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스파이, 슈퍼리치 되다-54화 (55/270)

서몽

# 빠르다고 경기에서 이기는 것은 아니다.

내가 전화를 건 사람은 임순이었다.

카이 후이와 임순 둘 중에 누가 더 유능한지는 알 수 없었다.

둘 다 겨우 며칠 전에 만난 사이였다.

그렇지만 둘 중에서 누가 내가 알고 싶은 정보를 더 잘 알아올 사람인가 물으면 카이 후이였다.

이곳 상하이에서도 중국 공산당과 가까운 우샤오후이를 소개할 인맥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홍콩에는 카이 황이 있었다.

하이난 섬은 홍콩과 가까웠다.

하이난 섬의 사정을 알아보는 데는 상하이보다 홍콩이 더 쉬울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카이 후이가 아닌 임순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정보뿐 아니라 이번 일에 대한 냉정한 평가였다.

카이 후이는 카이 황도 그렇고 우샤오후이도 그렇고···.

여러가지 엮인 것이 많았다.

그에 비해 임순은 소개한 사람부터 만남까지 거래관계였다.

더구나 내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임순은 광동출신으로 선전에서 학교를 다녔다.

여기에 난다 대학원에서 함께 공부한 사람들 중에는 당간부는 물론이고 군 출신도 있었다.

여러가지를 종합했을 때 이번 일에는 오히려 임순이 적합했다.

임순을 만나러 가는 도중 카이 후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늘은 물론이고 한동안 우샤오후이 쪽에서 나를 만나는 것이 어렵다는 연락을 해왔다는 전화였다.

고위 관리의 사위인 우샤오후이로서는 미국인인 나를 만나는 게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이유였다.

카이 후이가 뭔가 할 이야기가 있는것 같았지만 나는 알았다고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임순을 만난 것은 진수안(Jin Xuan, 金軒)이라는 식당이었다.

우리는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식사부터 했다.

코스요리로 나오는 음식을 하나 둘 먹으며 이런저런 의미없는 이야기를 나눴다.

식사가 끝나자 임순이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 건넸다.

"제가 웬 지하오에 대해서 조사한 내용입니다."

나는 서류를 받아 그대로 식탁 위에 내려놓았다.

웬 지하오에 대한 정보는 나중에 읽어봐도 충분했다.

지금 웬 지하오에 대한 일보다 중요한 것은 오늘 9시 경에 있었다는 미국 정찰기와 중국전투기 사이의 충돌이었다.

일을 맡기기 전에 임순을 시험해 볼 필요가 있었다.

"가서 읽어보죠. 상하이에서 웬 지하오의 평판은 어떻습니까?"

"웬 지하오는 삼년 전까지만 해도 BJ인베스트먼트의 천 샤오루 대인에게 총애를 받은 것 같습니다. 일 처리도 깔끔했고 돈 문제도 여기 상하이 투자회사에서 일하는 사람치고는 깨끗한 편이었고요. 그래서 승진도 빨랐다고 합니다. 일을 강압적으로 처리하는 면이 있었다지만 그거야 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신감이 가진 사람들에게는 흔히 있는 일이고요. 몇 년 안에 천 샤오루 회장이 웬 지하오에게 중요한 일을 맡길 것이라는 소문이 있었다고 합니다."

"듣기로는 홍콩으로 발령된 것이 회사에서 밀려난 것이라고 하던데요? 그렇게 천 대인의 인정을 받던 사람이 어쩌다가 홍콩으로 온 것입니까?"

내가 물었다.

"오만한 성격 때문이죠."

임순이 계속 말했다.

"우샤오후이라는 직원이 몇년 전에 BJ인베스트먼트에 입사했습니다. 지금 천 샤오루 회장의 가장 큰 신임을 받는 사람이죠. 당시만 해도 고향인 절강성 온주에서 사업을 했다지만 그 사업 평판도 별로 안 좋아서 내세울 것이 없는 인물이었습니다. 아마 항저우 시장의 큰 사위가 아니었다면 BJ인베스먼트에 입사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그런데 경력과는 별개로 꽤 수완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차츰 우샤오후이가 회사에서 두각을 나타내자 웬 지하오는 불안을 느꼈다고 합니다. 더구나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여기 상하이 토박이 출신들은 다른 곳에서 온 외지인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여기에 웬 지하오는 자신이 청화대 출신이라는 것에 엄청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고요. 웬 지하오는 자신에 대한 천 대인의 총애가 집안이나 학벌이 별로인 외지인 우샤오후이에게 옮겨가는 것에 대놓고 불만을 표시했다고 하더군요."

부하가 다른 곳에서 자신의 행동을 비난하는 일.

체면을 중시하는 고위직이 가장 싫어하는 것 중 하나였다.

물론 들키지 않았다면 문제는 되지 않는다.

하지만 임순이 알고 있다면 천 샤오루 회장도 알고 있다고 봐야 했다.

"그 일 때문에 홍콩으로 밀려난 것입니까?"

임순이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천 대인에게 경고를 받기는 했지만 그 일은 잘 넘어갔다고 하더군요. 문제는 우샤오후이에 대한 경쟁심리에 일을 벌였다더군요."

"무리한 일이라니요?"

"항조우에 지리라는 회사가 있습니다. 오토바이를 만드는 회사인데 최근 자동차생산 면허를 따려고 여러가지 시도를 하고 있다더군요."

"그런데요?"

"웬 지하오가 지리차에게 자동차생산 면허를 받아주기 위해 청화대 동문들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그게 왜 문제가 된 것입니까?"

"천 대인은 예전부터 상하이자동차와 관시로 맺어진 사이입니다. 더구나 지리의 자동차 생산 면허를 막고 있는 것이 바로 우샤오후이의 장인인 항저우 시장이었습니다. 웬 지하오는 바로 그걸 건드린거죠."

"아···. 홍콩으로 쫓겨나기만 한 것이 그나마 다행이네요."

"BJ인베스트먼트의 천 대인은 자기 사람을 잘 버리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웬 지하오를 아끼기도 했고요. 듣기로는 조만간 우샤오후는 독립시킬 생각이었다고 말이 있는데 엔 지하오가 성급했던 것이죠."

웬 지하오가 성과에 매달리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낙하산이라고 할 수 있는 나를 못마땅하게 생각한 이유도···.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웃기는 일이었다.

웬 지하오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본인도 류오린에서는 낙하산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첫날 카이 후이에게 들은 이야기나 임순의 이야기를 듣고 난 결론은 비슷했다.

웬 지하오에 관한 문제에서 관건이 되는 인물은 우샤오후이라는 부분이었다.

우샤오후이로서는 웬 지하오가 홍콩에서 실적을 내는 일을 반기지 않을 것이다.

내가 본 웬 지하오의 성격상 상하이로 돌아오면 우샤오후이에게 도움이 될 인간이 아니었다.

"이야기는 잘 들었습니다. 웬 지하오에 대해서 계속 조사해 주십시오. 개인적인 비리나 약점이 될 수 있는 문제들로요. 만약 회사에서 쫓아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주신다면 약속한 보수를 지불하겠습니다. 내일 은행이 열리면 일단 약속한 보수 중 만 불을 추가로 지불하겠습니다."

임순은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걱정마십시오. 시간이 촉박해서 아직 특별한 약점을 찾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상하이에서 투자회사에 근무하면서 돈 문제가 깨끗한 사람은 보지 못했습니다."

"그럼 그 문제는 그렇게 정리하고···. 다른 일도 좀 도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나는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임순을 불러낸 목적을 이야기하기 위해서였다.

"무슨 일입니까?"

질문을 하는 임순의 표정에는 기대감이 그대로 드러났다.

내일 만 불을 주겠다는 약속 때문인 것 같았다.

"오늘 아침에 미국 정찰기와 중국전투기가 충돌했다는 뉴스를 보셨을 것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임순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혹시 지금 하이난 상황을 자세히 알아볼 수 없겠습니까?

임순이 수상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건 왜?"

당연한 반응이었다.

미국인인 내가 중국 군사상황을 물어보는 것은 수상한 일이었다.

더구나 양국이 충돌 후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오해하실 필요 없습니다."

나는 이미 임순에게 변명할 이유를 생각해 놓았다.

내가 계속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중요한 군사정보를 알려달라는 것은 아니니까요. 제가 알고 싶은 것은 실제 하이난 상황보다는 오히려 이번 일에 대한 중국 정부의 발표입니다."

"그러니까 그걸 왜 알려달라는 것입니까?"

임순의 목소리가 약간 커졌다.

따지는 듯한 태도였다.

"선물에 투자 좀 해보려고요."

나는 태연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내 말과 태도에 의심을 풀었는지 임순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

"투자요?"

임순이 물었다.

"예."

"내가 투자에 대해 잘 모르지만 이 일로 중국이나 미국의 주가가 큰 영향을 받을 것 같지 않은데요?"

임순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나는 다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뉴스를 보니 중국 전투기 비행사 분이 실종돼셨다고 하더군요. 그 분이나 지금 하이난에 비상착륙한 미국 정찰기 승무원분들께는 죄송하지만 저는 이번 일 자체에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어차피 이번 일로 미국과 중국이 전쟁을 벌일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임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죠. 그런데도 조금 선물 투자를 하겠다고···."

나는 임순의 눈을 보며 입을 열었다.

"전쟁은 나지 않겠지만 한동안 하이난이나 남중국해가 군사적 긴장상태가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요?"

"미국과 중국은 대국이니 이런 일로 주가에 큰 영향을 받지 않겠지만···. 남중국해가 군사적 충돌 상태가 되면 가장 불안해 할 국가가 있지 않습니까?"

"타이완을 말하는 것입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잘못 알고 계시네요. 타이완은 국가가 아닙니다."

임순이 정색을하며 말했다.

"아···. 제가 실수했네요. 아시겠지만 미국도 오래 전부터 타이완을 국가로 인정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타이완이 국가는 아니지만 독립된 주식시장을 가지고 있다는 거죠. 이대로라면 내일 주식 시장이 열리면 대만 주식들이 폭락하지 않겠습니까?"

"그건 그렇죠. 그런데 폭락하는 것을 알고 있다면 정부 발표를 왜 알려고 하는 것입니까?"

임순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하루 이틀은 폭락하겠지만 타이완 주식시장에 투자하는 투자자들도 바보가 아닌데 이 일로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르겠습니까?"

"주가가 일시적으로는 내려가겠지만 곧 회복하겠죠."

"맞습니다. 하지만 회복시기는 중국 정부의 반응에 따라서 결정되겠죠."

임순은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처음에 화를 냈던 것에 비하면 많이 달라진 셈이었다.

하이난의 군사상황을 알아달라는 것이 아니라 정부 발표 수위를 알려달라는 말에 반쯤은 넘어왔다고 생각이 들었다.

"저는 싱가포르에 있는 MSCI Taiwan 선물에 천만불을 투자할 생각입니다. 선물로 번 수익의 30%를 드리죠."

레버리지를 전혀 안 쓴다고 해도 천만불을 투자할 때 대만가권지수가 1%만 떨어져도 십만불을 버는 셈이었다.

나는 그 중에서 30%, 즉 삼만불을 임순에게 준다는 제안이었다.

"물론 손해를 봐도 제 실수니 임 대인께 책임을 물을 생각은 없습니다."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제안에 임순이 손을 내밀었다.

"좋습니다."

나는 그의 손을 마주 잡으며 말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선물에 투자하신다면 되도록 일찍 알려드려야겠군요."

"예. 한밤 중에도 괜찮습니다. 오늘 밤은 자지 않고 연락을 기다리겠습니다."

나는 호텔로 다시 돌아가서 밤을 새우며 중국은 물론이고 미국과 대만 그리고 홍콩의 기사까지 하이난 사건에 관한 거의 모든 글을 확인했다.

중국 측의 분위기는 예상했던 것처럼 뉴스나 글 모두 격앙되어 있었다.

중국 정부에서는 미국 정찰기가 하이남 남쪽 100킬로 중국 영공을 침범했고 갑자기 기수를 돌리는 과정에서 중국 전투기와 충돌했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미국 정찰기가 무단으로 하이난 섬 공항에 아무런 통보도 없이 착륙했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가장 문제는 충돌한 중국 J-8 전투기가 추락하고 탈출한 조종사는 실종된 상태라는 보도였다.

그에 비해 미국은 하이난 섬에서 70마일 남쪽 공해상에 있던 미국 정찰기에 중국 전투기가 접근했다가 충돌해 미군 정찰기가 중국 하이난 섬 공항에 불시착했다고 나오고 있었다.

미국 정부나 뉴스의 핵심은 정찰기에 타고 있던 미군 23명이 중국 측에 억류되어 있다는 내용이었다.

양국 모두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는 있지만 상황만 봐서는 중국이 훨씬 유리한 상태였다.

어쨌든 미국 정찰기가 중국과 가까운 곳에서 비밀임무를 수행하다가 발각되었다.

사건의 유일한 희생자는 중국 전투기 조종사였다.

여기에 결과야 어쨌든 정찰기는 명백히 중국 하이난 섬 상공을 침범해서 공항에 불시착했다.

더구나 중국은 여전히 23명의 미군 측 생존자를 억류하고 있었다.

하지만 빠르다고 경주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강하다고 전투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었다.

2001년 중국 지도부의 가장 큰 외교적 목표는 WTO 가입과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유치였다.

두 가지 중국 지도부가 모두 중국 국민들에게 중국 경제 성장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이벤트였다.

그리고 두가지 모두 미국이 반대하면 절대 이뤄질 수 없는 일이었다.

임순에게 연락이 온 것은 새벽이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지금 막 모임이 끝났습니다.

목소리에서 술냄새가 느껴질 정도로 약간 어눌한 말투였다.

"괜찮습니다. 아까 말했던 것처럼 깨어 있었습니다."

-한동안 강경하게 나오겠지만 일부 강경파의 주장에도 수요일에 승무원들에 대한 면회를 허용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전화로는 곤란하고 아침에 직접 가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럼 아침에 뵙지요."

나는 전화를 끊었다.

이미 원하는 내용은 다 들은 셈이었다.

임순의 말은 중국이 강경하게 나오는 것처럼 말을 하지만 극단으로 갈 생각이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나로서는 다행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쉬운 일이기도 했다.

미국과 중국의 긴장이 오래가지 않는다면 타이완 선물에 투자해서 벌수 있는 기간도 짧다는 의미였다.

나는 CIA에 보낼 보고서 초안을 완성했다.

물론 중국 내에서 메일을 보낼 수는 없었다.

홍콩에 돌아가면 바로 보낼 생각이었다.

어쨌거나 이번 상하이 행은 실패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름의 관시가 생겼지만 정작 상하이에 온 목적인 웬 지하오를 류오린에서 쫓아내는 일은 한동안 어려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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