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스파이, 슈퍼리치 되다-55화 (56/270)

서몽

# 많이 변화할수록 변화하기 전과 같아진다.

CIA 홈페이지에는 정보분석국에 대해 이렇게 소개되어 있다.

불완전하고 때로는 상충하는 정보를 국가정책 결정에 도움이 되는 독특한 통찰력으로 변화시키고 있는 정보분석국 (DI)에 방문한 것을 환영합니다.  DI직원들은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 정책결정자 및 행정부 각료에게 정확하고 객관적인 국가안보 및 대외정책에 관한 정보분석을 시의적절하게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런 CIA의 정보분석국이 하는 일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대통령에게 매일 아침 보고하는 일일 정보브리핑(President Daily Briefing, PDB)을 작성하는 일이다.

하지만 이번 하이난 사고 같은 일이 발생할 때는 따로 보고를 올리라는 요청을 받게 된다.

정보분석국 내에서는 이번 하이난 사고에 대한 모든 정보를 취합하고 있었다.

하이난 사고는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하고 맞은 첫 번째 외교적 위기였다.

물론 일본 해양훈련선의 침몰로 직접 대통령이 사과를 하는 일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건 일본 내 반미감정 때문이었지 외교적으로 중요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일본은 자체 군대도 인정받지 못하는 나라로 미국의 외교적 군사적 영향력 아래에 있는 국가였다.

대통령의 지인이 관련된 사건이고 분명한 미 해군의 실수였기 때문에 오히려 사건 자체는 간단한 일이었다.

이번 일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대통령에게 긴급 브리핑을 위해 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해 관련 서류들을 읽던 피터슨에 눈에 보고서 하나가 들어왔다.

"이건 뭐야? 보고자가 에이전트 에스? 이 이상한 이름은 뭐야? 이 바쁠 때 누가 이런 장난을 치는 거야?"

피터슨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피터슨의 질문에 한쪽에 있던 사내가 손을 들었다.

"그거 제가 넣었습니다."

눈에 다크써클이 선명한 사내는 워드였다.

워드는 이런 상황에서 장난을 칠 직원이 아니었다.

"에이전트 에스라는 팀이 진짜 있다는 거야? 에스가 뭔데? 스페셜? 시크릿?"

CIA는 그 업무 자체가 특별하고 비밀이 기본인 조직이었다.

이런 특성상 오히려 스페셜이나 시크릿이라는 단어는 엄격하게 사용되고 있었다.

"그냥 에스라고 합니다. 동아시아 쪽에서 활동하는 특수팀이라는데 정확한 것을 아는 직원은 없더군요."

정규 조직에서 벗어난 특수팀들은 CIA에 오래전부터 있었다.

대부분이 정규 조직에서 할 수 없는 일을 맡기는 팀들이었다.

이런 팀들은 냉전이 종식되고 오히려 늘어나는 추세였다.

이건 냉전 종식 이후 클린턴 행정부는 CIA에 대한 조직개편을 단행했기 때문이다.

조직개편은 그게 기업이든 국가든 구조조정, 즉 해고를 동반한다.

그렇게 해고된 요원 중 일부는 다시 외주라는 이름으로 다시 고용되는데 이때 이른바 특수팀이 조직되는 것이었다.

이 특수팀의 가장 큰 장점은 비용도 비용이지만 CIA의 요원들이 아니므로 미국과 CIA가 법적인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는 점이었다.

피터슨도 당연히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 대해 걱정하고 있었다.

국가나 CIA도 책임질 필요가 없지만, 특수팀도 이제 CIA가 아니기 때문에 CIA가 금지했던 비도덕적인 작전을 대놓고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방향의 문제는 많이 변하면 변하기 전과 똑같아진다는 말처럼 이렇게 생긴 새로운 팀들이 하는 짓거리가 예전 한창 CIA가 비난을 받을 때 아프리카나 남미에서 하던 짓거리와 다를 바가 없었다.

최근 아프리카와 중동을 중심으로 반미감정이 빠르게 높아지고 있었다.

이런 상황은 결국 미국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 피터슨의 생각이었다.

이런 우려와는 별개로 에이전트 에스라는 이름에는 코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작전국 새끼들 이제 갈 데까지 가는군. 팀 이름이 이게 뭐야? 뭐든지 비밀로 하면, 다 되는 줄 아는 놈들이 이제 아예 대놓고 팀명을 만드는군."

작전국과 정보국은 예전부터 CIA 내에서 앙숙 사이였다.

작전국은 흔히 사람들이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생각하는 스파이였다.

하지만 CIA의 2만 명이 넘는 직원 중 작전국 요원은 2천 명 정도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대부분이 행정 요원들이었다.

당연히 작전국 요원들은 자신들이 CIA 내에서도 엘리트 요원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보분석국 요원들이 보기에는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CIA는 군대가 아니었다.

정보분석국 요원들이 생각하는 CIA의 핵심 목적은 정책결정자, 즉 대통령이나 장관 그리고 행정부에 제대로 된 정보를 전달해서 상황에 맞는 정책 결정을 돕는 일이었다.

바로 자신들 정보분석국이 하는 일이었다.

정보분석국이 보기에 작전국이나 기술국은 첩보를 수집해서 자신들에게 전달하는 손발에 불과했다.

손발이 머리보다 중요할 수는 없었다.

특히 정보국이 작전국에 대해 가지는 가장 큰 불만은 비밀로 하지 않아도 될 부분까지 비밀로 한다는 점이었다.

"그래도 에이전트 에스라는 팀이 2001년 들어서면서 아시아 쪽에서는 꽤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제가 보기에도 정보분석이나 상황분석 능력은 괜찮고요. 제가 따로 알아보니 얼마 전에는 일본 해양훈련선 침몰 때 그 사고를 이용하려던 모리 요시로 일본 총리를 실각시킨 작전에도 참여했다고 합니다."

워드가 말했다.

"그 일에 참여했어? 볼 것도 없겠네. 나도 그 일에 대한 보고서는 봤는데 내가 보기에는 그 일은 완전 실패야. 처음에는 일본 내 반미감정을 일본 총리에 대한 비난으로 전환한다는 작전이었다고 하던데···. 어느 때부터인가 모리 총리를 실각시키는 일로 목적이 완전히 바뀐 것 같더군. 완전 목적이 잃어버린 거지."

"그래도 반미감정을 어느 정도 차단하는 데 성공했고 모리 요시로 총리도 얼마 전에 완전히 항복선언을 하지 않았습니까? 그 정도면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요?"

워드의 말에 피터슨이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모리 총리는 언제 쫓겨나도 이상하지 않은 인물이야. 더구나 모리 요시로를 실각시키는 과정에서 가지고 있던 정보로 모리 요시로 측근이었던 장관을 구속시켰다면서? 그 작전이 알려지면 다른 나라가 우리 미국이나 CIA를 뭐라고 생각하겠나?"

피터슨은 CIA에 대한 나쁜 이미지는 CIA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말씀을 들어보니 일리가 있는 말이네요. 그래도 일본지부에서의 일이 꼭 잘한 것만은 아니지만 어쨌든 성과가 있는 것은 분명하지 않습니까."

"알았어. 자네는 내가 이 보고서를 읽어봤으면 좋겠다는 이야기지?"

워드가 피터슨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렇습니다. 보고서를 읽어보니 오늘 발표된 중국 외교부의 대응과 일치하더군요. 만약 전체적인 방향이 그 보고서대로 진행된다면 이번 일은 큰 외교적 피해 없이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피터슨은 보고서를 읽어보았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 에이전트 에스라는 팀이 모은 정보대로라면 중국 정부는 이번 일을 크게 키울 생각은 없다는 거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거기 나와 있는 것처럼 중국 현지 여론이 상당히 나쁘다고 합니다. 그러니 강경한 대응보다는 중국 내 여론을 무마할 정도만 해주면 넘어갈 것 같다고 합니다."

"사과할 필요는 없지만, 중국 정부가 중국 국민에게 사과를 받았다고 말할 수 있는 정도의 말을 해달라?"

"그렇습니다. 어차피 이번 일은 진짜로 사과할 수는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그렇기는 하지."

이번 하이난 사고는 기본적으로 남중국해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과정에서 나온 충돌이었다.

만약 이번 일을 사과한다면 남중국해에서 미군의 정찰 활동을 비롯한 군사 활동을 할 명분을 잃게 된다.

대만과 일본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전체를 포기하는 결과였다.

"보고서는 조잡하지만 나름 대책은 쓸만하군. 내가 생각한 보고서 방향과도 일치하고···. 다만 이 에이전트 에스라는 이름을 보고서에 쓸 수는 없겠어. 정보출처를 이야기하는 순간 CIA 전체가 비웃음을 살 이름이잖아. 대통령이나 장관들이 듣고 에스가 무슨 뜻이냐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하겠어?"

"그렇기는 하죠."

피터슨의 말에 워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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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으로 돌아왔을 때는 새로운 팀원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리안이 추천한 러시아 전문가였다.

팀원이지만 나는 오늘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예정대로라면 진작에 면접을 봤어 하지만 바쁜 일 때문에 면접 없이 리안에게 맡겼었다.

리안이 추천한 사람이라서 믿고 한 결정이었다.

"첸 타오(Chen Tao, 陳濤)라고 합니다. 서퍼라고 불러주십시오."

자신을 서퍼라고 불러 달라는 첸 타오는 탄탄한 체격을 가지고 있었다.

"팀장을 맡은 에드릭이라고 합니다."

"미국인이시라고요?"

"그렇습니다."

"혹시 뉴욕의 디치플레인스에 가보셨습니까?"

"아뇨."

"제가 뉴욕에 가면 항상 방문하는 서핑 포인트인데 롱아일랜드 서쪽 끝에 있는 해변이 물살이 서핑하기에 참 좋은 곳이죠."

"제가 서핑을 하지 않아서···."

"한 번 빠지면 잊을 수가 없죠. 제가 런던에서 근무하다가 홍콩으로 온 이유도 바로 아시아에 서핑 명소가 몰려있기 때문이죠. 홍콩에서 조금 멀지만 인도네시아 발리나 스리랑카 호주 뉴 칼레도니아 같은 곳은 서퍼라면 정말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곳입니다. 언제 쉴 때 저랑 한번 가시죠. 체격을 보아하니 서핑도 잘할 것 같은데요."

서퍼는 이름처럼 실제로도 서핑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타오(濤)는 큰 물결을 의미하는 것을 생각하면 아마 이름을 지어준 사람은 선견지명이 있는 셈이었다.

하지만 나는 서핑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다.

내가 리안을 바라보자 리안이 나섰다.

"브레이크! 중국에서 일하다가 온 사람에게 무슨 짓이야. 너, 내가 일할 때는 서핑 이야기하지 말라고 했지."

"브레이크가 아니라 서퍼라고 부르라니까."

아마도 홍콩에서 사용하는 영어 이름은 서퍼가 아니라 브레이크인 듯했다.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이 들었다.

면접을 보지 않고 채용한 것이 실수였나?

나는 리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일할 때는 확실합니다. 러시아 경제위기 때도 런던 시티에서 근무했었고요."

리안이 내가 자신을 바라보는 이유를 깨달은 듯 서둘러 변명하기 시작했다.

"그래야죠."

나는 힘주어 강조하고는 리안을 노려보며 계속 말했다.

"어제 지시한 일은 어떻게 됐습니까? 타이완 선물에 대한 투자요?"

"이미 끝냈습니다."

대답한 것은 브레이크였다.

"말씀하신 대로 천만 불 레버리지 없이 싱가포르 증시에 상장된 타이완 선물 하락에 투자했습니다."

브레이크의 표정은 조금 전과는 달리 진지한 표정이었다.

리안의 말대로 일은 확실하게 하는 것처럼 보였다.

"러시아에 투자할 준비는요?"

나는 이번에는 브레이크를 보며 물었다.

나는 리안 지인들의 요청으로 설립된 투자회사의 주요 투자처로 러시아를 생각하고 있었다.

러시아는 경제위기에서 벗어나 빠르게 회복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원유가격이 상승하는 상황에서는 러시아에 대한 투자 전망은 밝았다.

더구나 내가 계획하고 있는 러시아 주식 시장에 대한 투자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러시아 주가지수인 RTS가 달러로 표시된다는 점이었다.

혹시 모를 환율변화로 인한 위험이 전혀 없었다.

"이미 준비를 마쳤습니다. 현재 투자회사에 들어온 투자금은 삼천만 불이고 언제든지 투자 가능합니다."

브레이크가 대답했다.

새로운 회사에 들어온 투자금은 예정과는 조금 차이가 나는 삼천만 불이었다.

이것까지 합쳐서 현재 우리 팀이 관리하는 자금은 일억이천삼백만 불이었다.

이 금액은 나나 리안, 카이 황 그리고 새로운 팀원인 브레이크가 관리하는 자금을 뺀 금액이었다.

네 명의 팀원이 관리하기에는 너무 많은 금액이었다.

"브레이크 씨는 언제 러시아 시장에 들어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까?"

내가 물었다.

"이번 주가 적기라고 생각합니다."

브레이크가 대답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요?"

"다음 주에 독일 슈뢰더 총리가 러시아를 방문할 예정입니다. 그때 러시아가 경제위기 때 유예했던 러시아 국가 부채에 대한 논의가 있을 예정이고요. 슈뢰더 총리가 친 러시아 정치인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그 협상은 러시아에 유리하게 결론이 날 가능성이 큽니다. 그 전에 진입해야 합니다."

나는 고개를 돌려 리안을 보며 엄지와 검지로 원을 만들고 나머지 세 손가락을 펴 보였다.

이 정도면 조금 이상해도 충분히 팀원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좋네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리안을 바라보았다.

"그럼 브레이크 씨에게 러시아에 투자는 맡기겠습니다. 그럼 오늘 러시아 시장이 열리면 바로 투자를 시작하죠. 그리고 러시아에 처음 투자하는 것이니 기존에 관리하던 AAM 투자금도 이번에 같이 러시아에 투자하는 것으로 결정하겠습니다. 처음부터 너무 노골적으로 투자 방향이 다른 것을 알면 고객들이 좋아하지 않을 테니까요."

리안은 내 결정에 고개를 끄덕였다.

전에 이미 새로운 투자회사는 투자 방향을 다르게 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신경이 쓰였던 것 같았다.

리안과 내가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때 옆에서 브레이크가 끼어들었다.

"잠시만요···."

나는 브레이크에게 고개를 돌렸다.

"무슨 문제라도?"

"지난달 말부터 러시아 RTS지수가 계속 하락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조금 더 떨어질 것 같으니 내일이나 모레 상황을 보고 들어갔으면 합니다."

브레이크가 말했다.

나는 즉시 러시아 RTS지수를 확인해 보았다.

브레이크의 말대로 떨어지고 있는 상태였다.

심지어 그 하락 폭은 전주보다 이번 주가 더 컸다.

나도 러시아에 대해서는 조금은 알고 있었다.

CIA 본부에 있을 때 러시아를 꽤 중점적으로 조사했었다.

그러므로 러시아에 투자하기로 한 것이었다.

내가 보기에는 이미 충분히 떨어진 것 같았지만 이번은 브레이크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

"그렇게 하죠."

러시아 투자 전문가를 영입해놓고 처음부터 뜻을 꺾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나는 러시아에 투자하기로 한 내 결정을 후회했다.

"오늘 또 야근해야 해?"

모스크바는 홍콩보다 표준시간이 5시간 늦었다.

이건 주식 시장도 5시간 늦게 폐장된다는 의미였다.

퇴근 시간이 러시아에 투자를 결정하기 전보다 훨씬 늦춰진 것이다.

아시아 주식 시장을 중심으로 투자할 때는 느끼지 못했던 차이였다.

전에는 나스닥에 투자할 때 일주일에 한 번 꼴로 하던 야근이 생활화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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