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스파이, 슈퍼리치 되다-60화 (61/270)

서몽

# 최고의 방어는 공격이다.

CIA 일본지부가 야쿠자와 친하다는 내 말에 단테 패트릭이 정색을 하며 입을 열었다.

"CIA가 야쿠자랑 친하다니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단테 패트릭이 시치미를 뗐다.

하지만 단테 패트릭의 표정에서 그가 당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왜 이러십니까? 어제 주신 정보 중에는 도청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정보가 있더군요. 이야기 내용으로 봐서는 회의 중에 나온 내용도 아니고요. 그럼 술집에서 나온 이야기라는 것인데···."

"그게 야쿠자와 무슨 상관이라는 말인가?"

단테 패트릭이 다시 한번 부인했다.

"그럼 CIA가 직접 술집에 도청장치라고 설치했다는 의미입니까? 뭐···. 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없죠. 오랫동안 협조 관계에 있는 야쿠자 조직이 있는데요. 특히 도쿄는 동성회라고도 부르는 토우세이카이나 이나가와회가 있는 곳 아닙니까? CIA가 제2의 고다마 요시오를 만들지 않았을 리가 없지요."

"그건···."

내 말에 별다른 단테 패트릭이 반박을 하지 못했다.

고다마 요시오.

일본이 항복한 1945년부터 1980년 이전까지 일본 역사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는 일본 정계와 경제계의 해결사로 이름을 날리면서 막강한 영향을 발휘했다.

무엇보다 고다마 요시오는 1984년 죽기 직전 자신이 CIA라고 고백했다.

고다마 요시오는 이차대전 A급 전범 출신이지만 재판에서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고 풀려났다. 처벌을 면하는 대가로 CIA가 된 것이다.

풀려난 이후 막대한 자금력으로 정계에 영향을 발휘했다.

이때 고다마 요시오가 가장 친했던 정치인이 바로 지금 모리파의 뿌리인 기시 총리였다.

기시 총리와 고다마 요시오가 참여해서 이뤄낸 외교적 성과가 바로 한일협정이었다.

한일협정과 미국이 무슨 상관인가 하겠지만···.

한일협정이 1965년 미국은 아시아에서 궁지에 몰려 있었다.

중국의 핵실험을 성공시켜 아시아에서 군사 강국으로 부상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동남아시아에서는 베트남전에 참전해야만 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과 일본의 협조가 필요했던 미국으로서는 두 나라가 국교를 정상화하는 것이 꼭 필요했었다.

한일협정을 성공시킨 이후에 고다마 요시오는 다시 기시가 이끄는 청화회와 반대되는 파벌인 경세파를 이끌던 다나카 카쿠이에에게 접근해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미국 군수 기업들의 로비스트로 활동했다.

그렇게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던 고다마 요시오가 몰락한 것은 록히드 사건이라는 초대형 뇌물 사건 때문이었다.

록히드 사건은 록히드의 전투기와 항공기를 일본에 팔기 위해서 당시 총리이자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던 다나카 카쿠이에에게 뇌물을 준 사건이었다.

이 사건으로 결국 다나카 카쿠이에는 총리에서 쫓겨났고 고다마 요시오도 몰락했다.

그리고 죽기 직전에 자신이 CIA라는 사실을 밝혔다.

일본 패망 후에 고다마 요시오의 인생을 보면 철저하게 자신의 이익과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 움직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일본 삼대 야쿠자 조직 중 하나인 이나가와회는 이 고다마 요시오가 살아 있을 때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던 조직이었다.

다음으로는 동성회가 있었다.

동성회는 도쿄 긴자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조직이었다.

지금은 야마구치구미 산하 조직이지만 본래는 독립된 조직으로 전성기에는 일본 10대 조직 중 하나로 이름을 날리던 조직이었다.

동성회의 회장은 마치이 히사유키 한국 이름은 정건영인 한국계 일본인이었다.

그런 동성회가 일본에서도 가장 번화한 도쿄 긴자를 장악할 수 있었던 것은 일본을 한때 지배했던 미 군정이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미 군정은 각종 이권 사업을 동성회에 밀어줬고 그렇게 쌓은 돈을 바탕으로 정치인과 유착하면서 동성회는 일본의 수도인 도쿄 그중에서도 중심인 긴자를 지배했다.

미국 군정이 아무런 이유 없이 야쿠자를 밀어줄 리가 없었다.

내가 CIA에 있던 시절 본 서류에 따르면 동성회의 회장인 마치이 히사유키는 CIA의 요원은 아니지만, 일본 현지 협조자 중 하나였다.

무엇보다 마치이 히사유키는 1940년대부터 1970년대 말까지 일본에서 해결사로 이름을 날렸던 고다마 요시오의 오른팔이었다.

그리고 역시 한일협정과 그 이후 과정에 깊이 참여했다.

범죄자를 협박과 당근으로 회유해서 이용하는 것은 CIA가 창설 당시부터 써먹는 방법이었다.

고다마 요시오도 죽고 마치이 히사유키도 사실상 은퇴상태지만 CIA가 야쿠자 내에 다른 인물을 포섭하지 않을 리 없었다.

"뭐···. 말씀하기 어려우면 말씀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희 팀이야 일본에 온 것은 본부에서 단테 패트릭 사무관님을 도우라는 지시를 받고 온 것이니까요. 하지만 저에게 정보를 숨기시면 일을 제대로 진행할 수 없습니다."

내 말에 단테 패트릭이 잠시 고민하는 듯 말이 없었다.

"자네 팀의 팀장이면 모르겠지만 자네에게는 이름을 알려줄 수가 없지만···. 협조자가 없지는 않네."

단테 패트릭이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인정했다.

"말할 수 없다면 굳이 이름은 묻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나오시면 곤란합니다. 저희 팀은 지금 하는 일만으로도 아주 바쁩니다. 만약 이번 일이 지난번 모리 총리 하야 후속 조치라는 말이 없었다면 저도 오지 못했을 겁니다."

내 말에 단테 패트릭의 표정이 굳어졌다.

기분이 나쁜 것 같지만 상관없었다.

도대체 내가 계속 단테 패트릭을 도와야 하는 이유가 뭐라는 말인가?

물론 이번 일은 모리 총리 낙마 뒤처리니 나와 아주 관계가 없는 일은 아니었다.

그렇지 않아도 중국의 기를 한 번 기를 꺾으려고 하는 시점이었다.

이런 시점에 한국이나 중국과의 관계를 중요시하고 미국과 사이가 나쁜 하시모토가 총리가 되는 일은 미국에 좋을 것이 없었다.

그렇지만 그게 단테 패트릭이 본부에 우리 에이전트 에스 팀(물론 실제로는 없는 팀이지만···.)의 도움을 요청할 근거는 되지 않는다.

"어쨌든 고이즈미 의원이나 야쿠자에 대한 것은 서기관님께서 알아서 하십시오. 저는 다른 쪽으로 하시모토 의원을 공격해보겠습니다."

내 말에 단테 패트릭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다른 쪽이라니?"

단테 패트릭이 물었다.

"하시모토가 속한 다케시타파 즉 경세파는 예전부터 기업이나 이권단체와 밀접한 관계였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거론하는 사람이 없지만 5년 전인 1996년쯤 하시모토 총리와 중국인 여성에 관한 스캔들이 돌았던 적이 있습니다. 하시모토 총리가 82년 일·중 우호친선방중단의 일원으로 중국을 방문했을 때 만났던 여성과 꽤 친해졌고 나중에 그 여성이 85년 주일중국대사관 직원으로 왔을 때 밀접한 관계였다는 소문이죠."

"그런 일이 있었나?"

단테 패트릭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예. 이게 더 심각했던 것은 대외정보 수집업무를 담당하는 베이징시 공안국 제2처에 근무했다는 사실이죠. 한마디로 중국 쪽 간첩으로 거물이 될 것으로 예상하던 하시모토 의원에게 고의로 접근했다는 것이죠."

"정말 중국 요원인가?"

단테 패트릭이 다시 물었다.

나는 단테 패트릭의 질문에 미소를 지었다.

"사실이든 아니든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죠. 중요한 것은 그 여성이 일본인과 결혼해서 현재 일본에 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시모토 의원이 중국 쪽과 밀접한 관계라는 거짓 소문을 섞어서 이 중국 여성과 적당한 이야기를 만들면 일본 주간지들이 개떼처럼 달려들 것입니다."

내가 말했다.

단테 패트릭이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은 계획이군. 그렇게 비리 의혹이나 추문이 퍼지면 고이즈미 쪽의 개혁 이미지가 더 두드러질 테고 말이야."

단테 패트릭도 바보는 아닌 듯했다.

"바로 그런 계획입니다."

단테 패트릭에게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이번 계획의 주요 목표는 하시모토 의원이 아니었다.

내가 이런 소문을 퍼트려서 방해하려고 하는 것은 하시모토의 당선이 아니라 홍콩에 있는 류오린의 웬 지하오 팀장이었다.

이번에 소문을 퍼트리면서 웬 지하오가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일본 공장 인수를 끼워 넣을 생각이었다.

중국 회사가 일본 공장을 인수해서 기술을 빼 가려고 하는데 그걸 하시모토 의원이 돕고 있다···.

거래에 예전 하시모토 의원과 추문이 있었던 중국 요원 출신의 여성이 관계되었다.

공장의 기술을 다 빼 가면 중국 공장을 폐쇄하고 직원들을 해고할 것이다.

이런 소문이 퍼지면···.

하시모토가 총재 선거에서 지면 공장을 소유한 기업은 신임 총리인 고이즈미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정계와 재계가 밀접한 일본에서 총리의 정적과 관련된 일을 추진할 기업은 거의 없었다.

반대로 하시모토가 총리에 당선되더라도 웬 지하오의 공장 인수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시모토로서는 소문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공장 인수를 쉽게 허락하기 어려울 것이다.

팀장이 되고 첫 번째 받은 거래에서 실패하거나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면 웬 지하오의 회사 내 입지는 불안해질 수밖에 없었다.

"실행해보게."

단테 패트릭이 허락했다.

잠시 내 얼굴을 바라보던 단테 패트릭이 다시 물었다.

"일하는데, 자금은 필요하지 않나?"

솔직히 별로 필요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돈이라는 있으면 있을수록 좋은 것이었다.

더구나 돈을 준다면 거절하면 단테 패트릭이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었다.

"필요하기는 합니다. 아무래도 일본 주간지 기자들이 그냥 움직이지는 않을 테니까요."

내가 말했다.

단테 패트릭은 들고 온 가방에서 돈 세 뭉치를 탁자 위에 꺼내 올려놓았다.

"삼백만 엔이네. 오늘 환율이 122엔 정도니 지금 달러로 한 이만오천 달러 정도는 될 걸세."

겨우 삼백만 엔이라니···.

아니 일본 총리 선거에서 삼백만 엔으로 뭘 하라는 말인가?

그렇지만 나는 감사하다는 듯 고개를 살짝 숙여 보였다.

"감사합니다."

내 인사에 고개를 끄덕이던 단테 패트릭이 물었다.

"자네 연봉이 이 정도 아닌가?"

"예···. 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내 연봉이 얼마인지 이제는 별로 신경도 쓰지 않았다.

"내가 처음 CIA에 들어오던 때만 해도 연봉이 지금보다 훨씬 적었네. 뭐 그때는 소련이 건재했기 때문에 애국심으로 근무하던 때이기 했지만 말이야. 그나마 지금은 꽤 많이 늘어난 거야."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그랬다는군요."

"하여간 CIA나 FBI나 기본적인 능력에 맞춰서 연봉을 줘야 한다는 사실을 잊는다니까. 사명감이 밥을 먹여주는 것은 아니지 않나. FBI에서 로버트 핸슨 같은 반역자가 나온 것도 연봉이 적은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내 생각이야."

단테 패트릭이 2월에 잡힌 FBI의 소련 첩자 로버트 핸슨의 이름을 언급했다.

로버트 핸슨이 소련에 정보를 넘겨서 죽은 사람들은 CIA 정보원이나 요원이었다.

"자네는 특수팀이니 더 걱정되겠군."

"뭐 그렇죠."

CIA 요원들, 특히 현재 위장 임무 중인 나에게는 남의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근무 중이라면 비밀계좌로 연봉이 들어가겠군."

"그렇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이번 임무를 하는 동안 내 연봉은 CIA가 지정한 비밀계좌로 보내고 있었다.

유일한 장점이라면 연봉을 받지만, 정식으로 수입으로 잡히지 않기 때문에 세금을 내지 않는다는 정도였다.

"잘 모아두게. 그렇게 모아두면 임무 끝나고 나면 꽤 큰돈이 될 거야."

"알겠습니다."

나는 간략하게 대답했다.

일 년에 삼만 달러가 안 되는 CIA 연봉은 지금 나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아니 설사 있다고 해도 무능해 보이는 단테 패트릭에게 잔소리를 듣고 싶지는 않았다.

"이런 내가 시간이 없는데 쓸데없는 소리를 했군."

이런 내 생각을 눈치챘는지 단테 패트릭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닙니다."

"그럼 이제 움직이세."

단테 패트릭이 안가를 떠난 후 나는 넘겨줄 자료들과 접촉할 주간지 기자들의 명단을 정리했다.

기자들에게 접근할 때는 고이즈미의 열렬한 지지자라고 소개할 생각이었다.

약간의 변장을 한다면 속이는 것은 별로 어려울 것 같지 않았다.

물론 기자들은 나를 지지자라기보다는 고이즈미 쪽에서 보낸 사람으로 생각하겠지만 상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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