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스파이, 슈퍼리치 되다-61화 (62/270)

서몽

#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고이즈미 의원의 계파 탈퇴 선언으로 시작된 자민당 총재 선거는 열기를 띠고 있었다.

이번 선거에서 고이즈미가 이길 희망은 지방에서 선출된 대의원의 표를 얻는 것이었다.

그리고 공략 목표인 대의원들은 일본 전역에 퍼져있다.

나는 기자들을 직접 만나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메일을 보거나 전화를 하는 방법을 주로 사용했다.

아무리 변장을 한다고 해도 기자들을 만나서 좋을 것이 없었다.

기자들에게는 익명의 제보자라고 소개했다.

기자들도 내가 누구를 위해 움직이는 눈치채고 있었다.

그들이 모르는 것은 내가 고이즈미도 모르고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었다.

때로는 직접 대의원에게 연락하는 때도 있었다.

물론 그 대의원들에 대한 정보는 CIA를 통해서 받았다.

매일 사람을 만나고 전화를 거는 동안 한 주가 순식간에 지났다.

홍콩 리안에게서 전화가 왔다.

-일본에 간 지 한 주가 다 되어가는데 언제 오는 거야?

"한 사오일은 더 있어야 할 것 같아."

나는 지친 목소리로 대답했다.

여러 사람을 만나고 그보다 더 많은 전화 통화를 했더니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며칠 더 있어야 한다고?

"응."

-하는 일은 잘 돼 가?

"대충은···."

-그런데 대체 일본에서 무슨 일을 하는 거야?

"지난번에 말했잖아. 웬 팀장 관련된 일이라고···."

-듣기는 했는데 그 일 때문이라면 너무 오래 있는 것 아니야? 혹시 다음 투자처가 일본이야?

리안이 물었다.

아무래도 내가 일본에서 너무 오래 있는 것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하는 듯했다.

"어쩌다 보니까 일정이 길어지네."

-너 너무 웬 팀장 신경을 쓰는 것 아니야? 지난번 중국 출장도 그렇고···. 어차피 그냥 귀찮게 하는 것뿐인데 뭘 그렇게 신경을 쓰는 거야?

"웬 팀장에 관한 일은 그냥 핑계고 일본에서 이것저것 하고 있어."

-그래? 그럼 이해는 가는데···. 뭔 일인데?

리안이 내가 일본에서 하는 일에 관해 물었다.

물론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일본 자민당 총재 선거 운동을 하는 행동 뭐라고 설명하겠는가?

"왼손이 모르게 왼손이 하는 일을 돕는 일?"

나는 마태복음에 나오는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를 인용해서 이야기했다.

-뭔 소리야? 혹시 자선 사업이라도 하는 거야?

"그럴 리가···. 그냥 아는 사람이 하는 일을 돕고 있고···."

-뭔 소리인지? 뭐 그럼 바로 못 온다는 거지?

"아까 말했잖아. 며칠 더 걸릴 것 같다고···."

-그럼 투자는 어떻게 할 거야?

"잠시만···."

리안의 질문에 나는 가방에서 쪽지를 꺼냈다.

쪽지 에는 며칠간 생각날 때마다 써 놓았던 투자 방향이 적혀 있었다.

"우선 나스닥에 한 투자는 그냥 놔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아."

-그래? 네 말대로 지난주에 연준이 금리를 인하해서 이미 처음 투자했을 때보다 27%나 올랐던데···. 더 오르지 않을 것 같은데 파는 게 낫지 않겠어?

레버리지를 100%를 썼으니 실제로는 54%의 수익률이었다.

이주 만에 투자금액이 일억 불이었으니 오천사백만 달러를 벌어들인 셈이었다.

차익 실현을 하는 것이 당연한 순간이었다.

아마 내가 일본에서 일하지 않고 홍콩에서 다음에 투자할 시장을 선택한 여유가 있었다면 당연히 이번에 차익실현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주 내내 다음에 투자할 곳을 정할 시간이 없었다.

"그렇기는 한데 지금 분위기라면 나스닥이 내려도 크게 내릴 것 같지는 않아. 어차피 선물 수수료를 생각하면 그냥 다다음 주까지 가지고 있는 게 나을 것 같아.

-뭐···. 그렇게 하겠다면 어쩔 수 없지. 한국과 태국에 한 투자도 계속 유지할까?

"두 곳에서는 수익률이 얼마지?"

나는 리안에게 수익률을 물었다.

어젯밤까지의 수익률은 확인했지만, 오늘은 두 시장의 주가를 확인할 여유가 없었다.

-나스닥에 비하면 수익률이 크지는 않아. 지금 팔면 한국이 6% 조금 더 넘을 것 같고 태국은 5. 조금 넘을 것 같아.

나스닥에 비하면 낮지만 한 주에 오른 상승률로는 한국의 6%는 말할 것도 없고 태국의 5%도 매우 높은 수익률이었다.

"그럼 한국은 그냥 한 주 더 가지고 가고 태국은 팔자."

한국은 미국 주식 시장과 같이 움직이기 때문에 투자한 것이었다.

나스닥을 팔지 하는 데 한국을 팔 이유는 없었다.

그에 비해 태국은 금괴라는 근거 없는 뜬구름 잡는 호재를 바탕으로 투자한 것이었다. 금괴가 실제 나올 가능성이 없는 이상 파는 것이 옳았다.

-알았어. 그럼 태국에서 판 자금은 어떻게 할까?

리안이 물었다.

리안의 질문에 나는 마땅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글쎄···. 어디에 투자해야 하나···."

바쁜 와중에도 내가 완전히 투자에 관심을 끊은 것은 아니었다.

다른 때는 자료를 정리하다 보면 이거라는 뉴스나 정보가 있었고 그것을 기반으로 투자했었다.

그렇지만 여유가 없어서 이번에는 달리 마땅히 투자할 곳을 찾지 못했다.

"리안 너는 어디에 투자했으면 하는 곳 없어?"

나는 리안에게 물었다.

리안이 나와 같이 일을 하기 전에도 아시아 주식 시장에 투자해서 꽤 높은 수익률을 올리고 있었다.

물론 그 수익률은 감각적으로 매매 시점을 찾아내는 능력 때문이지만 그렇다고 리안이 종목 분석을 전혀 못 하는 것은 아니었다.

-글쎄···. 나는 잘 모르면 특별한 악재가 없는 시장에서 주가가 많이 내려간 곳에 투자하거든···.

말도 안 되는 투자 방법으로 보이지만 사실 그렇지도 않았다.

연구 기관에 발표에 따르면 직전에 가장 많이 상승한 주식을 사는 것보다 직전에 가장 많이 하락한 주식을 사는 것이 오히려 수익률이 높다는 발표도 있었다.

"아시아 시장 중에서 올해 가장 많이 떨어진 곳이 어딘데?"

-잠시만···.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가 올해 들어서 16% 정도 떨어졌고 홍콩과 인도네시아가 13% 정도 떨어졌네.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는 정치적으로 언제 돌발변수가 생길지 모르니 좀 그렇고···. 홍콩과 싱가포르 중에서 선택해야 하는데···."

-그럼 당연히 싱가포르지!

리안이 말했다.

"홍콩은 왜?"

-전에 말했잖아. 홍콩은 국외에서 주식투자로 번 돈에 대해서는 세금을 물리지 않아. 한마디로 같은 수익이라면 세금 정도 만큼 싱가포르가 수익이 높다는 의미야.

"···."

있는 놈이 더하다고···.

세금을 내기 싫어서 홍콩 주식 투자 시장에 투자하지 않는다니···.

이해가 가고 당연한 선택이라는 생각은 들기는 했다.

"그럼 그렇게 하자."

-알았어. 그럼 돌아오면 보자.

나는 전화를 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민당 총재 선거는 이제 중반전으로 들어갔지만 이제 내가 할 일은 거의 다 끝난 셈이었다.

남은 기간에는 웬 지하오의 공장인수를 방해하기 위한 일을 본격적으로 할 생각이었다.

나는 도쿄를 떠나서 나가노현으로 갔다.

나가노현에는 일본에서도 산골이라는 이미지가 강한 곳이기는 하지만 전자 관련 첨단공장도 많았다.

특히 웬 지하오가 인수하려고 하는 산요의 공장이 있는 곳이었다.

다른 산요 공장도 나가노현에 있었기 때문에 방해 공작을 하기에는 적당한 곳이었다.

당연히 내가 직접 소문을 퍼트릴 생각은 아니었다.

내가 찾은 곳은 나가노시에 있는 심부름센터였다.

"어서 오십시오. 무슨 일로 찾아오셨는지?"

여자 직원도 없는지 사무실에서 나를 맞은 것은 30대 중반의 사내였다.

말이 30대지 한 눈에도 좀 험한 인생을 살아왔다는 것이 드러났다.

세상 풍파를 좀 많이 겪은 것 같은 얼굴?

"도쿄의 수슈미 씨 소개로 왔습니다."

수슈미는 CIA에 협조하는 일본인 중 하나였다.

하는 일은 해결사로 야쿠자와 일반인 사이에 있는 이른바 반달이었다.

"아···. 수슈미 씨라면 저희에게 가끔 일을 맡기시는 분이죠. 무슨 일로 오셨는지?"

상대가 물었다.

"다이키라고 합니다. 일을 좀 맡기려고 하는데요?"

내가 말했다.

일을 맡긴다는 말에 사무실에 있던 다른 두 사람도 나를 바라보았다.

"일이라면? 어떤 일을 말씀하시는 것인지?"

"여기는 일을 가려서 받나 보네요."

나는 약간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그럴 리가요."

의자에 앉아 있던 다른 사내가 다가오며 입을 열었다.

그가 다가오자 지금까지 나를 상대하던 남자가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만들었다.

"유타라고 합니다. 이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상대가 자기에 대한 소개를 했다.

"이미 말했지만, 도쿄에서 온 다이키라고 합니다."

나는 가방에서 주간지 하나를 꺼내서 상대 앞에 펼쳐 보였다.

"이 기사와 관련이 있는 일입니다."

유타가 내가 펴놓은 부분을 내려다보았다.

"알고 있습니다. 하시모토 의원이 자신의 예전 애인을 통해서 이곳에 있는 공장을 중국회사에 매각한다는 이야기 아닙니까?"

"맞습니다. 우리나라의 공장을 중국 기업에 판다니 이건 나라를 팔아먹는 것 아니겠습니까? 중국회사가 기술을 다 빼가면 여기 공장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야···."

"중국 공장 노동자들과의 임금 격차를 생각하면 우리 기술을 다 빼가면 공장을 폐쇄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죠."

유타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공장 노동자들이 가만있으면 되겠습니까? 당장 들고 일어나야죠."

"아···."

유타가 이제야 내 말을 알아들었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잠시 후 표정이 굳어졌다.

"지금 그러니까···. 공장 노동자들을 선동이라도 하라는 말씀입니까?"

"실업자가 될 상황에서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내가 말했다.

"수슈미 씨에게 무슨 말을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그건 곤란합니다."

유타가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곧 일본의 총리가 될 사람이 관계된 일에 저희 같은 놈이 나섰다가는 죽으라는 말이나 다름없습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그런 큰 문제는 빼야죠. 일단 노동자들을 선동해서 공장 인수가 진짜로 진행되는지 확인하는 것이 우선 아니겠습니까? 지금은 주간지에 나온 기사뿐이지 진짜로 공장이 팔리는지 확실한 것아 아니지 않습니까?"

물론 실제로 공장인수는 진행되고 있는 것을 이미 홍콩에서 확인했다.

소문으로만 들었을 때와 직접 사실을 확인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었다.

자신들이 다니는 공장이 중국회사에 인수된다는 것을 확인하면 흥분하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중국회사에 인수된다는 것이 몇 년 안에 자신들이 해고를 의미한다는 것을 모를 리 없었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무슨 말씀인지는 알겠습니다. 그렇지만···."

유타가 거절하려는 순간 나는 가방에서 삼백만 엔을 꺼내 올려놓았다.

"선수금으로 삼백만 엔 드리죠."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여기 나온 공장 노조 임원과는 형 동생 하는 사이입니다."

유타가 말을 순식간에 바꿨다.

"일이 잘되면 나머지 삼백만 엔을 더 드리겠습니다."

당연히 삼백만 엔을 더 줄 생각은 없었다.

다시 만날 사이도 아닌데 뭐하러 주겠는가?

"감사합니다."

유타가 삼백만 엔을 손을 잡아서 확인한 유타가 내 얼굴을 보며 물었다.

"그런데 이런 거금을 써가면서 이런 일을 벌이시는 이유가?"

유타의 질문에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일본의 공장이 해외에 팔려가는 것에 분노하는 애국심이라고 해두죠."

개도 안 물어갈 거짓말을 했다.

당연히 상대도 내가 사실을 이야기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도 내가 만났던 기자나 대의원들처럼 고이즈미 쪽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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