이 거절했다.

"웬 지하오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이곳 상하이에서 BJ인베스트먼트를  조사하는 것은 자살행위입니다."

임순의 말에 나는 미소를 지었다.

"뭔가 오해를 하시는 것 같은데···. BJ인베스트먼트나 대표인 천샤오루 대인을 조사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웬 지하오를 조사하려는 것이죠. 이미 웬 지하오는 BJ인베스트먼트가 아닌 홍콩에서 근무하고 있고요."

"그래도 조사하다 보면···."

임순이 말을 흐렸다.

그는 여전히 곤란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의 표정에서 무언가 다른 목적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애초에 내가 쉽게 조사할 수 있는 일이면 내가 뭐하러 사람을 소개받아서 조사하려고 하겠는가?

임순이 나왔을 때는 어느 정도 각오하고 나왔을 것이다.

그런데도 어렵다고 하는 것은 나에게 좀 더 뜯어내려는 하려는 목적 외에는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카이 후이에게 약속을 재촉했다가 약점을 잡힌 것 같아 찜찜했던 나는 더는 같은 상황을 반복할 생각이 없었다.

"알겠습니다. 웬 지하오가 누군지 알아보지도 않고 지레짐작으로 그만두시겠다면 어쩔 수 없죠. 다른 사람을 알아보죠."

임순이 일어나는 내 팔을 잡았다.

"아닙니다. 제가 알아보겠습니다. 마침 제 친구 중에 BJ인베스트먼트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임순이 제안을 받아들이자 나는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 건네주었다.

"웬 지하오의 이력서와 자기소개서입니다. 조사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내가 임순에게 웬 지하오의 서류를 넘기는 이유는 간단했다.

적어도 이것보다는 자세한 내용을 조사하라는 의미였다.

이런 내 의도를 알아챘는지 임순의 표정이 더욱 굳어졌다.

지금까지 채찍이었다면 당근을 줄 차례였다.

나는 옷에서 수표책을 꺼내 사인을 해서 임순에게 건넸다.

"만 불입니다."

수표에 적힌 금액을 확인한 임순이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일요일 오후까지 정보를 알아 오시면 만 불을 더 드리지요. 그리고 정말 중요한 정보라면 그 배까지도 지급할 생각이 있습니다."

정말 필요한 정보를 알아 온다면 삼만 불을 주더라도 싸게 먹힌 셈이었다.

우샤오후이는 만나기만 하는데 오만 불이 들었지 않은가?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하고 나는 상하이 관광을 하면서 4월 1일이 오기를 기다렸다.

4월 1일 나는 호텔에서 방송을 보며 편안한 마음으로 약속 시각이 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갑자기 방송이 멈추고 속보가 흘러나왔다.

하이난섬에서 미국 정찰기와 중국 전투기가 충돌했다는 뉴스였다.

충돌한 중국 전투기는 추락해 전투기 조종사가 실종되고 미국 정찰기가 하이난섬 영공을 침범한 이후 하이난섬 공항에 불시착했다는 뉴스가 이어서 흘러나왔다.

미국 방송이었다면 만우절 농담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충격적인 뉴스였다.

그렇지만 여기는 중국이었다.

만우절이라고 해서 저런 뉴스를 가짜로 내보낼 나라가 아니었다.

나는 전화를 걸어 약속을 취소했다.

지금은 웬 지하오나 선물한 5만 불을 신경을 쓸 때가 아니었다.

아니나 다를까···.

혹시나 해서 접속한 메일에는 즉시 중국으로 가서 상황을 파악하라는 지시가 내려와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에 이미 와 있는 것을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재수가 없다고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중국의 뉴스나 호텔에서 접속해 본 중국 인터넷 게시판의 반응은 아주 뜨거웠다.

불시착한 미국 정찰기의 승무원들을 때려 죽어야 한다는 소리까지 있었다.

제대로 상황을 파악하려면 뉴스에 나는 기사보다 더 자세히 알아봐 줄 사람이 필요했다.

마침 나에게는 중국에서 가장 큰 대형 법률회사에 근무하는 두 사람의 연락처가 있었다.

카이 후이와 임순.

나는 휴대전화기를 들어 잠시 최근 통화 목록에 있는 두 사람의 번호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둘 중 누구에게 걸까를 생각해봤지만 생각해 볼 것도 없이 전화를 걸어야 할 사람은 분명했다.

나는 통화버튼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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