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스파이, 슈퍼리치 되다-63화 (64/270)

서몽

# 집을 보면 집주인을 알 수 있다.

홍콩에 돌아와 출근한 첫날.

거의 열흘 만에 다시 온 사무실은 낯설었다.

집을 보면 집주인을 알 수 있다고 했는데 분명 내가 팀장인 사무실이었는데 내 손이 들어간 물건은 거의 없었다.

이 사무실을 보고 나에 대해 누가 평가한다면 전혀 다른 평가할 것이다.

다른 것보다 눈에 띈 것은 벽에 걸려 있는 커다란 그림이었다.

벌레가 떼 지어 있는 그림이었는데 무슨 벌레인지 정확히 알아볼 수는 없었다.

"이건 뭡니까?"

나는 카이 황을 보며 물었다.

"중국에서는 가장 존경받는 화가인 치바이스(Qi Baishi, 齊白石)의 그림입니다."

대단하다는 화가의 그림이라는 말을 들어서 그런지 그림이 괜찮아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건 무슨 벌레입니까?"

"벌레가 아니라 새우입니다."

"새우요?"

내가 보기에는 아무리 봐도 새우가 아니라 벌레처럼 보였다.

바퀴벌레 비슷하게 보이기도 했다.

그래도 벌레가 아니라 새우라는 말을 들어서 그런지 징그럽다기보다는 괜찮아 보이기는 했다.

"뭔가 힘차게 보이고 보기는 좋네요."

"마음에 드시면 몇 점 선물해 드리겠습니다. 다작한 작가라서 집에 꽤 여러 점이 있습니다."

"비싸 보이는데요?"

"말한 것처럼 워낙 다작한 작가라서 남아 있는 그림만 수천 점이 넘어서 그리 가격이 높지는 않습니다. 지금은 조금 오르기는 했지만 저희가 구매할 때는 만 위안도 안 됐습니다."

"그 정도라면 뭐···. 감사히 받겠습니다."

카이 황의 말대로 그리 비싼 금액은 아니었다.

만 위안이라면 천 달러 조금 넘는 금액이었다.

중국인들 사이에 이 정도 선물을 거절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었다.

"오전에 회의할 테니 준비 좀 해주세요. 제가 없는 동안의 투자 성과를 확인하기 위해 회의입니다."

카이 황에게 회의 준비 지시를 내렸다.

회의가 시작되기 전 카이 황이 내가 없는 동안 투자와 주가 흐름, 그리고 투자한 세부 주식들의 주가가 나타난 문서를 나누어 주었다.

먼저 보고를 한 사람은 러시아 투자를 담당하고 있는 브레이커였다.

"러시아 증시는 별다른 변동이 없습니다. 조금 오르기는 했지만 무시할 수준이고요."

"전망은요?"

"장기적인 전망이라면 밝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경제위기에서 회복하고 있고 원유 가격이 꾸준히 상승세에 있습니다."

브레이커가 장기전망에 관해서 이야기했다.

그가 맡은 러시아 투자는 우리 팀의 다른 투자와는 성격이 좀 달랐다.

다른 투자는 길어야 2~3주 정도고 보통은 1주에 한 번씩 투자 대상을 바꾸는 이른바 '스윙'에 가까운 매매 방법을 채택하고 있었다.

그에 비해 러시아에 대한 투자는 하락하지 않는 이상 일 년 이상의 장기 투자였다.

그렇지만 아무리 장기 투자를 한다고 해도 시장의 변화를 확인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다음 주 전망은요?"

"다음 주에는 미국과 러시아 간 군축 협상이 있어서 상황이 나아질 것 같습니다."

브레이크가 대답했다.

"괜찮네요. 브레이크 씨는 러시아와 동유럽 국가들의 증시와 경제 상황을 계속 확인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던 브레이크가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브레이크는 나에게 무슨 할 말이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무슨 할 말이라도 있나요?"

"지금 러시아 투자를 맡고는 있지만, 금액만 컸지 처음 투자를 하고 주가나 경제 상황만 확인하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이렇게 있어야 하는지···?"

"돈 문제 때문이라면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스카우트할 때 약속한 연봉은 물론이고 팀이 받는 성과급에서도 일정 부분이 나갈 테니까요."

"돈 때문이 아닙니다. 다른 팀원들은 바쁜데 저만 노는 것 같아서 좀 그렇네요."

나는 브레이크를 보며 말했다.

"지금은 나스닥과 아시아 국가에 대한 투자에 집중하고 있지만, 조만간 러시아나 동유럽 국가 그리고 남미까지 투자 범위를 넓힐 생각입니다. 그때 가서 너무 일 시킨다고 불평하지 마시고 지금 여유가 있을 때 푹 쉬어 두세요."

"알겠습니다."

브레이크가 안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고개를 리안에게 돌렸다.

리안이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이 주전 한국에 투자한 금액은 W&R의 투자금 천만 달러, 그리고 AAM의 투자금 천이백만 달러입니다. 합쳐서 이천이백 달러를 투자했습니다. 4월 11일 투자했을 때 코스피 지수가 505포인트 아침에 확인한 코스피 지수가 560포인트로 55포인트입니다. 약 11% 상승한 수준으로 수요일까지는 4~5%포인트 정도 더 오를 것 같습니다."

"수익률도 비슷하겠군요."

"아무래도 그렇습니다. 수익성보다는 안정성을 더 중요시하라는 팀장님 지시대로 대형주 위주로 사들이다 보니 지수 상승률보다 많아야 1~2% 높은 수준입니다."

리안에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이 주일에 15%에서 17%라면 매우 높은 수익률입니다. 이런 수익률을 올리는 상황에서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 없죠."

"아쉽지만, 알겠습니다."

내 말에 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이번에는 카이 황을 바라보았다.

"나머지는 카이 황 씨께서 보고해보세요."

"제가 보고를 하라고요?"

카이 황이 조금 놀란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어려운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어차피 리안 씨와 같이 주식 거래를 하셨을 테니까요."

카이 황이 고개를 돌려 리안을 바라보았다.

리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려운 일도 아니잖아요."

"알겠습니다."

카이 황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카이 황에게 보고를 지시한 것은 그를 임시로 뽑은 리안의 집사가 아니라 계속 함께 사원으로 받아들인다는 의미였다.

카이 황이 리안의 집사 일을 그만둘 가능성은 없었다. 하지만 투자금이 커지는 만큼 일이 많아지고 있었다.

카이 황이 없으면 당장 일을 나와 리안이 떠맡아야 하는데 그건 어려웠다.

새로 직원을 구한다고 해도 카이 황 정도로 믿고 능력 있는 사람을 구한다는 보장도 없었다.

물론 장기적으로는 사람을 더 고용해야겠지만 당장은 카이 황에게 조금 더 일을 맡길 생각이었다.

"열흘 전에 오백육십만 달러와 천이백만 달러를 태국에 1차로 투자했었습니다. 태국 증시가 5.3% 정도 상승한 이후 팀장님 지시에 따라서 차익실현을 위해 모두 팔고 싱가포르 증시에 투자했습니다."

내 예상대로 탁신의 파격 행보로 오른 주식 상승세는 오래가지 않았다. 떨어진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도 오르지도 않았다.

내가 리안을 가르치며 입을 열었다.

"싱가포르에 투자하기로 한 것은 제가 아니라 바로 저기 있는 리안 사원의 의견이었습니다."

"그게 내가 선택한 거야? 네가 조건 말해주고 주가 상태 이름 불러준 것이 전부인데?"

리안이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 정도면 네가 결정한 거지 그리고 주가도 올랐잖아. 그렇지 않습니까? 싱가포르 주식 올랐잖아요?"

나는 카이 황을 바라보았다.

"예! 올랐습니다. 올해 들어 세계 경제 침체로 싱가포르 증시는 16% 떨어졌었지만 다른 나라의 주가 상승과 최근 발표된 국가경쟁력 순위에서 싱가포르가 2위를 한 것에 힘입어 오늘까지 약 3% 상승했습니다. 아마도 주중에는 약 4% 정도까지는 오를 것 같습니다."

"올랐다잖아요. 성과급에 반영해 줄게요."

"뭔가 억지인 것 같지만 어쨌든 돈을 더 준다니 고맙네요."

리안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한국에 대한 투자와 마찬가지로 태국과 싱가포르에 대한 투자도 대형주 위주로 투자해서 시장의 상승률보다 크게 높은 수익률은 아닙니다. 이 주 동안의 상승률을 합하면 아마도 10%에서 12%의 수익률로 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카이 황이 보고를 마치고 나를 바라보았다.

"결국, 15%에서 10% 정도 수익률이라는 말이군요. 이 주 동안의 수익률로는 괜찮네요."

내 말에 회의에 참석해 있던 브레이크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괜찮은 정도가 아니죠. 이주에 10%의 수익률이라면 일 년이면 1000%가 넘는 수익률입니다."

브레이크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거야 이론상이죠. 매번 이런 수익률을 얻을 수는 없잖아요. 제가 없는 동안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이번 투자도 나름 성공적인 것 같네요."

"우리는 그냥 따른 것뿐인데요. 수고는 팀장님이 하셨죠."

카이 황이 말했다.

"한국 증시는 이주 만에 15% 오른 셈이니 일단 차익실현 차원에서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리안 씨와 카이 황 씨는 많이 오른 주식부터 차례로 매각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리안과 카이 황이 대답했다.

"아직 다른 아시아 주요국 대비 주가가 회복할 여력이 있는 것 같으니 싱가포르에 투자한 것은 일단 조금 더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나스닥요?"

내 이야기를 듣던 리안이 물었다.

나스닥은 우리 팀 투자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무려 처음 투자금액만 1억 불이었고 지난주까지 무려 27%가 올랐었다.

레버리지 100%를 사용한 선물 투자였기 때문에 수익률은 무려 54%, 오천사백만 불이었었다.

옆에서 듣고 있던 브레이크도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조금씩 떨어지고 있던데 괜찮겠습니까?"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 모였다.

나는 그들에게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사실대로 말하면 안 괜찮아요. 지난주 금요일에 처음 투자 대비 34% 올랐을 때 팔아야 했는데··· 이미 시기를 놓쳤죠."

내가 일본이 아니라 홍콩에 있었다면 33% 정도 올랐을 때 이미 팔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때는 내가 한창 바쁘게 움직이고 있을 때였다.

마지막 장이 열렸을 때는 그때보다 3% 정도 떨어졌다.

여전히 처음 투자 대비 큰 이익이지만 3%는 육백만 달러의 차이였다.

일본 출장으로 육백만 달러를 손해 본 셈이었다.

"그러면···?"

리안이 나를 바라보았다.

"오늘 시장이 열리자마자 일단 가능한 한 빨리 다 팔 생각이에요."

내 말에 리안의 표정이 굳어졌다.

"또 야근이야? 야근할 거면 미리 말해줘야지. 나 오늘 약속 있는 데 말이야."

리안이 불평을 늘어놓았다.

그의 말투는 회의 때 사용하던 말투와는 달리 편안한 말투였다.

"굳이 야근하라는 말은 안 할게. 내가 하지 뭐···."

나도 리안처럼 편안한 말투를 사용했다.

나는 잠시 말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카이 황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카이 황 씨는 괜찮죠?"

"저야 뭐···. 도련님이 약속으로 밖에 나가신다면 어려울 것은 없습니다만···."

카이 황이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됐어, 됐어! 나도 남지 뭐···."

리안이 말했다.

"아니 약속 있으면 굳이 필요 없다니까?"

리안이 강하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자신을 꽝손으로 부르는 사람을 믿고 있다가 투자금 다 날리라고?"

"그 말 쓰지 말라니까!"

"꽝손이라는 말을 꺼낸 것은 바로 넌데 누구를 원망해."

순식간에 난장판이 된 우리 대화를 옆에서 듣고 있던 브레이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도 오늘 남을 수 있는데요?"

나는 리안에게서 고개를 돌려 브레이크를 바라보았다.

그가 옆에 있다는 사실을 깜빡했었다.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이번은 우리끼리 하겠습니다."

나는 브레이크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가 섭섭할 수도 있겠지만 아직은 그를 완전히 믿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나스닥 선물을 처분한 며칠 후 고이즈미가 예상을 깨고 자민당 총재로 당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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