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몽
# 부자의 유머는 항상 재미있다.
수요일 주식 시장이 폐장하기 직전에 나는 월요일 아침에 투자했던 대만 선물을 매각했다.
단 3일 만에 대만의 주식 시장은 7.1%나 폭락했다.
결과적으로 내가 대만 지수 선물을 통해 얻은 이익은 구십만 불 정도였다.
레버리지를 더 많이 사용했다면 훨씬 많은 수익률을 얻을 수도 있었겠지만, 레버리지를 투자 금액 대비 3분의 1 정도만 썼다.
처음과는 달리 이제 내가 관리하는 금액은 몇 달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이제 굳이 큰 위험을 감수하지 않아도 충분했다.
더구나 대만 선물에 투자해서 버는 돈의 30%는 임순에게 주기로 약속했다.
아무리 임순을 계속 이용할 생각이었지만 너무 많은 돈을 주는 것은 좋지 않았다.
임순에게 줄 30%인 이십칠만 불 정도만 해도 이미 충분히 많은 금액이었다.
거래를 끝나고 나는 임순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청의 임순입니다.
전화를 받은 것은 비서가 아니라 임순 본인이었다.
"에드릭입니다. 지난번 하신 일에 대한 대가 때문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벌써 처분하셨습니까?
임순은 놀란 말투였다.
내가 선물에 투자한 지 3일 만에 팔 줄은 몰랐던 것 같았다.
"예. 지금 막 선물을 청산했습니다.
-그렇군요. 저는 다음 주까지는 기다리실 줄 알았습니다.
"더 떨어질지도 모르지만 이미 하락할 만큼 하락한 것 같아서요."
3일 만에 7% 이상 떨어졌다.
나는 당장 전쟁이 나는 것도 아닌 상황에서 하락 폭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이번 충돌로 미·중 사이의 긴장이 한 달 동안 지속한다고 해도 그 하락 폭은 3% 내외일 것이다.
한 달 동안 3%의 수익률을 얻을 다른 기회는 많았다.
-역시···. 다른 사람과는 좀 다르시군요.
"그냥 오래 기다리는 것을 잘하지 못하는 것뿐입니다. 그러나저러나 전에 약속했던 돈을 보내고 싶은데 어디로 보낼까요?"
-벌써요? 오늘 매각하셨으면 돈을 받기까지는 좀 시간이 걸리지 않나요?
임순의 말대로 오늘 선물을 매각했다고 바로 현금화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이미 나나 내가 관리하는 투자금은 겨우 임순에게 줄 보수 정도를 송금하기 위해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계좌에 언제든지 당장 찾을 수 있는 금액만 이천만 불이 넘었다.
"어차피 보낼 돈이라면 바로 보내는 것이 좋지요. 임순 씨도 이번 일로 성의를 표시할 분들이 있지 않겠습니까?"
내가 이십칠만 불을 임수에게 보낸다고 해서 그 돈을 전부 임순에게 주는 것은 아니었다. 이 정보를 알아낸 관리들에게도 사례해야 했다.
내가 임순에게 건네는 돈은 그 관리들과의 관시를 유지하라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었다.
-금액을 알 수 있겠습니까?
임순이 물었다.
"약속한 30%는 이십칠만 불입니다. 여기에 웬 지하오를 조사할 미래 비용을 합쳐서 삼십만 불입니다."
-삼십만 불···. 직접 받는다고 생각하니···. 아주 큰 금액이네요.
삼십만 불이면 중국이 아니라 미국 최고 법무법인의 중견 변호사들이 받는 연봉이었다.
"하신 일에 대한 대가를 받는 것뿐입니다."
-혹시 돈을 나눠서 보내주실 수 있겠습니까?
임순이 제안을 해왔다.
"어떻게 나눠서 보내 달라는 말씀이신지?"
내가 물었다.
비용 처리를 하자면 한 곳에 보내는 것이 편했다.
-우선 이십만 불을 다청 계좌로 보내주시고 나머지 십만 불을 제가 싱가포르에 있는 계좌로 받고 싶습니다.
"다청의 계좌로요?"
내가 다시 물었다.
임순의 요구가 조금 이상했기 때문이다.
뒤에 나온 싱가포르의 개인 계좌로 돈을 보내 달라는 말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다청의 계좌로 보내 달라는 것은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렇습니다. 저를 고문변호사로 고용하는 형식으로 해서 회사로 이십만 불을 보내주셨으면 합니다.
"굳이 그럴 이유가 있나요? 회사와는 상관없이 임순 변호사님이 따로 번 돈 아닙니까?"
-다청은 꽤 빠르게 규모를 늘리고 있습니다. 지금도 실적이 모자란 것은 아니지만 위로 올라가려면 실적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죠.
눈앞의 돈보다 다청 내에서 입지를 굳히겠다는 의미였다.
나로서는 나쁠 것이 없는 제안이었다.
다청은 지금도 중국 전체 법무법인 중에서 1, 2위를 다투는 법률회사였다.
임순이 다청에서 위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내게도 도움이 되는 일이었다.
"고문변호사로 고용하기를 원하시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대가도 충분히 지급할 생각이 있고요. 삼십만 불은 그대로 임순 변호사님이 개인 계좌를 알려주시면 그곳으로 보내겠습니다."
-말씀은 감사합니다. 하지만 약속하신 금액만으로도 제가 한 일에 대가로는 충분합니다. 이번은 제 말대로 해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상대가 계속 거절하는 데 계속 우기는 것도 좋은 방법은 아니었다.
나로서는 오히려 임순의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야망이 크지만, 욕심을 자제할 수 있다는 것은 큰 장점이었다.
비록 중국을 방문한 목적인 웬 지하오를 회사에서 쫓아내는 일은 미뤄지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임순을 알게 됐으니 실패는 아니었다.
중국 방문은 임순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성공이라고 할 수 있었다.
나는 한동안 중국에는 투자할 생각이 없었다.
지금의 투자만 생각하면 굳이 임순을 고문변호사로 고용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지만 CIA 요원으로서는 고위직과 가까운 임순의 가치는 대단히 컸다.
-가까운 시일 안에 제가 홍콩을 방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고문변호사 계약서도 써야 하니 그때 뵙기로 하죠.
"그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네요. 그럼 홍콩에서 뵙겠습니다."
나는 전화를 끊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보았다.
이미 아시아 주요국의 주식 시장은 모두 폐장한 시간이었다.
예전이라면 이때쯤이면 모든 일과가 끝나고 퇴근할 시간이었다.
그렇지만 오늘은 아직 해야 할 일이 한참 남아있었다.
우선, 할 일은 바로 러시아 주식 시장인 RTS에 대한 투자였다.
아시아 주식 시장이 모두 폐장된 지금이 러시아는 한창 주식 시장이 열리고 있을 시간이었다.
브레이크가 제시한 매입 시점은 RTS 지수가 161에서 162 사이였다.
어제 추세로 봐서는 오늘이 매입 적기였다.
지수가 떨어질 때마다 사들이고는 있지만, 아직 투자할 칠천삼백만 불 중에서 삼천만 불 정도가 남아있었다.
"아직 멀었어요?"
나는 러시아 투자를 책임지고 있는 브레이크를 보며 물었다.
"거의 다 되어 갑니다. 그런데 팀장님은 아예 매입을 안 하십니까?"
브레이크가 나를 보며 말했다.
그는 나를 약간의 불만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브레이크 자신과 리안 그리고 심지어 카이 황까지 조금이라도 싸게 사기 위해서 가격이 내려갈 때마다 사들이고 있는데 나는 전혀 관여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었다.
"리안이 그러더군요. 내가 투자 감각을 타고났다고요."
브레이크가 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다른 사람이 그런 이야기를 했다면 건방지다는 생각이 들겠지만···. 몇 달간 투자 실적만 보면 틀린 말도 아니었네요. 저도 직접 확인하지 않았다면 몇 달 사이에 그런 엄청난 금액을 벌었다는 믿지 못했을 겁니다. 그렇게 큰돈을 벌었는데도 밖에는 거의 소문도 나지 않았다는 것이 더 놀라운 일이지만요."
보통 나 정도로 단기간에 엄청난 수익을 올리면 소문이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도 외부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것은 류오린이라는 회사의 특성 때문이었다.
류오린에서 투자로 엄청난 이익을 얻어도 그게 권력층의 비호인지 아니면 진짜 실력인지 구별이 되지 않았다.
한마디로 중국 권력층의 비자금을 다룬다는 특성 때문에 비밀이 지켜지는 셈이었다.
내가 류오린에 남아있는 이유 중 하나였다.
아마 내게 투자금을 맡긴 홍콩의 부호들도 죽은 왕 웬준이 직접 알리지 않았다면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나는 브레이크를 보며 미소를 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나도 내가 꽤 투자에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단 한 가지···. 투자자로서 가지지 못한 것이 있어요."
"가지지 못한 것이라고요?"
브레이크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꽝손이에요. 꽝손···. 뻔히 가격이 오르는 거나 내리는 것을 알겠는데 매매 타이밍이 조금씩 늦더군요."
브레이크는 내 말이 믿기지 않는 얼굴이었다.
"그런···. 제가 며칠 동안 본 팀장님은 순발력이나 운동신경이 나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데요?"
"나쁘지 않죠. 고등학교 때 농구부와 풋볼 모두 주 올스타로 뽑힌 적이 있습니다. 당연히 대학에서 스카우트 제의도 받았고요. 대학 때는 쿼터백이었습니다."
"그런데도 타이밍이 늦는다고요?"
"그렇더라고요."
브레이크가 고개를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내 눈에 웃고 있는 리안의 모습이 보였다.
"뭐가 그렇게 웃긴 데?"
"그냥···. 브레이크도 지금은 저러지만 네가 직접 매매 하는 모습을 보면 나처럼 이해할 거야. 때로는 보지 않으면 믿을 수 없는 일도 있다는 것을 말이야."
"어째 나를 비웃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내 착각인가?"
나는 리안의 얼굴을 똑바로 노려보았다.
"글쎄···. 자신을 꽝손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가장 잘 알지 않을까?"
리안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가 거래에서 실수하는 것은 내 잘못이 아니라 여기 시스템이 익숙하지 않고 단말기도 내 손에 맞지 않아서라고···."
"그런 사람들이 있지. 자신이 잘못하는 것을 시대를 탓하고 장비를 탓하는 사람들···. 그런데 그런 사람이 탓할 것은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모른다는 말이지."
"뭐야!"
"'꽝손'이지만 분석은 잘하잖아. 너 정도로 분석과 예측을 잘하면 다른 것 다 못해도 상관없다고···. '꽝손'이면 어때. 돈만 잘 먹고 수익률만 높으면 '꽝손'도 상관없다고···."
분명 칭찬하는 말이지만 묘하게 기분 나쁜 말이었다.
특히 '꽝손'이라는 단어는 내가 한 말이기는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들으니 상당히 기분이 나빴다.
"꽝손이라는 단어를 왜 그렇게 강조하는 거야? 그게 뭐 그리 웃긴 단어라고···!"
내 말에 리안이 다시 미소를 지었다.
"솔직히 '꽝손'이라는 말이 웃기지는 않는데···. '부자의 유머는 항상 재미있다.'라는 말도 있잖아. 부자인 상사가 쓰는 말이니 익숙해지려면 자주 써봐야지. 팀원으로 사는 게 이렇게 힘들어요. 상사의 재미없는 농담에서 웃어주기 위해 이렇게 노력해야 하잖아."
"···."
내가 빌미를 먼저 준 것이라서 뭐라고 더 이야기해봐야 나만 손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먼저 고개를 돌렸다.
@@@
러시아 RTS에 투자를 마치고 브레이크는 퇴근했다.
하지만 나와 리안 그리고 카이 황은 여전히 퇴근하지 못했다.
지난번에 투자했던 나스닥 선물 투자를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이 정도면 떨어질 만큼 떨어진 거겠지?"
리안이 말했다.
나는 리안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까지 지난 한 주 동안 떨어진 나스닥 지수는 무려 11.6%야. 장이 열리자마자 되도록 빨리 팔아야 해."
우리는 다시 카이 황까지 들러붙어서 열심히 나스닥 하락에 투자했던 선물을 팔아 치웠다.
이때만은 매매 타이밍이 늦은 나도 참여했다.
어차피 빨리 파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