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스파이, 슈퍼리치 되다-57화 (58/270)

서몽

# 끝이 좋으면 다 좋다.

장이 열리고 한 시간 만에 선물을 다 팔아치울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선물을 다 처분하고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돈이 돈을 번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네."

작년 말 처음 왕 웬준에게 압박을 받고 투자를 시작할 때는 몇십만 불이라도 만회했으면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단 일주일, 한 주 동안 나스닥 선물 투자로만 벌어들인 금액이 무려 사천오백만 불이 넘었다.

수익률 자체는 지금보다 높았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투자 금액이 커진 만큼 수익은 이번 투자가 가장 높았다.

"AAM 투자금을 빼고 순수한 네 개인 투자금만 1억 불이 넘은 것 아니야?"

리안이 물었다.

나는 계좌를 확인해 보았다.

"세금을 내야 할 돈 빼면 아직 아니야."

내 계좌에 있는 금액은 임순에게 줄 삼십만 불을 빼면 일억천오백육십만 불이었다.

내가 겨우 일억 불을 모으겠다고 결심한 지 몇 달 만에 일억 불을 모은 셈이었다.

물론 여기서 내가 내야 할 세금만 삼천오백만 불이었다.

안타깝게도 세금으로 공제할 부분도 없어서 되돌려 받을 금액도 거의 없었다.

10월부터 오십만 불씩 70개월 동안 나눠서 내겠다는 서류를 작성해 놓은 상태였다.

삼천 오백만 불을 빼면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자금은···.

"팔천만 불 정도?"

"휴···."

내 말에 리안이 입을 벌렸다.

"홍콩에 부자가 많지만 언제든지 찾을 수 있는 개인 계좌에 팔천만 불을 가진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을걸?"

"뭔 소리야!"

나는 리안의 말을 단호하게 잘랐다.

"어디 가서 그런 소리 하지 마. 지금 이 투자금을 관리하는 계좌는 어디까지나 W&R Investment의 법인계좌이지 내 개인 계좌가 아니야."

법적으로는 그랬다.

물론 W&R Investment의 유일한 주주가 나였다.

하지만 법적으로는 계좌는 어디까지나 해외에서 투자를 받아 홍콩에 세워진 법인의 소유였다.

"뭐 그렇다고 치자고···. 그런데 일억 불이 넘는 투자금은 어떻게 할 거야?"

리안이 물었다.

나처럼 거액을 벌어들인 것은 아니지만 리안도 나스닥 선물에 투자해서 거액을 벌어들였다.

다음에 내가 어디에 투자할지 궁금한 것은 당연했다.

"한 주 동안 이 정도 떨어졌으면 이제 오를 때가 된 거지. 나스닥 선물에 다시 투자할 생각이야. 이번에는 상승에···. 다만···."

"다만···?"

리안이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투자 방법을 바꾸려고···. 이제 투자금도 늘었는데 레버리지를 많이 쓰는 것은 피할 생각이야."

지금처럼 레버리지를 많이 쓰는 상황에서는 예상과 달리 주가가 반대로 움직이면 큰 손해를 볼 수 있었다.

투자금이 순식간에 절반으로 줄 수도 있었고 심할 때는 외환차액거래강제청산, 이른바 마진콜을 당할 수도 있었다.

어차피 원금이 오십만 불 정도밖에 안 된다는 생각에 위험한 투자를 계속해왔다. 그렇지만 지금은 아무리 확신이 있더라고 위험한 투자를 하기에는 너무 금액이 커졌다.

더구나 내야 할 세금만 삼천오백만 불이 넘었다.

자칫 남은 돈이 없는데 세금을 내야 할 상황이 올 수도 있었다.

"이번 대만 주식에 투자할 때처럼 하겠다는 거야?"

리안이 물었다.

"그건 너무 작고··· 비슷해. 투자금 정도만큼만 레버리지를 쓰려고···."

나는 리안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나도 너무 위험하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어. 레버리지를 투자금 정도만 사용하면 포지션 청산을 당할 가능성은 없겠네."

마진콜이란 선물 거래에서 매일 일정한 손익 변동에 따른 일정 비율의 증거금을 유지하도록 하는 제도였다.

그 증거금을 채우지 못하면 해당 거래는 자동으로 청산된다.

선물이나 옵션에 투자하는 사람으로서는 최악의 상황이 바로 마진콜, 포지션 청산이었다.

"뭐 그렇지. 그러니 W&R Investment 계좌로 레버리지를 원금만큼만 사용해서 투자할 생각이야. 너는 어떻게 할 건데? 이번에도 나랑 같이 움직일 거야?"

나스닥 하락에 투자해서 돈을 벌어들인 것은 나뿐이 아니었다.

리안과 카이 황도 함께였다.

물론 둘은 나처럼 레버리지를 많이 쓰지 않았기 때문에 나보다는 수익률이 낮았다. 그래도 어지간한 투자자들의 일 년 수익률이었다.

"당연히 따라 해야지. 우리는 너랑 같이하려고 회사도 만들었어. R&H, 리안과 카이 황의 투자회사지."

"얼마나 투자하려고 회사까지 만든 거야?"

"천만 불. 물론 홍콩 달러가 아니라 미국 달러야. 내가 칠백만 불이고 카이 황이 삼백만 불이야. 생각 같아서는 더 하고 싶은데···. 재산 대부분이 땅과 건물에 묶여 있어서···."

리안이 아쉬운 표정으로 말했다.

홍콩의 주택 가격이 빠르게 회복하고 있지만, 아직 1997년 홍콩 반환 전 시세를 회복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홍콩의 부동산 가격이 오를 것을 뻔히 예상하는 상황에서는 가지고 있는 부동산을 파는 것은 바보짓이지."

내가 말했다.

"그래도 아쉬워. 아무리 부동산 가격이 오르더라도 네 수익률보다는 못할 것 같은데···."

말을 하며 리안이 고개를 카이 황을 바라보았다.

카이 황이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물론 에드릭 팀장님의 실력을 믿지만, 홍콩에서 다시 가문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지금 부동산을 팔 수는 없습니다. 단순히 돈이 많다고 홍콩에서 다시 명문가로 인정받을 수는 없습니다. 홍콩인에게 인정을 받으려면 그들이 살고 있는 땅을 가져야만 합니다."

"우리 집사님이 이렇다니까."

리안이 카이 황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알았으니까···. 빨리 나스닥 선물을 사들이고 퇴근하자고···. 또 밤을 새울 수는 없잖아."

나는 리안과 카이 황을 재촉했다.

이미 자정이 넘기는 했지만 서두르면 집에 가서 한숨 자고 나올 수 있는 시간이었다.

우리는 다행히 비교적 낮은 가격에 선물을 모두 매입하고 퇴근을 할 수 있었다.

그 후로는 별다른 일이 없이 한 주가 지나갔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한 가지 일이 있기는 했다.

주말에 태국에서 폭탄 테러가 연이어 일어난 것이다.

태국에는 내가 태국 정보원으로 포섭하고 있는 리 레이, 리 슈 남매가 있었다.

특히 리 슈의 여행업에는 직접 투자까지 하고 있었다.

이미 보낸 돈만 이십만 불이었다.

테러로 관광객이 줄면 내가 투자한 여행사도 타격을 입는다.

지난번 공항에서 폭발사고가 있었을 때 태국 주가는 폭락했었다.

나는 폭탄 테러 소식을 듣자마자 태국의 리 슈에게 전화를 걸었다.

"괜찮으십니까? 폭탄 테러가 있었다던데요?"

-여기 방콕은 아무 일도 없어요. 어차피 이번 폭탄 테러는 남부에서 발생한 일이에요.

리 슈는 안정된 목소리였다.

그녀의 말대로 아무 일도 없는 듯한 목소리였다.

"사망자도 나왔다고 하던데요?"

-사망자는 한 명뿐이에요. 죽은 것이 아이라는 사실이 불쌍하기는 하지만 매우 놀랄 일은 아니고요.

"여행업은 괜찮습니까? 폭탄 테러 때문에 손님이 줄 것 같은데요?"

-예약을 취소한 분이 있기는 하지만···. 여행사 주요 손님들은 대부분 의료 비용 때문에 태국까지 오시는 분들이에요. 저 멀리 남쪽에서 일어난 테러에 신경을 쓸 분은 별로 없어요.

본인이 괜찮다는 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 태국에 갔을 때 뵙겠습니다."

나는 언제 지킬지 모르는 약속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 외에는 말 그대로 평온했다.

CIA에서는 추가 지시가 없었고 웬 지하오도 별다른 도발이 없었다.

사실 CIA, 특히 아시아 지역의 CIA는 나에게 신경을 쓸 여력이 없었다.

온통 신경이 중국 하이난섬에 집중되어 있었다.

하이난섬 사건은 점점 미국과 중국 양쪽에서 국민 여론이 격화되고 있었다.

"미국 정찰기와 충돌해서 추락한 전투기 조종사는 수색에도 여전히 시체조차 발견되지 않고 있다면서?"

내 말에 리안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 정도면 이미 죽은 거지···. 사람 대부분이 사망했다고 여기는 분위기야."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그런지 중국 전투기 조종사의 사망으로 분노한 중국인이 많은 것 같아. 충돌한 미국 정찰기의 승무원 24명은 모두 살아 있어서 더 그런 것 같고."

"그렇지 충돌지점은 미국으로서는 공해상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엄연히 우리 중국의 영공이잖아."

리안은 평소 자신은 홍콩인일 뿐 중국인이 아니라고 말하고 다니고는 했다. 그런 리안조차 이번 일에는 철저히 중국 편인 것 같았다.

"미국 국민의 여론도 좋지 않기는 마찬가지야. 미국 정부에서는 공해상을 지나던 정찰기에 중국 전투기가 일방적으로 접근했다가 충돌했다고 발표하고 있고 말이야."

"그건 미국의 주장일 뿐이지."

리안이 말했다.

"그래도 여론이 나쁜 것은 마찬가지야. 특히 가장 큰 미국인들은 분노하게 하는 것이 인질극이야. 중국이 정찰기의 승무원 24명을 여전히 억류한 채 접근을 차단하고 있는 것에 분노한 사람이 많아."

"이쪽은 사람이 죽었잖아. 겨우 접근 차단한 것 가지고 분노한다는 것이 말이 안 되지."

"미국인들은 그게 아니라니까. 하이난섬에서 억류된 24명의 미군이라는 점에서 미국에서는 유명한 서부 영화 제목을 본떠서 이 사건을 하이눈이라고 부르고 있을 정도야."

하이눈은 인질극을 다룬 서부 영화의 걸작이었다.

많은 사람이 영화에 나온 인질범을 공산주의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예전에 그게 소련이었다면 지금은 중국이 된 셈이었다.

"인질이라니? 엄연히 미국 정찰기기 중국 영공을 침범한 사건인데. 승무원이 어떻게 되느냐는 미국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결정될 일이야."

리안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홍콩인이라고 떠들고 다녔던 리안이 이렇게까지 말하는 데 중국 사람들이 어떤 말을 하고 다닐지 짐작할 수 있었다.

강대 강으로 격화되던 이 사건이 진정된 것은 미국 대사가 중국 정부에 중국 전투기 조종사의 죽음과 중국 상공에 들어간 것에 대한 '강한 유감(very sorry)'을 표시하면서 진정국면에 들어갔다.

중국 정부는 방송이나 신문에서 미국이 두 가지 모두 사과한 것을 받아들인다면서 승무원의 석방을 약속했다.

미국 정부는 유감은 유감일 뿐 사과가 아니라고 이야기하며 남중국해 공해상에서 정찰 활동도 계속했다.

하지만 이런 내용을 기사로 내보낸 중국 내 방송이나 신문은 없었다.

정찰기의 인도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하이난 사건이 수습국면으로 접어든 셈이었다.

얼마 후 일본에서도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바로 버티던 모리 총리가 드디어 물러나기로 했다는 소식이었다.

모리 총리는 2주 후에 자민당 총재직과 일본 총리직에서 사임하겠다고 발표했다.

끝이 좋으면 다 좋은 게 아니겠는가?

그리고 나는 CIA에서 메일 하나를 받았다.

그건 내 보안등급···, 정확하게는 에이전트 에스팀의 보안등급이 올라갔다는 소식이었다.

그리고 이어서 내 보고서를 볼 수 있는 보안등급이 역시 올라갔다는 소식도 있었다.

나로서는 반갑지 않기도 하고 반가운 소식이기도 했다.

반가운 점은 이번에 나나 내 보고서에 대한 보안등급이 오르면서 나에게 접근할 수 있는 CIA 직원들의 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는 부분이었다.

나에 대해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내 안전은 높아진다.

반갑지 않은 이유는 CIA에서 내 존재 정확하게는 에이전트 에스팀이라는 있지도 않은 팀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었다.

이러다가는 CIA를 그만두기 전에 정체가 들킬 가능성이 컸다.

끝이 좋으면 다 좋은 게 맞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지금 이게 좋은 끝인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